어떤 혼혈 영애의 49번째 회귀

4화. 발데마인, 혹은 로나르힘 (2)

리엔세라 : 4-2화

베레니체 비앙카 코톤 콜린은 콜린 자작 가문의 고명딸이었다. 다음 대 콜린 자작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발데마인 마법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타고난 재능으로 입학하자마자 상급 마법 반에 들어갔다. 그녀는 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어느 날, 베레니체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유일한 1학년이면서 특이한 소문에 휩싸인 이상한 아이를 만난다. 리엔시에 솔린 유레이토였다.

‘유레이토 영애, 로나르힘의 성녀님을 짝사랑하고 있대.’

‘고명하신 공작가의 후계자이시면서 추락한 성녀를 사랑한대.’

‘성녀님을 스토킹한다는 소문도 있던데.’

아이들이 그녀를 두고 쑥덕이는 소리를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베레니체는 그 소문의 영애가 궁금했다. 그래서 첫 수업 날, 제일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맨 뒷자리에 앉아 그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다림이었고 한 번도 그녀를 본 적 없지만, 바로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

‘...’

귀선유전으로 태어나 이종족의 외모를 한 소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유레이토 가문의 후계자가 특이한 외모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우연치 않게 두 번째로 강의실에 발을 들인 것은 소문의 그 애였다. 리엔시에는 자신이 제일 먼저 왔을 거라 생각했었는지 미리 자리 잡고 있는 제 모습에 조금 놀란 듯 보였다.

독특한 분홍빛 눈동자가 아름다운 소녀. 베레니체는 부러 밝게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리엔시에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구석진 자리에 가 앉는다. 베레니체는 리엔시에의 소심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저는 베레니체라고 해요. 베레니체 비앙카 코톤 콜린. 그쪽은...’

‘리엔시에예요. 리엔시에라고 불러주세요.’

가문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는 모습이 특이하다 싶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일 수도. 베레니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대화는 없었다. 그날은 그게 다였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통성명을 했으니까, 이제 그녀와 좀 더 알아갈 기회를 만들면 될 것이다. 베레니체는 성녀를 사랑하는 공작가의 따님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궁금했다. 그런데.

‘콜린 영애. 유레이토 영애와 친해요?’

‘네? 아뇨, 친하다고 하기엔...’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영애에게도 안 좋아요.’

‘왜요?’

‘외모도 좀 이상하고, 성격도... 성녀님을 사랑한다잖아요?’

‘......’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지. 물론 성녀는 사랑을 하면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성녀를 사랑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들어본 적 없다. 오히려 뭇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으며 그 힘으로 신의 기적을 행하는 존재가 성녀가 아니던가?

외모에 대한 건... 귀선유전으로 태어났을 뿐이지, 그녀도 같은 사람일지언데. 어째서 가까이 하지 말라는 걸까. 어느 고귀하신 문학 소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베레니체는 불편한 침묵을 유지했다.

‘공작님께서도 설마, 영애에게 진짜로 차기 공작자리를 내리시진 않으시겠죠. 레니발렌 공자가 멀쩡히 계시는데.’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흠흠.’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배척했다. 꺼려했다. 하지만 베레니체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같은 말을 쓰고 똑같이 사랑을 하고 평범하게 삶을 영위하는 존재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리엔시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귀족 영애였다. 저희들과 같이 발데마인에 다니는 똑같은 학생이었다. 붉은 머리 소녀의 마음이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언가 가슴 속에서 불씨를 터트리더니 곧 활활 타오른다.

화가 났다. 리엔시에를 괴물이라며 대놓고 수군거리는 아이들도, 그런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는 리엔시에에게도. 불의에 침묵하면 그것이 기정사실화된 양 사람들은 착각하고 떠들어대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베레니체는 사실이 아닌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불의를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리엔시에 영애. 잠깐 나 좀 봐요.’

점심시간, 어딘가로 총총 걸어가던 중인 리엔시에를 붙잡고 학교 뒤뜰로 데려갔다. 그녀가 이 시간에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리엔시에는 의외로 성녀를 보러 신전으로 향하는 대신 순순히 베레니체를 따라 뒤뜰로 갔다. 정오의 해가 높이 뜬 시각, 뒤뜰에는 베레니체와 리엔시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리엔시에. 당신은 왜 다른 이들이 거짓을 말하게 놔두죠?’

‘...그게 무슨 말이죠?’

‘당신에 대한 소문. 거짓이잖아요.’

‘저는 성녀님을 사랑해요. 진실이에요.’

‘그것 말구요. 알아요. 영애가 로나르힘의 성녀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 소녀를 앞에 두고 절로 한숨이 나올 뻔했다. 베레니체는 맞은 편에 선 소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리엔시에 영애는 다르지 않아요.’

‘...’

‘당신은 특별하지 않다구요.’

‘아...’

리엔시에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보였다. 자신의 말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꾹 다문 턱이 조금 떨렸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애도 그냥 평범한 발데마인의 학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왜 다른 학생들이 영애에 대해 함부로 떠들게 놔두는지 모르겠어요. 영애에게는 그걸 묵살시킬 힘이 있잖아요?’

‘...저는.’

베레니체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레이토 공작가는 라흐벤시아 제일 가는 첫 번째 가문이다. 심지어 리엔시에는 그런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런데 모두가 그녀를 비웃었고, 함부로 대했다. 업신여겼다.

리엔시에는 베레니체의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곧 시선을 들어 올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흔들림 없는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하자 조금 흠칫한 베레니체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상관 없어요.’

‘...네?’

‘제게 중요한 건 성녀님뿐이에요. 다른 이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둘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색투명한 장벽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성녀님만이 나를 구원해줄 수 있어요.’

그건 어떤 절대적인 신앙심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베레니체는 깨달았다. ─리엔시에는 진실로 성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애초에 자신이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봄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산들하고 부드러운 공기였다.

성녀는 제게 바쳐진 성배에 독이 든 줄도 모르고 마셔 넘길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잠긴 어느 숲의 공주처럼 깊은 잠에 빠지겠지.

저 애의 사랑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대한 하나의 ‘증상’이었다. 이번 대의 성녀 또한 사람들의 죄를 지고 흩어져 사라질 것이라는 예고.

성녀는 신의 대리인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세라엘은 저 아이로 인해 신이 계신 곳으로 먼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베레니체는 리엔시에가 최초의 성녀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직감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의 대리인이 성녀를 취하러 세상에 내려왔구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자애로운 신은 그 모든 죄를 사하여주기 위해 대리인을 보내 자신의 자녀를 죽이는구나.

───성녀의 죽음은 곧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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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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