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혼혈 영애의 49번째 회귀

1화. 공작가의 혼혈 영애와 후작가의 사생아 성녀 (1)

리엔세라 : 1-1화

대륙력. 그것은 주요 국가들이 모여있는 역사의 중심지, 중앙 대륙 로타니아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책력이다.

중앙 대륙에는 중심이 되는 융성한 나라가 둘 있다. 바로 그중 하나가 바로 서남쪽에 위치한 라흐벤시아 제국이다. 라흐벤시아는 건국 황제 셰이번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 신성 제국 비에르온의 멸망 이후 같은 위치에 자리 잡고 탄생했다.

비에르온의 교황은 셰이번에 의해 처형당했고, 당시 유력 귀족들 또한 모두 숙청당했다. 그러나 시기에 맞게 라흐벤시아로 편입한 가문들 또한 있었는데, 바로 유레이토 가문이 그런 가문이었다.

...건국 황제 셰이번은 본디 비에르온의 마구간지기 출신이었다. 그는 한 귀족 가문의 방계에서 태어난 사생아이기도 했다...

셰이번은 유레이토 가문의 방계였다. 그는 그 당시 유레이토 가주의 손녀였던 리셰트나와 먼 친척 관계에 해당했다. 리셰트나는 셰이번이 어렸을 적부터 같이 어울려 놀며 친하게 지냈던 소녀이기도 했다.

라흐벤시아 건국 이후, 셰이번은 타국에서 맞이한 자신의 비 사이에서 낳은 딸을 리셰트나의 아들에게 시집 보낸다. 역사서에는 그리하여 유레이토 가문과 라흐벤시아 황가가 건설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레이토 가문은 라흐벤시아의 유일 대공 가문으로 시작해 황족과 굳건한 사이를 자랑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금지된 마법에 대해 연구했다는 죄목으로 유레이토의 가주였던 헤이던이 처형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로 인해 대공의 지위를 박탈당한 유레이토는 그저 여럿 있는 공작 가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레이토 공작가와 황가 간의 신뢰는 두터운 것으로 보였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유레이토의 사람들이 황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그 자신들만이 알 일이렷다.

그리고 대륙력 992년 6월 24일. 이 긴 서두를 붙인 것은 모두 이날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었다.

*

성스러운 주일, 기적 같은 날에 유레이토 공작가의 후계자가 태어났다. 축복받은 계승자의 이름은 ‘리엔시에 솔린 유레이토’. 태어난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라흐벤시아에서는 성별에 상관없이 첫째가 가문의 계승권을 가진다. 그러므로 리엔시에는 태어나자마자 제국 유일 공작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리엔시에는 남들과는 다른 비밀과 특별함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는 환생자였다. 최초의 성녀였던 시에레인이 바로 리엔시에의 전생이었다.

시에레인은 자신의 먼 후손으로 다시 태어났다. 전생의 죽음 원인은 마녀라는 죄목으로 인한 화형이었다. 과거에 있었던 성전에 계속해서 참가하기를 거부함으로 인해 그녀는 타락한 성녀이자 마녀로 몰렸고, 처형당했다.

그때 당시에는 성녀가 아니면서 마법을 행할 수 있는 여성들을 마녀라 불렀고, 결국 최초의 성녀 시에레인의 죽음 이후 마녀사냥 붐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리엔시에로 태어난 지금은 비에르온 신성 제국이 활개를 치던 시절이 아니었다.

태평성대를 이룬 라흐벤시아의 귀족 영애로 태어난 것이 지금의 그녀였다. 전생에 비하면 엄청난 출세였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여기, 리엔시에가 가진 특별함은 환생자라는 비밀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는데...

그 특별함이란 다름 아닌 ‘외모’였다.

리엔시에 솔린 유레이토는 귀선유전으로 태어났다. 귀선유전이란, 먼 조상 중 이종족이 섞여 있어 후대에 확률적으로 그 특성이 발현된 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리엔시에는 엘프의 형질을 타고났다. 밀 빛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치아, 뾰족한 귀와 엷은 분홍빛 눈동자. 그리고 이종족 특유의 날카로운 동공까지. 한눈에 봐도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외관이었다.

이종족이란 신화시대에 인간과 공존했던 존재들로 지금은 거의 잊힌 과거의 유물로 치부되는 이들이었다. 적어도 라흐벤시아에는 이종족이 존재하지 않으며 혼혈 또한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래서 더욱 리엔시에는 남들보다 특별했고, 특이했고, 눈에 띄었다.

그녀는 자라가면서 깨달았다. 아, 나는 남들과는 정말 아주 다르구나. 절대 평범해질 수 없겠구나. 내 노력이 어떠하든 나의 삶은 이 외모로 인해 죽을 때까지 평가당하겠구나. 그녀는 그 사실이 못 견디도록 끔찍했다.

유력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피어날 삶을 기대했건만, 현실은 이리도 잔혹했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한 번도 거울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남들과 확연히 다른 외모가 너무나 싫어서. 제 눈동자와 뾰족한 귀가 몸서리치도록 싫어서.

그 사실을 굳이 거울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반사하는 물체가 근처에 없는 동안엔 유별난 외모에 대해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래, 어린 소녀는 자기 얼굴이 창피했다. 잘 때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잘 정도였다. 누군가 밤에 나를 본다면 놀랄 수도 있잖아.

하지만 유레이토 가문 사람들은 리엔시에의 외모에 대해 흠을 잡지 않았다. 하나뿐인 남동생 또한 부모의 영향을 받아 누나의 외모를 유별나게 여기지 않았다. 리엔시에는 그것이 못내 다행이면서도 그로 인해 가슴 한구석이 불편했다.

─차라리 그들도 자신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리엔시에라는 소녀를 비정상으로 여겼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럼 나도 좀 더 편하게 나를 미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부정하고 차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모르고, 내가 나쁜 게 당연하다는 듯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저택 밖으로 나가면 쏟아지는 온갖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이 나를 잠식해도 묵인하고, 그저 그렇게. 아파하면서 살며.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리엔시에는 유서 깊은 공작 가문인 유레이토 가의 후계자였다. 하나 뭇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녀를 외모만으로 판단했다. 감히 공작가의 영애를 혼혈이라며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천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한때 나라 유일 대공이었던 유레이토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그런 태도들을 막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렸던 소녀는 그 차별적인 시선을 결국 견뎌내지 못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었다. 미움받는 것에 지쳤다. 언제까지나 둥지 안에서만 살 수는 없었다. 세상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싶었다.

책만 읽는 건 이제 질렸다. 어린 소녀는 직접 눈으로 보고 겪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못난 외모를 가진 데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입장이 되겠지만, 그래도.

나는 알고 싶고, 궁금했다.

*

조금 자란 소녀는 여전히 세계가 궁금했다. 어느 날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매일 주변 마을로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리엔시에가 다가가기만 하면 아이들은 괴물이라며 그녀를 놀려댔고 피하기 일쑤였다.

세상은 여전히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리엔시에는 느리게 깨달으며 하늘을 등지고 걸었다. 제가 잘못한 것은 없었기에 뒷걸음질 치지는 않았다. 그저 홀로 등을 돌렸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을 은신처로 삼았다. 폐가 근처에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혼자 노는 일이 잦아졌다. 이곳은 괴물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들도 없었고, 조용히 상상 속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었다. 제일 좋았던 건, 상상 속 친구들은 리엔시에를 괴물이라며 놀리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이 화창하게 열린 밝은 주일, 어느 볕 좋은 날. 리엔시에는 그곳에서 신전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성녀 세라엘과 만난다.

첫 만남이었다.

이것이 성녀였던 소녀와 성녀로 바쳐진 소녀가 서로를 처음 인지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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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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