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 위에서

칠석배경 / 커플링 : 유키모모 (이외에 특정 커플링 없음)

나나계 by 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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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무기 : 안녕하세요, 모모 씨!

    이번에 IDOLiSH7, TRIGGER, Re:vale 세 그룹이 함께 칠석에 개최되는 이벤트 라이브에 참가한다는 기획을 듣고 인사드립니다. 기획 명 「탄자쿠에 소원을(가제)」 였죠! 이번에도 함께 일하게 되어 무척 영광이에요.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에."

모모 : 얏호, 마네코쨩! 잘 부탁해…! …라고 얘기하고 싶은 참이지만, 실은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 ・`д・´)

두구두구둥……

   …모모쨩, 실은 처음 듣는 얘기란 말이지…!?


츠무기 : 그… 그런…

    꽤 전에 결정된 이야기라 오카자키 씨 측에서 이미 얘기를 끝마치셨을 거라고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 서프라이즈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유키 씨께도 먼저 연락을 드렸지만 역시 아시는 눈치셔서 그만…

모모 : 알겠어!

   지금 막 유키랑 오카링이랑 같이 있으니까

   이 일의 진상을 파헤쳐 오겠습니다

   모모쨩 상처받지 않았다구(눈물)

츠무기 : 분명히 그냥 잊으신 것뿐일 거예요 ><…

모모 : 다녀올게!

츠무기 : 네…!

"둘 다 너무하는 거 아냐?"

휴대폰 화면을 끄고 차 안의 두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다던가, 그런 일 잘 하지 않으니까 그냥 실수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진심이 아닌 책망이어도 나름 깜짝 놀라기는 했으니까. 하아, 한숨을 쉬자 옆에 앉은 유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가? …마네코쨩 래빗챗 아니었어?"

"맞는데… 칠석에 스케줄 있다며!? 한 주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유키도 마네코쨩이랑 래빗챗 했다면서!"

모모쨩은 실망입니다! 삐친 척 팔짱을 끼고 입술을 내밀었다. 그거야 칠석이니 그런 날에 스케줄이 비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 남았다고? 당연히 평소와 같은 스케줄일 거라 생각해서(휴대폰 달력에도 그렇게 표시해놓았다) 약간의 황당함이 남았다. 두 사람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유키 군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는데, 설마 잊어버리셨나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래빗챗은 어제 받았어. 중간에 잠들었지만."

"그 날 모모 군이랑 약속 있으시다고 해서, 바로 말할 줄 알았는데. 다음부터는 그냥 직접 연락드릴게요. 죄송해요, 모모 군."

"아냐! 오카링이 잘못한 건 없잖아. 유키가 잊어버린 거니까!"

"맞아. 모모가 자꾸 돌아다니자고 해서 잊어버렸어. 미안."

"본인 스케줄은 안 잊어버리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사실 별로 화가 난 건 아니었으니까 오해가 풀리자 금방 해결이 됐다. 자신 역시 칠석에는 역시 스케줄이 있을 거다,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예정 같은 게 크게 변하지도 않았고. 유키가 매년 열렸던 축제를 검색해서 보여주니 흥미는 금방 옮겨갔다. 작년에 실적이 영 부진해서, 올해는 젊은 사람들을 많이 데려오고 축제 홍보도 하기 위해 후배들과 자신들을 초대했다고. 

일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데이트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긴 했다. 칠석은 나름 견우직녀 전설이 있는 러브 스토리적 기념일이 아니던가. 유키견우와 모모쨩직녀…. 이 경우에는 반대인가? 유키는 농사에는 어울리지 않는데다 베틀 정도는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다룰 것 같았다. 아쉽긴 했지만, 올해는 오카자키 사무소에서 다 같이 모여 실내에 탄자쿠를 걸어두는 게 아니라 진짜로 축제에 가서 소원을 빌 수 있으니까! 


"…비가 오네…."

"칠석이니까…."

"앞 좌석 뒤에 우비 넣어뒀어요. 내리기 전에 입고 가죠."

이윽고 칠석 당일. 축제가 진행되던 며칠 동안 맑더니 갑자기 우중충하게 비가 쏟아졌다. 쏟아졌다고 할 정도의 폭포수였다. 올해도 견우와 직녀가 만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걸까, 그렇다면 왜 정작 만날 수 있는 당일에만 우는 걸까. 쏟아지는 비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창 밖을 보니 IDOLiSH7과 TRIGGER의 밴이 보였다. 스케줄 때문에 집합이 늦었기 때문인지, 시동이 꺼져 있는 것을 보니 후배들은 먼저 다른 곳으로 가 있는 듯했다. 라이브 이외에도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다 보니 모두 일찍 모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굵은 비가 내려서야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이거 오늘 안에 그치려나…?"

"일기예보에 따르면 저녁에는 그치는 모양이에요. 다 입으셨나요?"

"이렇게 내리는데… 아니, 아직. 모모, 팔 좀 잡아줘."

"어, 여기?"

유키는 팔다리가 길어서 입기 힘든 모양이었다. 오카링은 벌써 다 입은 것 같았고, 이쪽도 단추만 채우면 되니까. 유키의 소매 쪽을 들어서 쭉 당겨주니 어렵지 않게 팔이 들어갔다. 정말 바쁘면 차 안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일도 허다하지만 오늘은… 그냥 즐거운 축제의 생각에 우산 생각도 못 했을 뿐이니까. 단추까지 채워놓고도 나가는 게 망설여졌다. 이쪽은 비 좀 맞아도 괜찮지만 유키는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 할 테니까. 우비 쓰고 있으니까 젖진 않겠지. 비바람에 여기저기 걸려있는 탄자쿠들이 휘날려 걱정스러웠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소원을 빌었던 사람들이 불쌍한걸.

"이쪽은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다들 기다릴 테고, 얼른 가죠! 두 사람도 오늘을 기대했잖아요."

비가 좀 오긴 하지만. 하고 유키가 덧붙였다. 저녁에는 그친다잖아. 삐딱하게 구는 유키를 달래려고 옆에 착 달라붙으니 알겠다며 문에 손을 댔다. 그래도 빗줄기가 걱정스럽기는 한 모양인지 머뭇거려서, 이쪽에서 반대편 문을 열어젖히고 뛰쳐나갔다. 그치만 유키 너무 꾸물거리는걸. 이쪽도 유키 체력이나 건강은 걱정되기는 하지만, 큰 축제니까 관리실이 외진 곳에 있지도 않을 테고.

과연 문을 열자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오카링도 이어 운전석 문을 열고 내리니 유키도 마지못해 내렸다. 그래도 표지판도 있고, 걷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이 비를 뚫고 축제에 온다고? 유키랑 같이 있다가 유키 기준에 익숙해진 건가, 아무리 축제는 밤이 시작이라지만 이래서야 오늘은 공치지 않았나 싶었다. 앞에 걸으시는 분들 중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도 보여 걱정도 됐다. 오늘 괜찮으려나….

"…거의 다 왔다."

"…뭐라고?"

"거의 다 왔다고 유키!"

그래, 하고 대답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빗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들어가는 도중에도 비 때문에 다들 천막을 세우고서 장사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기상청, 믿어도 되는 걸까. 

축제 본부는 오래된 전통 건물처럼 외벽을 꾸민 것처럼 보였다. 몇 번의 보수를 한 모양인지 세월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 지역 축제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꽤 오래된 건물이겠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주최 측에서 마중을 나온 건지, 몇 명의 사람들이 건물 앞에 우비를 입고 서 있었다.

"아이고, 오셨네!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다른 분들은 안에 있어요. 저녁에는 이것저것 부스가 많아서 차까지 들여오면 객들이 다니기 영 불편해서."

"아, 안녕하세요! 뭘요. 이런 날씨라 일이 많으실 텐데 마중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중이랄 것까지야. 이 앞인데요 뭘."

오카링과 얘기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익숙했다. 누구더라. 유키와 눈을 마주쳐도 영 모르는 것 같았다. 오카링이 눈치 빠르게 먼저 소개를 했다. 오카링, 굿 잡!

"이쪽은 시장님이세요. 매년 주최 측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안녕하세요, Re:vale의 모모입니다! 이쪽은 파트너인 유키예요."

"안녕하세요. 유키입니다. 오늘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와요!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 미안하죠. 자자, 비 오는데 서 있지 말고 얼른 안으로 들어갑시다."

안으로 들어가니 후배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했다. 원래 일정 소개를 받고 나름대로 축제를 즐길 예정이었기 때문인지 일찍 도착한 건 알고 있었지만, 밥 먹는 도중에 일으켜서 인사받을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게다가 밥때도 한참 늦었잖아.

"어서 오세요, 유키 씨. 모모 씨."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혼났어~ 다들 괜찮았어?"

"저희가 올 때는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아서 괜찮았어요! 두 분도 같이 드실래요?"

"배고프실 텐데. 얼른 드세요."

막 도시락을 먹고 있던 참인지 다들 한쪽에 모여서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유키가 "가쿠 군, 잘생긴 얼굴에 밥풀이 묻었는데." 하면서 웃으니 그걸 들은 카오루쨩이 가쿠에게 얼른 티슈를 건넸다. 푹 젖은 우비를 벗어 한쪽에 걸쳐놓자 이쪽에도 도시락이 배달됐다. 유키 건 고기 없는 거 같은데 다행이다. 신경 써줬구나. 마침 배고팠던 참이라 모두를 앉히고 다시 점심을 들었다. 류노스케가 자리를 만든다고 옆으로 비켜줘서 

"그러고 보니 IDOLiSH7이랑 TRIGGER는 전반부 공연이었지?"

"마지막에 세 그룹 합동 공연이 있긴 하지만요. 두 분은 스케줄 끝나고 바로 오신 거죠?"

"응. 갑자기 끄물끄물 하더니 비 쏟아져서 엄청 놀랐다니까. 하아, 리허설 끝나고 둘러보고 싶은데."

"그래도 좀 있으면 그친다고 했으니까… 맞다, 저희도 이따 같이 탄자쿠 쓰기로 했어요! 같이 가실래요?"

"좋아! 다 같이 가자. 사람 몰리기 전에 가야겠는데. 길 막히면 불편할 테니까… 유키는 뭐 적을 거야?"

어깨를 슬쩍 툭 건드리자 반찬을 입에 쏙 넣고 오물거리던 유키가 "모모는?" 하고 물었다. 그, 그건 비밀이지만~ 유키가 뭘 적을지 궁금하니까 슬쩍 떠봤는데 잘 넘어오지 않아 좀 당황했다. 유키 요즘 이런 거 잘 안 넘어오게 됐단 말이지…. 비밀입니다! 하고 손가락으로 엑스자 표시를 만드니 "모모가 먼저 물어봤으면서?" 하고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하긴 이런 건 물어보는 게 반칙인가. …그래도 이런 소원은 말하기 부끄럽잖아? 혹시 다른 거 적을지도 모르고.

"사람 잘 안 오는 쪽에도 탄자쿠 거는 거 있대. 나는 릿쿵 건강하라고 적을 거니깐." 

"에─ 임금님 푸딩 많이 먹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런 소원 아깝잖아."

"안 아까워. 그리고 이틀 후에 생일이잖어. 텐텐은… 갓쿵이 적어주면 되겠다."

타마키의 말에 갑자기 지목당한 리쿠가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옆에 있던 소고도 마찬가지인지 "타마키 군…." 하고 놀람 반 감동 반인 얼굴을 했다. 밥을 먹던 사람들 모두 타마키를 보고 기특하다는 표정을 했다. 이쪽도 절로 뿌듯해졌다. 가쿠가 "난 다른 거 적을 건데." 하고 얘기해서 텐의 눈초리를 받기는 했지만 대체로 평화로운 식사였다. 유키의 소원에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건 이따 볼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좀 걱정되긴 했지만.


비도 오고 해서 결국 리허설은 실내에서 하기로 했다. 따로 준비해 둔 곳이 있다고 해서 다들 우비랑 우산을 들고 한 줄로 맞춰서 걸었다. 무대 위에서 맞춰보는 게 제일 좋을 테지만 사고 때문에 리허설도 하지 못하고 무대에 올라간 적도 있고 하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보이지만 빗줄기도 조금씩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정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음향 테스트도 했지만 문제없었다고. 무대가 젖어있어서 춤추다가 미끄러지는 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지만, 맞춰뒀던 의상과 함께 신발을 신으니 오히려 잘 미끄러지지 않아 움직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정말, 턴 할 때 평소보다 더 신경 써야겠는걸. 신발을 바닥에 끌어보고 빙그르르 돌아보니 리쿠와 타마키가 오오, 하면서 박수를 쳤다. …이 정도는 기본인데 좀 부끄러운걸. 

"모모 씨는 역시 유연하시네요…."

"운동이야, 운동! 어린 애들에 비하면 이제 좀 굳기도 했고. 야마토도 같이 할래? 운동부의 문은 이만─큼 활짝 열려 있으니까 언제든지 와도 되는데."

"휴일에까지 몸을 움직이고 싶지는 않은데요."

"맞아, 야마토 군은 은퇴할 때까지 영화부니까."

"그것도 좀."

야마토의 말에 유키랑 같이 킥킥대며 웃었다. 축제에 이런 넓은 실내 건물이 있나 싶었는데 축제에 쓰는 자재들을 두는 곳이라 축제 때는 비어 있다고 했다. 창고라고 할 법한 장소인데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신경을 많이 썼다 싶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넓었고. 후배들의 리허설에는 이쪽이 박수를 쳤다. 시간이 다가오니 다들 바빠지기 시작한건지 오카링도 주최 측과 다른 매니저진들과 함께 이것저것 얘기하고 있었다. 마네코쨩이 중간에 생수병을 나눠줘서 어느 정도 마신 후에 사이리움처럼 흔들었다.

"꺄, 나기 군 멋있어─!"

"소고 군 팬서비스 해줘─"

IDOLiSH7의 차례가 끝나고 팬들처럼 얘기하니 뒤에 바로 준비하고 있던 TRIGGER가 이쪽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랑곳하지 않고 TRIGGER 차례에도 똑같이 해줬다. 우리는 후배들 엄청 팬이니까! 그래놓고 우리의 리허설 차례에는 끝나고 다 같이 생수병을 흔들어 줬다. 귀엽기는! 몇 곡을 연달아서 추다 보니 체력이 좀 떨어져 숨을 고르고 있으니까 유키가 자신의 물을 건네줬다. 유키는 페이스 유지 잘하니까.

"……고마워, 유키."

"아직 리허설이니까 적당히. 끝나고 탄자쿠도 적으러 가기로 했잖아?"

"응… 아, 무대에서는 아까 그 부분 동작 더 크게 할게. 너무 차이 나면 이상하니까 유키도…."

"옆으로 멀어지는 부분 말이지. 알겠어, 서포트할게."

"그리고 또… 음, 이건 아니다. 그대로도 괜찮아. …비 그쳤어?"

"애들이 밖에 보러 나갔어. 그친 것 같긴 한데…."

리허설 좀 했다고 벌써 노을이 져 있었다. 여름이면 그렇게 빨리 해가 질 때도 아니지만,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금방 밤이 될 것 같았다. 탄자쿠 걸고 오면 무대 시간도 금방일 것 같은데. 무대가 끝나고 돌아다니면 되겠지만. 창밖을 쳐다보는 유키의 얼굴을 보고 배시시 웃었다가 돌아봐서 깜짝 놀랐다. 아, 아니. 끝나고 데이트 할 수 있다고 얼굴이 풀렸다. "아무것도 아냐." 하고 얘기하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반문했다. 완전 반칙이잖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음."

"애들 오잖아? 얼른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니 밖을 확인하러 간 정찰대들이 돌아왔다. 아무리 봐도 얼버무린 참이라 유키가 또 캐묻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그냥 넘어가 줬다. 바빠서 요즘엔 데이트도 못 했단 말야. 좀 풀어질 수도 있지 않아? 들킬지 모르니까 손 잡는 것도 힘들긴 하겠지만 분위기가 중요한 거니까! 바깥으로 나가니 하늘이 정말 맑게 개어 있었다. 뒤따라오는 유키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가 하늘을 보니 이게 진짜 개기는 하는구나, 했다. 비 온 뒤의 냄새는 기분이 꽤 좋고. 숨을 들이킨 후에 건물 안을 봤다.

"오카링이랑 카오루쨩이랑, 마네코쨩은 같이 안 가?"

"우리는 더 봐야 할 게 있으니까. 다녀오렴."

"마네코쨩은 아직 축제 즐길 나이인 거 아냐."

"오늘은 매니저 일로 왔으니까요. 나중에 다 같이 가죠!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유키가 한 마디씩 거들었지만 매니저진은 역시 강했다. 이제 남은 건 정비 정도 밖에 없을텐데, 열심히 일하는 걸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같이 돌아다니고 싶기도 했으니까. 오카링과 눈이 마주치니 다녀오세요, 하고 입 모양으로 얘기하고 웃었다. 으윽, 멋있어… 유키가 불러서 포기하고 밖으로 나섰다. 

"역시 일하는 사람은 멋있구나…."

"나도 열심히 일하는데."

"유키는 언제나 멋있으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최고로 미남이라고?"

유키는 작곡에 관해서는 프로 중의 프로고, 자신과 함께 활동한 이래로 일에 대해 허투루 한 적도 없으니까. 별로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닌 것 같았지만 진심 중의 진심이었다. 유키처럼 멋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진짜 몇 개 없네. 자리는 꽤 좋은 것 같은데. 원래는 종이를 배부하는 곳에서 받아와야 하지만, 펜도 종이도 전부 챙겨와서 나눠주셨다. 축제가 끝날 무렵에는 누군가 찾아내 SNS에 올라가 있을 가정도 해야 하니까 적당히 써야겠지만. 부끄럽긴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내용을 적을 생각은 없었다. 마땅히 올려두고 적을 곳이 없어 다들 걸으면서나 서서 삐뚤빼뚤 쓰고 있어서 전부 다 찾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유키! 보면 안 돼!"

"왜? 어차피 걸면 볼 건데."

나무 옆에 서서 쓰고 있으니까 유키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슥 내밀었다. 이렇게 기척 없이 다가올 수 있는 유키라니 무서운걸. 그래도 보이기 전에 가렸다. 애초에 한 글자밖에 안 썼고. 

"저기, 미츠키군. 코(コ)로 시작하는 게 뭐가 있지? 코코아?"

"네? 글쎄요… 코팅 팬? 요즘 기숙사에 팬이 다 닳아서 새로 사야 할 것 같은데."

"아, 그거 중요하지. 기름을 덜 치려면 코팅이 잘 되어있어야 한다니까."

"유(ユ)라고!"

내 외침에 유키가 이겼다는 듯 씩 웃었다. 다 눈치채고 있으면서 그래. 저 멋있는 악당 같은 미소! 삼행시나 끝말잇기라도 하는 줄 알고 순순히 대답했던 미츠키가 대충 상황을 깨달았는지 난처한 얼굴로 "저는 그럼…" 하고 슥 빠져나갔다. 후배 괴롭히는 거 아니야.  

"그럼 유키 씨의 탄자쿠는 「모」로 시작하시는지?"

"그건 아닌데."

"그거 봐… 이래서 말하기 싫었는데."

"아직 뭐라고 썼는지 모르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유키랑 계속 같이 노래할 수 있기를!!】 하고 적을 예정인 자신의 문구가 너무 뻔해 보이지 않은가. 뻔한 얘기긴 하지만. 지금까지 칠석 축제에는 계속 잘 안 보이는 곳에 【반 씨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매달아 뒀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바람을 적고 싶었는데. 유키한테 들켰으니까 바꿔야 하나 싶었다가, 뭘 적든 유키의 자유라는 생각에 한숨을 폭 쉬었다. 

"나도 그런 거 적을까? 【유키가 계속 건강하기를】."

"내 거 베끼지 마!"

이럴 때만 귀가 밝은 타마키가 지나가면서 자신의 탄자쿠를 매달았다. 키가 크니까 제일 높은 곳에 매달고는 뿌듯하게 쳐다보는 것이 퍽 귀여웠다. 알았어, 알았어. 어차피 농담으로 한 얘기였으니까. 그럼 예정대로 적어야지. 식상하다고 해도 이거 말고는 바라는 게 없고. 자잘한 욕심은 많지만 내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욕심이니까. 

유성펜으로 꾹꾹 눌러썼더니 천 뒤에 글자가 남았다. 이걸 어떡하지. 희미하게 남아있어 내용까지 읽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으로 문지른다고 지워지지는 않았다. 일단 달아둬야지. 비가 막 온 참이라 탄자쿠를 매달기 위해 줄을 잡아당기자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 천을 적셨다. 유성으로 써서 다행이다. 반대편을 보니 유키도 탄자쿠를 매달고 있었다. 옆에 바로 달기는 자기도 민망한가 보지. 픽 웃으면서 유키 쪽으로 향하니까 아까 이쪽을 놀렸던 사람이라고는 생각 못 할 만큼 부끄러워했다.

"…아직 안 돼."

"그럼 언제 돼?"

"가기 직전에."

나한테 보여주면 안 될 거라도 있는 거냐고! 할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몸만 요리조리 틀어서 보려고 애를 썼다. 양손으로 가려서 못 보게 하려고 했지만. 유키의 드문 모습, 귀여워…! 장난기가 돌아서 굽히지 않고 계속 애쓰고 있으니까 이오리가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아닌 척 슬금슬금 멤버들의 소원 내용을 확인하러 갔다.

"이오리 군 그 표정 뭐야? 이오리 군 거 볼래."

"저기, 잠깐만요! 왜 그렇게 되는 겁니까!"

유키가 손을 떼고 이오리가 적었던 붉은 천을 확인하려 들었다. 다들 자기 거 보여주기는 민망해하면서 되게 그러네. 이 틈에 유키 거 봐야지. 그다음에 다른 애들 거 확인하면 되니까. 계략을 꾸미면서 후후 웃으며 뒤로 묶인 유키의 탄자쿠를 들춰보았다. 아니, 얼마나 부끄럼이 많으면 천도 뒤로 묶어두는 거야?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읽고 나서는 눈이 동그래져서 뒤를 휙 돌았다. 아직 이오리와 사투 아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에 뒤로 돌아간 나기와 리쿠가 'OH…'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사이에 나까지 끼면 정말 난장판이 되겠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다다다 달려가서 유키를 향해 양팔을 뻗어 꼭 끌어안았다. 

"유키───!!"

엄청난 스피드로 끌어안긴 유키의 귀가 빨갰다. 유키랑 같이 노래하면 즐겁고, 즐거우니까 언제까지나 유키 옆에서 해피하게 웃을 수 있는걸!


"Re:vale 5분 뒤에 들어갑니다!"

옷까지 다 갈아입고 준비 중이었지만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은 언제나 떨렸다. 무대로 향하기 전에 잠깐 입술을 축였다. 짧게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목의 상태도 괜찮아. 이제는 익숙해진 긴장을 고양감으로 바꾸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잘 할 수 있어. 나는 Re:vale의 모모니까, 유키의 옆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니까. 

여기는 내 자리니까.

3, 2, 1…….

"지금 들어갑니다!"

유키와 눈이 마주쳤다. 가볍게 미소지으며 입가를 톡톡 두드리는 손가락에 따라 웃었다. 나도 알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무대 앞의 사람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러 가자.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우리의 노래였다.


"감사합니다! IDOLiSH7과,"

"TRIGGER와,"

"Re:vale였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떠들썩한 걸 좋아하니까.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무대 위의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었다. 밤바람의 시원함조차 억누르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았다. 

"─힘, 들어!"

"그래도 재밌었지!"

"…야키소바 먹으러 갈래."

"야키소바도 소바인가."

"…뭔 소리래."

한 그룹씩 짧게 앵콜을 끝낸 뒤에서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축제는 밤까지 계속됐다. 아직 끝나기에는 시간이 좀 남았다. 다들 의자에 앉아 축 처져 있는 와중에도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일단 돌아다니려면 옷을 갈아입어야겠는데…. 무대 의상이 아무리 가벼운 편이라고 해도 입고 돌아다니면 눈에 띄니까. 간의 탈의실에서 먼저 기운을 차린 사람들이 차례대로 옷을 갈아입고 왔다. 나이순으로 줄줄이 안에 들락거리는 게 꽤 재밌었다. 유키는 거의 끝물이었다. 

"저희는 저희끼리 돌아다니다 올게요."

현장 정리를 거의 마친 매니저들이 먼저 얘기했다. 담당 아이돌하고 같이 돌아다니면 인원수가 많아져서 이목을 끄니까, 라는 이유였다. 주최 측에서 축제를 즐기라고 일거리를 덜어준 건지 빠르게 유니폼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매니저 진이 보였다. 나기와 같이 거닐지 못하는 카오루쨩은 퍽 아쉬워 보였지만, 서로 "매니저는 우리랑 같이 돌아다닐 거야!" 하는 애들의 얘기를 듣고 보니 마네코쨩은 그쪽이 더 좋은 선택 같았다. 언뜻 들으면 어린애들 싸움인데, 그중에서도 야마토가 제일 적극적이었다. 

"남자 셋이 축제 걸어 다니면 재밌나…."

"기운 빠지는 소리 하지 마, 아저씨."

"매니저에게 간택 받지 못했습니다… 아쉽습니다…."

저쪽은 아무래도 인원수가 많아서 쪼개서 돌아다니는 듯싶었다. 이쪽은 둘이라 다행이지. 그래도 위장을 위해 가면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았다. 이쪽은 몰라도, 유키 얼굴은 인파 속에서도 너무 빛나니까? 축제인데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아쉽고. 유카타도 안 입었으니 좀 이상하긴 해도 

"그럼, 모모쨩 선배가 위장용 가면을 사 오겠습니다!"

"와아~ 모모쨩 선배~"

"목표는 저기 끄트머리의 가게다. 제군,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함께할 사람은 있는가?"

"재밌어 보여. 나 갈래."

"요츠바 씨는 백 퍼센트 들키지 않나요…."

"그럼 나는?"

"류도 크잖아."

그렇게 누구는 잘 생겨서 안 된다느니, 누구는 크다느니 누구는 어쩐다느니 하고 있다가 결국 제일 「닮았다는 얘기 자주 들어요」를 잘할 것 같은 야마토를 데려가기로 했다. "그거 텐 형도 잘하는데!" 리쿠의 말에 텐이 시선을 피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잘하는 것 같은데…. 가게에 슬쩍 다가가서 친구들한테 선물할 거라고 이것저것 가면을 골랐다. …열두 개를 한 번에 사는 건 역시 눈에 안 띄기 어렵긴 하지. 가면 파는 할머니가 이쪽을 보고 말했다.

"학교에 가져가는 거니?" 

야마토가 배를 잡고 돌아가서 모두에게 전파했다. 저기, 그거 신경 쓰고 있으니까! 포복절도로 쓰러지기 직전인 유키의 얼굴에 가면을 씌워줬다. 옆에서도 하나씩 전달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유키는 이거!"

"…후, 하아…. …나는 여우 가면인데 모모는 그거야?"

"유키한테 우스꽝스러운 가면 씌울 리가 없잖아. 나는 이거면 돼. 위장용이니까."

"대우 너무 다르지 않나…?"

횻토코 가면에 대고 잘 어울려, 하고 덧붙여서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다들 빙 돌아 축제를 즐기려는 모양이니 이쪽도 출발하기로 했다. 열두 명이 다 같이 집합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인사를 나누고 돌아갈 때 그룹별로 모이기로 했고. 긴 머리는 금방 들킬 테니까 오카링의 펜을 빌려서 비녀를 틀었다. 좋아. 가면을 써도 엄청 잘생겼어. 촬영도 했었고 굳이 다른 걸 고르자면 텐구 가면이지만 이쪽이 더 멋있어. 자신의 탁월한 안목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갈래길로 걸어 들어가자 금세 다른 음식 트럭이 나왔다. 점심을 늦게 먹기는 했지만 한참 몸을 움직였으니 유키도 배고프지 않으려나? 맛있는 냄새들이 나서 금방 허기가 졌다.

"유키, 먹고 싶은 거 있어?"

"아까 야키소바 개그 때문에 야키소바 먹고 싶어졌을지도…."

나름대로 진지해 보이던데. 쪼르르 가게로 달려가 "야키소바 1인분 주세요! 가쓰오부시 빼고!" 하니까 유키가 옆에서 "모모는?" 하고 물었다. 사다 줄 생각인 건가. 야키소바도 좋지만 역시 타코야키 먹고 싶고. 모처럼이니 이건 유키한테 얻어먹어야지. 타코야키 먹고 싶다고 얘기하니까 가게 주인에게 들렸는지 "2인분 사면 깎아줄게." 하고 흥정을 했다. 아, 둘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하나는 가쓰오부시 얹어 주세요…."

"그럼 그럼. 맛있게 볶아줄게."

쿡쿡 웃으며 유키가 옆 가게에서 타코야키 작은 상자를 주문했다. 데이트라도 손을 잡지 않는 게 전제라 세 개를 사도 무리 없이 들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봉투에 담아주기도 했고. 잡는다고 주간지에 실리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다 큰 성인 남성 둘이 손잡고 다니면 다들 이상하게 보니까. 인파 적은 곳이면 괜찮을까? 아니, 사람 많은 곳이 손잡을 명분이 있어서 그나마…. 엄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다 나와서 계산을 마치고 외곽으로 걸었다. 가게 주인분이 내 음심을 알아차린 거 아냐? 

"…유키, 어디 가게?"

먹을 걸 들고 생각 없이 유키를 따라 걷고 있으니 점점 사람이 적은 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쉬고 싶은가. 평소의 태도와 체력을 생각하면 그것밖에 없었기에 대충 납득했다. 헛짚은 건 아니었는지 가는 길옆에 비에 흠뻑 젖은 벤치를 힐끗 보고 "못 앉겠네." 하고 괜히 아쉬움을 표했다. 라이브까지 했으니까 피곤하긴 할 것 같았는데 돌아다니기 힘든 정돈가. 

"어디 가서 벤치 닦을 거 달라고 해볼까?"

"조금은 걸어도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건가,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유키는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얘기하는 타입이니까 괜찮겠지. 가면을 슬쩍 올려서 입만 열어 야키소바를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예쁜 등이나 장식들이 많이 달려있지 않아 인기가 없는 길목인 것 같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분에 넘쳤다. 옆에는 줄에 묶인 천들이 바람에 날렸고, 무엇보다 낮에 그렇게 비가 쏟아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씨가 좋았다. 달도 구름에 가려지지 않아 잘 보였고 나름대로 도시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하늘이 맑았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는 느낌이다. 

"시간 나서 다행이다. 돌아가면 한밤중이겠지만."

"그렇네. 예전만큼은 잘 못 오니까. 사람들도 몰리고."

새해 참배 같은 건 가끔 시간을 내서 들르지만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건 다른 얘기였다. 물론 위장은 특기니까 다니는 걸 꺼리지는 않는 편이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둘 다 배가 고프기는 한 모양인지 야키소바 컵을 들고 후루룩 마시면서 걷는 모양새는 좀 웃기긴 했다. …이거 별로 데이트 같지는 않네. 유키랑 같이 걷는 건 좋지만.

"그래도 사람 많은 것 치고는 시원하네."

비 와서 그런가. 가볍게 맞장구를 치니 유키가 고개를 돌리고 하품을 했다. 역시 피곤한 모양이네. 마침 딱 벤치 위에 누군가 신문지를 깔아둔 것이 보였다. 전에 앉은 사람이 안 버리고 갔나 보네. 음식을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하고서는 유키의 손을 잡았다. 

"좀 앉아있다가 돌아가자. 많이 졸려?"

"아니…. 괜찮은데."

쓸데없이 웬 고집? 유키가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거 다 아는데. 손을 잡고 데려가니 그래도 반항할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순순히 따라왔다. 펼쳐져 있는 신문지를 접어서 한쪽으로 치워두고 유키를 앉혔다. 이건 이따가 갈 때 같이 버려야겠다.

"그렇게 졸리지는 않아. 음식 먹다가 자는 건 중증이잖아."

"네에, 네. 유키 맨날 식탁 위에서 조는 건 알지?"

옆에 같이 앉아서 손을 뗐다. 온갖 잡다한 걸 들고 걸어 다니다가 앉아 있으니까 편하기도 했고. 축제 즐기는 법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휴대폰으로 시간을 슬쩍 확인하니까 아직 여유가 있기는 했다. 이따 돌아갈 때 유키한테 토끼 머리띠 사줘야지. 계략이 담긴 미소를 짓고 있으니까 뭔가가 손을 건드렸다. 유키 쪽을 돌아보니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고 있어서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지만.

"…저기… 다 보이는데요…."

"…아, 그래…."

 이건 유키도 같이 데이트하고 싶었던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도 되는 걸까. 배시시 웃음이 나와서 먹을 것도 옆으로 치워두고 손을 꼭 잡았다. 하긴 요즘 진짜 스케줄이 많기는 했어. 에헤헤,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는 순간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가면 쓴 TRIGGER 세 명이 가볍게 묵례를 하고 지나가자 부끄러움이 머리끝까지 꽉 찼다. 저기, 이건 아니야! 축제에서 인파 드문 길 벤치에 앉아서 파트너의 손 잡고 에헤헤, 하는 선배라니 기분 나쁘잖아!? 사실과 다른 부분이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유키가 하는 거라면 귀엽기라도 하지 이쪽은 아니라고…. 유키는 그런 거 안 하기는 하지만….

"방금 누구였어?"

"…모르는 사람입니다…."

유키는 다행히도 눈치 못 챈 것 같았다. 유키의 부끄러움은 내가 사수해 줘야지. 뒤늦게 깨달은 건지 아, 하고 소리를 냈지만 별로 타격은 없는 것 같고. 이제 더 안 오겠지? 모르는 사람들이 앞을 지나가는 데다 대고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리고서야 안심해서 긴장을 턱 놓았다. 그래도 후배들한테 들킨 거라 그나마 다행인가….

"…하아아…."

"얌전히 지나가 주다니, 착한 후배들이잖아."

유키는 내 얼굴 못 봐서 그래. 못 본 척 해주려다가 실패해서 눈을 굴리다가 묵례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길었는데. 차라리 당당하게 부부 만담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덜 부끄러웠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는 사람 별로 없으니까 손잡고 앉아 있어야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자 유키가 꼭 잡아줘서 기분이 마냥 좋았다.

"시원하다아─…."

갑자기 얼굴에 오른 열을 식히려고 팔다리를 쭉 뻗었다. 비가 온 다음이라 그런지 바람도 시원했다. 사람들의 말소리 때문에 그럴 리가 없는데도, 어딘가 가게에 달린 풍경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사격에 성공했는지 커다란 곰인형을 안고 가는 가족이나 낚은 금붕어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이 지나갔다. 유키가 타코야키를 콕 찍어 입에 넣어주자 오물오물 먹으면서 웃었다.

"이거 데이트다!"

"…응, 데이트."

모이를 얻어먹는 아기 새 같은 심정이 되는 데이트라니. 그래도 유키랑 같이 있으니까 그걸로 좋았다. 칠석답게 하늘에 뜬 별도 반짝이고 있었다. 은하수가 보일 만큼 별이 총총 걸린 하늘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도심이니까 이 정도라도 대만족이었다. 하늘이 이렇게 개려고 비가 내린 거구나. 


"유키, 여름 끝나기 전에 또 별 보러 갈까?"

"싫어. 한밤중에 깨울 거잖아."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물어봤다가 거절당했다. 오늘 유키네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는데, 이럴 때는 좀 겉치레라도 좋다고 해 주면 안 되나. 그거 한밤중도 아니고 그냥 밤이었는데. 어디 보자, 다음 오프 언제더라. 거절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획을 세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키 그거 좋아했으니까. 

한밤중이란 건 지금 같은 때를 얘기하는 거지. 밤이 늦어 단지 내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라이브도 끝나고, 축제까지 끝나서 돌아오는 길의 고요함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일부러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걸으니 유키에게 "모모는 기운 넘치네."라는 평가를 받았다. 차 안에서도 잤으면서 아직 졸린 건가. 그래도 아직은 15초에 한 번씩 하품할 만큼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정말 졸리면 눈 엄청 부비니까. 

그렇게나 비가 내린 탓인지 지나가는 길에 커다란 물웅덩이들이 늘어서 있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찰박거리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로등 불빛과 함께 밤하늘과 제 얼굴이 비쳤다. 문득 탄자쿠를 쓸 때 손에 묻었던 글자들이 떠올랐다. 마침 유키랑 잡고 있는 손이었다. 라이브까지 했으니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전부 지워졌겠지. 속도를 늦추며 걷자 유키가 갸웃거렸다. 

작게 웃고서는 일부러 물웅덩이 위를 걸었다. 다시 콧노래를 부르자 이번에는 유키가 같이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은하수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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