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在
지금, 이곳에서.
‘넌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언젠가의 이진이 미처 묻지 못했던 말.
이진은 그의 등과 그 등을 덮은 흰 머리칼을 여러 번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위치에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게 해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를 감싸기에 필사적이었던 그.
무섭지 않았어? 망설임도 없이 몸으로 막아섰잖아. 네가 다칠 수도 있었잖아.
이진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내뱉기에는 정리된 것이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왜 그랬어? 아무렇지도 않아?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이래도 되는 거야? 너는 이걸로 만족해?
입 밖으로 내기에는 결코 질문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그걸 모를 정도로 이진이 어리석지도 않았다. 애초에 무슨 자격으로 내가 묻지?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그의 인정에 목숨을 구한 주제에, 그 덕분에 지금도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진은 구태여 이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따금 그가 상처 난 제 손에 연고를 발라줄 때, 그때마다 물끄러미 제 손을 바라보는 그를 쳐다보고는 했었다. 이게 낫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이진이 잘 안다. 그러나 소용없다거나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책임감 같은 거라도 느끼나 보지. 네 탓이 아닌데. 내 탓인데. 상냥한 나의 친구.
그렇게 이진의 질문은 갈피를 잃었다. 영영 잃는 줄 알았다. 이런 걸 묻기에는 그날의 우리가 너무도 평온했고, 이후로 그는 사라져 버렸기에.
다시 돌아온 그에게 묻기에는 이진이 가졌던 질문이 시간에 바랬다. 굳이 물어봐야 할까. 지금이라면 물어봐도 괜찮을까.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여태 그래왔듯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그저 조금 더 경계하고. 그저 조금 더 불안해 하면서. 그렇게 이어갈 수 있을 텐데.
이진의 은회색 눈동자가 희고 붉은 이를 향한다.
깜빡.
너는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그리고 또 한 번 깜빡.
다음에는,
다음에도,
내가 너를 구할게.
사랑하는,
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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