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성 백
트친들에게 받은 글 연성 모
이딜(@gudeogye)님께서 작성해주신 조각글.
"넌 모험을 멈추질 않는구나. 과연 너 다운 선택이야."
게일은 앞에 놓여진 빈 잔에 포도주를 채웠다. 포도의 달콤함이 변신한 시큼한 알콜의 붉은 향이 투명한 유리를 짙은 장미색으로 물들였다. 이런, 게일이 작게 중얼거렸다. 반도 채워지지 않은 와인잔과 텅 빈 녹색 포도주병을 번갈아 보던 게일은 한 숨을 쉬고선 치즈, 포도, 무화과와 견과류가 놓여진 (그러나 이제는 반 쯤 비워진) 접시에서 포도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탱글하게 무르익은 포도가 입 안으로 아릴만큼 달콤한 즙을 흘려 보냈다.
"살 곳은 구했어?"
"그냥 여관에 있으려고."
"그렇군."
게일은 천천히 수염을 쓸었다. 간만에 탑에 오랜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다듬은 수염은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게일은 반도 채워지지 않은 와인잔에 입을 댔다. 이번엔 씁쓸한 맛이 열기와 함께 달콤함을 씻어냈다. 에스더가 이 탑에 발을 들였던 순간부터 품 속에 꽁꽁 숨겨둔 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게일은 취기가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몇 달만에 처음으로 미스트라에게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게 인생의 또 다른 '게일의 과오'로 남지 않기를.
"내 탑에서 함께 지내는 건 어때?"
잠시의 침묵도 견딜 수 없었던 게일이 다급히 '물론 네가 퀘퀘한 고서 냄새도 좋아한다면 말이지,' 라고 덧붙였다. 구슬이 떠나간 이후로 처음으로 가슴이 뻐근했다. 게일은 에스더가 고민 하는동안 붉은 와인에 비친 자신을 노려 보았다.
이딜(@gudeogye)님께서 작성해주신 조각글.
"정말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려고?"
신은 필멸의 몸을 가진 연약한 연인이 매몰차게 끄덕이는 것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예상 외의 답변이었다. 그는 '완벽'에 가까운 존재가 아니던가? 필멸자들은 야망의 축복을 받기 위해 매일같이 그를 찬양하고 신전에 찾아와 갖은 공물을 바친다. 아니, 당장 자신의 과거만 미루어 보아도 그러지 않았던가? 미스트라와 직접 얼굴을 대면하기 위해서라면 눈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나쯤은 가볍게 포기하려고 했었던 게 불과 반 년 전이었다.
"넌 후회할거야."
"후회?"
신은 필멸자 연인이 코웃음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토릴의 연주도, 연회의 떠들썩함도 사라진 야영지에는 그 냉랭함을 불완전하게 감춰줄 소리 하나 없었다. 날카로움이 귓가를 후비고, 차디찬 말이 남긴 이명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필멸자는 신에게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후회라면 여섯 달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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