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인어, 눈

 언제부터인가 집에 들어서면, 욕실부터 들어가는 습관이 생겼다. 천천히 욕실 문을 노크하고선 슬며시 문고리를 돌렸다. 욕조 벽에 기대어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그 인어가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미소지어보였다. 언젠가부터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라며. 내심 그런 생각을 이어가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 미소를 보고도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내가 그 감정을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은 까닭은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떠나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잘 것 없는 감정으로 그녀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너무나 찬란히 빛나고 있어서, 허나 나는 왕자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바다로 놓아주어야 할 것이 분명하니, 괜한 마음으로 그녀를 붙잡고 괴롭게 할 바엔, 차라리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겠다 다짐했다. 

 천천히 욕조로 들어서 인어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이 또한 언젠가부터 생긴 습관이다. 체온보다 조금 더 차가운 물에, 창백하고 차가운 그녀의 체온. 욕조 안은 언제나 은근히 소름돋는 온도로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욕조 안으로 몸을 뉘였고, 그녀를 품으로 꼭 끌어안핬다. 그녀에게 내 체온이 뜨겁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긴 했지만 언제나 그녀는 붉어진 낯을 품에 기댈 뿐이라, 나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마치 욕조에 손을 집어넣으면 손끝에 제 머릴 비적이는 열대 관상어를 닮아서 더욱이 정이 갔다. 사근히 미소짓는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동화에서 왕자가 인어를 버린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물에 젖은 백금빛 머리카락이 손끝에 엉켜들었다. 그 감촉이 나쁘지 않아 나는 인어를 품에 끌어안았고, 인어는 그럴 때마다 나를 올려다 보았다. 녹빛 눈동자는 에메랄드를 닮았고, 투명한 바다를 닮았다.  

 때로는 눈을 마주친는 것조차 두려운 순간이 찾아왔다. 그러면 나는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에서 멀어지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하고, 애써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필요한 것은." 

 이 또한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그가 그리 물어보면, 그녀는 언제나 고개를 저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한참동안이나 끌어안다 자리를 떠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여태까지와 조금 달랐다.  

 "… 바다로 가고 싶어요." 

 그녀가 그런 말을 뱉었다. 순간 심장이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같은 말들이 머리를 가득 메울 무렵, 나는 어이없게도 그녀를 되려 꼭 끌어안았다. 그녀는 인어니까 물로 돌아가고 싶은 건 당연한 사실이었는데, 그것을 왜 잊고 있었을까.  

 잡아둘까 잠시 고민했다. 평생 내 곁에서 떠나지 못 하게 이곳에. 

 그러다 초조하다는 듯,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그녀의 낯을 보고선 포기해버렸다. 그녀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 곁에 있어봐야 별다른 의미도 없을 테니. 

 "그래… 당신과 처음 만났던 곳이면 괜찮을까요." 

 "네." 

 애써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그녀가 행복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마지막이니 조금은 더 과욕을 부려도 괜찮겠지. 그녀를 품에 끌어안은 채 놓을 줄을 몰랐다. 품에 닿아오는 그녀의 체온은 지독하게도 아찔해서, 몇 번이고 긴 숨을 토했다.  

 "나한테 해 주고 싶은 말은 없나요?" 

 "…."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이 말을 과연 뱉어내도 괜찮은 것일까. 한편으로는 그녀가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말을 뱉지 않은 까닭은 간단했다.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나에게서 무슨 말을 바라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마지막이니 괜찮지 않을까. 그녀에게 한 마디 말을 전할 자격은 되지 않을까. 물론 그 자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녀이지만, 이 거리를 먼저 요구한 것은 그녀였으니, 어쩌면, 어쩌면. 

 "… 내일이면 바다로 떠나보내겠지." 

 숨이 끊어진다. 심장은 미친 듯 뛰어대고 있었다. 그녀가 가슴팍에 낯을 묻을 때마다 그것이 들키진 않을까 불안할 정도였다. 

 "행복하게 잘 지내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할 말이라고는 역시 이것 뿐이다.  

 애써 미소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동화 속의 왕자가 아니고, 하다 못해 좋은 사람도 못 된다. 여기서 놓아주는 게 맞아. 무언가 더 뱉어내는 것은 과욕이며, 그녀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별 수 없었다.  

 안았던 팔에 힘을 풀자 되려 그녀가 나를 꼭 끌어안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았던가. 불안 때문인가 떨리는 녹빛 눈동자를 가만 바라보다 눈꺼풀 위로 슬쩍 입술을 얹었다. 직접적으로 입술이 닿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나름대로 용기이기도 했다. 떨궈진 눈물은 하얗게 굳어 수면을 부수고, 난 그녀의 눈가를 슬며시 닦아 주었다.  

 "울지 말고." 

 "…." 

 "무슨 말이든 해도 좋아요." 

 잠시 그 적막을 기다렸다. 분명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을테고, 그것을 고하기 위해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사랑해요." 

 미친 듯 뛰어대던 심장이 순간 멎었다. 짐작은 했으나 완벽히 예상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 모양이라.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해서는 나는 아닐 것이라며 끝도 없이 잔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그녀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그 감정은 저 깊은 곳까지 삼켜버린 채로. 

 인어는 고백을 차이면 물거품이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있으니,  

 이젠 그녀가 용기를 낸 만큼 나도 용기를 내려 한다. 울먹이고 있는 그녀의 낯을 빤히 바라보다 천천히 그 입술 위로 내 입술을 얹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답은 될 테지. 천천히 숨을 섞으며 나는 그 감정에 대하여 나름대로 정리를 끝마쳤다. 

 그녀를 사랑한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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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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