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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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디나의 바닷바람엔 특유의 생선 냄새가 있다. 부둣가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소금기보다는 조금 더 눅진하고 찝찔한 비린내.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과 그로부터 분화하는 일상, 그 틈바구니에 숨죽인 포탄과 화약 냄새가 뒤섞여 탄생한 결과물이라고 로잔나는 말했다. 사는 것들은 대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며 가장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파편이 바로 냄새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때 로잔나는 선착장 가장 앞머리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넬은 몸을 쭈그려 앉은 채 찰랑이는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빈말로도 잠잠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물살에 얼굴이 비쳤다가 깨지기를 거듭한다. 배를 묶고 닻을 내려야 하기에 선착장은 육지로부터 제법 튀어나와 있고, 돌출부의 가장 끄트머리인 이곳은 그 깊이가 상당하다. 코넬은 며칠 전 귀동냥으로 엿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타국 출신 여행자가 아닌 밤중에 선착장에서 술판을 벌이다가 추락했다던가. 만류하는 현지인을 밀치고 드잡이질하다가 끌려갔다고 했지, 아마. 얼굴 모를 머저리의 멍청한 면상을 상상하던 코넬은 이내 수면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고 손 틈을 거칠게 치고 지나는, 차갑고 섬찟한 유속에 잠시 눈을 감았다.
잡다한 생각을 떠올리는 건 제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코넬은 문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싸우는 법을 배웠지 도망치고 숨는 법을 답습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반쯤 담갔던 손을 천천히 밀어 넣으며 코넬은 생각한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그저 아는 것. 날 때부터 영혼에 새겨지는 것이 있다. 격류를 만나 지나치게 흔들리는 배, 판자의 삐걱거림, 단말마와 화약 터지는 소리 같은 것. 어쩌면 사람이 품고 나는 것은 투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밤바다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면이 있지. 하지만 집어삼켜 놓고 시치미 떼는 솜씨가 일품이라고도 말했던 것 같은데.”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코넬은 퍼뜩 고개를 든다. 찬물에 반쯤 삼켜진 손을 힘주어 비튼다. 팔을 빨아들이듯 굴던 유수가 마치 억센 손아귀처럼 붙들지만 그조차도 뿌리친다. 잔 물방울이 미련처럼 사방에 튈 때 코넬은 팔을 빼고 몸을 바로 한다. 그리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렇듯 사위가 어두울 때면 그는 꼭 등대처럼 빛났다. 짙푸른 감청에 잠긴 사르디나를 비추는 가장 높은 갈피처럼.
“로지.”
사르디나의 통령, 로잔나 데 메디치. 꼿꼿하게 편 허리와 흔들리지 않는 시선. 제게 꽂히는 명징한 눈빛에 코넬은 몸을 일으킨다. 여긴 어쩐 일이야, 하고 묻는 말에 로잔나는 눈썹을 한번 치켜뜬다. 바람 쐬러 나왔다는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믿음직스럽지는 않다. 사르디나의 통령에겐 하루가 서른 시간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고 직접 목격해 온 코넬은 알았다. 로잔나는 인어의 심장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바닷사람이지만 그렇기에 하루의 태반을 가장 드높은 육지에서 보냈다.
조금 멋쩍게 서 로잔나의 다음 말을 기다릴 무렵. 코넬의 머릿속을 강타한 건 어떤 가능성이다. 물살 치는 소리로부터 아득히 먼 곳에서 어쩌면, 하는 목소리가 속삭인다. 로잔나는 나를 찾아왔을까? 바쁜 일들을 뿌리치고 내게로 온 거라면 조금 기쁠지도.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입가를 꾹꾹 누르는데 로잔나가 손짓한다. 앉아, 어디 안 간다. 일견 퉁명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목소리에도 코넬은 그럼 뭘 할 거냐고 되물으며 천연덕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다가온 로잔나는 코넬의 곁에 자리를 펴고 앉고는 휴, 한숨을 내쉬었다.
“날 찾아왔어?”
“그렇다고 대답해 주랴?”
코넬은 눈을 한번 굴리곤 순순히 대답한다. “그럼 좋고.”
타박이 돌아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이어지는 건 짧은 침묵이다. 이어 뜻밖에도 짧게 한숨을 내쉰 로잔나는 고개를 숙였다. 수면이, 조금 전 코넬의 손을 집어삼킬 듯하던 바다가 로잔나의 얼굴을 비춘다. 로잔나는 손끝으로 물살을 툭툭 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다.
“그래. 찾으러 왔다. 저녁 무렵부터 보이질 않는다길래. 헬가 그 녀석이 어찌나 재촉을 해대던지. 열아홉이란 바다에서 처음 만난 폭풍 같은 나이잖소, 하며 널 찾으라고 닦달을 하지 뭐냐.”
대답하는 대신 코넬은 어깨를 으쓱인다. 로잔나를 재촉했을 헬가의 태도 같은 건 힘들이지 않고 떠올릴 수 있다. 어깨를 웅크리듯 하는 그 특유의 움직임으로 한 번 으쓱이고는, 못 말린다는 양 두 손을 들고서. 그 애는 통령과는 다르잖소, 라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그러나 그렇기에 달갑지만은 않은 이야기로 로잔나를 설득했겠지. 조금 의외인 사실이라면 로잔나가 그에 응했다는 사실일 텐데.
로잔나가 도로 입을 연 건 바로 그때였다.
“두려우냐?”
코넬은 입을 다문다. 무슨 말이냐는 너스레를 떨기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굳게 닫힌 입매를 힐끔 곁눈질한 로잔나가 작게 코웃음쳤다. 코넬은 역시나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손을 내뻗는다. 부두 아래로 손을 넣어 수면 아래로 자맥질하며 저 아래 있을 바닥을 상상한다. 닿지는 못할.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나는 네게 신중해지라고 가르쳤지만, 그건 번뇌에 차라는 말이 아니야. 파고들자면 그 두 가지는 정반대의 이야기다. 너도 알 텐데.”
“알아.”
“안다고 말하려거든 우선 허리부터 펴. 그리고 고개를 숙이지 말고 내 눈을 봐라.”
코넬은 그렇게 한다. 수면에서 손을 들치고 허리를 편다. 폐부 속으로 파도처럼 쏟아지는 눅눅한 물비린내에 잠시 입술을 짓씹었다가, 바닷바람에 넘어가지 않도록 안대를 한번 매만지고서. 로잔나를 본다. 이백 년 가까이 살아온 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코넬과 눈을 마주치고, 아, 그 순간 코넬은 생각한다. 날 때부터 영혼에 새겨지는 것. 그리고 지금, 당신 눈 속에서 보이는 급류.
당신은 날 때부터 해일이었는가.
“코냐.”
상냥하지 않은 목소리로 로잔나가 말한다. “이백 년 동안 내가 배워온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람은 변화하는 존재라는 거다. 오랜 세월 항해한 닻이 뭉툭해지듯이. 사람도 다를 바가 없어.”
코넬은 짧게 대답한다. 알아.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엔 그럴싸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 때 로잔나의 눈은 가늘어졌다.
“한 삶을 살며 무수한 탄생을 거듭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지. 탄생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로잔나는 말한다. “네게 맞서는 법을 가르친 까닭이 뭐일 것 같으냐.”
마침내 코넬은 허리를 뒤로 젖힌다. 몸에 들어간 힘을 풀고 부두에 완전히 눕는다. 어둑한 하늘엔 또 다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점점이 흩어진 포말을 눈을 셈하며 코넬은 속으로 상상한다. 급류와 화약. 포탄과 해일. 이윽고 모든 것이 흘러 돌아오는 대양.
바다 냄새가 난다. 파도 소리에 맞추어 쏟아지는 비린내에 인중을 문지르며 코넬은 로잔나를 향해 몸을 튼다. 어른 앞에서 자리 펴고 눕는 예의는 어디서 배웠냐는 대거리에 퍼뜩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으면서도 코넬은 웃었다.
“로지도 그래?”
틈을 두고서 로잔나가 대답했다. “대답이 필요하냐?”
그 말이면 충분했다.
자맥질하는 발 사이로 흐르는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빠르다. 그에 맞추어 찰박거리던 코넬은 이내 로잔나를 돌아보았다. 조금만 더 쉬고 가겠다는 말에 로잔나는 눈을 가늘게 뜨지만 이렇다 할 지적은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그는 밤바다에 넋을 팔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빠르고 일정한 걸음으로 멀어지는 작은 등을 보며 코넬은 아주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바다와 뭍이 맞닿는 곳, 화약 냄새가 물비린내에 뒤섞여 진동하는 그 부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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