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나나

(드랍) 18년도 반츠무 회지

연전 by 연전

18년도에 초반부를 작성...하다가 드랍한 반쯤 회지를 올릴지 말지 고민이 많았는데 읽다 보니까 웃겨서 그냥 올립니다

!18년도에! !초고를 작성하다가! 드랍한 글이므로 현재 문체와는 많이 다르고 항마력도 필요하고 완성도도 많이 낮습니다... 감안하고 재미로만 봐 주세요

게임 3부 멘스 기반으로 우당탕 '코미디' 로맨스를 지향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말고 다른 분들한테도 웃기면 좋겠네요...


띠링띠링, 꽤 한가한 시간에 울리는 휴대폰에 아네사기가 고개를 돌렸다. 래빗챗? 누구에게서 온 걸까나. 상태창을 내려보니 송신인은 반리. 어머? 이 사람이 웬일이래. 일 관련으로 온 건가? 준비된 행사가 없었기에 자신이 놓친 것이 있는지 머리를 굴리며 앱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한 적이 별로 없기에 별볼일 없는 로그. 맨 밑에는 방금 온 메세지가 남겨 있었다.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무슨 일?

익숙한 듯 토도독 타자를 눌러가는 손놀림. 그 뒤로 보내온 '별 일은 아니고...' 라는 대답에서 아네사기는 별 일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렸다. 것도 사적인 일. 이제 그 주제가 무엇인가가 중요한데. 뭐가 되든 좋은 예감이 들어 눈을 빛냈다.

-여자 아이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까 해서요.

빙고! 적중한 예감에 그대로 활짝 펴는 얼굴. 언젠가 오리라 기대했던 연락을 이제야 받았다. 내가 눈치가 몇 단인데 그 기류를 눈치 못 챌까. 빨라진 손이 급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일단 심호흡 한 번 하고, 후하후하.

-타카나시씨한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은데?

1초, 2초. 아까와도 비슷한 텀이건만 분위기가 달랐다. 액정 너머에서 당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이상은 모르는 척. 시치미 뚝 떼고 글자를 채워갔다.

-주변에 선물 줄만한 여자 아이가 타카나시씨밖에 더 있어? 그래서, 주려는 이유는?

반리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꽤 신나는 경험이다. 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저 즐겁게 다가왔다. 원래 이런 얘긴 만나서 해야 하는데. 띠링띠링, 답장의 소리가 울렸다. 적힌 내용을 보자 아네사기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츠무기씨와 같이 일도 하고 있고 이래저래 신세진 것도 있으니 앞으로도 같이 파이팅하자는 의미로 주는 거에요.

-진짜 그게 끝? 내 감은 뭔가 더 있다고 하는데.

-끝입니다.

장황한 대답에 생각을 굳힌 듯한 즉답. 아네사기는 확신했으나 여기서는 일단 넘어가주기로 했다. 누굴 속이려는 건지 원. 저렇게 필사적으로 좋아한다는 티를 풀풀 내버리면 모른 척 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전부터 봐온 게 있기에 낼 수 있는 확신이었다. 면대면이었다면 얼마나 더 처참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쨌든... 생각 중인 건 마우스거든요. 마우스가 필요한 것 같아서. 귀여운 걸 선물할까 하는데 어떤 게 좋을까요?

-마우스!?

아네사기가 아주 차분히 또 급하게 타자를 채워갔다. 진심은 아니겠지? 그게 진심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 최악의 센스인 거야. 얼른 농담이었다고 말해. 한 글자 한 글자 누르는 손에 힘이 실렸다. 액정으로만 보일 말이건만 건너편의 반리는 이유 모를 위압감을 느꼈다. 반리가 타자를 헤맬 동안 아네사기가 또 다른 장문을 완성했다.

-본인이 여자 아이에게 줄 선물을 물었으면서, 뭐? 마우스? 자고로 선물이란 악세서리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받는 거였다면 당신에게 매우매우 실망할 거야.

위축된 반리의 손이 액정에 닿지 못하고 붕붕 떠다녔다. 알아들었지? 선물은 최소 악세서리야. 마우스 안 돼. 마우스로 했다간 연락을 끊어버릴지도 몰라. 그치만, 이라고 반박을 써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귀여운 포장까지 마친 마우스가 눈 앞에 준비되어 있었으니. 괜찮은 선물일까 아네사기에게 돌려 물으려던 계획이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에게의 선물이라 하면 더 무서울 반응이리라. 반리는 저 너머의 아네사기가 이미 더 무섭게 화를 내고 있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

며칠 뒤 모두가 모인 곳은 집사 카페. 아네사기의 회유로 인한 오카자키 사무소 주최의 비공식 매니저 모임이었다. 츠무기가 기운이 없다는, 다소 거짓말을 섞은 말에 집사 카페 쿠폰까지 넘기니 어쩔 수 없이 주최된 모임. 반리는 아네사기의 눈치를 살폈으나 눈치챈 건 아네사기밖에 없었다.

맘껏 드시라는 린토의 말로 시작된 다과회를 겸한 친목회. 린토는 아네사기한테 듣던 것보다 츠무기의 기운이 없어 보이진 않아 고갤 갸웃했다. 뭐, 기운 있으면 좋은 거고, 하며 넘겼지만.

"후후, 요 전에 타카나시 씨가 기운이 없는 것 같다고, 오오가미 씨가 상담해왔어."

"제가요?"

츠무기가 자신이 기운이 없던가? 하고 돌아보던 찰나 반리는 먹으려던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사레가 들려 마구잡이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허, 무슨 주책이니. 하지만 츠무기가 걱정하는 듯 하여 잠시 그대로 놔두었다. 반리가 진정되자 아네사기는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반리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우스 필요하던 모양이라 귀여운 마우스를 선물할까 하는데 어떤 게 좋을까요 라고."

하여간, 이런 얼굴을 한 남자가 선물을 내밀 때 설마 마우스라는 생각은 못 할 거 아니니? 악세서리 정도는 준비하라고 그랬어! 하여간! 아네사기가 열을 내자 반리는 점점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어찼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악을 쓴 덕에 별로 눈치 챈 사람은 없었지만. 츠무기를 살피며 침을 삼켰다. 다음 말은 꺼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마, 마우스 기뻤어요!"

그럴 리가. 아네사기의 표정이 급속도로 식어갔다. 그렇게나 말했는데 마우스로 한 거야? 설마 그건 아니겠지. 반리가 급히 제 선물을 변호했다. 그치만, 그거예요. 핑크색! 작고 토끼 모양을 한 거! 린토가 귀엽다고 맞장구를 쳐 주어 숨통이 조금 트인 것만 같았다. 아네사기의 무서운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하여튼 센스가 없어도 너무 없다니까. 타카나시 씨도 너무 착해서 탈이야."

츠무기의 시선이 정말 괜찮다며 반리를 향했다. 손까지 내저으며 강력히 피력하는 모습. 주눅 들어있던 반리가 고맙다며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렸다. 그 때 지잉, 울리는 휴대폰. 네 명의 매니저들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으나 주인공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츠무기가 전화를 받고 오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웠다. 반리가 숨을 멈췄다.

"내가 무슨 말 할지는 잘 알고 있겠지?"

침을 꿀꺽. 반리의 한껏 긴장한 기류를 린토가 보고 고갤 갸웃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별로 끼어들고 싶지는 않은 기분. 잠자코 있으려니 아네사기가 반리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하여튼! 내 말 듣기는 한 거야? 마우스 절대 안 되고 악세서리로 하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선물이 이미 준비가 다 됐었다는 소리는 절대 꺼낼 수 없었다. 아네사기의 기운이 너무 강해 린토까지 주눅이 들어버렸다.

"이미 준 거 어쩔 순 없지만 다음은 꼭 이거보다 좋은 걸 준비하란 말이야. 나였으면 다음 기회는 없지만."

네…. 일단락일까. 기운 없는 반리의 대답으로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반리는 괜찮다고 느꼈는지 음료를 들이켰다. 눈치 보던 린토의 조심스런 말 한 마디에 삼킬 순 없었지만.

"저, 오오가미 씨가 타카나시 씨를 정말로 좋아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지 않나요? 왜 그렇게 심각하게."

푸우웁. 반리가 극심한 대미지를 입고 테이블에 엎어졌다. 놀란 린토가 엎어진 반리를 토닥토닥, 그럴 때마다 정신력이 깎이는 반리. 아네사기는 경이롭다는 눈빛으로 린토를 바라보았다. 알고 저러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저 매니저도 소속사 아이돌만큼 사람 괴롭히는 데에 일가견 있다. 그 사람들을 감당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무언가 대략 눈치를 챈 린토가 확인을 원하는 듯 아네사기를 바라보았다. 진짜? 라고 묻는 듯한 눈빛. 아네사기는 이마를 짚고 대충 손을 휘적였다. 진짜…. 깨달은 듯한 시선에 토닥임은 어느 샌가 멈췄다. 그 뜻을 아는 반리는 다시금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 거 아니라고 말씀드려도 다들 안 믿으시겠죠…?"

"고개도 못 들면서 무슨."

"모두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아네사기가 눈치를 챘다는 건 반리도 알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도 너무도 이상했던 태도였기에 래빗챗부터 알았지만 열심히 모른 척 했던 건데. 보이지 않는 눈물이 테이블을 흥건히 적셔 흘렀다. 아네사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아네사기가 비장한 눈빛을 띄웠다. 린토의 몸에 묘한 소름이 돋아났다. 당장이라도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 느낌. 슬쩍 일어날까 하던 타이밍은 놓쳐버렸다. 아네사기가 린토의 팔을 붙잡았다. 린토의 등에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오카자키 씨도 한 배를 탄 거야."

"네?"

"우리 좀 도와줘."

네? 다시 돌려보내려던 반문이 아네사기의 눈빛에 묻혀버렸다. 한 배라니, 도와달라니. 린토와 더불어 반리까지 고갤 들어 바라보자 자리에서까지 일어서 열의에 불타는 아네사기가 눈에 들어왔다. 두 남자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센스 제로인 남자의 연애를 우리가 이뤄주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방금 구절에 태클 걸만한 구석이 대체 몇 군데였는지. 물음표에 사로잡힌 두 남자가 말을 고르려 입만 뻐끔거렸다. 단 한 마디도 말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막혀버리니. 아네사기는 주먹을 쥐고 머리 속으로 계획을 정리해나갔다. 이름하야 연애 조작단 작전! 떠오른 그대로만 흘러가면 멋진 결과가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좀 늦었죠. 스케쥴 관련으로 전화가 와서."

남자들의 의견은 츠무기가 와서 절로 입이 닫혀 버렸다. 아냐, 어서 와! 슬슬 음식도 나오겠다. 츠무기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아네사기의 모습에 여러 만감이 교차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IDOLiSH7에게 좋은 스케쥴이 들어왔다며 방방 들뜬 츠무기에게는 그 기류가 전해지지 못했다.

*

사실 린토에게는 다른 걱정보다도 내부 비밀 유지 건이 제일 걱정이었다. 매니저들의 친목 모임이 파하고 다들 돌아갔다고 생각했을 때, 아네사기의 눈치로 다시 모인 츠무기를 뺀 세 명은 앞으로의 계획을 예고하며 아네사기에게 주의사항을 더 듣고 헤어졌더랬다. 

사무소로 향하는 린토의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 일 반드시 물어볼 텐데. 꾸준히 시치미 떼는 것밖에 답이 없을 텐데 지킬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보니 어느 새 도착한 사무소.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니 내부는 환히 불이 켜져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라? 두 분 아직 안 들어가셨나요?"

"오카링, 어서 와!"

테이블에서 주스 한 잔을 채운 채 양갈래 하트 빨대 하나로 주스를 마시던 Re:vale가 쫄쫄쫄 다가왔다. 무언가 한껏 기대에 찬 눈빛.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린토에게 가득 차올랐다. 모르는 척, 모르는 척. 속으로 다짐 몇 번을 하고는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늘은 오후부터 오프셨을텐데, 계속 사무소에 계셨던 거에요?"

"모처럼 오카링이 즐기는 오프가 궁금해서 말이야. 돌아오자마자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지."

오늘 매니저들 만났다며. 어땠어? 분명 말은 '매니저들'이라고 모두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린토는 묘한 느낌을 잡아챘다. 저 둘이 묻는 건 팔십 퍼센트 정도 오오가미 씨 얘기리라. 저 둘을 어떻게 해야 이길 것인가. 린토는 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 했다.

"타카나시 씨가 기운이 없다길래 북돋워주고 왔죠."

"츠무기쨩이? 요즘 무슨 일 있던가?"

"그래도 중간에 IDOLiSH7에게 좋은 일거리가 들어왔다고 기뻐하더라고요. 기분이 많이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에요."

그렇구나. 대화가 끝나도 Re:vale는 들을 말이 남았다는 듯 린토를 빤히 쳐다보았다. 괜히 모르는 척 이쪽에서도 빤히 바라보자 묘한 눈싸움 기류가 생겨버렸다. 유키와 린토의 눈싸움을 중재한 건 모모. 오카링, 치사해! 유키의 시선을 다 앗아가는 거야? 유키, 나는…? 하는, 별로 평범한 대사는 아니었지만. 모모하고는 매일 눈을 맞추니까, 가끔은 오카링에게도 시선을 줘야 하지 않겠어? 아아, 그런 깊은 뜻이. 유키, 완전 꽃미남…! 하는 대화가 오간 건 여담이다.

"어쨌든, 반하고는 별 얘기 안 했어?"

"오오가미 씨요? 음."

다소 기억을 되짚는 척. 아뇨, 별 얘기 없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또 무언가 남았다는 듯 미심쩍은 눈길로 린토를 훑었다. 탐색 간 정적에 절로 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있지, 유키. 오카링이 조금 수상하지 않아?"

"그러게, 모모. 평소보다 좀 더 긴장한 거 같고."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나는 짐작가는 게 없는데, 모모는? 우리한테 숨길만한 일이면 뭔가 대박의 냄새가 나긴 하는데…. 모모가 자신의 턱에 손을 짚고는 가는 눈으로 린토를 바라보았다. 유키의 묘하게 압박하는 눈길까지 더해 린토의 속이 조금은 쓰려왔다.

"반이?"

"반씨가!"

두 사람의 은근한 압박은 린토가 입을 열 때까지 계속되어 결국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리의 비밀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신나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고, 뒤늦게 걸려온 아네사기의 전화에 린토가 망설이자 Re:vale가 인터셉트하여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아네사기는 처음엔 모르는 척 하다 두 사람의 압박에 결국 모든 걸 털어놓았고, 캐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일 줄은 몰랐다며 경악까지 내뱉고는 절대 비밀 엄수를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라져 댓!"

리바레의 밝은 반응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아네사기와 린토가 한숨을 내쉬고는 앞 길을 걱정해나갔다. 반리를 잘 알고 행동력이 높은 사람들이니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마음 한 구석 피어 오르는 걱정에 리바레가 엮인 것을 아는 두 사람은 뜬 눈으로 지새우고, 반리는 눈물로 지새우고, 리바레는 웃음으로 지새운 밤이 지나갔다.

*

어제 그 일이 있은 후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하필이면 오늘 멧조 스케쥴이 리바레가 공동 촬영이라니. 다른 그 누구보다도 그 두 사람이 걱정되어 밤새 뒤척이기만 했던 것 같다. 혹시나 알았으면 어떡하지. 아직 모른다면 알게 되면 어떡하지. 그 둘에게 소문이 흘러 들어가면 주변에 퍼지기란 삽시간이었기에 걱정 보따리 한 짐 매단 채 방송국으로 차를 몰았다.

"반리 씨, 오늘 컨디션 안 좋으세요? 표정이 조금 안 좋으신데."

"응? 아, 소고 군. 괜찮아. 운전 흔들렸어?"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괜찮으시다면."

정신 차려야지. 반리가 머리를 살짝 휘젓더니 눈을 부릅떴다. 소고가 뒷자리로 돌아오자 타마키가 입을 열었다. 반쨩, 아까는 차 흔들리더니 이제는 눈 무섭게 뜨구 있어. 소쨩 제대로 말한 거 맞어? 소고가 입가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대었다. 쉿, 타마키군. 타마키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툴툴댔다.

다행히 무사히 도착한 방송국. 복잡한 머리에 속도는 조금 올라갔지만 더 차가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창 밖을 보던 타마키가 차에서 내리자 반리를 조금 쏘아본 걸 빼면. 흔들리던 것과 평소보다 빠른 속도가 합쳐지면 걱정이 조금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마저 눈치채지 못한 반리는 방송국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 반쨩 정말 왜 저래?"

"그러게. 아무래도 무슨 일 있으신 거 같은데."

멧조가 반리 이상의 근원지를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기실로 걸음을 옮기던 찰나 마주친 리바레에게 눈에 띄게 흠칫하며 이상 반응을 보이던 반리. 타마키는 반리가 또 이상하다며인상을 찌푸렸지만 소고는 저 두 분 관련이구나, 눈치채고는 가만히 있었다.

"반! 오랜만이야, 반가워. 요즘 어떻게 지내?"

"나야 뭐 항상 잘 지내지. 너희는?"

"우리도 잘 지내지. 어제 오카링하고 만났다며?"

절로 침이 꿀꺽. 반리의 긴장된 시선이 린토를 향했다. 마치 도망가라고 외치는 듯한 린토의 시선 회피. 나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반리는 어물쩍 넘어가려 방향을 틀었다. 그걸 놓치지 않는 듯한 모모의 결정타.

"아, 반씨! 그러고보니 그쪽 마네코쨩─."

"잠까안!"

잠깐만요! 매니저 두 명이 동시에 리바레의 입을 틀어막았다. 멧조의 눈은 휘둥그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 눈을 꿈벅이자 입이 틀어막혀진 리바레와 함께 반리와 린토는 이미 저쪽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금방 올게, 잠시만 기다려!"

외치고 사라져버린 네 사람의 모습. 물음표만 띄운 멧조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아 한참을 모퉁이만 바라보았다.

"소쨩. 마네코쨩, 우리 매니저 말하는 거 맞지."

"으응, 그런 거라고 생각해."

"우리 매니저한테 무슨 일 있는 거야?"

타마키가 돌연 모퉁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타마키군? 반리 씨는 기다리라고, 소고가 말로 타마키를 막았지만 이미 옮기기 시작한 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소고가 타마키를 막으려 뒤를 쪼르르 따랐다.

"우리 매니저랑 관련된 일은 우리도 알아야 하는 거잖어? 신경쓰인단 말야."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거겠지. 말 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쉿, 소리를 낮춘 타마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소리가 없어지자 저쪽의 소리가 그대로 들리기 시작해 소고는 귀를 막고 타마키를 끌고 가려 움직였다. 타마키군, 저쪽으로 돌아가자. 엿듣는 건 나쁜 거야. 꿈쩍도 않는 타마키 덕에 결국 저쪽 말 소리는 소고의 귓구멍을 때렸고, 소고가 타마키와 같은 얼굴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 진짜였구나? 반이 츠무기쨩을 좋아한다는 게."

"퓨퓨! 사랑에 빠진 반씨라니, 완전 멋져! 츠무기쨩의 어떤 면이 반씨를 사로잡았나요?"

"그러니까 그건 비밀이라니까! 제발 목소리 좀!"

도와줄 테니까 괜찮잖아. 유키의 말에 반리가 한사코 고개를 저어보였다. 소고와 타마키가 본 건 여기까지. 이 뒤는 소고가 타마키를 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바람에 알지 못했다. 한동안 같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오가지 않던 둘. 소고의 머리 속은 온통 한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모른 척 해야 하나? 아니면 도와야? 그치만 비밀이랬는데. 매니저의 의향은…. 소고가 타마키의 표정을 살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뚱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반리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말도 없던 두 사람은 스케쥴만 제대로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았다.

"저 두 사람 오늘은 왜 저런대."

"OH…. 싸움 안 됩니다."

"한두 번 저러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스케쥴 소화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연습실에 모여서도 열심히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통에 멤버들은 멧조에게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분 째인지. 제발 적당히 좀 하라는 이오리의 일침을 쏘려는 순간 타마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오리는 그만 바닥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오리, 괜찮아? 리쿠가 걱정하며 옆으로 따라붙자 다소 신경질적으로 떼어내는 이오리. 걱정해줘도 뭐래! 툴툴거리고 있자니 타마키가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타마키에게로 옮겨갔다.

"다들 있잖어. 반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반리 씨? 생각지도 못한 주제에 모두에게 의문이 떠올랐다. 반리 씨, 좋은 사람이지? 성실하시고. 자기들끼리 주고 받는 이야기에 확신은 없는 듯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는 듯이 시선이 오갔다. 갑자기 그건 왜, 싶은 물음을 던진 건 이오리. 지금 그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묻자 타마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반쨩, 우리 매니저 좋아한대. 오늘 모모링하고 유키링한테서 들었어."

"타마키군!"

몇 초간의 정적. 제 삼자의 입에서 갑작스런 연애 고백이 나왔다니. 반리 씨가 매니저를? 소고는 뒤늦게 생각에서 빠져나와 타마키를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저거였구나, 오늘 말도 안 하고 있던 건. 멤버들이 눈치챈 와중에 모두의 시선은 소고를 향했다. 마치 사실이냐고 묻는 듯이. 소고가 크게 주저하며 눈을 굴렸다.

"소쨩도 들었구. 진짜 맞구."

"매니저가 지금 반리 씨하고 사귀…고 있는 건 아니지? 소우."

"네.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NO…! 사귀고 있지 않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라이벌이 한 명 늘고 말았습니다. 나기의 절규에 미츠키의 타박이 날아들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기가 시무룩해진 찰나 나기에게 자극받은 듯 타마키가 주먹을 꼬옥 쥐었다.

"나는 매니저하구 반쨩하구 반대니까 말이야!"

"그거, 요츠바 씨가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 이오링은 찬성이라는 거야? 타마키가 부루퉁하게 묻자 이오리도 흠칫하며 말을 이었다. 사내 연애는 뒷마무리가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저도 반대입니다. 그에 반기를 드는 건 리쿠 뿐.

"그래도 반리 씨, 매니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주고 되게 잘 대해주실 거 같은데."

"나나세 씨는 찬성이라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소고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굳이 결정하라면 반대표를 던진다고 발언했고, 타마키는 나이가 많다는 둥 억지 의견을 내다 결국 멧조 매니저로서 지켜본 결과 마음에 안 든다며 결론지었다. 가장 강력하게 반기를 드는 타마키를 중심으로 멤버 모두는 묘하게 반대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달까. 요약하자면 '우리 매니저를 저 밖의 사무원에게 맡길 수 없어' 라는 느낌이었다.

"그 두 사람, 다 들은 게 아닐까. 들었겠지…?"

아니, 다 들었으면 무언가 나한테 말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정작 저 밖의 사무원은 낮의 일 때문에 책상에 거의 엎드리다시피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단 건 못 들었단 게 아닐까. 차라리 당장이라도 저 연습실로 들어가 직접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머리 속을 빙빙 도는 한 대사 덕분에 울고 싶은 마음은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츠무기쨩에게 데이트 신청해. 뒤는 우리한테 맡기고."

데이트 하는 건 나거든요! 대체 뭘 어떻게 할 생각이기에 자기들에게 맡기라는 건지. 더 불안한 마음이 기어오르는 중 그걸 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던 자신에게 더욱 환멸감이 드는 것이었다. 정말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들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쯤 찾아온 츠무기의 모습이란. 자신을 찾았다는 양 발견하자마자 환히 반겨주는 모습에 반리의 심장이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최대한 표정을 정돈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아무 일 없다.

"반리 씨, 여기 계셨네요!"

"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츠무기쨔… 아니 씨."

아무 일… 없기는 개뿔. 츠무기가 의외의 호칭에 눈을 꿈뻑였다. 하여튼 그 두 사람! 도움 되는 일이 없다며 속으로 백만 번쯤 원망을 이어가고 있을 쯤 츠무기가 괜찮다며 부르고 싶으신 대로 불러도 된다고 말을 건네주었다. 반리의 영혼이 몸을 나가 쥐구멍으로 숨어들었다.

"참 참. 제가 찾아온 건 다른 게 아니라 멧조 두 분 때문이거든요. 들어오실 때부터 기운이 없으셔서. 반리 씨도 그렇고요."

"저, 저는 별 일 없었어요! 멧조 두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적이 있었는데 갔다 와보니 두 사람의 상태가 냉전 상태였던지라…. 실은 그 땐 반리 자신도 정신이 없어 두 사람을 살피지 못한 것도 컸었다. 돌아보면 너무나도 이상했던 두 사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두 사람이 제 얘길 들은 거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걸 츠무기에게 티낼 순 없어 속으로 악소리를 내질렀지만.

"그러셨군요. 별 일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에요. 반리 씨는 괜찮으신 거죠?"

"당연하죠! 또 다른 볼 일이 있으신가요?"

아뇨, 그런 건 딱히 없어요. 츠무기가 고맙다고, 실례 많았다며 고개를 꾸벅하고 자리를 벗어나려는 순간이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돌아서려는 츠무기의 팔을 잡고 말았으니. 반리가 저도 모르게 나간 팔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자 츠무기가 당황하여 반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에? 무슨 일 있으신가요?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반리가 정리도 못하고 입을 열어버렸다.

"츠무기 씨. 혹시 내일 저녁 시간 나시나요?"

방금 제가 무슨 말을 내버린 것인지. 말하고 나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에 그제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세상에, 세상에. 무슨 짓을 해버린 거야. 멧조 생각에 절로 이어진 리바레와의 대화가 머리 속을 빙빙 돌았다. 데이트 신청. 데이트. 무의식으로 박혀 버렸는지 그런 말까지 입에 담아버렸다.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말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알 게 뭐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었다. 기회는 이미 잡아버린 것. 이렇게 된 이상 츠무기의 대답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심장 박동이 귓가에 울렸다.

"저, 내일은 저녁 방송이 잡혀 있어서…."

아. 반리가 숨을 삼켰다. 맞다. 저녁 방송이 있었다. 잠시 제 일마저 잊어버렸다니 망치로 제 머리를 치는 것만 같은 느낌. 아아, 망했다. 눈 앞이 캄캄해진 와중에도 기회를 노리는 무의식은 다음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영혼이 다 빠진 것만 같았다.

"모, 모레엔 스케쥴 없죠?"

"네, 네. 없어요. 그 때로 잡을까요?"

"좋아요!"

좋기는 뭐가 좋다는 건지. 영혼이 다 빠져서 무게 없는 웃음이 흘러나갔다. 하하하, 나중에 제대로 사과해야지. 시간 뺏어서 죄송하다는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를 사과를 마지막으로 팔이 놓인 츠무기는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 온 몸에 들어간 힘이 한순간에 탁 풀려갔다. 책상에 미끄러지듯 쓰러져서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체 어떡하자고 약속을 잡아버린 거야. 뒤늦게 타박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츠무기가 이상하게 봤겠지. 당연한 소리를 뇌 속으로 수십 번을 돌리며 책상에 이마를 찧었다. 술… 마시고 싶네…. 휴대폰을 들어 유키에게 래빗챗을 보냈다. 당장 오는 답의 속도에 반리는 더욱 울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혀 버렸다.

-만날 수 있어?

-평생 있을까 말까 한 연락을 나보고 거절할 수 있냐고 물어본 거야?

-말자.

-어디로 갈까?

아마 신나 있겠지. 저 연습실 안에서는 미츠키가 모모에게 래빗챗을 보내 반리에 대한 사실 확인을 마친 참이었다. 사실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을 하는 순간 모두의 반응은 연습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니. 반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책상에 엎드려 보이지 않는 눈물을 떨궈냈다.

*

반리가 속을 털어놓은 다음 날 오전. 마치 비밀 모임인 것처럼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네 명의 사람들이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누가 보면 입을 맞춰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할 만한 모습이었건만 아이돌이라는 신분을 사람들한테 들키는 것보단 나으니까. 모모와 유키, 카오루, 린토는 각자 음료 하나를 들고선 서로를 마주보았다.

"자, 다들 얘기해야할 주제는 뭔지 알고 있겠지?"

"분위기 잡는 거 그만 하고 얼른 얘기할 거 하고 해산해. 당신들, 다음 스케쥴도 있을 거 아냐?"

"카오루쨩, 또 무서운 표정 짓는다! 그러지 말구. 응?"

분위기 잡던 모모가 한순간 풀어져서는 특유의 친화력 뿜어내는 애교로 카오루를 녹이려 들었다. 카오루한테는 씨알도 안 먹힌 모양이었지만. 오히려 무서운 기류가 휘몰아쳐 올랐다.

"당신들, 비밀이라는 말 뜻 제대로 알고 있어? 도대체 아이돌리쉬 세븐한테는 왜 알린 건데?"

쉿, 카오루쨩, 목소리 너무 커. 급히 입술에 손가락 하나 올리고는 모모가 수습하려 나섰다. 그건, 그거야! 아이돌리쉬 세븐 쪽에서 먼저 물어봤다구. 미츠키가 래빗챗 보냈을 때 나도 얼마나 놀랐는데!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나가고 있지만 카오루는 모모의 거짓말을 끄집어냈다. 놀라긴 무슨. 노렸던 거겠지.

"아직 반한테는 안 알렸어. 걱정할 까봐."

"오오가미 씨가 제일 아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왜 아직?"

"비밀이니까!"

린토의 물음에 리바레가 동시에 해맑게 외쳤다. 비밀은 무슨, 아이돌리쉬 세븐에게 알렸다는 사실을 알리면 반리한테 혼날까 봐 말하지 않은 거겠지. 마스크 너머로도 느껴지는 깨발랄함에 카오루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머리를 짚었다. 당신, 이 사람들 데리고 잘도 매니저 하고 있네.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에 린토에게 그리 이르자 린토는 그저 해탈한 듯 웃어보일 뿐이었다.

"어쨌든, 아이돌리쉬 세븐한테 알린 건 여차할 때 도움 받기 쉬우려고 그런 거야. 내부인이잖아?"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판을 크게 벌이는지. 걱정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자 모모가 본격적인 얘기는 지금부터라며 주의를 모았다.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자 유키가 목소리를 낮춰 테이블 가까이 얘기를 꺼냈다.

"반이 츠무기쨩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모양이야. 내일 저녁 같이 먹자면서."

카오루가 토끼 눈을 하고는 유키를 바라보았다. 오오가미 씨가 정말로?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을 보내자 유키가 어제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확인시켜주었다. 꽤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구나? 재평가를 하던 중에 반리가 휩쓸리듯 데이트 신청했다는 말은 살짝 생략해 주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반 데이트를 좀 도와주는 게 어떨까 해서."

돕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매니저 둘이 같은 의문을 던지자 리바레가 마주보며 미소를 그렸다. 카오루쨩과 오카링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한 작전이라며, 선글라스 너머로 매우 신난듯한 시선이 두 사람을 향했다.

*

"그래서, 내가 뭘 해야 한다고?"

"에이, 반 씨! 벌써 세 번이나 설명 해드렸다구요."

나머지는 저희가 전부 준비할테니 데이트 때 카오루쨩과 오카링이 내리는 지시에만 따라주시면 돼요! 믿지 못하겠는 말에 또 다섯 번째 질문을 날리려던 참이었다. 당신, 그 쯤 하고 그만 받아들이지? 연습하기도 바쁘단 말야. 카오루가 끼어든 현장에는 실제감이 듬뿍 끼얹어졌다.

세상에, 앞으로의 작전을 같이 짜보자며 불려온 리바레 사무소에서 들은 얘기는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데이트를 하긴 하는데 내가 하는 게 아니라니.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르는, 마치 대사 짜인 한 편의 연극을 하라니 갑자기 너무 당황스러운 말이 아닌가. 반리가 고개를 저었다. 카오루가 나설 차례였다.

"당신, 알고 있겠지만 센스가 정말 최악이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라도 도와야지, 안 그러면 데이트 망칠까봐 걱정돼서."

"저는 그래도 반대표 던졌었습니다!"

틈새로 린토가 손을 들더니 한 발언. 상황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반리가 그래도 고맙다며 물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유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우리도 강요할 생각은 아니야. 반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생각해본 건데, 반이 잘 할 자신이 있으면 당연히 물러설 거야."

자신이 있고 없고 이건 츠무기를 속이는 행각이 아닌가. 다른 그 무엇보다 '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그렇게까지 간절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반리는 부정적인 답밖에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우리 내일 방송 레스토랑 특집이 될 거야. 우리가 맡을 건 홀 전반. 우리 있는 곳으로 하면 츠무기쨩한테 데이트 핑계도 댈 수 있고, 좋을 거 같은데?"

심지어 방송이라니. 티브이에 얼굴이라도 비치면 더 큰일나는 걸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까. 반리가 절대 안 된다며 팔을 엑스자로 크로스했다. 표정은 상당히 다급했다.

"설마 우리가 방송에 내보낼 거라고 생각해? 우리 너네가 앉는 곳은 피해서 움직일 거야."

거세게 반발하던 반리가 순간 고개를 멈췄다. 멈추니 얼마나 세게 젓고 있었는지 핑 도는 세상. 살짝 비틀거리니 모모가 얼른 반리를 받쳐 주었다. 흠칫 하고는 곧장 바로 섰다. 모모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때? 이 정도면 서포트 받기도 쉽고 핑계도 댈 수 있을 거 같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번 방송은 녹화분으로 이루어질 예정이거든요."

정확히는 스튜디오에서 녹화분이랑 생방분이랑 번갈아 내보내는 거지만. 린토의 서포트에 반리도 조금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카오루의 화룡점정. 방송분이 걱정되면 리바레가 입김 좀 넣어서 편집 과정에 낄 수도 있잖아. 린토가 그건 좀… 하고 반대표를 넣었지만 리바레의 강력 지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맞아요! 반씨가 원하는 대로 전부 서포트해드릴 수 있으니까!"

모모의 결정타로 반리의 판단력이 흐려졌다. 일대다인 상황에서 제정신을 잡고 있기가 힘든 것도 크리라. 결국 상황에 진 반리는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하, 웃고 있지만 머리는 다소 지끈거려 왔다.

"그럼 제가 하면 안 될 행동을 할 때 막는 정도로만 진행해요. 지시에 따르는 게 아니라."

카오루는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으나 현재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그럼 내가 말하는 건 바로 듣고 고쳐야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반리도 오케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준비에 반리는 잠시 멀뚱히 서있었다. 그를 위로하는 건 린토. 힘내세요, 하고 토닥여주니 반리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예행 연습이라며 귀에 보이지 않을 만한 스피커를 붙이자 카오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금 현실감이 들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지 오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리바레와 카오루는 반리가 보내오는 확인 사인에 제각각 반응을 보냈다. 분명 마이크는 카오루 손에 들려 있었지만 환호성은 리바레 목소리만 들렸으니. 밖이니 좀 조용히 하라는 카오루의 말에 그제야 진정하는 두 사람이었다.

린토의 리바레를 향한 무전까지 테스트는 종료. 이후는 카오루와 반리의 일대일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데이트 때 주로 해야할 말과 해선 안 될 말을 뽑아 들은 속성 강의. 습득력이 빠른 건지 뭔지, 생각보다 일찍 수업 시간이 끝났음에도 카오루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다. 정말로 괜찮은 거지, 하는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끄덕. 불신의 한숨 소리를 마지막으로 데이트 리허설은 끝이 났다.

*

"저기, 오늘 아이돌리쉬 세븐, 뭔가 계속 리바레만 바라보고 있지 않아?"

"아이돌리쉬 세븐하고 리바레하고 뭔가 같이 하는 게 있던가?"

아니. 내가 알기로는 없어. 텐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아이돌리쉬 세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 중 한 명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야겠지만. 텐의 시선을 따라가면 모두에게 숨어 리바레를 바라보고 있는 리쿠가 있었다. 같은 스튜디오에 들어왔음에도 전보다 자신을 향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쿠는 그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솔직하지 못하긴. 저 꼬맹이도 이렇게 보면 정말 심한 브라콤이라니까."

텐의 매서운 눈초리가 가쿠를 향했다. 그에 질 가쿠가 아니었으니 역시 뒤처리는 류의 담당. 또 싸우냐며 둘 사이를 갈라놓은 류 덕분에 본격적인 말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멈출 수 있었다. 말싸움이 끝나자 다시 리쿠를 주시하는 텐을 보며 가쿠가 비웃음을 흘렸지만 다행히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다.

리쿠보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느냐는 물음을 던지는 텐의 속삭임은 리쿠에게는 닫지 않았다. 형이 이렇게나 자신을 신경쓰는 줄 알면 분명 리쿠는 기뻐할텐데. 류의 한숨을 마지막으로 아이돌리쉬 세븐의 작전 타임이 시작되었다.

"모모 씨가 신신당부하셨어. 반리 씨의 일은 비밀이니까 절대 밖으로 새나가면 안 된다고."

"우리가 안 시점부터 비밀 흐지부지된 거 아냐?"

"우리부터 또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지."

******

"쉿, 여기는 알파. 여기는 알파. 전파 상태 괜찮은가?"

"쉿, 여기는 베타. 이상 없음, 오버."

"하하…. 지금은 그러셔도 되지만 본방 때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아셨죠?"

상황극인 양 귀에 손을 올리고 무선을 받는 리바레에게 린토가 차분하게 타일렀다.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끔 서로를 바라보며 활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바레. 실은 바로 옆에 있었던 지라 스태프들에게는 그저 평소의 사이 좋은 리바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노린 점이기도 하고.

"있지, 유키. 오늘 너무 기대되지 않아?"

"맞아, 팬들하고 이렇게 가까이서 소통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오늘 이 자리에 당첨된 사람은 얼마나 행운이 넘치는 사람일까!"

흠칫. 이건 분명 반리보고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일반 손님과는 다르게 특별 손님으로서 이 자리에 초청된 반리는 스튜디오 밖이 아닌 안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기에. 츠무기와 함께 리바레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받으며 영혼 없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넥스트 리바레는 보통 생방으로 진행됐다고 아는데, 녹화 방송이라니 별일이네요."

"그러니까요. 별 쓸데 없는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요."

"괜찮아요. 리바레 씨가 꼭 반리 씨가 와줬으면 한다고 했다면서요! 그 때문에 녹화 방송도 준비했던 거라고."

왜 저까지 포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즐기다 가라고 하셨으니까요! 반리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괜히 테이블 위에 놓인 물병에 침을 꼴깍꼴깍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자, 자, 곧 방송 스탠바이합니다! 리바레 두 사람 모두 준비해주시고, 특별 게스트 두 분께서도 이동해주세요."

네! 츠무기가 즐거운 듯 싱글벙글 웃었다. 또 그 모습은 어찌나 예쁜지 반리의 심정은 더욱 더 복잡미묘해졌으니. 리바레 덕분에 한숨이 한가득 늘었다고 반리는 생각했다.

"거기, 오오가미 씨. 계속 표정 어둡게 있을래? 한숨이나 내리 폭폭 쉬어대면 퍽이나 타카나시 씨가 좋아하겠다."

아차. 카오루의 목소리에 한숨을 쉬려던 입을 합 닫고 츠무기를 바라보았다. 테이블에 다다라 앉자 주변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츠무기. 그를 바라보며 미소짓자 츠무기도 뒤따라 반리를 바라보며 미소지어 주었다.

"계속 표정이 안 좋으시길래 어디 안 좋으신 건가 생각했어요. 조금 안심이에요."

츠무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반리의 심장이 다소 쿵 내려앉았다. 모니터실의 카오루가 것 보라며 입을 비죽였다. 방송 PD가 전체 주의 사항을 이르니 카메라 온. 멀리서 반리와 츠무기를 바라보며 속닥이던 리바레의 눈빛이 바뀌었다. 목이 탔는지 반리가 물을 들이켰다.

"주의 사항 들었지. 테이블 앞에 놓인 꽃바구니에 카메라 심어져 있어. 그 테이블의 카메라만 이쪽으로 전부 연결되어 있으니까 허튼 짓 하지 말고."

잠시 꽃바구니를 확인하니 반짝이는 렌즈가 눈에 들어왔다. 손님들한테는 주의사항 전부 전달 끝내고 입장한댔지. 제 테이블만이 방송용 카메라가 아닌 모니터실로 연결되어 있댔다. 츠무기는 모니터실에 대한 것만 빼고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저희가 방송에 나갈 일은 없다고 했었죠? 카메라가 있다고 하니까 조금은 걱정되네요."

"걱정되면 편집 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제가 각서까지 받아놨으니 괜찮아요. 저도 걱정돼서 받아놨거든요."

진짜요? 하면서 웃음을 터트리는 츠무기. 다행이다, 괜찮은 이야기였구나. 어쩐지 하나하나 신경쓰게 됐다며 씁쓸했지만 츠무기가 웃었단 건 발언을 잘했단 이야기니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 카오루는 아직 조마조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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