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_빈_춤
2024-04-28
포근한 침대에서 일어나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평소와 달리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망할 놈의 기상 알람보다 먼저 울려온 감독님의 다급한 전화 때문이었다. 올림픽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들려온 아이스댄싱 파트너의 사고 소식은 몽롱한 정신에 얼음장 같은 찬물을 끼얹었고, 눈보라 치는 날씨에도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하며 달려간 병원에서는 응급실이 아닌 수술실의 환자 목록에서 그 애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막연한 희망만을 기다리는 병원 복도에 주저앉자, 평소라면 이 시간쯤 들려왔을 그 애의 인사 대신 그 애의 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만이 TV에서 몇 시간이고 메아리쳤다. 날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보이는 한 간호사의 온정 아래 그 뉴스가 맴돌던 귓전에서도 간신히 가라앉을 무렵, 8년 같았던 8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 애의 얼굴을 창 너머의 중환자실 끄트머리에서 간신히 바라볼 수 있었다. 얼마 보이지 않음에도 온갖 기계와 호스들을 달고 있는 네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가 말하는 예후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 말에 이젠 거의 한 가족으로 지내는 그 애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고 감독님과 코치님의 비통한 침음이 들리는데도 도무지 머리는 이 시야와 소리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괴롭힘으로 얼룩졌었던 어릴 적 네가 제안해 함께 시작한 아이스댄싱도, 그땐 그저 치기 어린 마음으로만 떠들고 다녔었던 올림픽도, 오늘 내가 잠시 악몽을 꾸었으니까, 거짓말이 아닌 정말로, 네가 어제와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있어 준다면 아무것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야속한 시간은 네가 침상을 털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네 사고 소식은 내가 받아들이지 않은 탓인지 부고 소식으로 변해버렸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너는 살아있지 않은 안색으로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몇 달 후의 네 장례식에는 꽤 많은 사람이 널 찾았다. 내가 비록 많은 장례식장을 다녀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 숫자가 적은 편은 분명히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 많은 사람의 숫자가 따뜻하고 열정이 넘쳤던 네 삶의 모습과 궤적을 그려주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것 외에는 내 기억에 분명하게 남아있는 게 그다지 없다. 그 애를 보내주고서 시간이 흐르고 감독님, 전 동료들과 나눈 회합들에 그때의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뿐이다. 파트너 자리의 시간이 영원히 멈춰버린 것과는 다르게 내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다. 우리의 춤이 언제까지나 같이 흘러갈 줄 알았기에 말을 아꼈던 배려가 이런 결과를 맞을 줄 알았으면 조금 욕심을 내볼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역시 난 말하지 못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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