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여청] 행복한 크리스마스
현대 AU
*크리스마스 기념 현대 당청글 입니다.
D - 7
당보는 커다란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들어있던 장식용품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써온 오너먼트, 청명과 고른 눈사람 모양 장식, 반짝이는 전구들. 해마다 사들이다 보니 작은 트리에 전부 장식할 수는 없어 매년 사용할 장식을 고르는 것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것이다.
쭉 써오던 트리를 바꿀 생각은 없고, 달고 싶은 장식은 많아 당보로서는 매년 고민이 많았다. 제가 어떻게 꾸미던 청명은 잘 꾸몄다며 칭찬해 줄 테지만, 제 성에 차지 않으니 뭘 해도 크리스마스가 만족스럽지 않아 싸운 적이 있어 더욱 신중히 장식을 선별해야 했다.
"뭐해? 크리스마스는 일주일이나 남았잖아."
거실 바닥 가득히 쏟아진 장식을 보고 청명이 물었다. 재작년만 해도 거실 한쪽만 차지하던 장식들이 이젠 거실 대부분을 차지해 지나갈 수도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건 미리미리 꾸며놔야 당일에는 편하게 쉬죠. 언니도 와서 골라봐요. 이건 작년에도 달았던 곰이고, 이건 올해 산 눈사람 곰이거든요? 어떤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인 장식을 당보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하나하나 골라댔다. 매년 꾸미는 트리인데 질리지도 않는지. 물론 이런 모습이 귀여워 장식을 계속 사들이는 제 책임도 어느 정도 있었다.
"눈사람. 그게 더 낫다."
거실을 지날 때마다 트리에 장식을 대고, 비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청명은 문득 장식 수에 비해 트리가 너무 작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10년간 장식은 배로 늘어났는데 트리는 여전히 아담한 모습에서 변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다지만, 그보다는 당보가 원하는 장식을 맘껏 달수 있는 트리가 더 좋을 것 같았다. 매년 장식을 사는 버릇은 고쳐질 것 같지 않았고, 마침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줄까 고민했는데 고민도 해결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D - 5
"케이크 샀고, 영화도 정했고, 트리도 꾸몄고. 남은 건 선물인가.."
할일 목록이라 적힌 리스트를 지워가며 당보는 완벽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부족한 것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매년 보내는 크리스마스라지만 일 년에 한 번뿐인 날인데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 당보의 생각이었다. 여러 개의 항목 중 '선물 고르기' 만 빼고 전부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 한가지 문제였지만 말이다.
청명이 사용하는 물건은 전부 제 손을 탄 것들이고, 물욕이 없어 무언가를 특별히 선호하는 것을 본적도 없었다. 여러 앱들의 검색기록도 깨끗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도 없으니 무얼 선물로 줘야 할지 고민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주던 고맙게 받을 사람인걸 알지만 그래도 선물을 받으면 기뻐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직접만든 목도리는 작년에, 크리스마스 한정판 초콜릿은 생일에, 코스튬 이벤트는 안 입어본 것을 세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꽃이나 인형은 식상하고, 편지를 쓸까 싶다가도 생일도 아닌데 굳이라는 생각에 제외했다.
"진짜 뭘 줘야 하지?"
도저히 혼자서는 괜찮은 선물이 떠오를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에 30대 여자 선물, 연인 크리스마스 선물 등 검색어를 바꿔 찾아보았지만 이미 전부 줬거나 청명이 좋아하지 않을 것들 만 줄줄이 나와 짜증이 났다. 좀 참신한 거 없냐? 당보는 애꿎은 핸드폰에 화풀이하며 끝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던 중 참신한 것 과 청명이 기뻐할 만한 것의 조화가 적절히 이루어진 의견을 본 당보는 이거다! 하고 소리쳤다. 만들기도 쉽고, 준비도 간편하다. 청명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어 할 것 같기도 했고, 이런 선물을 준비해 본 적이 없어 청명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D - 3
"어휴, 뭐 이리 크냐.."
청명은 조립이 끝난 트리의 높이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가지고 있던 90cm 트리는 작았으니 그보다 큰 150cm이면 장식도 많이 달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구매한 것인데. 장식이고 뭐고 이 크기면 당장 크리스마스 전에 들킬게 뻔했다. 베란다에 박스를 두더라고 제가 없는 사이 당보가 열어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숨겨둘 곳도 없었다.
전체는 무리더라도 부분을 숨겨둘 곳이 어디 없나 살펴보던 청명에게 며칠 전, 당보가 트리를 장식한다고 꺼내둔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 상자 바닥에 숨겨두면 티도 안 나고, 못 찾지 않을까? 꾸미는 것도 끝난 것 같으니 상자가 어디 갔냐 물으면 정리해두었다 대답하면 문제도 없고 말이다.
청명은 펼쳐두었던 트리의 잎을 접고, 부품들을 분리했다. 그런 뒤 상자를 뒤집어 수 많은 장식을 쏟아내고 그 밑바닥에 차곡차곡 나뭇가지들을 쌓았다. 장식을 도로 넣으니 상자를 닫지 못할 정도로 가득 차버렸지만 원래있던 곳에 가져다 두면 상자가 넘친 것도 모를 것이다.
정리를 마치고 깔끔해진 거실에 만족스럽게 소파에 누워있던 청명의 귀에 삑 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찬 바람과 함께 기다리던 사람이 언니! 하고 청명에게 다가왔다. 차가운 몸을 비벼대는 당보를 안으면 귓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좋아서 더 세게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따뜻하게 잘 있었죠?"
"올 때 말해주지 그랬어. 마중 나가려고 했는데."
"일찍 나오길 잘했네요. 평소처럼 패딩 하나 걸치고 나왔으면 분명 감기 걸릴 날씨거든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건데도?"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차가운 얼굴로 걷는 당보가 자신만 보면 눈을 반짝이며 웃는 게 좋았다. 얇은 옷차림의 자신이 추울까 봐 핫팩을 쥐여주는 것도 좋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얼굴 가득한 행복감에 기다리길 잘했다 하는 뿌듯함이 드는 것이다.
"저도 좋지만 아플까 봐 걱정된단 말이에요. 기다릴 거면 옷이라도 두껍게 입고 나오던가.."
"그럼 출근할 때처럼 입고 기다리면 괜찮아?"
"음... 아뇨. 오늘처럼 집에서 기다려주시는 게 가장 좋아요."
당보는 차가운 입술을 청명의 얼굴에 쪽 붙이고 배시시 웃었다. 청명의 따뜻한 손이 제 뺨을 감싸며 너무 차가운데... 하고 걱정해주는 것에 심장이 간질간질해 청명의 손바닥에 얼굴을 기댔다.
"먼저 씻을래? 몸이 너무 차갑다."
"그럼 같이 씻어요. 언니가 따뜻하게 해주면 되잖아요."
"내가 어떻게 하냐? 물이 따뜻하게 해주는 거지."
"같이 욕조에 들어가서 몸도 녹이고 하면 좋잖아요. 네? 같이 씻어요."
애교라도 부리듯 제 손바닥에 입술을 묻고 눈웃음치는 모습에 청명은 피식 웃었다. 그것이 승낙의 뜻임을 알아 당보는 일어나 겉옷을 벗고 누워있는 청명을 일으켜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D - 1
"언니 빨리 와요!"
당보는 소파에 기대 제 옆을 두드렸다. 영화를 재생한지 1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30분 후면 기다리던 장면이 나올 것이다.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초까지 일일이 계산했는데, 집안일 때문에 놓칠 수는 없었다.
"요즘 누가 이런 영화 보냐. 애도 아니고."
청명은 투덜 거리면서도 당보의 옆에 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당보의 어깨까지 올려주고, 그 위에 제 머리를 기대 편한 자세를 취하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온다.
"추억 돋고 좋지 않아요? 우리 예전에는 항상 이렇게 영화만 봤는데."
"그러다 항상 잤던 건 기억 안 나냐."
장난스레 묻는 청명의 말에 당보는 깔깔웃으며 청명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런 거야 지금도 할 수 있죠. 우리가 언제 때를 가렸다고 그래요."
"영화에 집중이나 해. 며칠째 오늘만 기다렸잖아."
당보는 청명의 손을 맞잡으며 그건 그렇죠 하고 대답했다. 어릴 때는 마냥 재미있게 봤었는데, 지금 보니 장면 장면이 새로워 금세 영화에 빠져 들 수 있었다.
거대한 나무가 눈 위를 쓸고, 연말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짧은 체스와 함께 곱슬머리의 여자아이가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는 말을 하고, 주인공은 잠에서 깨 즐겁게 방을 나선다. 그리고 아래층의 제 친구를 보고 기쁜 아침인사를 나누는 장면에서, 청명은 당보가 왜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는지를 이해했다.
-Happy Christmas, Harry
-Happy Christmas, Ron
"해피 크리스마스에요, 언니."
"그래, 해피 크리스마스."
청명은 배시시 웃는 당보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고 당보는 제 팔을 청명의 허리에 감아 몸을 밀착시켰다. 가벼운 입맞춤은 점점 진해져 당보가 청명의 위에 올라타서도 멈추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에 청명은 당보가 말한 연애 초기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고, 그에 어리둥절한 당보가 입을 떼고 가만히 청명을 내려보았다.
"더 안 해?"
"왜... 갑자기 웃어요."
"결국 내가 말한 대로 된 게 웃겨서. 영화만 보면 잔다고 그랬잖아."
"한결같으니까 좋잖아요. 여전히 언니한테 미쳐있다는 증거인데."
당보는 입술이 내려앉는 대로 쪽쪽 거리며 제 애정을 마음껏 드러냈다. 입을 맞출 때마다 움찔거리는 청명의 입꼬리가 좋아 더 들러붙은 것도 있다.
"20년 만났으니까 식을 줄 알았지. 너 요즘 이벤트도 안 하고, 같이 산 뒤로 연락도 줄었잖아."
"이벤트는 할 때마다 부담스러워 했잖아요. 연락은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렇게 얼굴 보고 하면 되는걸."
온전하게 전해져오는 사랑의 말은 언제나 부끄러워서, 청명은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때마침 TV에서는 주인공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어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고, 늘 선물을 준비하던 준비한 당보이니 오늘도 준비 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선물은? 있어?"
"당연하죠!"
당보는 청명에게서 벗어나 소파 아래 숨겨둔 선물상자를 주섬주섬 꺼냈다. 생각보다 작은 상자를 받아 이리저리 흔드니 얇은 판 같은 것들이 옆면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흔들어봐도 무슨 선물인지 짐작이 안 가 여행티켓이라도 넣어놨나 하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던 건 분홍색 카드들이었다.
"이게 뭐야?"
용도를 알 수 없는 카드들은 총 9개 였다. 전부 같은 분홍색에 편지인가 싶어 하나씩 뒤집어 내용을 소리 내 읽었다.
"하루종일 뽀뽀하기, 잔소리 하지 않기, 심부름 하기, 세게 안아주기, 여행 가기, 화 풀기, 소원 들어주기, 원하는 데이트 하기, 안마하기... 너 설마 나한테 해달라는 거냐?"
카드를 뒤집어 살펴보는 청명에게 당보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제가 해드리는 거죠! 한 번씩만 쓸 수 있고 이걸로 쿠폰 복제 같은 건 못하니까 신중하게 쓰도록 해요."
당보는 테이블에 늘어놓은 9개의 쿠폰 중 소원 들어주기라 쓰여 있는 쿠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명은 하나씩 다시 읽어보고 잔소리 하지 않기 쿠폰을 손으로 집었다.
"이거 말고는 필요한 게 없는데."
"제가 해주는 뽀뽀, 포옹, 안마, 데이트가 전부 필요 없다는 거에요, 지금?"
"그거야 그냥도 하잖아. 너 나랑 평생 뽀뽀 안 하고 살 수 있어? 잘 때 나랑 안 붙어서 잘 수 있냐고."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답 않는 당보의 모습에 청명은 코웃음 쳤다.
"거 봐라. 그나마 화 풀기랑 소원 들어주기는 쓸만하고... 아, 보야. 지금 베란다 가서 트리 장식하는 상자 좀 가져와 봐."
청명은 심부름 하기라 쓰여 있는 쿠폰을 당보에게 내밀었다. 당보는 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요. 하며 베란다로 가 상자를 가져왔다. 원래 이렇게 장식이 많았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보단 제 사랑이 별거 아닌 것처럼 대하는 청명에게 기분을 풀어달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져왔으니까 예뻐해 주세요."
제게 들러붙는 당보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상자를 뒤져 가지들을 빼냈다. 꺼낸 가지들을 조립하고, 잎을 펼치자 입을 삐죽 내밀고 있던 당보의 표정이 점점 환해져 어느새 트리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앉은키보다 높이 완성된 트리는 정말이지 당보의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청명은 상자에서 별장식을 하나 꺼내 트리 꼭대기에 걸었다. 자신은 만족스러운데, 당보는 어떤가 살펴보니. 뭐, 떨어져서 잘 일은 없겠다.
"너무 좋아요, 언니... 언제 이런걸 산 거에요. 트리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네가 꾸밀 때마다 장식 때문에 고민하잖아. 고민 좀 덜어줄까 해서."
당보는 감동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팔을 벌려 청명을 안았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같은 고백을 속삭이면 오냐. 하고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좋았다.
고작 나무하나 사준 거 가지고 다가온 애정이, 귓가에 울리는 웃음소리가 청명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매년 맞는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또 행복한 하루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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