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여당여청] 정인 연습 下

현대 당보 X 검존 청명

마노 글 모음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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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당보와 암존 당보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설정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 당보는 자꾸만 집과 멀어지려는 청명을 졸라 제 방으로 돌아갔다. 제가 좋아하는지 모르니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깨버리기 위한 증거가 필요했다. 정말 이 몸이 제 전생이라면 답답한 마음을 어디에든 풀어두었을 것이다.

"또 뭔데.."

당보는 제 뒤에서 한숨 쉬는 청명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빛을 쏘아 보냈다. 서랍 속 물건을 죄다 꺼내 탈탈 털고, 침대 밑, 옷장 구석, 숨겨진 상자도 전부 찾아봤지만 일기나 그와 비슷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청명 도장을 좋아하지 않고 우리가 사귀지 않을 리가 없는데... 아직 못 뒤진 곳이 있는 건가?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 실수로라도 찾아보지 않을, 손을 댈 수가 없거나 섬세한 작업을 하는…. 당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고 새것으로 교체된 가구들 중 유일하게 똑같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아!"

그래, 다리가 박살 났는데 제가 만든 얼룩은 그대로인 게 이상하다 싶었다. 이런 부잣집에서 굳이 망가진 책상을 쓸 이유가 없지. 당보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책상 표면을 더듬어 얇은 바늘이 들어갈 틈을 찾아냈다. 방 한쪽에 쌓인 긴 바늘을 꽂아 넣으니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윗면이 분리되었고, 그 안에는 포장된 편지들과 제목이 없는 책 한권이 놓여있었다.

"봐요! 제가 있다 그랬잖아요."

이걸 찾네... 청명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책을 한장 한장 넘겨보는 당보를 뒤로하고 분홍 끈으로 묶여있는 서신 다발을 집었다. 약한 무게감이 있는 게 서신만이 아닌 무언가를 감싸둔것 같았다.

조심히 끈을 풀어 서신을 펼쳐보니 금으로 만들어진 가락지 두 개와 당보의 필체로 적힌, 수신인이 없는 서신이 드러났다. 사실 서신이라기보단 계획? 일정? 에 가까운 글이라 처음엔 가락지를 얻기 위한 여정을 적어둔 줄 알았지만, 장소마다 적힌 '강이 위험하다는 핑계로 손 잡기', '비 오면 땅이 질퍽거림', '자연스레 넘어지면 업어주려나?'와 같은 문장들에서 단순한 서신은 아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서신에 적힌 장소 중 몇 곳은 저와도 가본 적 있는 장소들이고, 몇 군데는 잘 알지 못하는 곳들이었다. 하지만 적혀있는 행동들을 제게 한 적은 없으니 가락지의 주인은 내가 아니겠지.

청명이 낮게 가라앉은 기분으로 남은 서신을 뒤적거려 까맣게 지워진 또 다른 서신들의 글자를 읽어보려 노력하던 사이. 당보는 결국 읽어내지 못한 일기장을 들고 청명의 옆으로 다가왔다.

"뭐 좀 찾았어요?"

"별건 아니다."

"그럼 저 좀 도와주세요. 읽어보려고 했는데 제가 쓰던 한자랑은 다르더라고요."

당보는 종이를 넘기며 몇 개의 한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랑 이거하고... 저 단어가 중간부터 계속 나오는데 무슨 뜻인지 알아요?"

"화산(華山), 친우(親友)…"

청명은 당보가 가리킨 단어들을 차례대로 읽다가 마지막 단어에서 대답을 머뭇거렸다. 이 단어가 정말 당보의 일기에 자주 나온다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거 어디서부터 나오냐."

"어디 보자… 이쯤에서 처음 본 것 같은데."

청명은 당보가 넘기는 종이들을 지켜보다 당보가 펼친 페이지의 글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어디 객잔에서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 나아갈 비도술의 방향, 당가에 대한 생각. 그리고 마지막에 적힌

[내가 정말 연모(戀慕)하는게 맞을까?]

라는 문장까지. 마지막 줄까지 읽어놓고도 미동이 없는 청명에 당보는 해당 단어를 손으로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이 한자에요. 두 개가 한 단어 같은데 앞 글자를 도저히,"

"연모."

"네?"

"한자 뜻, 연모라고."

"그럼 서로 좋아하는 게 맞잖아요!"

신이난 당보는 청명의 손을 잡고 흔들었고, 청명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닐걸."

"이번엔 또 왜요. 좋아한다는 증거가 여기 떡하니 나와 있잖아요."

"자세히 읽어봐라. 연모한다고만 쓰여 있지 누굴 연모하는지는 안 써놨잖냐."

당보는 그럴 리가 없다며 해당 단어가 나오는 문장들을 한 글자씩 뜯어보았고, 청명의 말대로 사람 이름이 단 한 군데도 적혀있지 않은걸 확인한 뒤 침대에 축 늘어졌다.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있어요?"

"그냥 가고 싶은 곳들 쓰여있던데."

"그게 다 장소들이에요?"

청명의 옆에 놓인 여러 장의 종이를 보고 당보가 물었다.

"아니. 지워져서 못 읽는 것도 있고. 가락지도 같이 있더라."

청명은 기운 없이 늘어져 있는 당보에게 금가락지 두 개를 건네주었다. 당보는 눈을 반짝이며 반지를 받았지만 반지의 안과 겉 모두 매끈하다는걸 알고 곧 흥미를 잃었다.

"반지가 있으면 뭐해. 주인을 모르는데."

"한 쪽은 너잖아."

"그쵸. 하나는 저고, 다른 하나는 제가 좋아하는 누군가겠죠."

당보는 비교적 작은 반지를 새끼손가락부터 한 번씩 끼워보았다. 새끼손가락에는 헐렁했고 약지에는 딱 맞았으며 이어진 손가락들은 뻑뻑하거나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옛날에는 정략결혼을 주로 했으니 몰래 반지를 만들어 둘 정도로 사랑하는 거겠지. 안 그래도 일기의 가장 많은 내용은 도사라는 사람에 대한 글이었으니, 높은 확률로 반지의 주인은 그 도사라는 사람이다. 아까 보니까 손도 꽤 컸고, 도장이라고 부르라던가 화산파에 대한 말들,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믿고 맡길 정도로 신뢰 있는 관계. 동성이라는 게 좀 걸리지만 오히려 그래서, 반지를 주거나 마음을 전하기 두려웠을지도 몰라.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반지의 주인은 청명 도장이 맞아. 나는 언젠가 반지를 주려고 사전답사를 하는 중이었던 거지. 그러면 차라리 이쪽에서 선수 쳐서 먼저 사귀자고 고백한다면 어떨까. 청명 도장이 리드하면서 은근슬쩍 스킨십도 하고, 그런 간질간질한 분위기를 유도하도록 만든다면…. 괜찮은데?

"청명 도장. 저 꼬셔볼래요?"

늘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 당보가 청명에게 물었다. 혼자 열심히 생각하길래 그대로 뒀더니만, 이상한 쪽으로 생각이 튀어버린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청명 도장을 사랑하는 것 같단 말이죠. 도장 만난다고 맛집 찾고, 아침부터 옷 고르고. 만나서는 졸졸 따라다니며 애교부리다가 술도 따라드리고, 내내 분위기도 띄우잖아요. 이 반지도 도장 손에 맞춘 크기 일 거고."

"우리는 친한... 친우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제가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행동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아니면 이런 친구 사이 본적 있다던가?"

"일기에는 그런 말 없었잖아."

"그러니까 꼬셔보라는 거죠! 안되면 입이라도 맞추고 책임지라고 해요."

"무, 무슨 정인도 아닌데 그런 짓을 해!"

입부터 맞추라는 파렴치한 발언에 청명은 무의식적으로 당보의 입술로 간 시선을 억지로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이미 알몸도 본 사이에 부끄러워 하시기는. 그쪽 상처도 제가 치료해줬다면서요. 청명 도장 몸에 생긴 흉터도 제가 더 잘 알 걸요."

장난스럽게 데이트할 때 보통 뭐해요? 말타기? 산책? 검도 잘 쓰는 것 같은데 검무 같은 것도 출 줄 아시나? 하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당보를 두고 청명은 이마를 짚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들려오는 것도 모자라 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저 얼굴은 절대 말로만 끝낼 얼굴이 아니었다. 기어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실행시키겠다는 다짐의 표명이었지. 

영혼이 돌아오기 전 뭐라도 해보자는 당보의 말에 이끌려 청명은 당보와 손을 맞잡고 시전을 걸었다. 화산의 도복과 당보의 장포 때문인지,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꼭 잡은 두 손 때문인지 평소보다 향해지는 시선은 배로 늘어 제 뒤를 따라왔다. 다행히 당보가 불편해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혹시 싶어 몸으로 시선을 가리면 한결 편안한 얼굴로 장신구를 구경하는 것에 환생은 환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불편한 건 귀신같이 알아채 탈탈 털어대더니만, 자기 불편한 건 꼭꼭 숨겨두는 세가 버릇은 죽어서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괜찮다."

"네? 뭐가요?"

당보는 진열되어있는 장신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까다로운 제 미감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장신구가 여럿 보여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파는 것들이 하나같이 초록투성이라 의아하긴 했지만 이쪽의 언니는 초록색이라고는 머리 끈 뿐이니 제 전생을 위해서라도 초록을 더할 필요가 있었다.

"너무 어른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고."

"...갑자기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올려보는 얼굴은 방금 자신이 불편했던 것도 자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무의식적인 행동이라면 어릴 때부터 시선에 익숙했다는 뜻인데, 이제 와서 알아봤자 좋은 일도 아니고.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제가 막아주면 될 일이니 청명은 제 머릿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모르면 됐다. 지금 그거 살 거야?"

"아뇨... 아직 고민 중이에요. 매듭이 있는 게 나은지 없는 게 나은지를 모르겠어서요."

용도는 알고 고르는지 당보가 손에 쥔 것은 비도 보다는 검에 달기 좋은 녹색의 긴 수실이었다. 본인이 비도를 쓰는지도 모르는 당보가 골랐다기엔 의외의 선택이었지만 단순히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고, 화려한 보석보다는 수수한 수실이 당보의 취향일 수도 있었다. 

"어디에 달고 싶은데?"

"제건 아니고 청명 도장 검에 달아드리려고요. 아무것도 없는 게 허전해 보이잖아요."

"내 검에?"

"네. 혹시 마음에 안 들어요? 머리 끈도 녹색이니까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아, 검 쓸 때 방해 되려나... 그러면 차라리 머리 장식이 나을까요?"

"방해는 아니고. 내 것보단 네 걸 고르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제가 저한테 선물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주고받아야 사귄다고 소문이 나지."

"너는 기억도 못할 텐데?"

"그럼 언니도 하나 사뒀다가 돌아왔을 때 선물해주시면 되죠. 선물 받고 기뻐하는 얼굴 궁금하지않아요?"

솔직히 혹하긴 했다. 그동안 당보에게 받기만 해왔지 제가 준 적이 없는 건 사실이니까. 아닌 척 곁눈질로 진열된 물건들을 쓱 훑어보면 죄다 녹색인 게 이미 당보가 가진 것들과 비슷해 보였고, 그렇다고 비녀를 주기엔 왠지 민망했다. 

"정 고민되면 저랑 커플로 사는 건 어때요?"

당보는 나비매듭이 묶인 수실 두 개를 흔들며 물었다. 커 어쩌고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굳이 두 개나 흔드는걸 보면 저와 하나씩 나누어 가지자는 뜻 같았다. 어차피 검수인 자신은 가락지를 끼고 다니기도 힘들고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보일 녹색은 당보도 생각날테니 꽤 괜찮은 선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은 얼마 남지도 않은 제 전낭으로 값을 치렀다. 원래의 영혼이 돌아오면 배로 갚도록 해야지 다짐하며 짧은 수실은 비단으로 감싸 품에 넣고, 긴 쪽은 당보에게 주고자 옆을 돌아보면. 그새 구석의 어린아이와 대화를 하다 시들시들한 꽃 몇송이를 안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청명 도장! 저 건물을 지나서 산 위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꽃밭이 있대요. 거기서 이야기도 하고, 서로 꽃반지도 만들어주고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안 그래요?"

"꽃은 어떻게 샀어. 돈은 제대로 준거냐?"

"제 방에 있던 귀걸이 하나 슬쩍 했어요. 어차피 쓰지도 않는데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게 좋잖아요."

가지 않는 선택지는 없었는지 당보는 이쪽이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아이에게 물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청명은 곧 당보를 뒤따라갔다. 

이상하게 눈에 익은 길이다 싶었는데 꽃들이 가득한 이곳은 이미 당보와 한번 와본 적 있는 장소였다. 재작년이었나 좋은 곳을 찾았다며 데려와 놓고는, 사파무리가 터를 잡았길래 좋긴 하네 하고 놀려주니 잔뜩 토라져서 온종일 얼굴도 안 보여주고. 기껏 내 돈으로 술도 시켰건만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연신 추혼비만 닦아대던 그날이었다.

"예쁘다..."

당보는 환한 얼굴로 눈앞의 풍경을 감상했다. 노란 꽃들이 언덕을 채워 바람에 흔들리니 보고만 있어도 꽃향기가 코끝에 맴돌아 꼭 꽃밭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산들산들 바람도 불어오니 기분이 좋아 가만히 꽃밭을 보고 있으면 청명이 살며시 다가와 손을 잡았다.

"안 들어가냐."

"들어가면 꽃들이 밟히잖아요. 저쪽에 길이 보이긴 하는데 그러면 저 산 쪽으로 들어왔어야 하니까, 꺅!"

"별걱정을 다하네."

청명은 당보를 안아 들고 꽃의 한가운데로 뛰었다. 놀라 제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당보를 안은 채로 바닥에 주저앉으면 당보는 그제야 조금씩 몸을 떼고 아무 일도 없던 척 제 옆에 자리 잡았다. 

"안을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시던가요! 놀랐잖아요."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뭘."

"저는 도장이랑 다르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제가 안는걸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당보는 툴툴거리며 청명이 풀어낸 검집 채로 제 다리 위에 올려 손잡이의 끝부분에 수실을 달았다. 혹시나 검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있는 청명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그 위로 제 왼손을 올려 서로의 반지가 닿도록 맞잡고 있으면. 어느새 가까워진 청명의 얼굴이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네가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청명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당보의 얼굴을 감쌌다. 동그랗게 커진 눈에 담긴 기대는 이어질 제 행동을 짐작하는 듯 해서, 향해지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

"넌 말 없이 해주는걸 더 좋아하잖아."

살며시 감기는 허락의 신호에 청명은 몸을 기울여 입을 맞췄다. 가까이 맡아지는 살냄새와 부드러운 촉감에 심장이 간질간질 터질 것 같으니. 원래 영혼만 돌아오면 고백해야지 하는 다짐을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서, 청명은 눈을 감고 오랜 시간 입을 떼지 않았다. 

청명은 천천히 입술을 떼고 긴장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겉모습만 같지 속은 다른 영혼이라는걸 인지는 했지만, 자꾸만 비슷한 행동을 보여 헷갈렸다고 하기엔 제가 생각해도 입을 맞춘 시간이 길었다. 정말 맞아도 할 말이 없어서 조심스레 눈치를 보면 당보는 온몸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

"당보야. 우선 화내지 말고.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미친 말코야! 내가 지켜 달랬지 접문하랬냐고!!"

"....뭐?"

"제가 좋아서 웃어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바람피우는겁니까? 겉모습만 똑같으면 속 알맹이가 뭐든 다 좋으시냐고요!!"

당보는 말을 와다다 쏟아내고는 청명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입술을 부딪쳤다. 아까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도 없는 충돌에 가까운 접문이었다.

"방금 건 취소해요! 누군지도 모르는 그 새끼랑 한 거 잊으시라고요!!"

씩씩대며 화를 내는걸 보면 분명 화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짜증보다는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가 불러온 환생에 질투하는 것도 우습고, 좋아한다는 확신도 생겼으니 물러설 이유도 없었지.

"오냐, 네가 먼저 했으니까 책임도 네가 지는 거다."

청명은 이렇게 하는거라며 당보의 손을 풀고 부드럽게 입을 맞닿았다. 동시에 마음속으론 자신을 정인으로 만들기위해 노력해준 당보의 환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아직도 바보같이 눈을 찌푸리는 당보를 끌어안고 사랑해. 연모한다. 나는 너밖에 없어 하고 귀에 속삭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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