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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데스티니 가디언즈]계절이 다하기 전에

바보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우습지는 않았다. 상황은 이런 지경까지 우리를 몰아세웠으므로. 누군가의 부고조차 들리지 않는, 습하여 찐득한 계절.

 

“날 이 화력팀에 넣어줘요!”

 

당신이 풍기는 냄새는 이 무력한 전쟁 바닥에서 뒹군 고통을 말해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만이 지나갔음에도. 몇 곱절은 쌓인 함박눈 그 덩어리처럼. 가을날 죽지 못하여 애석하게 땅 위에 널브러진, 한때 초록으로 빛났을 잎사귀들처럼. 찰나에 삽시간을 보내 버린 사람.

그러기에 그 당찬 포부는 오랜만의 희극과도 같았다. 나는 당신의 눈에서 절망과도 같은 희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셀 수 없는 간절함. 비극에서 출발하였으나 기쁨을 애원하는 것. 겨누었던 총신을 내리고 바라본 당신의 두 눈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 앞으로 당기어 볼까. 때는 여전히 눅눅한 비를 내리고 있었다.

 

날카롭게 선 감각은 숨을 곳을 찾아도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비, 바람, 이따금 지면을 강타하는 번개, 그 사이로 풍기는 쇠 내음. 비에 녹슬어 가는 쇠의 맛인지, 혹은 길바닥에 흩뿌려진 피 맛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것. 아무래도 좋았다. 긴장을 일순 덜어내지 않기 위해 알맞은 냄새와 풍광이었으므로.

그러므로 당신에게 총을 겨눈 것은 습관에 가까운 당연함이었다.

 

“…누구냐.”

“진정해. 헤임달. 민간인이다.”

 

엘라이가 날 제지하자 당신은 눅눅한 후드를 벗어냈다. 빛은 여전히 역으로 당신을 비추었지만, 거둔 총신과 어둠 밑으로 당신의 두 눈을 오롯이 볼 수 있었다. 어둠 밖으로 드러난 당신 얼굴. 그곳엔 그림자마저 잠식 못 할 어떠한 신념이 자리했다. 질끈 구겨진 미간에는 당신이 거쳐온 세월이 그려져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과 기억. 제 갈 길을 정확히 이해한 욕심. 오래되었으나 식지 않을 분노. 지금 빛이 존재한다면, 고약하나 시기를 빼먹지 않는 농담이 튀어나왔을 것만 같았다.

 

‘당신, 수호자 감이네.’

 

웃기지, 이런 말이 당신을 보았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인 것이.

 

“민간인이 여기까진 왜 온 거죠? 여긴 최전선이에요.”

 

공중을 나르는 붉은 함선이 온 세상 소리를 삼키고 있을 때, 나의 고스트가 마저 삼키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분해하면 다정한 말이지만, 그리 부드럽지 않은 포장지로.

 

“네 말대로다. 비프로스트, 더 이상 빛도 없으니 들어가 있어.”

“그렇지만…….”

 

나는 그 퉁명스러우나 다정한 말에 그와 같이 대답했다. 비프로스트는 말 끝을 흐리며 어떤 감정을 남겼다. 비와 섞여 내리는 긴장감은 여전히 나와 당신 사이를 찍어 내리고 있었다. 아, 그래. 우리 셋 사이에…….

 

“날 이 화력팀에 넣어줘요.”

 

일순, 실재를 인지하며 꿈을 잃지 않는 목소리가, 우리 사이를 저 하늘부터 땅바닥까지 찢어 놓았다. 아주, 강력하게. 여전히 당신의 굳은 신념과 세월이 돌풍처럼 당신 안에서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 당신의 어떤 포부 담긴 말이 찢어버린 틈으로 보이는 것. 그곳엔 광자가 파동처럼 산란되어 나와 엘라이를, 이윽고 당신을 비추고 있었다. 분명 빛은 사라졌는데.

그때 즈음 나는 생각했을 것이다. 활짝 열어 젖혀진 케르카포르타 사이로 찬란히 자신을 떨구는 빛을. 정작 빛 자신은 열기에 지쳐 땅으로, 지하로, 아주 깊숙한 곳으로 꺼져갔으나…….

 

“뭐라고요? 당신, 제정신…….”

“난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어요.”

 

다시 타오를 불덩이를 맨손으로 안은 채 파도로 일렁인 것. 그것이 보였다. 심장께를 사무치듯 두드리는 당신의 손과 함께. 그래, 당신이 보여준 마음만으로도 경청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안 돼요.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하나뿐인 목숨…….”

 

잃을 것이 남아있지 않은가. 생명이란 것, 목숨이란 것. 엘라이가 정답을 찌르자 당신은 물러난 듯하였다. 열을 다하던 손짓도 힘을 잃은 듯 고개와 함께 숙여졌다. 설마, 여기까지인가. 당신 안의 열기가 순간 식었다.

그러나 그리 보였을 뿐이었다─. 당신을 막았던 엘라이를 향한 열기가, 숨 고를 시간이.

당신은 아주 능숙히 저격소총을 꺼내 들었고, 커다란 총신 끝이 내 머리통을 향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죠?!”

 

비프로스트와 엘라이는 짐짓 놀란 듯하였지만. 나보다 몇 센티미터는 아래에서 겨눈 모양새는 정직했다. 순간 포기한 듯 꺼져버렸던 열-잿더미도 긁어모아 정확하게. 내 두 눈 사이를.

그래, 당신은 그렇게 행해야지. 내 눈에 비추어 당신이 비로소 자신을 볼 때, 오직 그 길며, 커다란랗고, 흉포한, 쇠 냄새가 비리게 젖어 있는, 이곳저곳 상처로 가득 찬, 총구만을 보도록.

누군가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할 지 모르겠다. 눈을 감는다. 수천을 들었던 총포 속 탄환이 날아가는 소리, 그 하나를 오롯이 듣는다.

 

“헤임달!”

 

예상 내의 잡음이 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 사이로, 수만 들었으나 그중 가장 날카롭고 단단한 총소리. 그것이 내……귓가를 스치었다.

유리창은 가냘픈 목소리 내지도 못하고, 그와 그 너머가 뚫렸다. 사체 비린내가 퍼지기엔 먼, 그러나 해를 향해 총을 겨누기엔 충분한 거리. 이름 없는 악의를 채운 총포가 사이온 시체 옆에 추락하리라.

열린 커튼 사이로, 사이온 하나의 머리를 미처 뚫지 못한 햇살 몇 가닥 뒤늦게 날아간다. 눈을 뜬다. 해는 여전히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고양된 살 가닥을 뽐내고 있었다. 꼿꼿이 달려간 햇살 줄기가 당신의 등 뒤로부터 퍼져 나오는 착각이 일었다. 혹은 정말로 그리하였다. 그 빛에 잠깐, 굳센 얼굴이 섞이었다. 당신이 해인듯이.

진릿값이 도출되었다. 고전 논리학과 같은 것이. 참 혹은 거짓뿐인 세계가 보였다. 당신은 숱한 참만을 내게 보여주었다. 찬란히도 휘황히도 빛나는 광채를 등 뒤로 잔뜩 받으며 당신은 빛났다.

 

“자, 그럼…….”

 

빛을 온 몸으로 쏟아 받으며 당신은 그 자리를 나섰다. 당신이 또 무어라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웃음이 나왔다. 나의 고스트가 또 무어라 꾸중을 주었던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웃음이 나왔다. 듣지 못하였어도, 아무래도 괜찮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 지금 와서 생각하자면, 당신이니까.

 

“날 이 화력팀에 넣어줘요.”

 

……아, 그런 소리를 했었지.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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