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드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패딩을 입고 벌벌 떨며 다녔던 것 같은데, 요즘은 바깥에 오분만 서있어도 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시간이 쏜살같이 빠르게 흘러간다는게 무슨 말인지 날이 갈수록 체감하게 된다. 올 여름은 유독 더울 거라고, 휴일마다 거짓말처럼 비소식을 알려주는 원망스러운 기상 캐스터의 또박또박한 말소리를 뒤로 한 채 읽던 책을 덮었다. 꼴에 소위들 ‘갓생'이라고 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적용해보겠다고 몸부림쳤지만 그런다고 안 읽던 책이 눈에 와 박힐 리는 없었다. 조깅이라도 하고 와야지.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옷도 대충 갈아입고 아파트 밖으로 나간다. 5월이 되자마자 날씨는 거짓말처럼 더워지네. 그래도 아직은 아침이라 좀 괜찮은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이 체력이나 운동신경이 좋다는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10분도 안 뛴 것 같은데 폐가 조여드는 느낌을 받아 무릎을 붙잡고 헐떡이고 있다. 아, 정말. 더운 날에 달리기는 진짜 못해먹겠다. 투덜거리며 500ml짜리 생수를 입에 쑤셔넣고 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어!”

낯선 목소리라고 해야하나? 낯선 외침?

…낯선 외침이 맞나? 어쩐지 익숙한 듯한 목소리가 영 달갑지는 않다. 삐그덕거리는 고개를 들어보면 과연, 낯설지 않은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근데 이제 반갑지도 않은…. 이쪽으로 슬금슬금 걸어오는 꼴을 보아하니 말을 걸 것 같은데, 어떡할까 고민하다 그냥 냅다 뛰어버렸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체력이 쓰레기같은 재수생이고, 상대는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부터 농구를 해온 체대생이라는 점이겠지…. 트랙에 올라타기도 전에 길을 가로막혔다. 쟤도 내가 도망가니까 그냥 붙잡아 본 것 같은데, 그냥 가면 안 되나? 어차피 서로 불편하지 않나? 집-학원-독서실이라는, 사회성 박살나기 딱 좋은 생활을 반복한 내 뇌는 삐딱한 생각이나 한다. 근데 진짜 그냥 가면 안 되나? 생각과 달리 입은 성실하게 오랜만에 만난-얼굴은 알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 할 법한 대사를 뱉고 있지만.

“…오랜만이네, 대학 서울로 가지 않았어?”

“어, 잠깐…. 방학이라서 내려온거야.”

그러니까 방학인데 왜 부산을 오냐고, 지 본가는 서울에 있으면서…. 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색한 사이에 그런 소릴 할 순 없었다. 동아리 후배들이라도 보러 왔나보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서로 할 말 없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앞으로는 안 하던 짓 한다고 설치지 말아야지.

“후배들 보러 왔나 보네….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잘 있다가 가.”

다른 일이 있다는데 붙잡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고, 무슨 일이냐고 캐물을 만큼 살가운 사람은 더더욱 아니라 나는 무사히 그 불편한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만나서 정말 불쾌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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