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색채
초등부
청남빛 머리카락 사이로 오묘한 빛이 반짝였다. 사람의 성향이 본연의 색채를 따르기라도 하는 것인지 채 몇 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함께 해온 친구는 언제나 차분한 동급생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기도 하고. 어째서인지 종종 다른 아이들과 다투고는 하는 모양이었으나… 글쎄? 심하게 다투었다는 이야기도 없었고, 싸웠다던 친구와도 곧장 어울리는 것을 보니 화해라도 한 모양이지.
아키쨩은 우리를 좋아하는 걸까?
그럼에도 시라미네는 이따금 그 오페라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런 의문을 품고는 했다. 이상하지, 사이는 썩 나쁘지 않았음에도. 아마― 안타깝게도 친구의 생김새와 화려한 색채가 어우러져 묘한 감상을 일으키는 탓이리라.
“너희들이 싫지는 않지.”
그러니까 이런 대화는 시라미네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기꺼운 일이었다. 비록 그가 말하는 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무지와 불확실은 언제나 오해와 불안을 낳았고 그것은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는 법이니.
다행스럽게도 열두 살의 시라미네 치유리는 부모로부터 그 명확한 진리와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좋은 것이라고 배운 아이였고, 그 가르침을 아주 꾸준히 실천하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 간극을 지워내면 될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판단했고―…
“굳이 내 실수나 행동을 너희 기억 속에 남길 필요가 있을까?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으응?”
믿음은 부서진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해? 실수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 굳이 처음부터 완벽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모든 것을 아름답고 올곧은 방향으로 해내는 것은 어른들도 하지 못하는 일인데.
많고 많은 말들이 혀끝을 맴돌았다. 타니무라 아키토는 저희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될 수 없다. 좋고 싫음을 분명히 나눌 수 있는 것은 사물 따위에나 가능한 행위이니.
“…솔직하게 대답하면 이렇지만 분명 이것도 귀찮은 일로 이어지겠지?”
그러니까 그건 결국,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 아니야?
아이가 품은 의문을 덮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섬세한 눈매가 나붓이 휘어지며 화려한 색채가 모습을 감췄다. 저의 말이 그 둔한 아이에게조차 어떠한 의미로 들렸을지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타니무라 아키토는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가끔 보면 너는 내 앨리스가 뭔지 까먹은 것 같이 군단 말야. 마치 그 사실조차 그에게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 양.
…기억은 무슨 색일까? 적어도 이 순간의 기억을 발췌한다면 검은색과 보라색, 그리고 붉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색색의 기억들은 다시 얽히고설켜 어두운 빛깔로 물든다. 뒤덮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간단하리라. 그저 ‘다시’ 떠올리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그러나 소녀는 그런 의심을 금방 떠올릴 만큼 본디부터 섬세하지도, 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라서.
“아키쨩?”
아이가 몸을 기울이는 것과 동시에 기다란 금발이 쏟아질 듯 흔들렸다. “내가 혹시 이상한 이야길 한 거야?” 소년을 향하는 것은 다시금 무구한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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