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사람, 타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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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K by 척추

새벽


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 떠들썩했던 승강장, 또래 아이로 가득했던 열차 안. 그리고 크고 화려한 고성에서 행해진 기숙사 배정식과 연회. 아크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고 먹으며 즐겼다. 누군가는 그런 아크의 모습을 보고 시끄럽다던가 아니면 예의범절을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들썩한 시간도 영원할 순 없었다. 하나둘 자리를 떠나는 연회장에서 아크는 좀처럼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아드, 에이드리언 밀런이 자신의 등을 떠밀었을 때도 아크는 몸이 무거웠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무거운 게 아닌, 그냥 마음이 연회장에 줄곧 묶여 있었다. 아까까진 그렇게나 소란스럽고 활기찼던 곳이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조용해진 걸까. 빼곡히 학생으로 가득했던 테이블은 이제 앉아 있는 사람이 줄어들어, 빈자리가 훨씬 많았다. 연회장에 남은 사람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마지못해 친구를 따라 기숙사로 돌아가는 동안 아크는 품 안의 양피지를 떠올렸다. 열차에서 만났던 친절한 선배가 다시 나눠준 양피지는 빙고 칸이 3X3으로 그려져 있었다. 친구와 친해지라며 건네준 양피지는 언제 수거해 가겠다는 말도 없었다. 친구, 친구라.

“ 즐거웠는데 피곤하다~ ”

열차에서부터 기숙사로 돌아가는 지금까지. 자신은 모두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어떤 사람으로 보였을까.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 아니면 나사가 빠진 멍청한 친구? 그것도 아니면 … 정말 최고로 재밌어서 호그와트 7년 동안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 아크가 덧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다리는 착실히 움직였다. 기숙사 방엔 자신의 짐이 먼저 도착해 있었는데 다 풀지도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분명 재밌었는데, 즐거웠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목에 걸리는 가시처럼 신경 쓰였다. 볼 안쪽 살을 이로 잘근잘근 씹다가 관둔 뒤 창문을 열었다. 아직은 시원한 바람에 눈을 감았다. 엄마는 분명 호그와트가 즐거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아크 자신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를 타기 전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타인이 친구가 되길, 그리고 모든 아이와 즐겁게 모험하는 상상을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크가 펼쳤던 상상은 열차에서 내릴 때쯤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친구라고 열심히 포장하고 다녔던 게 우스울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 두꺼운 유리는 깨졌을 때 둔탁한 타격음을 낸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바짝 마른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전부였다. 싸늘한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었다. 따스함이 자리할 자리엔 냉기가 스치는 줄 알았다. 아크는 그때를 떠올리자 한숨이 나왔다. 또 어떤 일이 있었던가. 손쉬울 거라 생각했던 일이 여러 차례 꼬였다. 고작해야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게 어려운 부탁이 될 줄도 몰랐다. 거기다 설명할 때마다 ‘헤에… 그게 뭐야?’ 하는 애도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길을 걷고 난관을 잘 헤쳐 나갔다고 자부했던 자신이었지만 이번엔 조금, 아니 많이 헤맬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창밖, 하늘에 걸린 거미가 걷히고 나지막한 빛이 퍼졌다. 새로운 오늘 또 즐거운 일이 일어나길, 그리고 그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타인이 친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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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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