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기차

[아야토야에] 귀신과 요괴

이나즈마 담력시험 이벤트 후일담

글러먹음 by 호애애
18
1
0

"귀신?"

"요괴도 있는 마당에 귀신이 무서울까요."

"그건 그렇긴 하지만 너 의외로 그런 걸 믿는구나."

"귀신은 사람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 않습니까."

야에는 그 뒤에 숨겨진 말을 안다. 서른 줄의 후반에 접어든, 유연하나 그 심지는 떡갈나무를 닮은 남자의 염원은 흐릿해진 이십여년 전 기억의 파편일 것이었다. 야에 미코가 감히 알 수 없는, 단란한 가족들의 일상.

어쩌면 카미사토 아야토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오래 전 타계한 부부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보세요, 어머니.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무너져가던 야시로 봉행과 카미사토 가문을 살려냈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벚꽃과 뇌정의 나라에서 홀로 겨울꽃을 피우는 가문입니다. 

… 따위의, 말을 속삭이고 싶지 않았을까. 잘했다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원하는 건 아닐까. 나루카미 다이샤의 별채에 정좌한 아야토는 여유로운 몸짓으로 백색 다기를 들어올렸다.

"카요를 닮았어."

"예?"

"지금, 찻잔 쥔 손 말이다.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잡을 때 카요는 항상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았거든."

"그렇습니까."

"이런 걸 보면 피가 참 신기하지."

잠시 침묵.

야에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서류 위로 제 고헤이를 휘둘렀다. 딱딱한 헤이구시에 맞은 종이가 나풀대며 아래로 떨어졌다.

"야에 님?"

"기왕 하는 김에 좀 더 성대하게 해보는 건 어떻니."

"담력 시험이 더 커지면 부산스럽지 않겠습니까."

"어두운 쪽으로 키우자, 이거지. 축제에 참가해본 것도 오랜만이지?"

다이샤의 창고에 분명 그것이 있었을텐데. 야에는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자색 눈동자를 바라보던 아야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머쓱한 낯으로 따라 웃었다.

귀신은 없어, 미코.

어째서?

귀신은 우리에게 원하는 걸 가져다주지 않아. 요괴들만이 그럴 뿐이지.

하지만 나의 그 모든 악몽은 귀신의 것이지 않나. 이제는 시간마저 헤아리기 어려운 오래 전, 카구라의 진의를 끌어안은 채 울먹이는 어린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번개신은 그리 뇌까렸다. 기억 속 그 날은 라이덴 에이가 처음으로 쇼군을 만들던 날과 날씨가 비슷했다. 후덥지근한 공기,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그 사이를 가르며 세상을 점멸시키는 찰나의 보랏빛 번개紫電.

에이의 등 뒤에서 백안지륜이 번쩍였다. 번개신의 얼굴은 역광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 야에는 울먹거리며 무구를 끌어안다가, 이내 번개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서늘한 눈이 일순 빛을 되찾는 것과 무섭게 먹먹한 목소리가 천둥을 가르고 가녀리게 천수각을 울렸다. 날 버리지 마, 에이. 나는 영원히 이나즈마의 벚꽃이 될 테니, 너도 영원히 이나즈마의 번개가 되어야 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우가 속삭이던 말은 주박처럼 쇼군을 감싸안았다. 어쩌면 이나즈마 전체를.

아키츠 하네츠키에 사용하는 패를 태양에 비추자, 갈라지고 비틀린 나뭇결 사이로 햇빛이 새어들어와 야에의 얼굴 위로 긴 선을 드리웠다. 야에는 두어 번 눈을 깜박이다 패들을 가볍게 돌려보았다. 어린 시절, 호재궁의 손과 함께 겹쳐 잡았던 나무의 냄새가 났다. 당연하게도 같은 감촉은 나지 않았다.

아키츠 하네츠키는 요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였다. 백귀야행으로 많은 요괴가 하쿠신의 품에 안기고, 번개와 영원의 군도에 남은 요괴들이 몇 없어지기 전까지는, 미카와 축제가 아니더라도 심심찮게 보였다. 공이 나무 패에 부딪히면 청량한 소리가 났다. 요괴가 자주 다루는 요력의 속성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는 특수한 패도 있었다. 야에는 막연하게, 그 모든 패는 오백년 전 전란 때 불길에 타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대가 맞지 않았지만.

귀신이었다면 좋았을것을. 야에는 짧게 뇌까린다. 나무 패에 깃든 것이 요괴가 아니라 귀신이었다면. 적당히 달래줄 필요도 없었을텐데. 내가 그리워하는 것을 상기시키지 않았을텐데.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되새기며 울기에 야에는 너무 오랫동안 살았다. 시험 삼아 패를 휘둘러보자 구두가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아야토."

"그게 이번 축제의 핵심이 되는 물건인가요?"

"어머, 이래보여도 충분히 요력이 담긴 물건이야. 요괴니까 그녀, 라고 불러주련?"

"그렇습니까."

아야토가 낮게 웃는다. 이렇게 사용하는 겁니까? 하며, 패를 잡은 야에의 손 위를 겹쳐 잡는다. 가죽 장갑의 매끈한 면이 손등 위와 맞부딪히는 감각이 기이했다. 그러나 야에는 이 감각을 안다. 손 안에 가득 찬, 거슬거리는 나무막대의 감촉. 제 작은 손 위를 덮은 다정한 온기.

"아야토."

"예, 야에 님."

"네게서 온기가 느껴져."

호재궁님의 온기가. 야에는 홀린듯 속삭였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