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단 하나

예찬하다

익제아르 / 츠빌링슈튀르메의 가을 이후 이야기 선동과 날조

글러먹음 by 호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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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빌링슈튀르메의 가을에 대한 전반적인 스포일러…가… 있나? 비르투오사 개인 파일에서 몇 문장 인용했습니다.

*로도스 사내복지 선동과 날조

*전문 약 4500자

비단을 닮아 부드럽게 늘어지는 검은색 머리카락, 이지를 머금고 반짝이는 검은 눈, 빛을 받으면 어둑하게 빛나는 광륜과 날개, 가느다랗고 곧은 손가락, 올곧은 자세, 아담한 체구, 상냥한 목소리, 다정한 어투, 사람을 끌어들이는 음악적 조예, 우아하고 귀족적인 애티튜드, 강직한 신념과 믿음, 유려한 말솜씨와 단어 하나하나에 녹아있는 수사법과 인문학적 소양….

보편적인 미의 찬사를 모아 이르길, 아르투리아 잘로라 한다.


로도스 아일랜드 제약회사(이하 ‘로도스’)는 오퍼레이터들의 가족도 함선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박사가 승인한 것들 중 얼마 안 되는 복지 제도였다(대부분은 술과 같은 향락적인 것이었으므로 켈시에 의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또한 로도스가 무력 집단의 색채를 띠고 있긴 하나 본질은 제약회사였으므로, 광석병에 걸린 어린 아이들이 장기적인 치료를 위해 함선에 머무는 경우도 잦았다. 페데리코 잘로가 암브로시우스 수도원에서 로도스로 복귀했을 때는 전에 비해 아이들이 두 배 가량 늘어있었다. 재난의 부작용이 광석병에 잘 걸리지 않는 산크타의 피부로 여실히 다가왔다. 페데리코의 긴 예복 아래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들은 지나치게 가볍고, 또 지나치게 딱딱한 부분이 많아서….

“아, 이그제큐터.”

“박사님.”

페데리코는 고개를 까닥인다. 그처럼 검은 코트(코트라기엔 방호구의 역할을 하는 그것)에 아이들을 대롱대롱 매단 박사가 바이저로 가려진 고개를 따라 까닥였다. 아직 나이가 어린 오퍼레이터들이 생각나는지 기운찬 아이가 등을 기어올라 당당하게 어깨를 차지해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게 제법 상냥한 아버지의 태도를 닮았다.

“자, 얘들아~ 이제 약 먹으러 가야지? 앗, 박사님. 이그제큐터 씨도 오셨네요.”

뒤이어 손목시계를 보며 아이들을 통솔하러 내려온 메딕 오퍼레이터가 한 명 한 명씩 아이들을 끌어내렸다. 박사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고 내려가지 않겠다 떼를 쓰던 아이는 어디선가 달려온 엔지니어링부 오퍼레이터가 스노우상트 특제 모빌로 시선을 끌고 있었다. 페데리코는 기꺼이 허리를 숙여 메딕 오퍼레이터와 눈높이를 맞췄고 오퍼레이터는 익숙하게 양팔에 리베리 아이를 한 명씩 안고 종종걸음으로 의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어렵지 않게 삼십 분 뒤의 로도스 휴게실을 상상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에젤의 말에 따르면 아이들이 오퍼레이터들을 잘 따른다고 하니 한 시간이 걸리기 전에 투약이 끝날 것이다. 그러고나면 열 세 미만의 아이들은 낮잠을 잘 거고, 그리고….

“요즘은 누가누가 더 아름다운가 대회를 하던데.”

“그렇습니까.”

“궁금해할 것 같아서. 뭐, 굳이 사람은 아니고. 자기 생각에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가져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뭐가 더 예쁜지 묻는 놀이를 하더라고.”

“해보셨습니까?”

“로도스 배 가장 아름다운 것 찾기 대회의 최다 심판자를 맡고 있지. 참고로 켈시가 스물 세 번, 호시구마가 열 번, 총웨가 다섯 번 했고 초대 심판자는 니엔이었어. 너무 주관적이라고 탄핵당했지만.”

그는 이 비공식적인 대회의 개최 현황을 헤아렸다. 로도스 아일랜드는 세상을 몇 년 살지 않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넓고 신기한 테마파크나 마찬가지였으나 그 대부분은 어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제한된 놀이동산 안에서 몇 가지 되지 않는 놀이 중 아름다운 것 찾기 놀이가 유독 오래 흥미를 끄는 듯 했다. 아니면 그들이 하루에 열몇 번씩 대회를 열거나.

닥터 켈시가 무뚝뚝한 얼굴로 Mon3ter를 대동한 채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는 그림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그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켈시는 아미야의 나잇대,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에게 유독 약했다.

“너도 할래?”

“저는 곧 라테라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호시구마도 지금 용문에 있어. 로도스에 머무는 동안만 해 봐.”

“… 알겠습니다.”

그리고 페데리코는 역대 최다 심판 횟수를 달성했다.

함선이 츠빌링슈튀르메 외곽의 들판에 정차하기 무섭게 파울비스트처럼 라이타니엔에 (쳐)들어갔던 히비스커스는 뒤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함 신청서를 내고 가버린 에벤홀츠와 카프리니 대검사, 루포 소년, 그리고 비비아나를 데리고 위풍당당하게 귀함했다. 인사부는 때아닌 사태에 발칵 뒤집힌 채 장장 사흘 간 잠도 못 자고 츠빌링슈튀르메와 로도스 함선 사이를 뛰어다녀야 했다.

간신히 라이타니엔 특유의 화려한 수사가 붙은 금빛 여황의 허가서를 받아냈을 땐 인사부 전체가 축제였다. 이제 더 게사츠슈베이터의 감시 속에 여황의 목소리를 안 만나도 된다고 우는 오퍼레이터의 어깨를 잡고 “실례합니다. 아르투리아 잘로의 오퍼레이터 신청서와 신분 보증서를 제출하려고 합니다만.” 하는 이그제큐터만 없었더라면.

아르투리아 잘로가 누구인가? 온 테라를 통틀어 아르투리아 잘로만큼 첼로 연주에 능한 이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 명성이 고향을 오래 떠나있던 라이타니엔 오퍼레이터들 사이에도 돌 정도였으니 한동안 빅토리아 사건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로도스 아일랜드가 그녀의 이름을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퍼레이터 신청서에는 비르투오사Virtuosa라는 코드네임이 적혀있었지만 코드네임 옆칸에 적힌 본명은 라테라노 공증소의 지명수배서 목록 상단에 적힌 이름이기도 했다. 약 일주일 간의 서면 대화와 긴급 회의를 거친 끝에 로도스 아일랜드는 오퍼레이터 이그제큐터의 인장으로 오퍼레이터 비르투오사의 신분을 보증했다.

그래서 츠빌링슈튀르메 로도스 지부의 기념비적인 첫 서류는 라테라노 교황청의 의뢰서와 집행자 페데리코의 신분 보증서, 비비아나 드로스테의 근무 신청서, 그리고 라이타니엔 제국 궁정과 로도스 아일랜드 제약회사 간 합의서가 되었다.

에벤홀츠는 로도스로 복귀한 지 일주일만에 레싱을 데리고 우르티카 백작령으로 돌아갔다. 백작령 지부 설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히비스커스와 체르니가 동행했다. 비비아나가 외근 업무를 위해 카를 슈미트 거리로 돌아가고 나자 14일에 걸친 대소동이 모두 막을 내렸다. 한동안 모르는 사람들이 마구 드나들어서 낯을 가리던 아이들이 켈시의 치맛폭에서(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고개를 슬슬 내민 것도 그즈음이었다.

용감한 리베리 아이가 아르투리아의 옷깃을 살짝 잡으며 물어봤다. “언니는 여기 계속 있어?”

티 없이 말간 마음을 가진 이들을 사랑하는 아르투리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니는 계속 여기에 있지.”

로도스 배 제 1xx회 아름다운 것 가리기 대결에 아르투리아가 나서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결승전 ‘물품’이 아르투리아랑 W의 폭탄이었다고?”

어시스턴트 오퍼레이터였던 외드레르가 헛기침을 했다. 이그제큐터는 당시 상황을 건조한 언어로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하며 박사의 말을 정정했다.

“오퍼레이터와 물품입니다.”

“그래, 내가 말을 이상하게 했네. 그런데 왜 W의 폭탄이래?”

“살상력은 없고 불꽃놀이를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외드레르, 이네스랑 같이 W한테 가도 돼.”

“… 이거 실례하지.”

외드레르가 바쁜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 이네스의 서늘한 얼굴을 떠올린 박사가 헛웃음을 흘리며 몇 장 안 되는 보고서를 팔락였다. 정자체로 적혀 인쇄된 보고서 위로 이그제큐터의 자필이 부연 설명을 더했다. 박사의 시선은 비르투오사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한 피디아 소년의 증언에 멈추어섰다. 그 부분만 부연 설명이 없었다.

“심판 결과가 비어있네.”

“무승부였습니다.”

“정말?”

“예. 제가 판단을 내리려던 찰나 의료부에서 약 먹을 시간이라고 아이들을 소집했기 때문입니다.”

“그거 한 시간도 안 걸리지 않아? 애들이 다시 와서 물어봤을 법한데.”

“아르투리아가 자리를 떠났고, 오퍼레이터 W도 재미없다며 가버렸기 때문에 판단이 불가능했습니다.”

“아~ 당사자가 없구나. 그럼 너는?”

“…….”

그는 아르투리아 편에 섰던 아이들의 근거를 떠올렸다. 예선 과정에서부터 모든 후보를 당당히 꺾고 올라온 아르투리아의 모습 위로 어린아이들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묘사가 얹혔다. 머리카락이 길다, 반짝인다, 웃는 게 예쁘다, 첼로 소리가 좋다, 상냥하다…. 그런 것들. 페데리코가 그 특유의 이성적임을 기반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아르투리아는 그녀 특유의 감성적인 말투와 목소리, 몸짓으로 아이들의 사랑을 얻었다. 아이들이 내민 근거에 의거하여 판단한다면.

“아르투리아는,”

아름답습니다. 이그제큐터는 말을 꾹 삼킨다. 비단을 닮은 검은색 머리카락, 이지를 머금은 검은 눈, 어둑하게 빛나는 광륜과 날개, 가느다랗고 곧은 손가락, 올곧은 자세, 아담한 체구, 상냥한 목소리, 다정한 어투, 사람을 끌어들이는 음악적 조예, 우아하고 귀족적인 애티튜드, 유려한 말솜씨와 단어 하나하나에 녹아있는 수사법과 인문학적 소양…. 페데리코 잘로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미의 찬사를 한데 모아 만든다면 세계는 기꺼이 그것을 아르투리아라 이름 붙일 것이었다.

“…… 역시 오퍼레이터 W의 폭탄으로 하겠습니다.”

“외드레르가 이거 들으면 뒤로 넘어갈지도 몰라.”

“불꽃놀이는 소리의 호불호를 제외해도 로도스의 대다수 인원들이 좋아하니까요.”

“W가 신년 폭죽을 얼마나 화려하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박사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그제큐터는 그가 스스로의 마음을 덮고 W를 선택한 대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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