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담

연성교환

완전한 공백 by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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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진 집에 가져갈까.”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뱉은 수 경사의 혼잣말이 수사반 사무실의 적막을 지웠다. 그렇지만 뒤따르는 목소리가 없다. 원래라면 일은 마무리 짓고 가라던가. 나만 두고 먼저 퇴근하는 것이냐며 경장들이 아우성을 질렀겠지만, 지금 사무실에 남아있는 것은 수 경사 한 사람뿐이었기에.

하나둘 퇴근하는 것을 지켜보며, 수 경사도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퇴근해보려 했지만, 이번 사건은 공범이 있어 취조해야 하는 사람이 둘이었다. 자연히 취조 담당인 수 경사의 일이 남들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벽에 걸린 시계로 눈을 돌렸다.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뽑아 둔 서류와 이미 인쇄하여 철할 준비를 마쳐둔 서류까지 가방에 잘 정리하여 넣는다. 마지막으로 서류철의 라벨 부분에 구분용 기록을 채워넣기 위하여 펜을 집어 든 수경사는, 그 위에 이렇게 적어 내렸다. ‘성화시 월야 서커스장 살인 및 방화 사건 현장 수사 기록’.

 

“…어디 보자, 오늘 날짜가.”

 

현장 수사와 범인 체포는 오늘 새벽까지 이루어졌기에. 04. 21.이라고 간략히 기록한 시작일 옆에 종료일을 써넣기 위해 수 경사는 시계 아래에 걸려 있는 달력으로 눈을 돌렸다. 2일 차 밤에서 3일 차 새벽으로 넘어가 종결했으니…….

 

“…4월 23일.”

 

공 경장만큼 기억력이 비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 경사도 취조를 위해 기록을 취급하는 편답게 머리가 꽤 굴러가는 편이었다. 왠지 기억에 남아있다는 수식 같은 것도 필요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선배이며, 동료고, 짜증 나는 사람의 생일이 오늘이더란 것이다.

 

“보나 마나 또 잊어버렸겠지 뭐.”

 

지금 수사반 이전의 팀에 함께 있었던 시절에도 그랬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상사이며 여러 면에서의 스승이기도 한 차 경감은 그런 각 경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었다. 항상 ‘각별이 쟤는 왜 자기 생일도 잊어버리고 다니냐?’ 하고 핀잔을 줬었던가.

이내 수 경사는 기억 속에서 오늘 날짜에 대한 상념을 밀어냈다. 어차피 오늘도 고작 이삼십여 분 정도 남아있는데 뭘 어떻게 챙겨 주겠는가? 내일 일찍 퇴근하는 길에 조각 케이크라도 하나 제과점에서 사서 주면 될 것이다. 생일을 또 잊어버리지 않았느냐는 말도 덧붙이면서. 그때, 스위치를 한 번에 일제히 누르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전등이 갑자기 환하게 켜졌다.

 

“뭐야. 토끼 귀. 이제 퇴근하냐?”

 

그와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 하나 빼고 꺼진 사무실의 남은 전등 스위치까지 올리며 문간에 선 인영은 피곤함에 잠기다 못해, 그 피곤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수 경사를 불렀다. 그를 토끼 귀라고 칭하는 사람은 미스터리 수사반에서 각별 경사 한 사람뿐이었다.

“……깜짝이야, 아니 왜 사람이 기척도 없이 다녀!”

 

수 경사는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빛에, 뜬 눈을 가늘게 좁히며 출입문 쪽으로 고갤 돌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가 몇 마디 지적할 새도 없이, 이걸로 놀라면 경찰 일은 도대체 어떻게 하고 앉아있는 거냐 깐죽거리며 들어온 각 경사는 그를 지나쳐 정수기로 향했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차피 말을 듣지도 않을 이에게 입 아프게 잔소리를 해서 무엇하랴? 대신 수 경사는 다른 것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다른 말을 하게 해야 놀리는 걸 그만둘 것 같아서였다.

 

“아무튼, 왜 퇴근 안 했대? 이미 집에 간 줄 알았는데요.”

 

수 경사의 눈에 들어온 각 경사의 모습은 그야말로 ‘추레하다’라는 말에 걸맞은 상태. 늘 그랬지만 오늘따라 유달리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부터 침대에 누워있다가 이제 막 일어났다는 티가 역력해 보이는, 묶은 그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까지.

정말 거지꼴이다. 그것도 며칠 잠을 못 자서 피곤하기까지 한. 똑같은 시간을 일한 저라고 뭐가 다르겠냐마는, 신기하게도 각 경사는 생긴 것은 멀끔해도 조금만 흐트러지면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어엉? 나? 집까지 가기에 너무 피곤하지 뭐냐. 그래서 숙직실에서 좀 잤지. 역시, 그때 경위님이고 뭐고 그냥 바로 퇴근했어야 하는 건데…….”

“어쩌겠어요, 일은 일인데. 그럼 이제 갈 생각?”

“……그래야지, 뭐.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내내 불 난 데를 돌아다녔더니 옷에서 탄내가 나는 것 같다 야.”

 

투덜거린 뒤의 늘어지는 하품. 저러다 곯아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겠군. 하는 생각이 들어 반사적으로 쓴웃음을 지은 수 경사가 바깥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그러면 같이 나가요. 이제 퇴근할 생각이니까.”

“운전 안 할 거다. 이 상태론 졸음운전 하게 생겼어.”

“누가 태워달라고나 했나. 그나저나 참, 번번이 생일마다 바쁜 것 같네요. 차 경감님이랑 오늘 마주쳤으면 또 한 소리 들었겠다.”

“…생일? 아, 오늘이?”

 

각 경사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다가, 오늘 썼던 사건 보고서를 생각한 건지 혼자서 아? 아. 하는 소릴 뱉으며 가만 서 있었다.

 

“진짜네. 이야, 언제 4월이 이렇게 갔담.”

“그 생일도 얼마 안 남았지만. 뭐, 수사반 사람들끼리 내일이라도 축하하죠?”

 

축하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각 경사의 시선이 어느 순간 수 경사에게 멈춰 있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토끼 귀. 나 밥 사줘. 생각해보니까 나 저녁 안 먹었다.”

“…아니, 이 시간에?”

“저기 앞에 국밥집, 24시간 하는 가게일걸?”

 

너 마침 잘 걸렸다고 말하듯, 각 경사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사장님, 여기 순대국밥 하나랑―”

“순대국밥 하나에, 하나는 섞어 특으로 주쇼. 아, 부추 좀 많이.”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는 듯, 각 경사는 그의 말을 가로채 자연스럽게 주문하며 자리에 앉았다. 거의 자정이 되었는데도 차 있는 자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하나같이 탁자 위에는 소주병이 있는 걸로 봐선 늦은 시간에 한잔하려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이거 사주는 걸로 생일은 챙기는 건 끝인 걸로?”

“아니, 주말에 제대로 된 거 사달라고 할 건데. 어디 국밥 한 그릇으로 날로 먹으려고 하냐.”

“뭐? 아니. 그럼 이건?”

 

각 경사는 자리에 놓여 있던 물수건을 집어 손을 닦으면서 아까의 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거는 그냥 야식이지 뭐. 저녁은 너도 어차피 안 먹었잖아.”

 

이렇게 나올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예상하는 것과 직접 얘길 듣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어이가 없어진 수 경사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국밥 두 그릇이 순식간에 나왔다.

 

“섞어 특이랑 순대요. 순대는 어느 쪽?”

“…아, 여기 주세요. 감사합니다.”

 

국밥 바로 나온 걸 다행으로 알아요. 그리 중얼거린 수 경사는 각 경사를 쏘아보던 것을 멈추고, 수저를 챙겨서 그의 앞에 놓아 주고는 자신의 것도 챙겼다. 야속한 타이밍이긴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저녁을 안-못에 가깝지만-먹은 것은 사실이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일에 쫓겨 내내 굶느라 빈속을 채워 줄 국밥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며 수 경사는 수저를 들었다. 각 경사는 이미 소금과 후추를 제 입맛대로 뿌려 먹는 중이었다.

 

뜨끈한 국물로 배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나니, 속도 풀리고 피곤함에 반사적으로 들던 짜증도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뭐든 먹고 봐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뜨거워 따로 공깃밥 뚜껑 위에 덜어 두었던 순대 하나를 몇 번 불어 입에 넣고, 꼭꼭 씹어서 삼키던 수 경사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주 한 병을 냉장고를 뒤적여 가지고 오는 각 경사를 보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마시면 내일 출근해서 경위님한테 한 소리 들을 텐데?”

“반주는 안 취하거든. 그리고 내가 술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하나 먹고 인사불성이 되진 않는다?”

“저게 무슨 소리야. 그렇긴 하지만, 숙취는 있을 것 아니냐고.”

“합법적으로 좀 뻗지 뭐. 아무튼 우리 주옥같은 후배야, 오늘 생일인 선배 잔 좀 채워 봐라.”

 

인간 말종 쳐다보듯 하던 수 경사의 표정은 이내 깊게 내쉰 한숨에 의해 지워졌다. 소주의 뚜껑을 따 각 경사의 잔을 채운 수 경사는 그가 같이 가져왔던 건지 자기 앞에도 놓여 있는 잔에 소주를 채웠다. 단숨에 잔에 든 소주를 들이켜고 내려놓은 각 경사가 그것을 보고 핀잔주듯 말했다.

 

“뭐야, 결국 너도 마시잖아. 그래놓고 웬 잔소리야?”

“어차피 이것도 나더러 내랄 것 아녜요? 그럼 나도 마셔도 상관없지.”

“뭐, 사주는 놈이 알아서 해.”

 

고개를 저으며, 수 경사는 적당히 채운 잔을 들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에 머무를 적에 잠시 달았다가, 이내 특유의 싸한 씁쓸함으로 바뀐다. 뜨거운 속에 차갑게 식어 있는 술을 부으니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수 경사는 술잔을 조심히 내려놓고, 다시 잔을 채우고 있는 각 경사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웬 술?”

“그냥 마시고 싶어서? 오늘 바빴으니까, 수고했다. 하는 거기도 하고. 이 짬밥에 밤샘으로 수사를 하냐 무슨. 잠복이면 이해하지 차라리.”

“핑계는 참 잘 대지. 바쁘긴 저만 바빴나.”

“우리 수사반 창설한 이래 밤새워가며 수사한 일은 잘 없었잖냐. 저녁쯤엔 항상 수집 증거 정리부터 했고.”

 

수 경사는 소주병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이번엔 경우가 좀 달랐으니까. 밤에만 확인하는 게 가능한 것들이 좀 있었잖아요. 경위님도 밤에 서커스 천막 위에서 그 야광 페인트? 젤이 묻은 곳을 찾았고.”

 

퇴근하기 전까지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던 수사 기록. 수 경사는 거기에 정리해 두었던 내용들을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모든 사건의 수사가 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의 수사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번 용의자들은 결속력에서 온 방어적인 태도가 유달리 강했고, 거짓 자백을 통해 수사에 혼선을 줄 뻔도 했다. 꼼짝없이 더 길어지는 줄로만 알았지. 수 경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현장 인근에 살던 그 노친네도 그랬지. 밤에 와보라고 하기에 가 봤더니 그런 걸 들려줄 줄이야.”

 

각 경사의 중얼거림에 그는 고갤 가만히 끄덕였다. 이번엔 현장에 남아있는 단서보다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장소에서 나온 단서가 결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참, 신기한 분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군 통신 채널에 접근한 거니 법적으로 문제가 분명 있긴 하고. 그렇다고 처벌하기엔 수사에 도움이 됐으니…….”

“뭐, 그거야 우리 서장님이 해결을 볼 문제 아니냐. 네가 생각해서 뭐 해?”

 

옳은 말이었다. 수경사는 그것도 그렇다 중얼거리며 채운 잔을 비웠다. 서른둘이나 먹고서 못 마실 맛인 건 아니지만, 딱히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은 맛이다. 수 경사의 생각은 그랬다.

 

“어쨌든, 괴짜 양반이라는 것 하나는 확실해.”

“그런 점에서 우리 각별 경사님이랑 좀 비슷하던데.”

 

수 경사는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난 그 정도는 아니라던가, 내가 그 양반보단 기계 만지는 솜씨가 더 좋다던가. 이런 정도의 대꾸가 돌아올 것을 예상했지만, 돌아온 것은 전혀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러냐?”

“뭐야, 화 났어요?”

“아니. 그냥.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해서.”

 

별다른 말 없이 소주를 한 잔. 다시 잔을 채워 그대로 들이켠 각 경사는, 꼭 지나가는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운을 떼었다.

 

“수현아. 난 늙으면 뭘 하고 살아야 할까.”

“…이게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너 교신 중일 때 그 양반 얼굴을 봤는데. 참 즐거워 보이더라. 지금 무슨 일이 되는 건지 알고 있어서 즐거운 건지, 그냥 자기가 뚝딱거려서 뭔가 됐다는 사실이 즐거운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더라고. 기계 만지고, 잡동사니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는 일을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 건지. …네가 닮았다 소릴 하니까 생각이 나더라고. 갑자기”

 

그 밤에 처음 든 생각. 찢어서 내다 버리지도 않은 기록용 수첩 밑바닥에 적어 둔 한 문장. ‘어쩌다 보니’ 같은 삶을 살며 현재에만 충실하다, 문득 마주치게 된 거울상과 비슷한 사람. 어쩌면 자신의 나중이 저런 모습일까.

 

“어쩌다 보니 잡은 철밥통, 지금은 어떻게든 쥐고 있기도 하고. 이걸 뺏기는 날 전까진 잘 붙어서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가겠지만……. 그다음은?”

 

떠오른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점령하기라도 한 듯, 각 경사는 이후의 자신이라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 소릴 하는 자신이 꽤 신기했다. 별로 좋지는 않은 쪽으로 말이다.

보아라. 수 경사의 표정도 딱히 좋아 보이지 않잖은가? 각 경사는 채우지 않은 소주잔을 손가락으로 건들며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한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적당히 말을 갈무리할 작정이었다.

 

“아무튼, 그렇다고.”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선배는 생일에 무슨 인생 고민을 해?”

“이제 생일 지났잖아. 그리고 생일이니까 앞날 생각을 하지. 그럼 뭐 인생 고민을 기일에 할까?”

“…어휴! 잠깐이라도 왜 저러나, 하고 생각을 한 내가 바보지.”

 

질린다는 듯 수 경사는 고갤 저으며 각 경사 앞에 놓여 있던 소주병을 가져와 자신의 잔에 채웠다. 자연히 각 경사의 잔에도 가득하니 소주를 채우고서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생각하기엔 너무 먼 얘기잖아요. 우리 그래도 정년이 20년 넘게는 남았는데.”

“너는 미래 고민 안 했냐?”

“왜 안 해봤겠어. 근데 그럴 때마다, 우선 지금부터 착실히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고나 할까.”

 

단숨에 잔을 비운다. 그리고 다시 잔을 채우려고 보니 얼마 마시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소주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같은 것으로 하나를 더 꺼내 가져온 수 경사는 뚜껑을 돌려 열면서 말했다.

 

“근데 선배는 어쩌다 보니 붙어버린 것 치곤, 꽤 열정을 담아서 일하고 있던데. 그럼 당장은 된 거 아냐?”

 

수 경사는 자신의 방에 걸려있는 사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보며 새삼스러운 과거를 회상했던 것이 사나흘 전 일인데도, 이 며칠이 바쁘게 흘러갔다 보니 꼭 어젯밤에 보고 나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사진 속 범인을 체포하느라 다칠 대로 다친 경장은 아니지만, 수 경사는 결과적으로 지금의 모습도 그때와 다르진 않다고 생각했다. 각별 경사는 기계적인 분야의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 움직이고, 해결하기 위해 골몰히 생각에 잠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도대체 수사반의 누가 모르겠는가.

 

“그리고…….”

“뭔데?”

“댁 성격에 청승 떨 듯 고민하는 거 안 어울리니까 그냥 국밥이나 먹으라고. 지금 말고 좀 더 나중에 해 봐요. 지금보다 더 깊게 고민해야 할 때가 올지 어떻게 알겠어.”

 

“아, 생일 밥은 내일 다 같이 이신 반점에서 탕수육 시켜 먹는 거로.” 그렇게 말하며 수 경사는 자신의 빈 잔에 소주를 가득히 채운 다음, 아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각 경사의 잔에 가볍게 갖다 대듯 건배하고서 쭉 들이켰다.

 

“…나 원.”

 

그렇게 중얼거리며 각 경사는 넘실거릴 만큼 담긴 소주를 비워내고,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그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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