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연성교환

241209

3000자

백업 by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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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기다리는 거예요?”

“……네!”

P가 짧지 않은 시간차를 두고 답했다. 몇 주 전부터 하이랄의 바람은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두꺼워져 갔고 이는 금발의 공주나 그의 호위기사 또한 피할 수 없는 듯했다. 가만히 고개를 치켜들어 구름 사이를 바라보는 P에게 젤다가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건넸다. 눈이 보고 싶으신 거라면 헤브라 산맥으로 가시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링크의 말을 들은 젤다가 고개를 내젓는다. 원래, 눈이 안 내리던 지역에서의 첫눈이 좋은 거라구요. 뭔갈 기념하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낭만이 있으니까요.

그렇죠? 가볍게 말하며 부드럽게 웃는 젤다를 본 P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P가 쉽사리 기운을 차리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눈이 올 법한 기온이 오려나 싶으면 날씨는 곧바로 따스해져 버렸고, 두 번째는 눈폭풍마저 올 법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첫눈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 오는 거야? P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하늘을 치켜올려보아도, 프루아패드를 열심히 두드리며 날씨를 확인해도 눈은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시드 왕자만이 P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릴 뿐이었고,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난 후에는 그 집요했던 P조차 포기한 참이다. 그야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은, 올해는 눈이 좀 늦게 오려나 보네…… 같은 문장 한두 줄. 이 말들을 지나가며 듣거나 바로 앞에서 들었음에도 P는 포기하지 않았으나 일 주일, 아니 이 주일이 지남에도 눈이 내리지 않자 그는 더이상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S가 P를 돌아보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눈 색과 꼭 닮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얕은 한숨과 함께 평소보다 어딘가 침울해진 분위기에 S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첫눈을 기다리는 것이오? 한 마디 던진 말이 아니나 다를까 열 마디가 되어 돌아오면, S는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늘상 그렇듯 P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P의 말은 이랬다. 첫눈과 관련해서는 정말 많은 말이 있다고 했다. 첫눈이 올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댔고, 첫눈이 올 때 고백을 하면 그것 또한 이루어진댔다. 허나 P 본인은 지금 S가 있으니 후자보자는 전자를 위해 기다리는 중이라며 웃어보이는 것또한 잊지 않는다. S는 알았다. 지금 그건 그저 미신일 뿐이라는 말을 하면,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기분을 망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걸. 그럼, 대체 무슨 소원을 빌고 싶길래 그러는 것이오? S의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작게 큭큭대는 P만이 있을 뿐.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고, P가 점점 첫눈에 대해 잊을 때쯤. 따끈따끈볶음을 만들며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던 이가단 조무래기들의 입에서 첫눈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떠한 우연이었다. 그 옆을 지나가던 S는 때마침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곧바로 발걸음을 P에게로 옮겼다.

“P 공, 아마 오늘 밤 즈음에 첫눈이 내린다고 하는데.”

“……어? 정말요?!”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으면 어떡하지, 했던 S는 P가 내비치는 반응을 보며 그러한 걱정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유란즉슨 P가 그 말을 듣자마자 S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서둘러 옮기기 시작한 탓이었다. 하테노 고대 연구소 가장 높은 곳. 그곳이 P에게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높은 장소이기라도 한 듯했다. 왜 하필 그곳이냐 묻는다면 P는 아마 ‘높은 곳이라서’라는 단순한 답을 내놓을 것이었다. 그런 P를 보며 S가 가면 아래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첫눈 소식에 신이 나서는 힘차게 뜀박질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애 같았고, 연쇄적으로 떠오른 생각의 끝에는 지난날의 S가 차마 죽이지 못하고 도망치도록 놓아준 어린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을 한 번 떠올리기 시작한 S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 P의 손에 이끌려 도착하긴 했으나 그가 말을 걸기 전에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고, 결국 P가 팔꿈치로 S의 옆구리를 한 번 쿡 찌르고 나서야 짧게 아. 소리를 내며 다시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시야 속에는 어느덧 어엿하게 자란 P가 눈웃음을 지으며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밤에 온다고 했으니,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소.”

S가 괜시리 제 가면을 만지작대고는 한 번 고쳐쓰고 있었다. 문득 S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눈에 대체 어떤 소원을 빌려는 걸까. 어떤 소원을 빌려고 하길래 웬만하면 자신에게 전부 말해주던 그가 이번에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 걸까. 그는 새삼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도 들고 있었다. 아니라면 계속해서 흘긋거리며 P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부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소원. S는 문득 첫눈이 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떠올렸다. 원래 이런 미신 따위는 흘려듣는 편이었으나, 어째서인지 P가 들뜬 모습을 보니 저 또한 무언가라도 빌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애초에 P라면 소원을 다 빌자마자 저를 쳐다보며 무슨 소원 빌었냐 물어볼 것 같기도 하고.

그렇기에 S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이 내리지 않는, 텅 빈 하늘을 본다. 저녁과 밤의 사이에서 조금씩 어둑해지고 있을 뿐인 하늘의 색만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내리지 않는다는 건, 소원을 고민할 시간이 남았다는 거겠지. 그렇기에 S가 침묵을 지킨다. 하나의 소원을 빌자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많고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역시 한 가지를 고른다면 이런 거겠지.

S가 지긋이 눈을 감는다. 제법 간결한 소원을 마음속으로 떠올린다. 지금처럼만,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시오. 내 앞에 있는 자가 더이상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소. 왼쪽 눈도, 가족도, 어떠한 마음도. 더이상 잃지 않게 해 주시오. S의 소원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걸맞았다. 짧게 소원을 빈 후 다시 눈을 뜬 S가 고개를 돌려 P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P가 어? 하는, 짧고 큰 소리를 냈다. P는 콧잔등에 닿은 차가운 눈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다! 그런 신난 외침과 함께 눈을 감는다. S는 그런 P를 바라보며 질문 하나를 속으로 조용히 삼키던 참이다.

P 공, 지금 어떤 소원을 빌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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