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𝐑𝐨𝐰𝐞𝐧 𝐀𝐳𝐚𝐫𝐢𝐚𝐡 25 훈련 로그 1
휘청거린다. 곧 팽팽하게 긴장된 몸을 딱딱한 검신으로 지탱하고 선다.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었다.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공터 여기저기에 파인 홈과 그슬린 자국은 그가 만든 것이다. 다시 검을 쥐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휘둘렀다. 생각지도 못한 불길이 불쑥 검신을 타고 오르더니만 목표한 곳에 내리꽂아지며 상상으로 만든 목표를 불태웠다. 곧 낮은 한숨을 내쉰다. 검신을 다시 손가락 사이로 끼워 들며 눈을 찌푸렸다. 만족스럽지가 않다, 완성형이 아니다. 평생, 이 상태로 머물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시뮬레이션 속의 작은 마수는 쉽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로웬이 마주하는 것들은 크기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집채만큼 큰 것까지 있었다. 한껏 날이 선 검날도 그 거대한 것을 한 번에 완벽히 베어내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항상 저와 합이 좋은 타 별의 아이와 함께 전장에서 서고는 했지. 그 말은 즉, 거대 마수종을 처리하는 일은 저 혼자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된다. 본의 아니게 표정을 굳힌 로웬이 입술을 물었다. 역시 더 나아질 수 있으리란 기대를 놓고 싶지가 않다. 물론 로웬의 이런 생각을 별의 아이가 아닌 이능력자들이 듣는다면 기가 찬 일일지도 몰랐다. 스물다섯이란 어린 나이로 로 등급에 오르고, 작은 마수 정도는 혈혈단신으로도 해치울 수 있는 로웬이 제 능력을 깎아내리면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겠지. 다만 문제라면 타 별의 아이 중 절망스러울 만큼 실력이 좋은 이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 복잡한 표정을 한다.
탁,탁.
딱딱한 것이 바닥을 치는 소리가 공터에 낙루한다. 저는 아직도 검신의 표면에 불을 칠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그것도 돌이켜보면 해내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정도의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게 되어 스물이 되기 직전 제 이름이 로의 자리에서 읊어졌다지만 직접 불을 만들어내기에는 아직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이 패착의 이유가 과연 뭘까? 손바닥 위에 미묘한 크기의 불을 만들어본다. 아까의 여유가 넘치던 때와는 판이해진 무거운 표정이 있다. 제어할 수가 없다. 불길은 순식간에 로웬의 몸체보다 더욱 크게 부풀려져 일렁인다. 놀란 가슴으로 침을 삼키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애써 가라앉혀 침착하게 뿜어져 나가던 이능을 더듬어 가라앉힌다. 이렇게까지 제어가 안 되어서야, 적을 처리하는 건 둘째치고, 제 옆에 있는 사람들까지 온통 통구이로 만들겠다 싶다.
스물 다섯 번의 해. 그 안에서 독단적으로 깨달은 것은 이능의 제어는 처음 이능을 발휘하는 서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머릿속에서 원하는 출력을 확인시키면 몸은 애써 그것에 맞게 이능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만 제 이능은 미련하게도 뭘 할 필요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서 문제지. 이럴 때면 이능은 자아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좋은 예시로 같은 별의 아이 중 이능을 인격체로 대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슬 추파를 던져본다.
“……너도 말할 수 있어?”
무표정하게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물론 묻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려던 것이었지만 어쩐지 혼자 무생물에 말을 거니 참 제가 못마땅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괜한 검신을 땅에 툭툭 두드린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약한 이능력인지 모르겠다…는, 능력의 본 주인을 생각해보면 조금 알 것 같다. 스스로 도출한 결과에 당황스러운 마음뿐. 말문이 막혀 다시 검을 고쳐 쥐었다.. 주인을 닮아 예상할 수 없나 보다.
상상 속의 마수를 만들어낸다. 조금 떨리는 손으로 검날을 내민다. 한 합. 정중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변칙적인 검술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과 더불어 어렸을 적부터 동네를 들리던 검사들에게 배운 것이다. 두 합. 뒤죽박죽 엉킨 머릿속이 몸을 움직이자 정리가 되어간다. 어쩌면, 이번. 그러니까 탐사에서 단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트라이야의 인도 아래에서 한 발짝 나아갔던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면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거짓말처럼 빛이 내리는 기분이다. 세 합. 눈을 크게 뜬다. 가상의 마수는 물러섰다가 다시 저를 향해 되달려온다. 두말할 것도 없지. 먼저 덤벼오는 무지성의 마수는 제겐 최고의 기회였다. 검날을 옆으로 뉘인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마수는 칼날의 궤도에 올라 반 토막이 되어 땅으로 돌아간다. 좋아. 적어도 단서는 얻은 기분이었다. 까맣게 물들었던 미래가 환해진다. 지체할 것도 없었다. 검신을 다시 검집의 안에 집어넣으며 로웬은 걸음을 옮겼다. 조금 후면 연락 없던 이들까지 한자리에 모일 것이다. 그 만남을 위해서는 준비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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