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무를 위해

Witch-finding 上

줄리엣 클락 4학년-7학년 공백기 로그-1

트리거/소재 주의: 양육자의 가스라이팅, 폭언, 간접적 폭력(소지품 파괴), 기타 강압적 태도

중세의 마녀사냥에 관하여

줄리엣 클락

인류의 모든 역사는 피와 불로 기록되어 왔으며, 마법의 역사, 더 구체적으로는 마법을 가진 인류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머글들에 의해 자행된 중세의 “마녀사냥”은 이의 가장 주요한 예시일 것이다.

마법사가 발생한 이래 머글은 마법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며, 마법사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릴 경우 이들을 각종 방식으로 말살하려 드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인종, 국적, 성별, 계층 등에 무관하게 마법사와 머글이 존재하는 모든 공동체 안에서 공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 기간의 “마녀사냥”, 즉 마녀라 의심되는 이들을 불합리하게 “재판”하며 고문, 감금 및 학살한 사건들은 당시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일어났고, 그 피해자는 중세에 존재했던 성별 권력 관계에 의하여 남성보다는 여성이 주 타겟이 되었으며 대부분 상류층보다는 하류층에 많았다는 특성이 있다.

해당 기간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하면 총 4만~6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중 마법사의 비율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사건이 국제마법사비밀법령이 제정되는 데 큰 원인이 되었기에 실제 마법사의 비율 또한 대다수를 차지하거나,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의 학자들보다 필자의 추정 비율이 더 보수적인 이유는 당시 머글들은 공포와 비이성에 휩싸여 실제로 마녀/마법사임이 판별되지 않아도 의심이 가거나, 경제적 자산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약자성을 가진 등의 특성이 있는 머글들 또한 마녀로 몰아 함께 살해했으리라는 소수 주장이, 모든 마녀사냥의 피해자는 실제 마녀(또는 마법사)였다는 대다수 마법사 역사학자들의 주장보다 더 신빙성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마법사가 얼마나 있든, 해당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마녀로 몰렸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명예, 재산, 신체의 자유와 건강, 심지어는 생명까지 빼앗긴 사건으로 마법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사에 가장 어두운 부분 중 한 가지로 남을 사건이다. 그리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마녀사냥에 맞선 이들은 아무도 없었나? 이하의 내용에서는 이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정리해 작성한다.

1. 파라켈수스 & 요한 웨이어: 연금술사, 약학자, 화학자, 의사-로디 맥케이에게

해당 시대는 아직 “과학”과 “마법”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시대였다. 후대 머글들에게 과학자로 기억되는 당대의 머글 인물들, 예시로 코페르니쿠스나 아이작 뉴턴 등도 화학과 천문학을 연구하는 한편 연금술과 점성술을 신봉했으며 깊은 관심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이중 한 인물이 파라켈수스이다. 그는 머글이었으나, 기존의 전통적인 의학 서적과 이론들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추구했던 당대 의학자들과 달리 이러한 방식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고문서가 아닌 환자들에게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비판적 사고와 의업의 윤리성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마녀사냥을 비판하고, 희생자인 마녀들은 또한 악마나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의 영향이 아니라 정신 질환의 환자일 뿐이므로 고문과 처형이 아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로 인해 현대 머글들에게 독물학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의 선구자로 불린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또다른 인물은 요한 웨이어, 네덜란드의 내과 의사가 있다. 그 또한 마녀 사냥에 부정적인 입장을 띠었다. 그는 마녀 재판과 마녀에 대한 박해에 반대한 첫 번째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논문이라고 불리는 De Praestigiis Daemonum et Incantationibus ac Venificiis(악마에 대한 환상, 그리고 주문과 독에 관하여)를 집필했으며, “마녀”들을 단지 망상증에 시달리는 환자일 뿐이라고 주장해 파라켈수스와 유사하게 현대의 머글 정신의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이후의 머글 태생 마법사들, 즉 “듀크스 병 환자”들을 치료하려는 머글들의 시도들과 유사하게 마법을 병이라고 보았다는 한계가 있으나, 결론적으로 마법의 존재를 믿지 않는 머글의 시점에서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는 이들을 옹호하고 마녀 재판을 비판했다는 의의 또한 존재한다.

2. 안톤 프라토리우스 & 요한 메이파르트: 신학자-나디아, 헤인즈에게

한편, 단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비판한 이들도 있었다. 가장 주요하게는 안톤 프라토리우스와 요한 메이파르트로, 이들은 각각 16세기 독일의 칼뱅파 신학자와 루터파 신학자였다.

안톤 프라토리우스는 1597년, 독일 작은 마을 부딩엔의 주임 목사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마녀로 의심받아 재판받고 있는 4명의 여인의 심문 과정을 지켜본 그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여인의 재판이 중단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기록에 의하면 여인은 살아남았으며,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파면되었다. 그는 이후 마녀들에 대한 교회의 고문과 박해에 반대하는 내용의 저서 Gründlicher Bericht über Zauberey und Zauberer(마법과 마녀에 대한 철저한 보고서)를 처음에는 가명으로, 이후에는 본명으로 출판했다. 요한 메이파르트 또한 동시대에 살았던 루터파 신학자이자 성직자, 교육자, 찬송가 작가였다. 그는 1629년부터 1632년까지 마녀의 체포와 심문, 처형 절차를 지켜보고, 이에 개입된 잔인한 폭력의 실상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글들을 집필해 공개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머글 신학자 및 관련 종사자들이 마녀사냥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들은 많은 경우 독실한 종교인으로서 마녀와 “악마”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단지 이들은 그들이 마녀이든 아니든, 인간에 대한 존엄과 윤리적인 측면에서 “마녀” 용의자들의 처우에 대해 항의했으며, 때론 자신들의 지위와 신변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마녀사냥에 반대하는 의견을 주장했다.

3. 마리온 워커: 과부, 운동가-브레어, 에시, 마리에게

한편 상류층과 남성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이들만 마녀사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한 것은 아니었다. 마리온 워커는 1597년, 스코틀랜드 서쪽 글래스고에 살던 여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과부였으나 부유하지는 않았고, 하지만 교회에 맞서 선명히 목소리를 내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설득력을 가졌다.

당시 글래스고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잔혹한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현실 속에서, 그중 주요 인물 한 명은 그녀 자신도 마녀로 몰렸다가 살아남은 여성이었다. 마가렛 아이트킨은 피프에서 마녀 혐의로 체포된 이였다. 그녀는 자신은 다른 마녀를 보는 것만으로 마녀인지 아닌지 감별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영국 국왕 제임스 4세를 포함한 권력자들은 그녀를 “마귀의 흔적을 박멸하기 위한 싸움에서 사용할 궁극적인 병기”로 여겼다. 하지만 그녀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미 아이트킨이 마녀라고 주장한 이들을 다른 옷차림을 해 다른 여성들과 섞어 다음날 다시 아이트킨의 앞에 데려갔고, 아이트킨은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일부는 마녀, 일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책임자들은 이 황당무계한 사건을 은폐하려 시도했다.

마리온 워커는 동료들과 함께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과, 특히 아이트킨의 최종 진술과 자백의 기록을 손에 넣었다. 그녀는 이 문서들의 내용이 사람들에게 전파되도록 했고, 그녀 자신도 적들에 의해 각종 혐의로 재판에 설 위기에 빠졌으나 굴하지 않고 저항을 이어갔다. 그녀는 결국 마녀 사냥이 종식될 때까지 살아남아 중년을 맞았다.

…이처럼, 마녀 사냥의 역사는 또한 마녀 사냥에 맞선 이들의 역사이며, 증오가 있는 곳에는 크든 작든 언제나 그 증오에 맞서는 이들이 존재했고…

Well, touch my mouth and hold my tongue

I'll never be your chosen one

I'll be home, safe and tucked away

Well you can't tempt me if I don't see the day

-Mumford&Sons, <Broken Crown>

줄리엣은 열쇠를 돌려 현관문을 열었다. 집안의 모습은 황량했다. 사람이라고는 살지 않는 곳처럼. 창문으로 늦은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비치고 있었고, 천장에는 전깃불로 된 조명이 은은하면서도 선명하게 실내를 밝히고 있었으나, 기분 탓인지 응접실은 검은 호수로 창문이 난 호그와트의 기숙사보다도 어둡게 보였다. 아버지는 서재에 있을 것이었다. 늘 그랬듯이. (줄리엣은 그곳에서 아버지의 무릎이나, 원목으로 된 책상에 앉아 종알거리던 날들을 기억했다.) 소녀는 가져온 짐들을 현관에 그대로 내려두고, 손에 지팡이만을 든 채 복도를 걸어갔다. 단화가 나무로 된 바닥에 맞닿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반쯤 열린 서재의 문을 밀자 사무엘 클락이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줄리엣과 같은 얇고 곱슬기 없는 검은 머리와 시린 금색의 눈. 백인인 그의 어머니를 닮아 높은 콧대와 짙은 눈썹을 가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예민한 인상. 깔끔한 양복 조끼 위에 걸친 의사 가운은 언제나처럼 눈부시게 희었으나 오늘은 평상시처럼 단정한 대신 매무새가 흐트러지고 한쪽 깃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왔구나, 줄리엣. 오는 길은 어땠니?”

“편안했어요. 짐 드는 건 지나가던 분들이 도와주셔서 괜찮았고요.”

이번 해에 사무엘은 줄리엣을 데리러 킹스 크로스 역에 가지 않았으며, 마부가 딸린 마차나 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보내지도 않았다. 줄리엣은 생전 처음으로 약간의 돈만을 가지고 열차에서 내려 혼자 켄싱턴의 집까지 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사무엘은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짧은 침묵.

“그럼 내가 부탁한 설명은 준비가 되어 있으리라 믿는단다.”

더 이상의 안부 인사나, 2년 만에 보는 딸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맥락에 대한 부연도 필요 없었다. 반년 전 보낸 편지의 내용이 마치 방금 전 오간 대화인 것처럼. 줄리엣은 손에 쥔 지팡이를 만지작거렸다.

“물론 그렇죠-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 계시죠? 이모는요?”

사무엘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콧날을 꼬집었다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어조로 답했다.

“그게 지금 중요할까, 줄리엣 클락?”

줄리엣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용히 올려다보자 사무엘은 어린아이가 하는 질문에 너그럽게 답해주는 어른인 양 한숨을 쉬고는 답했다.

“외출하셨단다. 아마 늦기 전에는 돌아오실 거야.”

“외출하셨다고요.”

“그래. 두 분 다 바쁜 사람들이잖니? 우리 대화가 끝난 후에도 분명 충분히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을 거야.”

“아버지가 내보내셨겠죠. 혹은 제가 온다는 것조차 알려드리지 않았거나.”

“나를 뭘로 보는 거니? 단지, 이건 우리 둘의 일이잖니.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은- 네 어머니와 이모는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정말 그 두 분만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무엘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게 누구 덕분이지, 줄리엣?”

“…”

“너는 나를 닮아 늘 머리가 좋았지. 네 어머니도 늘 말하고는 했다. 너는 나를 지나치게 닮았다고. 하지만 난 그 사실을 한 번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어. 대체 무엇이 문제였니? 그 사람들이 너한테 뭐라고 하든? 거기가 네 진짜 집이라고?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장난감으로 너를 홀리고, 온갖 괴상한 것들로 매혹하더냐? 움직이는 그림에, 괴물 같은 생물들에, 네 등에 날개를 달아서 하늘이라도 날게 해 주든? 그래서 여기, 런던에 있는 진짜 네 집에서, 자나 깨나 그곳으로 혼자 보낸 너만을 걱정하고 있는 이 아비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잊지 않았어요! 아버지,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는 그저-”

“…마법 세계에 소문이 자자하다더구나.”

사무엘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작았다. 그러나 문장을 더 잇지 못한 것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하던 줄리엣 쪽이었다.

“머글 태생인 내 자문도 알 정도로. 그쪽 세계에서 명망 높은 ”로맘 가문“의 장녀가 웬 ”잡종“ 계집을 갖고 논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 매달리는 꼴이 어찌나 가련한지, 결혼이 연민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일곱 번은 결혼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그 아이였니? 그 아이가 달콤하게 속삭이더냐? 널 그 세계의 공주로 만들어주겠다고?”

“…소문이 늦으시네요. 데이오릿과는 헤어졌어요.”

“뭐?”

“말그대로에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좋은 친구로 지내기로 했어요.”

줄리엣은 비단으로 감싸진 작은 상자를 책상에 팽개치듯 내려놓았다. 상자에는 늑대가 그려진 로맘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으나, 안쪽-반지가 있을 곳-은 비어 있었다. 사무엘의 시선이 내려갔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줄리엣의 얼굴로 향했다. 마치 농담이라고 말하기를 기다리는 듯.

“게다가 전 결혼 같은 걸 하기에는 너무 어려요.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인걸요. 아버지도 분명 그애를 좋아하지 않았을 거에요. 방금도 말씀하셨잖아요? 그애는 순수혈통이고, 머글과 머글 출신들을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네가 나를 조롱하는구나. 내가 한 번이라도 그 병자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니? 너를 그곳으로 보낸 사람이 나야. 네가 지금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나고. 슬리데린에 가라고 조언해 준 것도 나고, 어떻게 하면 그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 널 환영하지 않는 세상에 녹아들 수 있는 법을 알려준 게 나다. 그 문서- 서문에 이 세상을 완전히 뒤집을 문서라고 적혀 있던, 네 마녀 외할머니가 너희의 그 룬 문자로 남긴 문서 말이야-를 전달해준 것도 나고. 넌 이 아버지가 설계한 대로 완성된 아이야- 하지만 정말로 그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라고는 하지 않았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니? 널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제서야 모든 것이 바로잡히고 있는 거죠.”

사무엘은 듣지 못한 것처럼 말을 이었다.

“내가 너를 그곳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기억해 봐라, 줄리엣. 내가 했던 말들을. 그 사람들은- 정상이 아냐. 너도 그랬잖니. 마법을 쓰면 기분이 이상하다고. 몸이 붕 뜨는 것 같고 머릿속이 폭죽처럼 터지는 것 같다고. 이제는 그곳에 너무 오래 있던 나머지 정신까지 이상해져 버린 거야.”

“그건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런 거죠.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저를 보고 늘 그러셨듯이. 저는 환자라고. 이 세상의 다른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까지 환자로 남아 있어야 할 가엾은 아이라고. 전 어렸고, 그래서 그 말을 믿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그곳은 그저, 이곳과는 다를 뿐이에요. 저도 아버지와 다를 뿐이고요. 아버지도 제 편지를 읽으셨잖아요. 오즈와, 로디와, 마리안느와- 직접 만나보셨잖아요. 그 아이들은 그냥 제 친구들이에요. 저는 치료받고 싶지도 않아요. 불행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고요. 누군가 저를 쫓아내거나, 치료하려 들지만 않는다면 말이에요.”

코웃음 소리가 났다. 줄리엣은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을 충실히 따랐죠. 그게 옳다고 믿었으니까. 아버지는 늘 제게 다정하셨고, 저를 위해 이 모든 것을 하셨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단 한 번이라도 저를 믿어주실 수는 없는 거에요?”

“너를 믿는단다. 난 언제나 너를 믿어왔어.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줄리엣.”

사무엘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갓난아기를 어르듯 자애로운 말투로 팔목에 손을 얹으려던 순간,

줄리엣이 뒤로 튕기듯 물러서며 팔을 치켜들었다. 사무엘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겨눠진 긴 나무의 끝(개암나무, 유니콘의 털, 13인치, 뻣뻣함)을 곁눈질했다.

“네가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걸로 나를 공격하겠다는 거냐? 네 아버지를?”

“…뒤로, 물러서세요. 전 아버지를 해치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마저 걸어와 간격을 좁혔다. 그리고는 천천히 지팡이의 반대쪽 끝을 붙잡고 아래로 내렸다.

줄리엣은 지팡이를 세게 쥐고 뒷걸음질치려했지만 힘으로 상대가 되지 않아 되려 휘청였다.

“줄리엣.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어린아이들은 바깥에서 마법을 쓰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지. 네가 그곳에 등록된 이상, 그곳을 나와 어디에서든 마법을 사용하면 곧바로 알고 그 불길한 새들을 보낸다고. 웃기는 소리지. 정말로 떳떳하다면 그럴 이유가 있겠니? 그들도 부끄러운 것을 아니까 그러는 거야… 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말 듣거라.”

막다른 길이었다. 사무엘은 그것을 알듯이, 모든 화가 가신 얼굴이었다.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 제발-”

“괜찮단다, 줄리엣. 손을 놔. 그럼 다 괜찮을 거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줄리엣은 다시 입을 열었으나, 그가 쉬잇, 소리를 내자 더 시도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혀를 찼다.

“잔뜩 겁에 질려 있구나. 무엇을 지키겠다고? 네 사랑? 친구들? 전부 허상일 뿐이야. 네가 반항하는 순간 다 뜯은 선물 포장지처럼 내팽개치겠지. 네가 그들과 같지 않다고, ”머글“의 자식이라고, 좀 다른 것을 꿈꾼다고 말이야…. 주디, 아가, 난 언제나 네 편이란다. 네가 무엇을 하든, 무엇이든. 넌 언제나 내 소중한 딸이야.”

줄리엣은 손을 놓았다.

사무엘은 잘했다는 듯 다정히 웃더니,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간단히 분질렀다. 여름날 저녁이었으나 서재에는 벽난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그 안으로 부러진 나무의 파편들을 던져넣은 그가 창백해진 딸을 돌아보았다.

“자, 이제 다 괜찮단다. 넌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다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오랜만에 저녁도 다같이-”

그리고 그는 문장을 끝마치지 못했다.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순식간에 석상처럼 굳어버린 사무엘은 눈동자만 굴려 줄리엣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올라간 입매를 부자연스럽게 움찔거렸으나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줄리엣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1학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주문 중 하나였으나 지금까지는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던 주문이었다. 게다가 지팡이도 없이 완벽하게 성공하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어쩌면 이제서야 화를 내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것 같기도 했다.

아구아멘티 대신 화병의 물을 부어 난로를 끄고, 반쯤 숯이 된 개암나무 조각과 솜털같은 실낱 몇 조각만 남은 유니콘의 털을 그러모으자, 그제서야 부엉이 한 마리가 창틀을 똑똑 두드렸다. 줄리엣은 잠시 생각하듯 가만히 있다가 몸을 펴고, 경고장을 풀어보는 대신 부엉이를 데리고 서재를 나왔다. 이제는 해가 저물어 어두워진 방 안에서 시선이 느껴졌으나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고성에서는, 동료가 있었고, 동료가 아닌 이가 있었다. 친구가 있었고, 친구가 아닌 이가 있었다. 사랑했지만 같지 않았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어쩌면 가족이고, 어쩌면 아닌 이들이 있었다. 의사와 생물학자와 수리공과 목자의 아이들이, 차별과 멸시와 배제와 수치심과 서러움이, 마법약 수업과 퀴디치와 천문탑과 검은 호수와 지하 감옥과 대연회장과 그녀의 기숙사 방과 안뜰 복도의 액자 뒤 공간과 부엉이들의 방과 온실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뜨개질 바늘과 베이크드 애플 차의 향기와 피아노와 기타와 바이올린의 선율 그리고 흥겨운 노랫소리가….

그 모든 것이 그 세계의 일부였고, 그곳으로 줄리엣 클락은 가고 싶었으며, 머물고 싶었기에.

그녀는 짐가방을 끌고 계속해서 걸었다. 이제는 돌아갈 방법을 생각해볼 시간이었다.

*그림: 지인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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