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신은 없다. 신은 없어야만 한다. 아니면 죽었거나.
왜냐면,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자식은 천하의 쓰레기이거나, 피조물에 아무 관심도 없는 녀석일게 뻔하니까.
인간이 신을 닮은 생명체라면, 신은 그 어느 것보다 끔찍할테니까.
외할머니는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셨다. 언제나 타인을 위해 기도하고, 베풀고, 모범적인 삶을 사시는 분이셨다.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신께 기도를 올리고, 어제의 일을 반성하고 내일을 더 성실하고 선하게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분이셨다. 길거리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줌에 있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고, 주변의 불행에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 도움을 주는 그런 분이셨다.
그런 외할머니는 무릎 관절 말고는 아픈 구석이 없었다.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가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뭐 폐렴에 심근경색이 겹쳤다 그랬나... 어찌 잘 해결이 되었다. 의사가 정말 상태가 심각했는데 수술이 너무 잘 돼서 다행이라고 말 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수술이 잘 된 외할머니는 회복하던 도중 갑자기 픽 하고 쓰러지셨고, 그 후로 중환자실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셨다. 온 몸에 염증이 퍼졌단다. 류마티스 관절염이 어떻게 됐다나 뭐라나.
결국 할머니는 관이 끼워진 채로 한 달을 넘게 살다 돌아가셨다. 유언 한 마디도 남기지 못 한 채. 연명치료 사인을 한 순간부터 사망 판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절대 관을 떼지 못 한다고 한다. 일가족이 아무리 유언 한 마디만 듣자고 의사들에게 빌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들에게 예외란 없었다.
3개월이었다. 멀쩡하던 외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기까지. 그리고 그 3개월은 외할머니에게도,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괴로운 순간이었다. 물론 외할머니는 신체적으로도 괴로웠고 우리는 정신적으로만 괴로웠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았다. 일가족이 합의 하에 정말 가까운 사람들 몇몇에게만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애석하게도 그 중에는 외할머니가 다니던 교회 사람들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그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셨다. 때문에, 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 목사, 집사, 권사.......뭐시기들은 다 왔다. 매일 같이 찾아와 기도해주고, 명복을 빌어주고 그랬다. 정말 좋은 분이셨다고 한다.
목사가 우리에게 그랬다. 우리 외할머니가 너무 마음씨가 곱고 신실하셔서 데려가신거라고. 외할머니는 이제 천국에서 좋은 집에 들어가 편하게 살며 열심히 신앙을 쌓고 살거라고.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미친 소리였다. 외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 과정을 알면 절대 이딴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의도하여 행한 일이라면 이건 극복할 수 있는 시련도 아니고 그냥 미친 고문 그 자체였다. 만약 그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면 절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고, 한 번이라도 봤다면 미친 소시오패스 자식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인간 생활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이 모든게 신이 내리는 시련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코웃음을 쳤으며, 신은 과연 존재하는게 맞긴 한가 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 외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확신으로 다가왔다.
‘신은 없다. 없어야 한다.’
이 과거에 대한 생각을 하며 불경한 분노를 쌓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내 앞의 사람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아마 내가 여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말을 거니 대답해주고, 설문조사에도 응해준다 하니 건수 하나 잡았다는 생각에 신이 난 것이겠지.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항상 회개하고 반성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지옥이 기다릴 것입니다. 당신은 눈빛이 선한 사람입니다. 저희와 함께 교주님께 바치고 기도하여 천국으로 갑시다.’
더 들어주기 힘든 말들이었다. 나는 같잖다는 듯 비웃은 뒤 말했다. “어이 형씨.”
꽤나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게 아닌데? 싶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말을 이어갔다.
“죄송한데, 저는 단 한 번도 나라가 정한 법을 어긴 적도 없고, 도덕적으로 문제 될 일도 거의 한 적이 없는데 제가 왜 죄인입니까? 그리고 기도하고 돈 내면 뭐 밥을 줍니까, 삶을 살기 편하게 해줍니까? 안 믿으면 죽어서 지옥을 가고 믿으면 천국을 간다고? 나한텐 뒤진 후 보다 지금 당장이 더 중요해. 그리고 그딴 사이비 종교 설파하고 다니지 말고 당장 내 눈 앞에서 꺼지쇼.”
열을 꽤나 받았는지, 얼굴이 잘 익은 고추 마냥 빨개진다. 하지만 잘못 걸렸구나 싶었는지, 별 소리 없이 그냥 뒤돌아 나와 멀어진다.
꽤나 피곤한 순간이었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던 과거도 떠오르고, 내 소중한 시간을 이상한 녀석에게 낭비도 당하고. 아마 흡연자였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한 갑 정도는 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길바닥에 침을 뱉고는, 원래 향하던 목적지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나도 종교를 믿는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믿음은 사람이 나아갈 힘을 주고,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 믿음의 대상이 종교가 되는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그들에겐 그들의 가치관이 있는 법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믿을 수 없다. 신이 존재했다면 우리 가정이 이렇게 되어선 안 됐고, 우리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선 안 됐고, 인간은 이렇게 사악하면 안 됐으며,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따뜻했어야 했다. 그들이 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라면 이렇게 많으면 안 됐고, 이러한 역사가 이렇게 오래 지속되어서도 안 됐다. 이것마저 신의 뜻이라면, 그건 오히려 더 끔찍한 이야기이다. 신이 원하는 세상이 이렇게 끔찍하다는 뜻이니까. 나를 제외한 이 세상 자체가 시련이라면, 나는 그 시련을 통과할 자신 따위 없고.
그러니 나는 믿는다. 신은 없다. 없어야만 한다고. 같은 생각을 담은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나는 다시 망할 시련이 가득 담긴 세상으로 들어갔다. 언제쯤 구원이 올까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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