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절의 편린
합작 임시글
어느 시절의 편린
사토 미유키는 그날 또한 아이들과 함께 물동이를 나르고 있었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늘 부지런해야만 했다. 가끔 길가를 걷는 경찰들이 그들을 가는 눈으로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녀는 괜스레 고개에 힘을 주고 거리를 걸었다. 좀 더 키 큰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 무뚝뚝하게 걸었다. 사토, 천천히 가. 그런 말을 하며 낑낑대는 아이들이었다. 성을 낸 미유키는 아플 정도로만 뒤의 남자아이를 걷어차고는 다시 걸어갔다. 역시 투덜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그것을 모른체했다. 보육원에 도착하면 원장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무뚝뚝하며 피곤함이 서린 얼굴이었다. 그이는 빗자루로 아이들의 발치를 한번씩 쓸어내곤 미유키를 보았다.
“새로운 친구가 왔단다. 환영하러 가보거라.”
겹치는 목소리. 그것은 7년 전 정도의 일이었다. 갑작스레 스며든 생각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물로 젖은 손바닥을 소매에 문지르며 안으로 들어서는 미유키였다. 땀이 이마에 맺혔지만, 그것이 미유키의 궁금증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녀는 공동 식당에 들어서서,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새로온 상대를 살피고 있었다. 저와 같아 보이는 8살 정도의 아이가 희미하게 보였다. 미유키는 아이들의 틈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그리 물으면 아이는 대답했다. 아멜리아 로더 라고. 그러나 그 이름을 말하는 입은 꽤나 어색해 보였다. 미유키는 아이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무리들을 파고 들어 아멜리아라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머물 방을 소개해줄게. 아멜리아.”
“응. 고마워.”
원장은 이제 세탁물의 주요 담당이 그녀가 되었음을 일렀다. 미유키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몰랐다.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를 하다 얻어맞는 것보단 훨씬 나은 것이었다. 혹은 화끈거리는 손을 끌어안고서 성냥을 만드는 것보다도 훨씬 나았다. 얼른 가보라는 재촉에 머리를 묶으며 들어서면, 그곳에는 아멜리아, 그러니까 리베르타 에스텔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도 세탁 담당이야? 그리 물으면 리베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체할 것 없다는 듯이 미유키는 손짓했다. 세탁실로 향하며 보육원의 분위기를 묻는 미유키였다. 원장의 기분이 그날은 나쁘지 않느냐는 의미였다. 리베르타는 몇몇 아이들이 이미 혼난 상태임을 전달하였다. 그럴 것 같았다는 눈짓을 하며 미유키는 세탁실의 문을 열었다.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 끼쳤다.
"아. 미유키다!"
"그래. 지금 말린 세탁물들은 어딨어. 풀먹이고 다림질 할게."
"응!"
미유키는 저의 가슴께 정도에 오는 키의 아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하루들이었다. 어쩌면 이런 하루들은, 미유키에게 행운을 가져다줄지도 몰랐다. 어쩌면. 어쩌면, 미유키는 이대로 커서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옛 일은 잊고서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대로만 살아간다면. 그러나, 그녀의 얼굴과, 숨구멍을 덮어버리는 얇은 천들이 있었다. 그것은 사토 미유키라는 개인의 숨통을 죄여와서. 그녀는 다만 자신이 온연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습성은 그녀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기에, 미유키는 부러 그것을 거부하고저 하지 않았다. 제 가족과 제 자신을 이리 추악한 지경으로 몰아둔 세상을, 그저 무력하게 바라보기는 싫었다. 그런 미유키를 물끄럼 바라보는 아멜리아였다. 상대의 눈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녀는 세탁물을 받아들었다. 오늘도 나중에 책을 읽으러 올 것이냐고 묻는 아멜리아였다.
“물론이지. 글을 알지 못하면 당하기도 쉬워.”
“...응.”
미유키는 저만의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 타인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녀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 그저 흘려들을 따름이었다. 자신을 버티게 해주는 것에 집중하며 미유키는 아멜리아의 팔을 건드렸다. 원장님이 호통치시겠어. 그런 말을 하며 미유키는 아멜리아를 이끌었다. 공장 안의 증기는 여전히 흐드러져있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서 문 밖으로 나섰다. 이따금씩 기계들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
밤이 다다르면 미유키는 모두 잠든 복도를 걸어갔다.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면 보이는 것은 그녀를 기다리는 이. 보랏빛의 머리가 밤의 어둠에 섞여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미유키는 한눈에 아멜리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멜리아에게 웃어 보이며 방으로 걸어갔다. 아멜리아는 미유키를 맞이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무슨 책을 준비해 두었느냐는 말과 함께 미유키는 제 짝을 보았다. 별자리에 대한 신화서를 가져왔노라며 아멜리아는 책을 가리켰다. 노랗게 바랜 종이가 촛불 아래 희미하게 보였다. 미유키는 촛불을 세워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별자리 이야기] 라는 제목이 그 사이에 도드라져 보였다. 아멜리아가 책을 펼쳐들면 종이에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뭔가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별 이야기니까. 재미있어 보여서.”
아멜리아는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함께 미유키와 앉았다. 그곳에는 목자자리, 사수자리, 처녀자리 등이 새겨져 있었다. 미유키는 그것을 손으로 짚어보며 읽어내려갔다. 별은 스텔라라고도 하며, 에스텔 이라고도 한다. 그런 문구에 미유키는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반복적으로 그 구문을 읽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너와 닮아있는 구절이네. 상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껌뻑였다. 아멜리아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면 짖궂게 웃는 미유키였다. 다만 진심으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별을 따라 아멜리아의 이름을 따면 어떻겠냐고 물음을 건네었다.
“너는 로더라는 이름을 바꾸고 싶어 했잖아.”
“그랬지.”
“에스텔이라는 이름, 너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정말?”
묘하게 기뻐보이는 얼굴은 미유키를 향해 있었다. 미유키는 가만히 아멜리아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눈을 마주친 그녀는 아멜리아에게 말하였다. 너는 별이잖아. 거짓없이 말하는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올리브빛 눈동자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 다정함을 이기지 못하고서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유키라는 태양의 빛을 받아 빛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두 사람은 손깍지를 꼈다. 미유키는 속삭였다. 네가 복수할 순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을게. 그리 말하자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잔잔한 얼굴에 웃음이 번져나가는 순간이었다. 그 때에야 자신은 자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 에스텔.”
“응, 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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