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논커플링Non-Coupling

석양이 오기 전에 모나카를 베어물고

아토 하루키+오토와 루이.

-아토 하루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21년 5월 21일에 올린 글입니다)


그해의 5월 21일은 토요일이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오기에 딱 알맞은 시간인 10시 30분이었다. 전날 비가 주룩주룩 내린 덕분인지 오늘은 날씨가 무척이나 맑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 오토와 루이는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녀오겠습니다. 루이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방에서 느지막하게 일어난 타구리가 나가려는 제 형을 발견하고 잠옷 바람으로 달려왔다.

"오늘 하루키 형 와?"

"그래, 이따 저녁에 올 거다."

"아싸~ 트럼프랑 부루마블이랑 패미컴 꺼내놔야지~"

형도 조심해서 갔다 와~. 아무리 봐도 덤으로 붙이는 말을 남기고 동생은 부엌 쪽으로 사라진다. 루이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다시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맑은 봄바람과 함께 따스한 햇볕이 피부에 닿아, 적당히 쾌적한 기분이 된다. 이래저래 말할 것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오토와 루이는 멀리 구름이 흘러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내린 비로 고인 물웅덩이가 찰방, 하는 소리를 냈다.

하루키와 약속한 장소는 목적지로 이어지는 진구니시 역 2번 출구였다. 20분 남짓한 시간이 걸려 도착한 루이는 약속장소 앞에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는 하루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막 도착한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 이름을 부르면 고개를 돌린 하루키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

"루이, 일찍 나왔네."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10시 30분까지는 아직 10분이나 남았다만."

"버스가 생각보다 빨리 왔어. 덕분에 방금 도착했지. 늦는 것보단 낫잖아?"

하루키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니어서, 오토와 루이는 제 친우를 따라 피식 웃어버리곤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럼 가자. 작은 행동에 담긴 뜻을 하루키는 재빠르게 알아차렸다. 진구니시 역으로 목적지로 이어지는 길은 이미 눈에 익은 뒤여서, 두 사람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뉴스에서 본 나고야 소식 등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꽃을 나누며 길을 걸어갔다. 이따금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가 찌르릉 벨 소리를 냈다.

목적지인 시로토리 정원 앞은 한산했다. 벚꽃 축제도 끝난 데다, 남아있던 벚꽃도 어제 내린 비로 다 져버린 탓이겠지. 하지만 여기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둘에게는 이처럼 좋은 일도 없다. 루이와 하루키는 각자의 표를 산 다음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깔끔하게 정돈된 흙길에는 빗물을 흡수한 흙과 풀 내음이 진하게 배어있었다.

"그래도 비가 내린 게 어제라서 다행이네. 봄비라서 그런지 창문을 열어둬도 그리 춥진 않았지만."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나?"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걱정 안 해도 저녁엔 닫았고, 보다시피 감기 안 걸렸어."

"지금 손으로 재서 열나면?"

"안 난다니까."

키득키득 웃고, 때로는 가볍게 팔을 때리면서 걸어간다. 봄꽃 지고 새싹이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들은 이 청소년들이 가는 길에 적당한 그늘을 드리워주었고 그사이를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흰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한 노부부가 정원 내에 드리워진 다리 위에서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온화하게 웃는다. 특별할 것도 없는 강물 속 물고기들이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여길 찾아올 때마다 두 사람이 느긋하게 바라보는 풍경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하얀 몸에 붉은 무늬를 가진 잉어를 눈여겨보던 루이는 문득 아토 하루키의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멀다. 따라서 풍경을 눈에 담아보면, 부모님과 함께 온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아이가 강가에서 서로에게 발장구를 치며 숨이 넘어가라 웃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이들을 말리려고 하지만, 아이들의 기운이 너무나 넘치는 탓에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 뒤편 돗자리에 앉아있던 어머니는 그걸 보며 소리 죽여 웃고 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법한 모습이자, 언젠가 그리운 듯이 이야기될 것이 분명한 풍경이었다.

"즐거워 보이는군."

"그러게."

"어제 네 생일축하도 저런 느낌이었다."

"아하하, 떠들썩했지."

어제, 라는 것은 당연히 5월 20일 금요일이다. 반 친구 중 한 명이 지나가는 것처럼 아토 하루키의 생일을 언급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하루키와 같은 반의 모두가 매점의 간식과 주스를 잔뜩 사 와선 교실에서 파티를 벌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소란을 피우면서 과자를 먹고 수다를 떨고 싶었던 것이겠지. 방과 후가 되어 하루키를 데리러 간 오토와 루이도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같이 그 자리에 붙들려 주스를 받고 과자를 먹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케이크가 빠질 수 없다. 매점에서는 꽤 고가에 속하는 초코케이크 과자를 층층이 쌓아 올려 그 위에 촛불을 꽂은 간이 케이크 앞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던 하루키는 이내 촛불을 훅 불어 끄고 웃었다. 축하합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종이꽃처럼 쏟아져내렸다.

"다들 웃고 있더군."

"내 생일이 어제인 줄 아는 녀석도 있었고 말이야."

"분위기에 휩쓸린 거겠지."

"그래도 즐거웠어. 같이 간식 먹는 거."

우리도 그만 갈까? 적당히 대화를 끝맺은 아토 하루키가 다리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킨다. 오토와 루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도 하루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아이들은 이제 지쳤는지 돗자리에 대자로 몸을 뻗고 누워있었다.

시로토리 정원의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레스토랑은 루이와 하루키에게 더없이 낯익은 장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3년간 꾸준히 찾아오고 있는 장소기 때문이다. 바깥 풍경이 잘 들어오고 적당히 편안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둘은 평소와 그리 다를 것 없는 메뉴판을 팔락이며 조금은 이른 점심 메뉴를 고민했다. 정원을 찾아오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식사류와 더불어 디저트도 팔고 있는지라, 점심을 먹고 원하는 음료와 다과를 시킨 뒤 적당히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았다.

우동을 주문해 열심히 해치운 뒤, 시원한 마실 것과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에서는 하루키의 생일날, 혹은 루이의 생일날이면 시로토리 정원의 이 레스토랑에서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불문율이 생겨있었다.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보던 오토와 루이는 별 의미 없는 짓이란 걸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나무 쟁반 위 하얀 접시에 놓인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루이 몫이 바닐라, 하루키 몫이 녹차맛이었다.

"옛날에 루이가 생일 축하 노래 가르쳐줬던 거 기억나?"

"기억나는군. 그때가 6월 초순이었던가."

"깜짝 놀랐어. 농담으로 생각할 줄 알았는데."

"너는 괜한 말을 할 타입은 아니니까."

오토와 루이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건 두 사람이 친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있었던 일이다. 반장이 생일을 맞이하게 되어 반 아이들 모두가 생일 파티를 열어주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자리에 아토 하루키와 오토와 루이도 초대받았다. 당시의 반장은 실로 싹싹한 성격에 인사성도 밝고 성품도 올곧았다. 역으로 그런 점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두 사람은 반장을 싫어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수업이 열리던 음악실에서 하루키가 루이에게 작은 쪽지를 건넸다.

「루이는 생일 축하 노래를 언제 배웠어?」

「유치원에서.」

「그렇구나. 난 잘 모르겠어.」

「언제 배웠는지?」

「어떻게 부르는지.」

오토와 루이는 그 쪽지를 보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 사이 음악 수업이 끝났다. 루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토 하루키를 보다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갈색 머리가 흔들리더니 의아해하는 눈동자가 루이를 바라보았다. 오토와 루이는 숙제를 봐달라는 동생에게 으레 그렇게 하듯, 손가락으로 상대의 콧등을 살짝 눌러주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연습할까."

그 말을 들은 하루키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가 천천히 녹아내렸던 것을, 루이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연습해보니 잘 부르지 않았나."

"루이가 내 앞에서 너무 진지하게 노래해서 빵 터졌지만."

"모르는 사람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건 그렇지."

모나카 아이스크림의 양은 많지 않아서 어느샌가 깨끗이 사라져버렸다. 작은 얼음이 가득한 복숭아 아이스티를 쪼르륵 마시며 옛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바깥이 석양빛으로 뉘엿뉘엿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레스토랑을 나왔다. 포도와 오렌지와 딸기를 단번에 즙을 내어 물들인 듯한 하늘은 동쪽에서부터 천천히 깊은 남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아토 하루키의 눈동자가 온화한 빛으로 가득해졌다.

"슬슬 돌아갈까. 타구리 녀석이 네가 돌아오는 걸 목 빠지게 기다릴 거다."

"하하, 타구리는 카드 게임에 강하니까 매번 당하게 된단 말이지."

"흑기사로 나서줄까?"

"됐네요."

키득키득 웃으며 시로토리 정원의 정문을 나온다. 비슷한 시기에 정원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 귀갓길은 오히려 도착했을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묘한 온기 속에서 누군가가 조잘거리는 소리, 높이 웃는 소리, 장난삼아 책망하는 소리가 같이 뒤섞인다. 마치 쉬는 시간의 교실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여기에는 교실 벽이나 창문이 없다는 점일까.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어가던 루이는 하루키의 기척이 멈춘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토 하루키는 약간 뒤에서 멈춰 선 채 호리카와에 비치는 석양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곳에 있는 레스토랑의 이름은 유우구레ゆうぐれ였다는 걸, 루이는 새삼스레 떠올렸다.

"거기,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있을까?"

"정원의 간판 같은 곳이니 쉽게 없어지지 않겠지."

"…응, 그렇겠지."

강가를 바라보던 하루키가 루이를 바라본다. 웃는 얼굴의 가장자리로 석양빛이 스며들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있으면 좋겠네."

"없어질 것 같으면 인수 방법을 생각해볼까."

"루이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 농담 같지가 않단 말이지…."

그렇게 두 사람은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오토와 가家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맹렬하게 뛰쳐나온 타구리가 하루키를 반겼다가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고, 직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케이크를 들고 돌아오고, 케이크를 먹기 전에 일단 저녁이 먼저라며 다 같이 식사를 한다. 그런 일들은 마치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서 언제까지라도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

………….

"설마하니 그대로 14년이나 장수할 줄이야."

"잘됐지 않나? 변함없이 직접 먹으러 올 수 있어서."

"응, 맛있어서 좋긴 해.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러고 보면 너 옛날에 생일축하 노래를 모른다고 나에게 가르쳐달라고 했었지."

아토 하루키는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던 손을 멈추고 기억을 떠올렸다. 창밖으로는 그때와 같은 정원의 물결이 잔잔히 일고 있었다.

"맞아. 어려운 노래도 아닌데 왠지 엄청 큰일처럼 느껴져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앞에서 불러줬더니 웃음이 빵 터지질 않나."

"생일 축하 노래를 그렇게 진지하게 부르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이제는 잘 부를 수 있나?"

"내 나이를 좀 생각하지? 올해로 스물아홉이거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접시를 비운다. 오토와 루이가 외근을 나온 김에 하루키도 바깥 업무를 나온 참이라 바깥은 아직 해가 훤했다. 옛날처럼 해가 질 때까지 같이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스티가 자연스레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는 함께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이다.

"타구리는 요새 어때?"

"건강한 모양이다. 병원 일을 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는 것 같더군."

"옛날에는 같이 자주 놀았는데. 꽤 붙임성도 좋았고."

"어릴 적부터 너랑 노는 데에 재미가 들려있었으니까."

"내 동생 같아서 좋았지. 이제는 가장이라니 좀 기분이 이상하네."

즐거운 이야기는 언제나 금방 끝을 맞이한다. 빈 접시를 카운터로 돌려놓고 레스토랑을 나온 아토 하루키는 자신보다 한 걸음 늦게 나온 오토와 루이가 자신에게 내미는 작은 포장 상자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수수한 녹색 종이로 포장된 선물은 얼핏 봐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받아 들어보면 무게는… 그렇게 무겁지 않은가. 탐정의 감으로 선물을 알아 맞춰보려는 하루키 앞에서 루이가 상대의 콧등을 꾹 눌렀다.

"나중에 열어봐라. 깜짝 놀랄걸."

"안 놀라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호오, 현직 탐정에게 도전하시는 건가요?"

"나는 현직 탐정사무소 영업소장이니까."

가벼운 웃음소리가 퍼진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발치에서 그때처럼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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