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차
읽지 못하는 활자중독자라니.
나는 글이라면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한다. 학창시절에는 국어 교과서를 받으면 끝까지 읽고 보는 학생이었고, 특히 중학생 시절에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과 친분이 생길 정도로 도서관을 드나들곤 했다. 활자는 내게 거대한 호수였고 나는 그곳에서 수영하기 좋아했다.
그런 내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지는 좀 오래됐다. 원인은 우울증으로 추정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다만 그 증상의 시작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청소년 기자단 활동을 했는데, 취재지는 섬이었기 때문에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낮에는 섬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저녁 시간에 숙소로 들어가 기사를 작성하는 식이었다. 2학년 때였다. 갑자기 책의 문장이 바로 이해되지 않아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정말 문제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내가 방금 적은 문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내가 적은 글마저 여러 번 되돌아가야만 했다. 이미 우울증에 시달리며 좋아하는 마음마저 의심하던 시기에 글마저 읽지 못하게 된 일은 나를 자기연민에 시달리게 했다. 더 이상 내게 무엇이 남았나. 그런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텅 비어버렸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럼에도 3학년 때까지 기자단 활동을 한 것은 그 활동이 내게 도피처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1박 2일 일정에 첫날에만 기자단 활동을 하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온전한 휴식이거나 즐거운 놀이 시간이 되었다. 때로는 밤을 새워 놀기도 하고, 때로는 바닷가에 누워 별을 감상했다. 아직도 1학년 활동 첫 섬으로 갔던 볼음도의 별과 덕적도에서 봤던 은하수를 종종 생각한다. 3학년 때도 글을 제대로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지만 그런 이유로 부딧히게 됐다.
나중에 전자책은 다시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여전히 종이책은 읽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읽지 못한다는 공포가 내 안에 있었다. 길을 가면서 보이는 모든 간판을 읽고, 병원에 적힌 원장님의 약력은 그곳에 글이 있다는 이유로 읽곤 하지만 아직까지 종이책은 좀 어렵다.
그러나 나는 아직 종이책에 대한 갈망은 버리지 못했다. 집 책장에 읽지도 못하는 책들이 늘어가는 것이 그 증명이다. 약간의 활자중독을 가진 나는 여전히 종이책들을 바라본다. 읽고 싶다. 세상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나의 집에 있는 책들은 종류를 크게 가리지 않는다. 소설책은 물론이요, 인문학, 역사, 천문학 등이 있다. 심지어는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과 언어에 대한 책까지 있다. 앞으로도 이 책장은 더 채워져 갈 것이고 나는 결국 읽게 될 것이다. 글이 무서워졌다 한들 사랑하는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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