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차이점
Fatális, 그리고 Chronicler
들으며 쓴 노래
01.
마리네 글라노프는 한 밴드의 일원이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연습을 나가고, 종종 있는 일요일에는 지하 펍에서 공연을 연다. 집에서도 자주 노래를 한다. 요리하는 연인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때에는 작고 느릿하게, 혼자 신나 재지한 노래를 부를 때도 있고, 가끔은 하모니카로 즐거운 연주를 해준다. 디 엘리엇은 그런 그를 보며 자주 흥이 많은 사람이라는 평을 내린다. 어울리지도 않는 취미를 한다며 빈정대는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마리네의 보컬을 듣고나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심지어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칭찬을 아끼지 않는 녀석들도 있었다. 사람이란 본래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 더 크게 감명을 받는 동물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노래를 사랑하면서도 공연만큼은 찾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의 연인, 디 엘리엇이다.
02.
디 엘리엇의 취미는 고요하다. 독서, 글쓰기,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티타임. 그는 고고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유별나게 조용한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고 해야겠지. 본인의 말에 따르면 혐오함에 더 가깝겠지만. 엘리엇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들에 비해 소리에 무척이나 예민했다. 말을 떼는 것도 빨랐고, 똑똑하고 영민한 아이가 사람을 싫어하고 시끄러운 것은 더 싫어하는 바람에 가장 빨리 는 것이 글이었다. 그가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글이었다. 수많은 글귀와 책, 어느 날에는 어른들도 읽기 싫어하는 논문들까지 섭렵했다. 지금이야 크면서 감각이 둔해진 건지, 익숙해진 건지 일반적인 소음들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여전히 시끌벅적한 곳보다는 조용한 집안에서 글을 보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그는 연인의 노래를 사랑한다. 엘리엇을 배려해 나긋하고 느릿하게 불러주는 노래들은 늘 사랑스럽고, 들으면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게 꼭 매번 공연을 보러 가야한다는 뜻은 아니잖아? 그러면 마리네 글라노프는 말한다. 아니, 한 번도 온 적 없으면서!
03.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나? 라고 하면, 결론적으로 지금 엘리엇은 공연장에 있다.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소음을 자아내고 엘리엇은 스피커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해 헤드셋을 낀 채로 삐딱하게 서있다. 그는 마리네의 노래를 사랑하지만 평소 밴드에서 그가 어떤 노래를 하는 지는 모른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 맞다. 밴드를 하며 즐거워하는 연인의 모습을 좋아하고, 집에서 불러주는 속삭임같은 노래를 사랑하지만… 애초에 그 마리네 글라노프가 다른 놈들과 합을 맞춰 노래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됐으니까. 그저 그런 아마추어 밴드 연습이 아닐까, 무의식에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연장의 불이 꺼지고, 사람들의 웅성임이 멎고. 어둠 속 한 줄기 금빛으로 걸어나오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아, 내가 무척이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04.
마리네 글라노프의 밴드가 오늘 준비한 곳은 그리 신나는 곡이 아니다. 되려 애절한 곡에 가깝다고 해야지. 흔히 밴드하면 기타리스트들이 날아다니고, 드럼 소리가 귀를 때리는 것을 상상하지만 디 엘리엇만큼은 전혀 몰랐던 마리네의 밴드는 그들보다 조금 더 조용하다. 블루스 밴드 바이올렛은 어둡고 애잔한 사랑을 주로 노래한다. 물론 신나는 곡도 종종 연주하지만, 평균적인 의미로 그렇다. 천천히 걸어나온 보컬이 은빛 스탠드 마이크를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큐 사인을 보낸다. 무대 양 옆에서 보랏빛 광선이 옅게 쏘아지고, 가볍게 튀어나온 드럼이 시작을 알린다. 눈을 감고서 짧은 전주를 즐기던 마리네는 짙푸른 눈으로 관객석을 쭉 훑더니 자신의 연인을 보며 슬 웃어보인다. 평소에 보던 애교많고 귀여운 미소와는 전혀 다른… 어쩌면 고혹적인 미소. 엘리엇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더니 안경을 빼고 제 눈을 부빈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라는 듯이. 그를 보며 소리없이 웃던 마리네는 흘러가는 연주에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곡의 첫 스텝을 밟는다. 숨이 가득 섞인 정제된 목소리는 운명적인 사랑을 노래한다. 어떤 조짐도 없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 수없이 깨어져도 결국은 서로에게 귀결되는 연인들. 운명의 파편은 알지 못한 찰나에 새어들어오고, 파편에 심장을 찔린 이들은 속절없이 운명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게 됨을. 나긋하고 강렬하게 심장을 울리는 목소리가 저를 묶어두기라도 한 듯, 공연이 흘러가는 내내 엘리엇은 제 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05.
공연이 마친 밤, 늘 공연 후 뒤풀이를 즐기고 돌아오던 마리네는 오랜만에 뒷정리를 끝내고 바로 지상으로 올라왔다. 코끝이 조금 언 것 같은 흰 코트의 연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냉큼 달려가 안겼더니 따뜻한 코트 품을 열어 저를 받아준다. 디 엘리엇은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문다. 마리네의 보컬을 처음 들었던 그 녀석들처럼. ‘그럴 줄 알았다.’ 정확히 이 얼굴로 저를 바라보던 작은 연인을 보면 미안하다는 듯 머리 위에 제 뺨을 파묻고 만다. 바보같기는. 마리네는 이 다음 공연에도 엘리엇을 초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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