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별도 없는 세계에서 - 메이리

메이리가 타임 슬립을 하게 된 경위를 메이리 1인칭 시점으로

그날은 묘하게 화창한 날이었다. 구름 한점 없이 태양빛이 내 등을 따스하게 만들고, 저 건너로 달이 저물고 있는 아침.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불길함의 징조였다. 폭풍전야나 다름없는 징조.

"메이리~, 쉬는 시간에 잠깐 놀지 않을래?"

늘 같이 붙어 있는 것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난 내 친구. 일도 잘하고 아는 것이 많아 나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영 성실하지 못한 것이 옥의 티다.

하지만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이다. 후궁이 아니라 밖에서 만났더라면 친구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서 만났기에 비로소 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아쉬울 정도로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이다.

"으응? 너랑 내 쉬는 시간이 겹치던가?"

"당연히 나는 땡땡이지."

"......뭐?"

그런 시답잖은 잡담을 하...... 아니, 땡땡이는 당당히 말하면 안 되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던 때였다.

"넌 잘생긴 오빠가 있지만 나는 너 말고는 놀아줄 사람이 없단 말이야~."

"치, 친오빠도 아닌데 뭐......."

"아무튼!"

아무튼, 뭐야?

"우정이 먼저야, 사랑이 먼저야?!"

또 이런 쪽으로 넘어간다. 이 친구는 늘 나와 그 오빠와의 관계를 이렇게 해석하고는 한다. 나를 친동생처럼 여기는 그 사람에 대해, 나는 친오빠처럼 여기고 있을 뿐인데도.

우정이고 사랑이고, 그 오빠와는 연애적 감정은 절대 없다고 반박하려던 순간,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응? 무슨 소리지?"

"연애적 감정은 없다는 말은 이 이상 받지 않겠어. 그 우락부락한 남자가 대체 어디가 좋다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땅이 울렸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시 상황은 잘 모르겠다. 옆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멀어진 것 같았고, 손에 들고 있던 일거리는 어느새 놓쳐버렸다.

호주머니에 넣어둔, 어떤 병사가 쥐어준 단검은 아마도 있었겠지만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잠시 잠들어 있었다.

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겟다. 어쩌면 잠든 것이 아니라 깨어있었지만 기억이 몽롱한 것뿐일지도 모르지.

춥고 무서웠다는 사실만이 기억난다. 애초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의 흐름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파도에 휩쓸린 내 몸이 다시 떠오르는 때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아! 아야야......."

눈을 떴을 때, 어째서인지 공중에서 떨어졌다. 그리 높지는 않았으나 조금 찡하고 엉덩이가 아파왔다. 잠시동안 엉덩이 쪽에서 올라오는 아픔을 눈물을 머금고 참았다.

아픔이 가신 후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두운 밤.

구름은 없다.

하지만 별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고개를 올려 보면 동그란 달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시선을 돌려 옆을 보면,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인공적으로 만든 별하늘처럼 반짝이는 빛.

잘 보면 그것들은 무미건조한 건물에서 나오는 빛이다.

내가 아는 '문자'와는 다른 모양새의 글씨들.

길가에 사람은 거의 없고 한적한데, 아마도 탈것으로 분류될 바퀴 달린 물건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속도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나는 그 속도가 무서워 큰 길로 나가기를 포기하고 골목에 숨었다.

"여긴 대체 어느 나라야......?"

나의 어머니는 서쪽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낯선 장소는 그런 곳인 걸까? 서쪽으로 쭉 오기만 해도 이런 이계 같은 곳이 있는 거야?

돌연 자신이 모르는 곳에, 말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는 사실이 제대로 느껴지자 눈 주변이 다시 뜨거워졌다.

밤바람에 몸이 식은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몸이 식어 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공포에 의한 것인지.......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기......."

등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말의 내용은 알아 듣지 못했지만 나보다 조금 연상인 여성인 듯했다.

상체를 뒤로 돌려 올려다보자, 아까 보았던 빠른 탈것에서 내린 짧은 머리의 여성이 있었다. 달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는 그 여성은 마치 달빛을 자유롭게 다루는 신선처럼 느껴졌다.

순간 감정이 북받쳐올라 그 모습이 흐려졌다.

"이, 이곳은 어디입니까?! 당신은......!"

이 말을 상대는 알아 들은 것인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름을 알려 주겠어요?"

그 말은,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어휘도 억양도 특이해서 어딘가의 사투리처럼도 들렸다. 하지만 확실히 알아 들을 수가 있었다. 나는 긴장을 살짝 고, 내 이름을 댔다.

"리, 리 메이리라 합니다."

갈라졌던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보고 안심한 것이리라.

여성은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나는 샤 위에라고 해요. 메이리 양, 나랑 같이 갈래요?"

나는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을 떨어뜨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도 별도 존재하지 않는 날의 밤. 찬란한 빛을 머금은 한쌍의 보름달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후 내 신변은 전면적으로 위에 씨가 맡게 되었다. 조금 죄송하지만, 동쪽으로 외국이라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도중에, 위에 씨의 연인이라는 사람과도 만나게 되었다.

"어........"

"엥? 웬 꼬마 아가씨야, 위에?"

'뭐지, 이 사람? 나, 나.... 또 어딘가로 팔려가는 걸까?'

그의 이름은 안 슈앙. 이름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남성이었다. 제일 눈길이 가는 것은 검게 칠해진 안경, 선글라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식으로서 알고 있었다. 눈부신 빛을 차단하기 위한 안경... 하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정작 중요한 눈이 보이지 않아 기묘한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입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만일... 아주 만약에, 그 달밤에 만난 것이 이 사람이었다면 예전에 가르침받은 호신술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상대이니 별 효과도 없었겠지만.

그렇게 나는 슈앙 씨와 만나고서야 내 상황을 대강 알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이곳은 내가 살던 시대와 동떨어진 미래라는 것. 내 이야기가 맞는다면, 그 시절 사람들은 이 시대에 남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설명을 들었더니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돌아가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애당초 내가 있던 그곳은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뭐, 이런 식으로 억지로 나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이런 사고가 벌어진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다만, 이러한 정보는 주월이라는 단체 밖에 흘려서는 안 되는 정보라고 한다. 나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피해자이므로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을 하고 듣고 있는 것이지만, 원칙상 피해자에게도 보통은 알려주지 않는다고. 어차피 나는 이 정보를 떠벌릴 상대도 없기 때문에 가볍게 끄덕였다.

시대도 장소도 너무나 멀어진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 나는 그저 불안정한 배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며칠.

내 걱정과는 다르게 이곳은 꽤 편안한 장소였다. 어쩌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나에게만 편안한 장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좋은 사람 중 하나가 나토리 선생님이다.

그는 슈앙 씨의 소개로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뀐 나를 위해 상담...? 을 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굉장히 유능한 그는 외국인임에도 이 나라의 언어를 할 줄 알고(슈앙 씨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나와 같은 언어로도 소통할 수 있다. 하나, 둘, 셋... 세 가지 언어를?!

"메이리 양, 이건 어린이들이 읽는 그림책이에요. 공부를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와아!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내가 이세계에, 나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와주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도움을 주는 어른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법은 어깨 너머로, 혹은 친구에게 가볍게 배웠을 뿐이었는데.

나토리 선생님. 그의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는 언제나 상대를 흐림없이 담고 있다. 그 맑은 눈빛에, 나는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위에 씨와 나토리 선생님의 도움으로 조금씩 언어를 학습해갔다.


'음, 사과, 포도....'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쓰면서 어휘를 익히던 날이었다. 슈앙 씨가 운영하는 가게 한구석에서(처음 들어온 것이라 어색하지만 편하게 있으라고 들었다) 그림과 글자를 번갈아보며 중얼중얼 외우고 있었다.

그런 때.

"으음? 초콜릿...?"

"엉? 이거 먹고 싶냐? 자."

낯선 모양새의 그림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따라 쓰고 있자니, 갑자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나와 또래로 보이는 소년의 손에는 먹을 것이 한가득 쥐어져 있었고 그중에 하나를 나에게 양보하듯 내밀었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교재에 그려진 것과 같은 물건인 듯싶었다. 형태 자체는 다르지만 매끈한 갈색의 고체, 라는 점이 같았다.

이 소년은 주월에 새로 들어온 인원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이 소년 또한 외국에서 온... 어, 어쩐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 나라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어째서 전부 외국에서 온 사람이지...?

"고마워요, 하오 군."

"난 똑같은 거 하나 더 있거든! 사양말고 받아! 근데 너 이름 뭐였징?"

들고 있던 연필을 내려두고 그 신기한 간식을 받아들었다. 초콜릿, 초콜릿...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리 메이리, 메이리예요."

"그랭? 그럼 메이라고 부른다!"

"마음대로 하세요."

어쩐지 개구진 구석이 있느 소년은 마음대로 별명을 붙였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별로 상관하지는 않는다. 갑자기 다르게 부르기 시작해도 좋고.......

그러고 보니 초콜릿... 아, 기억났어!

(저건 서방에서 들여온 과자인데, 상급 비나 황후마마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드신다나 봐.)

(잠이 잘 오게 되는 과자인가? 따뜻한 차처럼?)

(메~이리이....... 그래, 너는 아직 저 과자의 효능을 모르겠지. 들어봐, 저건.......)

그런 대화가 떠올랐다.

떠올랐지만, 얼어붙어버린 내 옆에 있는 이 소년...... 하오 군은 아무렇지 않게 초콜릿을 먹고 있다. 아니, 이미 먹고 다른 간식거리를 꺼내들었다. 덧붙여 이 초콜릿에는 어린아이가 그려져 있다. 혹시, 이건 아이들이 먹어도 상관없도록 개량된 물건일까?

나는 포장을 뜯어서 짙은 갈색의 봉을 들어 한입 베어물었다.

"......!"

마, 맛있어.......

생전 처음 느껴보는 달콤함과 쌉싸름한 맛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입 안에서 녹는데로 맛이 길게 남아있다. 은은하게 남은 그 맛을 가만히 감상하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신기한 과자라고. '그런 효능'이 진짜 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있더라도 나중에 생각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약간 졸리던 머리가 갑자기 각성된 느낌은 있었다. 이건, 잠이 안 오게 되는 과자일까...?

그렇게 초콜릿을 먹으며 문득 이 새로운 경험을 고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졌다. 여기서 본 것, 들은 것, 먹은 것, 그리고 만난 사람들........

"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첫날을 제외하면 꽤 얌전했던 눈물샘이, 이상한 순간에 터져버린 것이다.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닌 그곳에서 나를 봐주던 그들을 더는 만날 수가 없다. 내가 경험하는 현재는 그들에게 있어서 죽은 후에야 도달할, 아득히 먼 미래다. 그 사실만큼은, 며칠 전의 나에게 있어서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직 덜 먹은 상태인 초콜릿을 든 상태로 조용히 울고만 있었다.

"뭐야? 울 정도로 맛있어? ㅋ모 초콜릿이?"

"그게 아니, 흑... 푸, 흡......?!"

아까보다 먼 곳에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돌아보자, 하오 군은 벌써 간식이 아니라 주식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슈앙 씨가 이제 그만 먹고(먹고 앞에 무언가 덧붙인 것도 같지만) 나가라는 소리와 왜 우냐는 소리를 번갈아 외치고 있다.

입 안 가득히 음식을 집어넣고는 꿀떡 삼킨 후 나에게 말을 거는 하오 군의 모습이 조금, 웃기게 보여서 울다 말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푸하항!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뭐 난다던데~!"

"어.......?! 무슨 소리예요?!"

"그만 처먹고 나가란 소리 안 들리냐? 엉?!"

순식간에 나를 포함한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만약에 있었다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먹는 데 집중이 안 될 테니.

"뭐야?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그러던 중에 가게 안쪽의 방에서 사람이 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죽였지만 두 사람과는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남성은 내 쪽을 돌아보고, 살짝 움찍한 것처럼 보였다.

'어, 이 사람, 눈이.......'

눈은 마음의 창.

저 눈동자는 본 기억이 있다. 양쪽이 다른 색으로 강하게 빛나는 질긴 생명의 눈.

그밖의 외견은 다르다. 머리색도, 모양도, 체격도.......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요소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과 겹쳐 보였다. 나를 친동생처럼 여겨주던.......

"아~ 메이? 난 얀이라고 해. 잘 부탁, 한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하는 그...... 얀 씨였다. 얼굴형이 조금 서방 사람들과 닮은 듯한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네, 잘 부탁해요, 얀 씨."

대화라는 건 서로 눈을 바라보고 하는 것. 하지만 나는 이 사람의 눈을 보고 '얀 씨'와 대화를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의도하지 않은 눈물을 흘렸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애를 왜 울려, 망할 제자?!"

"아, 안 울렸거든?! 내가 안 울렸다고! 아놔, 억울해 죽겠네!"

얀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눈물은 잘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울다가 겨우 멈췄다.


한동안은 얀 씨를 피해 다녔다. 이유는... 상대를 오로지 그 사람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해서, 그리고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얀 씨가 거북해서. 상대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첫번째 이유는 내가 신경이 쓰였고 두 번째 이유는 나아가서 미안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메이야, 하오 저 자식한테 붙을 바에는 나랑 다니는 게 안전하지 않겠냐?"

"야~ 이 지루한 걸 잘도 하네......."

"야야, 너는 스승같은 사람도 잘 대하면서 나는 왜 피하냐? 솔직히 면상은 스승보다 내가 더... 악! 왜! 맞는 말 해는데 뭐!"

......어쩐지, 성격마저 그 사람과 비슷한 것 같다. 아니, 그 사람은 더 침착하긴 했지.

그리고 나를 별명으로 부르는 이유도 다른 듯했다. 내 추측이지만 얀 씨는 내 이름을 정말로 '메이'로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원래 알던 그 사람보다 조금, 지력이.......


"메이리, 우리 집에서 생활한 지 꽤 되었는데 불편한 데는 없나요?"

"아뇨, 충분할 만큼 받고 있습니다......!"

위에 씨는 내가 이곳에 거의 영구적으로 체류하게 될 것을 알게 된 이후로도 나를 좋게 대접해주고 있다.

단순히 의식주를 보장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이곳에 적응하도록 돕거나, 사치품을 누릴 수 있게 하거나... 그래서 지금껏 꿈도 못 꿔왔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선언했다.

"이대로 받기만 하는 건 너무 죄송한 일이라, 원래부터 잡무를 해왔으니 여기서도 집안일을 돕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음......."

위에 씨는 고민에 빠졌다. 혹시 또 이 시대의 상식과는 어긋난 말을 한 걸까?

하지만 고민 끝에 나온 위에 씨의 말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그럼 이렇게 해요. 이 집은 넓으니까, 메이리가 방 하나의 청소나 관리를 담당하는 거예요."

"네! 맡겨주세요!"

"대신 그냥 일만 시키기에는 뭐하니가, 그 방은 마음대로 써도 좋답니다."

나에게 일이 생겼다. 그 사실에 안심을 느낀 나는 곧장 깨닫지 못했. 위에 씨의 상냥한 음모에 보기 좋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그건 그냥 저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신 것뿐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대신, 슈앙 씨의 가게 일을 돕게 되었다.

"허...... 돕느다고 해도 꼬마 아가씨가 할 만한 일이 있을지......."

"청소나 설거지는 원래 하던 일입니다. 시켜 주시면 잘할 수 있어요."

위에 씨의 사용인들을 통해 이미 이 시대의 물품은 숙지해뒀다. 이상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슈앙 씨의 목 부근을 올려다 보았다. 아, 아직 눈을 마주치는 건 좀.......

"흐으으음......."

기묘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기다렸다. 처음 보았을 때 두 사람은 특이한 조합의 연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앗, 그럼 이번에야말로 이상한 꾐에 넘어가지 않게 조심해야지......!

"그럼 일단 서빙을 해볼래? 주방에서 식탁으로 옮기는 거다."

"......네!"

열심히 하자, 그렇게 다짐하던 중이었다.

"참 특이한 애네. 귀찮은 일을 일부러 맡고 싶냐?"

가게에 들어온 얀 씨가 그런 말을 했다. 문지기 일을 지루해하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원래 일만 하던 삶을 살았으니가요. 평소 생활을 바로 바로 바꾸는 건......."

"하긴 나도 갑자기 또 학교 가라면 못 가긴 하지!"

내가 말하는 도중에 멋대로 납득하며 호쾌하게 웃는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내가 괜찮다고 하니 곧 안심한 얼굴을 한다. 미묘하게 다른 반응이지만 눈을 마주치면 떠오르곤 한다.

그의 행동이 별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역시 과거가 떠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요."

"그랬군요. 과거에 만났던 이와 매우 닮은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피하게 된다는 것이죠?"

아직 살아온 세월은 짧지만, 이런 고민은 누군가에게 털어놔야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나토리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조금은 사양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것이 자신의 일이라며 괜찮다고 하셨다.

"메이리 양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나요?"

"저는......."

나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두고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기에 쓰거나 가끔 떠올리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마주하고 싶다. 설령 내 눈이 틀리지 않았고, 그의 영혼이 얀 씨라는 몸을 얻은 것이 맞는다고 해도 얀 씨는 얀 씨다.

나는 그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얀 씨라는 사람을 보고 싶다.

그렇게 대답했더니 나토리 선생님은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참 생각이 깊군요, 하고 말했다.

전에도 들었던 말이다. 친구였다. 그애는 솔직히 귀찮다는 평이었다. 뭐든 깊게 생각하고, 상처받고, 울어버리는 사람. 자기보다 남을 챙기는 버릇 때문에 내가 더 힘들다, 라고. ......그건, 걱정해주는 거였지? 맞지?

그리고 그 사람은.......

"죄, 죄송합니다. 또 눈물이......."

"감정이 북받쳐오를 때 그걸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에요, 메이리 양."

그래,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괜히 속내를 숨기는 궁 안의 사람들보단 알기 쉬워서 좋다"라고.

"원래, 사람은 사람을 한꺼풀 너머로 볼 수밖에 없어요."

나토리 선생님은 조심히 말을 고르며 나에게 설명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선입견이라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도 눈앞의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라고.

"메이리 양은 과거를 잊어버리지 않은 채 살아갈 거라고 했죠?"

"......네!"

조금 제멋대로 인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그 사람과 같은 영혼을 지닌 그 사람이라면 용서해줄 것 같았다.


"으아아악! 스승이 제자 죽인다!"

그 날도 시끌벅적했다. 사건의 전말은 모르겠지만 언제나처럼 무언가 사고를 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슈앙 씨는 나나 위에 씨, 나토리 선생님에게는 조심스럽게 대하고 강하게 나가지 않는데 얀 씨나 하오 군에게는 망설이지 않고 손을 올리는 것 같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지켜본 결과, 친가인 상회에 있던 시절이 떠올라 별로 이상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때도 뭐, 훈육을 위해서는 봐주는 분위기였으니까.......

"어머나, 얀 씨가 그 정도로 죽을 위인이던가요?"

"위......? 뭐야, 어려운 말 쓰지 마! 메이! 스승한테 한 마디 해달라고!"

"사제 사이에 오가는 정도의 폭력은 괜찮다고 봐요."

조금씩 이 세계를, 구름도 별도 없지만 밝게 빛나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아, 물론 마지막에 한 말에 대해선 나토리 선생님이 기겁하면서 그건 절대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후에도 멋진 만남은 이어졌다.

처음으로 만난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자, 나에게 많은 지식을 가르쳐주는 동춘 선생님.

선생님이 나와 함께 가르치면서 인연이 깊어진 친구, 옌허와 류싱 씨.

슈앙 씨를 제외하면 없을 줄 알았더니 일상적으로 가면... 헬멧을 쓰고 있던, 그렇지만 호쾌하고 상냥한 뤄징 씨.

그들과 만나고 나 또한 점점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보다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태양과 달이 공존하는 어느 행복을 부르는 아침의 이야기였다.


메이리가 살았던 시대를 적당히 묘사하고 오게 된 경위(라고 해봤자 검파란의 신비 현상이지만)와 정착하는 과정을 썼던 연성.

지금은 아버지 어머니 오라버니...에 그냥 하오인데 슈앙 씨 위에 씨 얀 씨 하오 군이라니 지금 타이핑하자니 너무 어색함......

나토리의 상담 파트는 제... 상상에 맡겼습니다. 그래서 고증이 망한 게 당연합니다. 죄송합니다.

중간중간 추가한 부분은 있지만 소소하게 말투를 바꾸거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묘사를 추가한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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