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게일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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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편지

[발더스 게이트 3][게일타브게일]

다글 발더게 by 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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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타브와 게일 연성이니 다른 사람들의 타브하고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내 타브는 하프 드로우 복수의 맹세 팔라딘 남성입니다.

*나레이터: 네더브레인을 물리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긴 여정은 끝났고, 그건 누군가는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모았던 잡동사니와 옷가지, 생선 머리 등을 정리해야한다는 뜻이지요. 짐을 정리하던 당신의 손끝에 종이 뭉치가 닿았습니다. 마지막 전투 며칠 전에 당신이 연인 게일에게 길게 쓴 편지네요.* 

<지능 판정: 실패>

*당시에 너무 정신이 없었기에 이렇게 길게 글을 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대체 뭐라고 쓰여있을지 긴장하면서 말려있는 종이를 곧게 펴봅니다.*

내 사랑에게,

노틸로이드에 납치된 다음부터 많은 일을 겪고 함께 해 왔지만, 내가 항상 우리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내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했어. 내 자신을 너무 숨기기만 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린이 죽은 후 긴박한 지금 이 시간 엘프송 선술집 2층에 있는 우리 방에서 맥주나 한잔 하며 긴 이야기를 하는 건 부적절하지 않을까 싶었거든. 당신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아직도 혹시 만약 내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일어날 일들이 계속 마음 한 켠에 무겁게 남아있어. 난 당신만큼 언변이 유창하지 않아서, 말로 하는 것보단 당신에게 이렇게 글로 남기는게 더 나을 것 같았어. 

나는 네버윈터와 러스칸 사이 작은 마을에서 드로우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어. 막내였고,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형제자매 몇은 독립을 한 상태였지. 아버지는 드로우니까 햇빛에 약해서 밤에 양을 지키는 양치기였고, 어머니는 밀밭을 가꾸셨어. 아버지가 원래 언더다크에서 어디 도시 출신이었는지, 귀족이었는지 평민이었는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에 대해 말을 해주지 않아서 나는 추측밖에 할 수가 없어. 그저 아버지께서 굉장히 미남이었는데도 위로 올라와서 어머니랑 결혼한 걸 보니, 아마 평민이거나 천민이었는데 자신의 삶이 싫어서 도망온 게 아닐까 싶어. 사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아. 그보다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기억이 더 많지. 독립한 형, 누나들 말고도 내 위에는 형이 둘, 누나가 셋이었어. 

아버지가 왜 네버윈터가 아니라 하필 우리 작은 마을에 정착했는지는 모르겠어. 자라날 때 드로우는커녕 다른 엘프나 하프 엘프도 본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거길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9살 때 처음으로 마을에 흉년이 들었어. 힘들었지. 그렇지만 우린 어떻게든 해냈어. 하지만 다음해도, 그 다음해도 흉년이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누나 한 명이 심하게 병에 걸려서 앓다가 세상을 떠났어. 그런 상황에서 어렸고 약골이었던 나는 별로 쓸모가 없었고, 결국 형과 누나 치료비 대신 나는 일메이터의 수도원에 보내졌어. 그때는 많이 슬펐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해. 나는 어머니의 한숨소리와 아버지의 시선이 계속 다른 곳으로 피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거든. 

수도원 생활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어. 아, 먹을 게 나오고, 쉴 곳이 있는 건 정말 행복했어. 그래도 너도 봤겠지만, 일메이터의 신도라고 해서 다들 개방적이고 착하지만은 않거든. 다른 하프 엘프 아이들이나 수도사들도 있었지만, 하프 드로우는 나 혼자였으니까. 게다가 다른 애들은 이미 다 깨우친 글을 제대로 못 읽고, 셈을 처음 해보는 나는 괴롭히기 쉬운 표적이었겠지. 20살이 되었을 때 나는 수도원 생활에 정말 지쳐 있었어. 맨날 고통을 참으라,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나만 차별받고 고통받는 게 대체 일메이터의 뜻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매일 했었지. 그래서 나더러 러스칸쪽으로 가면서 주변 마을을 돌며 봉사라도 하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내심 기뻤어. 러스칸 치안이 얼마나 안 좋은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떻게 보면 날 골탕먹이려고 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향 마을에 들려서 여차하면 눌러 살까, 나는 이제 다 컸으니 뭐라도 할 수 있겠지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도착하기 전부터 뭔가 이상했어. 멀리서 보는데 굴뚝에서 피어올라야 할 연기도 없고, 오랫동안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는지 샛길이 황폐했거든. 이상해서 가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라. 양들도, 밀밭도, 집도. 싹 다 불타 있었어. 꽤 시간이 흘렀는지 인골도 다 부숴져 있고, 떨어진 무기나 옷도 없었어. 내가 찾은 건 그저 망가진 드로우 화살 하나였는데, 아버지는 그런 화살을 쓴 적이 없기에 아마도 드로우 공격으로 폐허가 되지 않았나 싶어. 그거랑 우리 집이 있었던 곳에 드로우 해골 하나가 막대에 꽂혀 있었어. 아버지의 호루라기 목걸이가 막대에 묶여 있어서, 아버지인 줄 알아볼 수 있었지. 어머니는 물론이고 다른 형, 누나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러스칸과 네버윈터는 물론 얄타, 발더스 게이트, 언더다크까지 찾으러 다녔는데 어디서도 못 찾았어. 

그리고 나는 그 때 복수의 맹세를 했어. 어떻게, 누구에게 했는지는 모르겠어. 그저 복수를 다짐했고, 내 마음은 물론 영혼 깊은 곳까지 뭔가에 매이는 기분이 들었어. 그렇게 팔라딘이 된 거야. 골골대던 어린애가 모든 병과 독에 면역인 팔라딘이 되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길 때가 있어. 그게 벌써 40여년 전이네. 난 생각보다 나이가 많거든. 그러고 나서 다른 팔라딘들하고 같이 다녔지. 가족같지만 가족은 아닌 채로 함께 했는데, 그래도 많이 정이 들었어. 꿈속 방문객이 그때 처음으로 사귄 친구 중 한 명과 흡사한 모습으로 나타난 걸 보면 그때의 추억이 내게 깊게 새겨진 모양이야.

가끔 그 때 다른 맹세를 했으면 이라는 상상을 조금 해.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오자 사람들 이제야 원한을 풀었다고 행복해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왜 후련하지 않은지 혼란해하는 모습도, 내가 피에 젖어서 돌아온 모습을 보자마자 코를 쥐고 눈을 찡그리거나, 더 심하게는 구토를 하는 모습도 봤어. 사람들은 팔라딘이 앞뒤 재지 않고 상황에 돌진한다고 생각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복수의 맹세를 하면 더욱 신중해야 해. 속이기 쉽거든. 일어나지 않은 일을 꾸며내서 저 사람이 내게 해를 가했으니 죽여 주세요, 라고 말하기가 정말 쉽잖아. 그렇게 맹세를 어기는 팔라딘을 몇 봤어. 다른 맹세를 했으면 달랐을까? 후회하진 않지만, 궁금하긴 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봤고, 너무 많이 지쳐 있었어.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해골을 보면서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쥔 채 맹세를 한 어떤 청년의 모습을 되새기곤 했지. 그게 날 지탱해줬지만, 행복하게 하진 않았어. 세상이 너무 많은 고통과 끔찍함으로 가득차 있어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지. 그래서 노틸로이드 함선에 납치당하기 전 몇주간은 그냥 이러다가 내가 죽어도 나쁘진 않겠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다가 죽으면 그저 받아들여야지, 이런 황폐한 시선으로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어. 우물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하늘에서 뭔가 엄청난 소리가 나더니, 그 다음에는 뭐…. 납치당했지. 내가 일리시드가 될 수 있다는 거야. 그것만은 싫었어. 우글거리는 촉수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는 차치하고도, 내가 내가 아닌 뭔가로 변한 채 계속 존재한다는 것이 참기 힘들만큼 역겨웠거든. 레이젤이 내 목에 칼을 들이댔던 날이 기억나는지 모르겠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어. 만약 내가 그 이상으로 세레모포시스 징후를 보였다면 난 그자리에서 내 가슴에 단검을 꽂아버렸을 테니까. 나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삶을 끝내고 싶었어. 내 맹세를 행하고, 내 할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은 괜찮았지만, 오징어가 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그리고 내 삶에 네가 나타났어. 마법을 사랑하고, 뭔가에 꽂히면 그 주제로 계속 말을 이어나가는 너 말이야. 

난 내 일이 날 지치게 했기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도 계속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브에 대해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 비록 미스트라에게서 쫓겨났고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너는 위브를 놓지 않았지. 네가 마법은 음악과 미술과 아름다움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다고 아련하게 말했을 때 설레기 시작했던 것 같아. 널 사랑해. 네 수다도, 어색해하면서 눈을 돌리는 모습도, 위브에 관련한 것이라면 어린애처럼 신남이 가득한 목소리도, 네가 요리하기 전에 식재료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모습도. 내게 워터딥에 있는 네 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더 신기한 걸 해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나는 게일이라는 남자면 충분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 정말이야. 나는 너를 사랑해. 워터딥의 위대한 마법사가 아니라, 게일 데카리오스라는 한 남자 말이야. 내게 내 직업이란 행복보다는 의무 같은 거라, 위브에 매료된 너를 보면 내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야. 너를 통해서 나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거든. 

그래서 걱정되는 게 하나 있어. 나는 네가 카서스의 왕관을 미스트라에게 돌려주리라 믿고 있어. 그런데 만약 내가 이 전투에서 쓰러진다면 어떻게 될까 염려가 커. 만약 네가 나를 살리려고 카서스의 왕관을 찾아서 신이 된다면 나는 내가 사랑했던 남자를 영원히 잃게 되니까. 네가 미스트라에게 다시 돌아가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 1,300년을 산 엘민스터를 보다시피, 위저드는 오래 사니까. 내가 네더브레인과의 싸움에서 쓰러지든, 그 이후 어떤 연유로 칼을 맞든, 시간이 지나서 노화로 죽든, 내가 너보다 일찍 죽을 텐데, 그러면 네가 너무 슬퍼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내게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하는 너를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나는 이미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고, 정말로 내가 노화로 죽는다면, 나는 네가 그것 역시 극복하고 미래를 살아갈 선택을 하리라 믿어. 우리의 여정에서 우린 계속 미래와 희망을 따라 인생을 계속 꾸려나가는 선택을 해왔잖아. 

그러니 만약 내가 쓰러지더라도, 절대로 왕관을 다시 만드려 하지 말아줘. 내가 사랑했던 게일 데카리오스라는 인간 남자로, 남아있는 네 인생을 계속 살아줘. 이기적인 부탁일 수도 있지만, 내 마지막 부탁이야. 

사랑하는 타브가. 

*나레이터: 다행히 이 편지는 보낼 일이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은 살짝 민망해하며 편지를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습니다. 언젠가 기억이 날 때 처리하겠죠.*

소장용 유료분입니다! 밑에는 가내 타브설정이 조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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