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3] Wand Stick Game!
빼빼로데이 기념 연성
* 발더스게이트3 아스타리온xOC 글연성입니다.
* OC(타브) 이름은 '엘(Elle)'입니다. 이 글에서는 엘이라고 지칭합니다.
* 시점은 3막 진행 중으로 아스타리온 개인퀘스트 '창백한 엘프' 완료 비승천 루트 이후입니다.
* 빼빼로데이 기념 바보 커플 단문입니다.
* 유치한 개그 주의. 캐릭터 설정 붕괴와 날조에 주의!
** 가내타브 엘의 설정 정리는 이쪽 링크 참조:
“어서 오세요! 둘러보고 가세요!”
떠들썩한 장내, 각양각색의 음식들과 수공예품, 옷과 장신구 등 사람들이 한번쯤은 혹해서 돌아볼 만한 물건들이 좌판 위에 늘어선 채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은 발더스게이트 정도의 대도시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시장 광경이었다.
하루가 마무리되기 전 야영지의 부족한 물자 등은 그때그때 담당을 따로 정해 간단하게 장을 보는데, 오늘의 담당은 아스타리온과 엘이었다. 여정이 길어지면서 식구들이 늘어난 탓일까, 이렇게 따로 물자를 구하는 시간이 필요해질 정도였기 때문에.
“난 식사도 안 하는데 굳이 이런 잔심부름까지 꼭 내가 해야 돼?”
“그 핑계로 야영지에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주제에 겨우 이 정도로 볼멘소리 하지 마.”
“빨래는 내가 하잖아.”
“네 것만 하잖아!”
평소대로 티격태격대며 걸어가는 두 사람의 걸음이 인파 때문에 느려진다. 오늘은 어떤 가게에서 무슨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는지, 유달리 쾌활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재밌고 간단한 게임 한번 해보실래요? 특별 이벤트입니다!”
호객꾼으로 보이는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손짓한다. 아스타리온이 무심코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기지만 엘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엘, 저기서 뭐 한대.”
“한눈 팔 시간 없어. 빨리 살 거 사고 돌아가서 쉬고 싶다고.”
“뭔가 상품이 있다는데, 너 이런 거 좋아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호객꾼 앞으로 이동해버린 엘이었다.
“상품이 뭔데? 금? 보석? 매직 아이템?”
“어엇…, 하하, 죄송합니다만 그런 건 아니고, 저희 가게 특제 디저트랍니다.”
호객꾼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엘의 표정이 역력히 실망과 짜증으로 물들었다.
“아, 뭐야. 별 거 아니잖아. 괜히 시간만 잡아먹었네.”
“오, 과연 그럴까요? 저희 가게가 자랑하는 디저트는 발더스게이트를 넘어 워터딥, 앰까지 유명세를 떨치는 시그니쳐 푸드죠!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어 먼 데서까지 이걸 찾아 오는 손님들도 많답니다!”
눈을 빛내며 상품의 내용물을 탐내는 손님의 박력에 잠시 움츠러들었던 호객꾼은 흥미를 잃고 떠나려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한 듯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상품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우승자에게는 무려! 십인 분 분량을 제공해 드립니다!”
“흠, 약한데……. 디저트 말고 일반 식사용 음식은 없나?”
“큭…, 손님 정말 만만치 않으시네요. 좋습니다. 손님께는 특별히 추가로 챙겨드리도록 하죠.”
엘은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답이 나왔다는 듯 교활하게 웃었다.
아스타리온이 뒤따라오면서 눈썹을 치켜세웠다.
“진짜 하게? 빨리 돌아가고 싶다며?”
“음식이 공짜라잖아. 어차피 장볼 시간과 돈을 절약한다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이걸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야 돼, 쪼잔하다고 해야 돼?”
“당연 전자 아냐?”
투닥거리는 사이, 가게 직원이 나와 두 사람의 게임 참가 의사를 확인하고 (“뭐? 나도 참가하는 거야?!” 아스타리온이 황당한 듯이 말했다) 테이블로 안내하고서는 세팅을 시작했다.
“룰은 간단합니다. 두 분이서 저희 가게 특제품인 이 완드 스틱(Wand Stick)을 드시면 됩니다. 완드 스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완드 모양으로 한손으로 집어 먹기 좋게 만든 과자로, 길다란 쿠키에 초콜릿맛, 과일맛 등 다양한 코팅을 입혀 하나하나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게 고안된 저희 가게만의 시그니쳐 푸드랍니다! 하지만 그냥 드시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고, 두 분이서 한 개의 완드 스틱을, 손을 쓰지 않고 입으로만 드시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술렁였는데, 이 술렁임을 즐기듯이 직원은 한 번 일부러 사이를 두었다가 설명을 계속했다.
“따라서 이 게임은 2인 1조로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내에 가장 짧은 길이를 남긴 팀이 이기시는 겁니다. 남긴 것 없이 전부 먹어버려도 무효입니다. 시간 내에서만 이루어진다면 기회는 무제한입니다! 다만 과자 비용은 우승 팀에게만 무료이며, 다른 분들은 아쉽게도 드신 값을 지불하셔야 하는 점 주의해 주세요!”
아무리 살펴봐도 소비자보다 판매자의 이득이 절대적으로 큰 전형적인 상술 이벤트였으나, 보통 사람들은 마땅히 지불해야 할 값을 면제받고 희박한 확률로 주어지는 특혜에만 관심을 쏟고 실패했을 때의 손실에는 눈을 돌려버리는 법이다. 다만 엘은 그 ‘희박한 확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험이 숱하게 있는 이였다.
“단, 작은 규칙을 하나 두겠습니다. 만약 참가하시는 두 분이 부부거나 연인 관계시라면 너무 쉽기 때문에, 약간의 페널티가 부과됩니다. 실제 기록에서 5mm가 늘어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거짓을 말씀하셨다가 나중에 발각되시면 게임 참가 자체가 무효화되므로 주의해 주세요.”
아스타리온은 엘이 대놓고 혀를 차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도대체 얘는 왜 이렇게나 진지한 거야?
규칙이 전부 공개되자 가게 직원들은 테이블마다 돌며 게임 참가 의사를 재확인하고 참가 인원의 관계를 간단하게 물었다. 어차피 재미로 벌이는 이벤트에 지나지 않으므로 딱히 엄격하게 확인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스타리온은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엘을 쳐다보았다. 과연 어디까지 하나 두고 보자는 마음이 컸다.
가게 직원이 둘의 테이블에도 다다르자, 엘의 눈빛이 변했다. 아스타리온은 그것이 늘상 보던, 엘이 일한 뒤 보수를 더 뜯어내고 싶을 때, 혹은 남을 속여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낼 때의 눈빛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녕하세요! 확인 차 질문 드리겠습니다. 게임 참가자분이시죠? 실례지만 두 분은 부부나 연인 관계이실까요?”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눈 한 번 깜빡이지도 않고 심지어 은근한 미소까지 입가에 걸친 채 뻔뻔하게 말하는 엘을, 아스타리온은 여태껏 보인 것 중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웃음을 얼굴에 띄운 채 지켜보았다. 어찌나 멋진 웃음인지 가게 직원은 두 사람의 훌륭한 우정과 동료애에 감탄하며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친절하게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흐응, 아니구나.”
턱을 괸 자세를 유지한 채 아스타리온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화났어?” 엘이 물었다.
그걸 굳이 물어보는 저 둔감함은 어찌 보면 일종의 재능인가? 아스타리온의 웃음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예와 같이 완벽했다.
“내가 왜?”
“넌 음식을 먹지 않으니까. 그치만 작은 과자 같고 대충 먹는 척만 하면 되지 않을까 맘대로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려나?”
순간 삐끗 자세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아스타리온은 테이블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포인트가 그거야??
“야, 괜찮아? 역시 관둘래?”
평소라면 기꺼웠을 저 걱정스러운 말투조차 지금은 짜증나게 거슬려서, 아스타리온은 평정심을 되찾을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괜찮아. 하자. 조그만 과자쯤은 먹어도 상관없어. 도저히 무리다 싶으면 네 말대로 대충 척만 하고 몰래 버려도 되니까.”
눈에 띄게 밝아지는 엘의 얼굴을 솔직히 한 대 후려치고 싶었으나 꾹 참는 아스타리온이었다.
곧 테이블마다 완드 모양의 과자가 준비되었다. 초콜릿, 과일, 캐러멜 등등 다양한 맛의 디저트가 종류별로 마련되어 있었다. 우승자를 제외하면 고스란히 값을 지불해야 함을 나타내는 계산서와 함께.
게임 개시 신호와 함께 모든 테이블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커플이 아니라면, 아니 커플이어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놓고 하기에는 상당히 민망한 모양새라 대부분은 부끄러움과 어색함에 져서 진행이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속도가 현저히 느리거나 중간에 실패해버리곤 했지만, 엘과 아스타리온은 단언컨대 ‘대부분’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족속들이었으므로 진행은 무척 순조로웠다. 친구들 보는 앞에서 입을 맞추거나 야외에서 몸을 섞은 경험도 있는데 이깟 유치한 게임 따위 뭐가 대수랴. 합리적인 이유와 상황만 전제된다면 지금 당장 옷을 벗어야 한다 해도 그렇게 할 사람들이었다.
엘은 그렇게 길지도 않은 완드 모양의 과자를 입에 물고 씹기 시작했을 때에도, 가까이 다가오는 상대의 얼굴을 인식했을 때에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이겼을 때 절약될 식비와 물자, 앞으로 며칠 정도 분량의 식자재 계획을 세울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 천연스러운 태도가 무너진 것은 거의 코앞까지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아스타리온의 눈빛을 정면에서 맞닥뜨리고서였다.
‘어라? 엥?’
결코 짧지 않은 교류로 둘은 굳이 머릿속 기생충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 정도쯤은 읽어낼 수 있었기에, 엘은 이 시점에서 적잖이 당황한다. 아스타리온은 틀림없이 자신을 원하고 있다. 지금? 여기서?? 방법이나 타이밍 따위의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아스타리온의 살짝 아래로 내리뜬 눈매나 물기 어린 듯 반짝이는 새빨간 색의 눈동자는 감정과 욕망을 조금도 감추려는 의도 없이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고, 구태여 엘이 아니더라도 이 눈을 본 사람이라면 그 노골성에 얼굴을 붉히고 말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엘은 이 눈빛에 무척이나 약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한 몸의 유혹이나 감정의 조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무덤 앞에서 진심을 고백했을 때 처음으로 보였던 그 눈빛과 똑같았으므로.
거의 입술이 닿을 만치까지 가까워지자 아스타리온은 더욱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고, 엘은 결국 사고를 정지하고야 말았다.
바삭.
과자 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엘은 자기 입 안으로 들어온 달콤한 맛을 먼저 느끼고, 뒤이어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촉감을 감각했다. 아스타리온이 살짝 멈칫하는 것 같았지만, 한 번 느낌을 받자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척 먹고 싶어했던 사탕을 입만 댔다가 빼앗긴 어린애처럼, 엘은 다소 성급하게 그의 입술에 자신의 것을 깊이 묻었다. 아스타리온은 엘이 깊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나자 한 손은 상대의 뺨에, 한 손은 목 뒤를 감싸면서 끌어안았다. 으읏. 누구 것인지도 모를 얕은 신음 소리가 서로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당연히 게임은 패배했다.
“아악—!”
시장을 벗어나자마자 엘은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무릎을 감싸안았다. 상품을 타기는커녕 원래 목적이었던 장보기도 하나도 못 했고, 게다가 쓸데없는 비용 지출로 예산 초과. 평생 울어본 적이 손에 꼽는 엘이지만 이번만큼은 하나 더해도 좋을 정도였다.
“자기야, 피곤한 건 알겠는데 야영지 돌아가서 앉으면 안돼? 나 슬슬 지치는데.”
“이게 지금 누구 때문인데 뭘 뻔뻔하게 투정을 부리고 있어?!”
엘이 바락대자 아스타리온이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 때문이긴? 자기 때문이지.”
“⋯⋯나 지금 진짜로 살의가 피어올랐다.”
“진심이야? 완전 억울한데?”
아스타리온은 충격받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까지 비틀거렸다.
“먼저 달려든 건 자기면서 왜 내 탓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야 이……! 너, 네가 먼저……!”
“난 게임에 충실했다고? 딱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멈췄단 말이야. 근데 네가 과자를 삼켜버리더니 먼저 다가오던데? 아휴, 나도 깜짝 놀랐지 뭐야?”
말문이 턱 막힌 엘은 필사적으로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재현했다. 그랬나? 왠지 멈칫거린 것 같기도 했고? 아니, 하지만?! 아닌가??
그러나 일찌감치 사고가 정지해버렸던 엘은, 일의 순서를 똑바로 기억해내기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우린 부부도 연인도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걸 진짜로 할 리가 없잖아? 설마 네 쪽에서 덮쳐올 줄은 몰랐지만.”
아스타리온이 예의 그 완벽한 웃음을 지어보이면서 말했다. 엘은 입을 떡 벌렸다.
“너, 너…… 설마 그것 때문에…….”
빙글빙글 웃던 아스타리온이 아주 잠깐 샐쭉하게 입을 내민 듯싶더니 등을 돌려 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간다. 너는 정 피곤하면 더 앉아 있다 오든지.”
“야……, 너 거기 안 서?!”
엘의 외침이 무색하게 아스타리온은 등을 보인 채 어깨를 으쓱할 뿐,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스타리온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띤 입가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문질렀다.
‘아무 사이가 아닌데 그런 걸 어떻게 하냐, 멍청아.’
아주 흡족한 복수였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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