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1)

긍상

가지가지 by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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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포르노, 노란장판 감성, 짭근친 주의. 적폐 날조 많습니다. 

*노래 반복재생 권장합니다. 가사 있는 ver. 과 없는 ver. 중 원하는 걸로 선택하세요. 

https://youtu.be/UPhu2tFDZU0 

ㄴ 가사 있는 ver.

https://youtu.be/EZJ98FUma7g

ㄴ 가사 없는 ver.  


김다은의 일생은 불운하다.

 

장례식장에 검은 상복을 입고 멍하니 영정사진을 올려다봤다.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사진이 없어 집안을 뒤지고 뒤져 발견한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어머니의 젊은 시절 얼굴이 그곳에 존재했다. 최근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다은의 기억 속 어머니는 퀭한 낯에 얼굴의 살이 다 빠져 홀쭉하여 완연한 병자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다은이 어떡하노. 인제 니가 동생들 잘 챙겨야 한다. 알겠나? 동생들은 아직 마이 어리다 아이가. 니가 이제 집안 가장인기다.”

 

옆집 아저씨가 하는 말에 다은은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그런 다은의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선 자리를 지키다 가셨다. 다은의 옆엔 부모 잃은 어린아이 3명이 그대로 울다 지쳐 잠들어있었다. 다은도 울고 싶었다. 부모의 보호와 애정을 한창 받을 나이 16살에 그대로 천애 고아가 돼버렸으니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그러나 다은은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아저씨의 말 그대로 제가 이 집안의 가장이 되었으니까. 올곧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은은 제 인생이 불행했지만, 그래도 본인의 삶을 사랑했다.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버거운 삶이었지만, 그래도 남은 제 가족들이 있었다. 동생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다. 자신이 가장 큰 형이니깐.

 

집안에 있는 돈이 없었다. 제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다은이 돈을 벌어야 했다. 돌봐줄 친척이라곤 전혀 없고, 부모님이 남겨둔 돈도 몇 달 후면 다 떨어진다. 먹일 입은 3개나 됐다. 그 점이 어린 다은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럼에도 다은은 그것을 기꺼이 감내하며 밖으로 나갔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던 건 아니었지만 지금껏 개근상을 탔는데 그것도 이걸로 끝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는 몸으로 할 수 있는 돈벌이는 몇 없었다. 커다란 덩치와 키 덕분에 성인이라고 거짓말하고 일을 할 수는 있었는데, 들키면 그대로 금방 쫓겨났다. 그렇게 주변 가게들을 전전하다가 점점 활동 범위를 늘려갔다. 다행히도 최근엔 꾸준히 다은을 써주는 곳이 있었다. 김씨 아저씨가 운영하는 술 도매상이었다. 다은은 트럭에 소주, 맥주를 한가득 싣고 가게에 배달을 가면 옆에서 같이 박스를 옮겼다. 힘쓰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기에 다은은 일에 만족했다. 김씨 아저씨가 가끔 내뱉는 정치 이야기, 음담패설들을 견디기만 하면 괜찮았다.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다은은 스스로가 꽤 잘 버텨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초등학생인 동생들은 학교 잘 다니고 있고, 배도 곯고 있지 않고…. 이 정도면 잘 버티고 있다. 곧 자신이 성인이 되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그러면 상황이 더욱 좋아지겠지.

그래도 오늘은 조금 힘들었다. 항상 배달 가는 가게에서 자신이 발주할 물량과 수가 다르다고 성을 낸 것이다. 김씨 아저씨는 우리가 받은 주문서대로 물건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가게주인은 계속해서 제 주장만을 말하며 화를 냈다. 그것을 말리려다가 다은이 주인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그제야 제가 너무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크흠, 그러기에 왜 거기 있어서… 얼버무리며 기분을 가라앉혔다. 맞은 얼굴에서 입술이 터져 입안에 피 맛이 퍼졌다. 김씨 아저씨는 그런 다은의 얼굴을 흘긋 보고는 주인과 평상시처럼 대화하곤 가자, 한마디 던졌다. 다은은 따가운 입술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네. 하곤 묵묵히 따라갔다.

 

다은은 버틸 만했다. 정말로….

 

터덜터덜 무거운 발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집으로 갔다. 일이 늦게 끝나 어두운 밤이라 주황색 가로등이 뜸뜸히 켜져 있었다. 그런데 이질적인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응애- 응애-! 이런 밤중에 누가 아기를 데리고 나왔나 보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목인데 누가 있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시선이 아래로 내려간다. 강보에 싸인 아기가 고장 났는지 점멸하는 가로등 아래에 놓여 있었다. 누군가 버리고 간 것 같다.

 

우는 아기는 힘차게 제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응애! 응애! 그러나 곁엔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몇 개월이나 된 건지는 몰라도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우는 아기는 배고파 보였다. 그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볼을 콕콕 찌르자 아기가 슬쩍 눈을 떴다. 아기와 눈이 마주친 다은이 손을 뗐다. 아기는 여전히 힘차게 울면서도 다은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은은 그 울음소리를 한참을 듣다가 아기를 안아 들었다. 집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도 제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김다은 미쳤나. 지금 상황이 어떤데 애를 주워오노. 데려가서 어쩔 건데? 얘는 뭐로 먹이고 키울 건데. 불쌍해서 그런 거면 경찰한테 맡겨야지, 내가 뭐라고 애를 데리고 오는데. 아기 돌보는 법도 모르면서.

 

그래도 다은은 제 품 안에 천 덩어리를 꼭 끌어안았다. 품속이 무척이나 따뜻했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도 그쳤다. 아기를 처음 안아봐서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얘는 만족한 것 같다. 집에 와서 아기를 둘러싸고 있던 강보를 풀어보니 그 속엔 작은 쪽지가 하나 있었다. ‘기상호’

 

 


봄날은 간다

 

 

 

상호에게는 형이 4명 있다. 형만 넷인 것이다. 주변 친구 중 형제자매가 많이 있는 애들은 꽤 있다. 그러나 저처럼 전부 남자 형제만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었다. 상호는 지루한 국어 수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교과서 귀퉁이 한구석에 작게 낙서를 끄적였다.

 

 넷째 형. 김하은. 이번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더러웠던 성격이 더 더러워짐. 나를 제일 싫어하는 거 같음.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자꾸 꼬투리 잡고 화냄.

셋째 형. 김가은. 다혈질. 나를 제일 자주 때림. 내가 한 것도 없는데 왜? 아마도 심심해서 그런 거 같음. 그래도 맛있는 걸 잘 만들어줌.

둘째 형. 김나은. 셋째 형이 날 때릴 때 제일 많이 말려줬음. 그런데 이번에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가서 얼굴을 자주 못 봄. 사실 형이랑 좀 어색함

첫째 형. 김다은. 제일 재밌음. 그런데 일 다니느라 밤이랑 아침에만 얼굴을 볼 수 있음. 쉬는 날 좀 많이 생기면 안 되나?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 줄에 적은 첫째 형에 커다랗게 별표를 쳤다. 상호가 제일 좋아하는 형은 다은이다. 다은은 상호랑 가장 잘 놀아준다. 상호가 태권브이 놀이하자고 하면 악당 역할도 잘 맡아주고, 대사도 재밌게 쳐준다. 다른 형들은 별로다. 놀아달라고 하면 잘 놀아주지도 않고. 놀아줘도 놀아주는 게 아니라 괴롭힘이었다. 세게 꼬집고 때리기나 하고. 난 재미없고 아프기만 한데, 자기들은 날 괴롭히면서 웃는다. 아 열받아! 상호가 얄미운 마음에 넷째 형과 셋째 형 앞에 찍찍 엑스자를 쳤다. 그걸로도 모자란 것 같아 옆에 해골 모양을 그려준다.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제 가족이었다. 낯간지러워서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상호는 제 형제들을 사랑했다. 다른 애들 다 있는 엄마 아빠가 없어서 서러울 때도 있었지만, 상호는 부모님 두 명 대신 형 네 명 있으니 자신이 더욱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부모님의 얼굴을 본 적도 없어 그리워할 수도 없긴 하다. 처음부터 없던 존재를 어떻게 그리워할 수 있겠는가? 가끔 자기 전에 이불 덮고 누워서 상상해보긴 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엄마, 아빠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엄마가 있었으면 잘 자라고 이불 덮어주고 뽀뽀를 해줬을까? 저번에 옆집 할아버지 집에서 본 티비를 보니 외국에선 그렇게 하던데. 아빠가 있었으면 놀이공원에 같이 놀러 갈 수 있었을까? 영수가 저번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 보이던데.

 

하지만 상호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요즘 제 넷째 형이 그렇게 짜증 날 수가 없다. 사춘기는 분명 중학교 2학년 때 왔던 것 같은데(상호는 이때도 넷째 형이 너무 짜증 나서 싫었다) 사춘기가 아무래도 또 온 거 같다. 웬 놈의 사춘기는 이렇게도 자주 오는지. 고등학교 입학하더니 성격이 정말정말 짜증나졌다. 집에 돌아오면 왜 형이 왔는데 인사 안 하냐고 시비를 걸지 않나, 배고프니까 먹을 것 좀 가져오라고 심부름시키질 않나, 씻을 때 뜨거운 물을 나보고 만들라고 시키질 않나! 내가 자기 심부름꾼이가? 왜 자꾸 나한테 그러는지 모르겠다.

더욱 얄미운 점은 이런 걸 뒤에서 몰래 한다는 거다. 넷째 형이 자꾸 괴롭힌다고 형들에게 이르기라도 하려고 하면 언제 그랬냐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럼 상호만 억울해서 죽을 것 같은 거다. 셋째 형은 넷째 형 말을 잘 믿으니까. 첫째 형이 있었다면 상호의 편을 들어줬을 테지만, 첫째 형은 공장에 일 나가느라 바쁘다. 다은햄이 있었으면 분명 내가 이길 수 있었을 텐데. 형은 대체 언제 쉬는 거야? 이상하게도 첫째 형이 집에 없는 게 잘못이라는 결론이 난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는 사이 수업 시간은 다 끝났다.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왁자지껄해진다. 상호는 가만히 앉아 제 자리를 지켰다.

상호는 친구가 몇 없었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그만큼 미숙하다.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차이를 찾고 그걸 상대의 약점으로 삼고 휘두른다. 그것이 타인에게 얼마만큼의 상처가 되는지 알면서도 누군가는 재미로, 누군가는 남들이 하니까, 누군가는 불편하지만 참으면서,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이다. 상호는 아이들 사이에서 약자였다. 부모님이 없는 건 이미 소문난데다, 재밌는 성격이라 애들이랑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가끔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는 점은 상호를 무리에서 배척하게끔 했다. 부모 없는 새끼. 더러워. 냄새나. 기분 나빠. 뒤에서 수군거려도 상호는 무시하고 제가 붙들고 있는 책에 집중했다. 책은 이래서 좋다. 집중하면 금세 주위의 것들에게서 신경이 무뎌지니까. 상호가 쉬는 시간에 자리를 박차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이유였다. 오늘도 대부분의 다른 때처럼 열심히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어쩐지 그게 안 될 것 같다.

 

“야. 왕따. 책이나 읽고 재밌냐?”

 

상호가 대꾸하지 않자 읽고 있던 책을 빼앗아 갔다. 눈을 돌리니 항상 상호를 괴롭히는 서너 명이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다.

 

“돌려줘.”

“뒐례줴~ 싫은데?”

“하지 마라.”

“홰쥐먜래~”

 

낄낄낄. 뭐가 좋은지 저들끼리 웃는다. 오늘은 책 읽기 글렀구나, 상호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치고 평균보다 큰 키가 불쑥 일어서니 책을 뺏어간 무리가 잠깐 멈칫했다. 상호가 담담히 책을 다시 앗아 들고 제자리에 앉자 쳇, 재미없어…. 하며 돌아간다. 상호가 아이들 무리에 어울리지 않지만 아주 무시당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상호는 남들보다 키와 덩치가 크다. 그것은 상호를 만만하게 보지 않도록 작용했고, 섣불리 달려들지 않도록 만들었다. 제 가족들은 모두 키와 덩치가 컸다. 이런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호가 가장 먼저 집에 도착하는지라 집은 썰렁했다. 가방을 저 멀리 던져놓고 학교에서 마저 보지 못한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소리가 나며 누군가 들어왔다. 넷째 형, 하은이었다.

 

“왔나?”

“어.”

 

간단히 인사하고 눈을 돌리려는데, 어쩐지 하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입고 있는 교복 여기저기에 먼지가 붙어 더러워져 있고, 얼굴도 얼룩덜룩하다. 아무래도 누군가와 싸움이라도 한 것 같았다. 표정 또한 안 좋았다. 무언가를 참는 듯 얼굴근육이 울긋불긋하더니 인상을 팍 쓴다. 답답한지 겉옷을 풀어 헤치고 가방을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좆됐다. 이럴 때 하은의 눈에 띄면 무조건 시비 털릴 거다. 상호가 슬그머니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걸 발견한 하은의 눈이 희번득하게 뜨인다.

 

“니 지금 뭐하노.”

“방에 들어가는데.”

“그걸 왜 지금 하는데. 내 피하나?”

“내가 왜 피하는데. 그냥 들어가서 숙제하려고 그러지.”

“구라치지 마라. 지금 내 피하잖아. 모를 줄 아나?”

 

상호가 긴장하며 하은의 눈치를 본다. 하은이 상호를 계속해서 몰아붙인다.

 

“니 내가 우습나.”

“아닌데.”

“xx... 눈깔 제대로 떠라. 내가 지금 고깝나.”

 

아…. 왜 나한테 와서 지랄인데. 상호가 한숨을 내쉰다. 요즘 제 넷째 형은 이런 식이었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저한테 와서 다 푸는지 와서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저를 갈구는 것이다. 이러면 기분 풀릴 때까지 성질을 다 받아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찌검이 날아올 때도 있으니까. 차라리 셋째 형이 있었다면 눈치 봐서 안 그럴 텐데.

 

그렇다고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말도 안 한다. 무슨 자존심을 부리는지, 쪽팔려서 말 못하는 것 같다. 그럴 거면 티를 내질 말던가. 뭐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상호는 제 가족을 사랑해도, 넷째 형은 싫다. 하은이 본격적으로 상호를 갈구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셋째 형, 가은이 들어왔다. 형아! 왔나! 상호가 반색하며 달려갔다. 가은이 별일이라는 듯 쳐다보며 어. 무뚝뚝하게 말하곤 곧장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하은은 가은의 눈치를 보는지 더 이상 상호에게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상호는 혹여나 불똥이 또다시 튈까, 가은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형, 오늘 저녁 뭐고? 모르겠는데. 그냥 김치에다 밥 먹으면 되지 않나. 맛있는 거 해주면 안 되나? 그냥 주는 대로 처 묵으라. 아아앙~

 

그러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다은이 들어왔다. 상호는 오늘 하루 중 가장 반가운 낯으로 현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형아! 와 이리 늦었노! 그럼 다은은 상호를 가볍게 받아주면서 꼭 껴안아 줬다. 늦었음? 미안. 오는 길에 붕어빵 사 왔음. 붕어빵? ㅇㅇ. 어어? 상호 니 그거 지금 먹지 마라! 그러면 입맛없다고 저녁 많이 안 먹잖아. 형은 뭐한다고 자꾸 그런 걸 사오노? 맛있잖음. 너희도 먹으셈. 마! 상호! 지금 먹지 말라고!

 

그렇게 왁자지껄한 저녁 시간을 보내다 상호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가 시간을 좀 때우다 보면 잘 준비를 마친 다은이 들어올 것이다.

상호의 집은 작은 방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나은과 가은의 방, 하나는 다은의 방이었다. 나은이 기숙사에 가게 되면서 그 빈자리를 하은이 채워 현재는 가은과 하은이 같은 방을 쓰고, 상호는 거실에서 주로 지냈다. 그러나 상호는 어려서부터 다은과 함께 자서 그런지 다은의 방이 상호의 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안방이자 다은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은 상호의 은신처나 다름없었고, 다은이 바깥에 오래 있다 보니 대부분 상호가 사용했다. 요즘 들어 하은이 애도 아니면서 언제까지 형이랑 같이 잘 건데. 라며 시비를 털긴 했지만, 상호는 다은과 따로 잘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가 다은형이랑 같이 자든 말든 넷째 형은 아무 상관도 없으면서 왜 그러는 건데. 그저 꼬투리를 잡고 싶어 그런 거겠지.

 

상호가 익숙하게 바닥에 이불을 깔고 먼저 이부자리에 들어갔다. 초등학교 4학년치고 길게 쭉 뻗은 팔다리가 이불 안에 얌전히 수납된다. 괜히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고 숨소리도 조심하며 가만히 있으니 문소리와 함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인기척을 최소화하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이불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기척이 느껴진다.

 

“상호 어디 갔음? 아까 들어갔던 거 같은데.”

 

상호가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아 조용히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두 손안에 가려진 입꼬리는 잔뜩 꿈틀거리며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이상하다. 진짜 어디 갔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상호가 언제 튀어 나가야 다은을 놀라게 할 수 있을지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 상호를 덮었던 이불이 확 걷히며 어두컴컴했던 시야에 빛이 가득 들어온다. 우왁! 다은의 큰 소리와 함께 상호가 으악!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상호가 도망가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금세 다은이 붙잡아 여기저기 간지럼을 태웠다. 아하하! 하하! 형! 아, 간지럽다! 항복, 항복! 그러게 왜 숨어있음.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음? 하하하! 그냥 장난치려고 한 거, 아! 그만! 그만하라고! 그렇게 잔뜩 간지럼 당하던 상호가 복수하겠다며 다은에게 달려들었다. 다은에 비하면 아직 한참이나 작은 몸이라 다은은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지만 부러 적당히 당해주며 간지럽히고, 간지럼 당했다. 

한동안 몸 장난을 벌이다 지친 상호가 이불 위에 엎어지자 그제야 소란스러웠던 방안이 조용해졌다. 체력을 뺐더니 잠이 솔솔 밀려왔다. 상호가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였다. 님. 똑바로 누워서 자셈. 이불 안 덮고 자면 배탈 남. 으응…. 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한 후에도 상호의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다은이 괘씸함을 담아 거칠게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어도 곤히 잠들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은이 익숙하게 상호를 제대로 눕힌 후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줬다. 그리고 불을 끄고 저도 그 옆에 누웠다. 옆에서 일정하게 새근거리는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다은이 까만 천장을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오늘도 고되게 일한 탓에 꿀맛 같은 잠이었다.

 

 

*

 

상호의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일상은 언제나 계속될 것 같았지만,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전부터 계속해서 견디던 것이 조금씩 갈라지고 어긋난다. 처음 그 어긋남을 바로잡지 못한 것이 점점 더 커다란 갈라짐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균열의 시작은 하은이었다. 하은이 언제나처럼 집에 오면 상호에게 히스테리를 부렸다. 그러나 그의 안색엔 변화가 있다. 피딱지와 멍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은은 그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다른 트집만을 잡으며 성질을 냈다. 상호는 하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것이 하은의 어떤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쪽 눈이 잔뜩 부은 채로 온 날엔 상호도 참지 못하고 물음이 튀어 나갔다.

 

“얼굴이 왜 그러는데. 형, 누구한테 맞고 다니나?”

 

그 물음에 하은의 눈이 벌겋게 변한다. 차오르는 감정 탓에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며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으르렁거리는듯한 날것의 목소리를 채 가다듬지 못하고 하은이 말한다.

 

“니는 내가 누구한테 맞고 다닐 것 같나.”

상호가 그 말에 반박하기도 전에 혼자 성을 내며 윽박지르듯 말한다.

 

“시발 니도 내가 우습나? 그러니까 그딴 말 하는 거잖아, 그체? 내가 존나 만만해서 계속 찔러보고 기어오르는 거잖아. 내가 좆병신같으니까 언제까지 참나 볼라고! 내가 시발, 언제까지 참을 거 같은데?!”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문장들이 거칠게 튀어나왔다. 그것을 정면에서 받는 상호는 제 넷째 형의 처음 보는 모습에 몸을 움츠렸다. 지금껏 화를 낸 것은 많이 봤지만, 저 정도로 격정적인 모습은 처음 본다. 무서웠다. 하은의 안에 내재되어있던 커다란 분노가 지금을 기회 삼아 상호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제 탓이 아닌 증오와 분노를 감당하기엔 상호는 아직 어리고 여렸다. 두 눈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하은이 말을 쏟아냈다.

 

“니, 시발, 전부터 맘에 안 들었다. 어디서 생긴지도 모를 비루먹을 새끼가 갑자기 굴러들어온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종자 모를 게 집에서 오냐오냐해준다고 뻔뻔하게 구는 것부터-”

“김하은. 니 지금 뭐해.”

 

셋째 형이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뜨겁게 달궈진 목소리를 끊어냈다. 그제야 넷째 형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죽일 듯이 상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호는 그제야 훌쩍이며 눈물을 터뜨렸다. 흐어엉- 형아- 울면서 저에게 다가오는 상호를 안아주며 가은이 등을 토닥였다. 상호는 가은의 교복에 눈물 콧물을 잔뜩 묻히면서 끅끅거리며 울었다. 뭔데. 김하은 니 상호한테 뭐 했노. 아무것도 안 했다. 근데 애가 왜 우는데. 지가 우는 걸 내가 어떻게 아는데. 상호 니가 말해봐라. 김하은이 뭐 했는데. 상호는 울면서도 고개만 도리도리 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은이 한숨을 푹 내쉰다.

 

“야. 뭔 상황인지 내가 잘은 모르겠는데, 그래도 중학생도 안된 애랑 고등학교 들어간 놈이랑 싸움이 되겠나? 적당히 해라.”

“...알았다.”

“김하은. 나니까 이정도로 말하는거지, 큰형한테 걸렸으면 니 뼈도 못추린다. 대가리 클만큼 큰 아가 왜 그러는데? 일이 있으면 말을 해라. 입 뒀다가 뭐하노.”

 

하은은 그 말에 아이씨…. 조용히 욕설을 내뱉곤 집 밖으로 나갔다. 쾅! 문 닫는 소리가 집 안을 다 울릴 듯 커다랬다. 상호는 여전히 끅끅거리며 가은의 품에서 울었다. 넷째 형이 저한테 그렇게 대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고, 서러웠다. 서운하기도 했다. 저는 형을 좋아하는데, 형은 나를 안 좋아하는 것 같고, 왜 내를 안 좋아하는데, 내 형이면서…. 우리 가족 아이가? 가족이면 내를 좋아해 줘야지. 어려서 정확하게 제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 탓에 그저 슬프다는 느낌만 마음에 계속 차올랐다. 그 탓에 정체 모를 슬픔이 계속 제 마음을 건드린다.

가은이 한참을 어르고 달래서야 상호가 눈물을 그쳤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눈은 퉁퉁 부어서 다 떠지지도 않았다. 가은이 잠시 한숨 쉬곤 상호를 보며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나? 오늘 해줄게. 상호는 대답 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밤에 잘 때나 펴는 이불을 이르게 펴곤 그 안에 이불 뒤집어쓰고 엎어졌다. 다시 또 눈물이 나서 이불 속에서 울었다. 그러다 언젠지 모르게 잠이 든 것 같았다. 

상호가 눈을 떴을 땐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제 옆엔 익숙한 사람이 상호를 끌어안고 잠에 빠져있다. 상호가 꼬물꼬물 다은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장소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들었다 깨어나도 여전히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형은…. 큰형은 나를 좋아하니까. 다은 형은 내를 젤 좋아한다.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넷째 형은 몰라도 첫째 형은 저를 제일 좋아한다. 다은이 상호에게 주는 애정은 일정하고 지속적이어서, 상호는 다은을 믿을 수 있었다. 나은처럼 무관심하지도 않고, 가은처럼 과격하지도 않고, 하은처럼 변덕스럽지 않다. 언제나 영원히 이 애정과 관심이 계속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가 어떤 미운 짓을 하더라도 말이다.

제가 넷째 형처럼 미운 짓을 해도, 그래도 다은 형은 나를 사랑할 거니까…. 그제야 불안하게 요동치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파랑으로 가득하던 것이 호수처럼 잔잔해지고 있었다. 상호가 다은의 품에 더욱 깊게 파고들며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다은을 꼭 끌어안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다은의 냄새를 맡아진다. 다은이 상호의 몸 모든 요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다. 맞닿은 피부에선 보통보다 높은 다은의 체온이 넘어와서 몸이 금세 따뜻해졌다. 그렇게 상호가 다은으로 가득 차는 동안, 어느새 파랑 치던 심장은 조용해졌고, 상호의 숨소리 또한 고르게 변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깊은 밤에 걸맞게 방 안에는 새근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온다.

 

 

*

 

 

그 후로 상호는 하은과 잠시 어색했지만, 대개의 가족이 그렇듯 언제 그랬냐는 듯 며칠 안 가 평소처럼 돌아왔다. 하은은 상호에게 사과를 건네지 않았다. 애초에 상호가 사과받을 마음이 없었다. 다은이 그랬다. '하은이가 겉으론 저래도 님한테 많이 미안하고 있을 거임. 쟤가 이상한 자존심만 세서 님한테 괜히 말을 못 하고 있는 거지 상호 니를 누구보다도 좋아함.' 그러고선 상호를 꽉 끌어안아 줬다. 다 컸는데 뭐하노. 상호가 툴툴거리면서도 다은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르르 녹는 마음에 그냥 착한 내가 봐주자 하기로 한 것이다.

 

가은이 오랜만에 맛있게 전골을 만든 날이었다. 큰 냄비를 상 가운데 두고 이제껏 말 한마디 안 했던 하은에게 상호가 먼저 말 붙였다. ...나 버섯 싫은데 넷째 형 먹을래? 상호가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였다. 하은이 슬쩍 보더니 숟가락을 내밀어 상호는 얼른 버섯을 건네줬다. 하은이 우물우물 버섯을 먹더니 괜히 툴툴댄다. 버섯 맛있는데 왜 안 먹노. 그러다 키 안 큰다. 상 위에 함께 있던 다은과 가은도 그제야 마음 놓고 밥을 먹었다. 상호의 일상이 다시 돌아온 듯했다. 안심하는 한편, 상호의 마음 한구석엔 불편함이 존재했다. 어영부영 화해하긴 했지만, 하은이 했던 말이 거슬렸다.

 

'니, 시발, 전부터 맘에 안 들었어. 어디서 생긴지도 모를 비루먹을 새끼가 갑자기 굴러들어왔을 때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종자도 모를 게 집에서 오냐오냐해준다고 뻔뻔하게 구는 것부터-'

 

그저 상처 주기 위해 함부로 뱉은 말이었을 뿐일까? 왠지 그 문장이 자꾸 걸렸다. 목에 박힌 생선 가시처럼 잊을만하면 계속 떠올라 불편해졌다. '굴러들어왔다'라는 게 무슨 뜻이지? '종자도 모를 게'? 상처 주기 위함이라고 해도 미묘한 뜻이었다. 어딘가 의도가 있지 않아서야 쓸 수가 없는 표현이니까.

 

그럼에도 그 진원을 섣불리 짐작할 수도 없고 이미 지난 일에 대해 형들에게 물어보며 다시 파헤치면 괜한 일을 들쑤시는 것처럼 될 것 같아 상호는 의구심을 그냥 제 마음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래야 제가 원하는 일상이 유지될 테니까. 다시금 소란스러움과 갈등이 일어나는 건 사양이었다.

 

상호의 그런 노력에도 집안에는 트러블이 하나둘 계속해서 벌어졌다. 상호가 잠들었다가 목이 말라 깼던 날이었다. 일어나보니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다은은 보이지 않고 휑한 빈자리만 남았다. 거실과 이어지는 문 틈새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살짝 문을 열어 몰래 훔쳐보니 거실에 세 명의 형, 모두가 둘러앉아 있었다.

 

"니 내 지갑에 손댄 거 모를 줄 알았나? 알면서 그냥 놔둔 거다. 한두 번 하고 말겠지 싶어서."

"..."

"그거 우리 생활비인 거 알고 있제."

"...안다."

"알면서도 그런거가?"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하은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땅만 바라보고 가은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 침묵을 다은의 목소리가 깨고 들어온다.

 

"왜 그런거임. 이유가 있을 거 아님."

"..."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을거임? 봐주는 것도 한도가 있음. 그런다고 해결이 될 것 같음?"

"..."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하은이 얼굴을 들어 제 형제들을 바라봤다.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마라."

"지금 이게 알아서 하는거가! 정신 안 차리나!"

 

그럼에도 하은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가은이 노발대발 화를 내는 와중에 다은도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선 주머니에서 제 지갑을 꺼내 들어있던 현금을 전부 하은에게 내어준다. 하은이 놀라 쳐다보니 다은이 담담하게 말한다.

 

"나는 니 믿는다. 니가 알아서 할 거라고 하니까…. 묻는 건 여기서 그만두는데, 적어도 네 동생한테는 나쁜 짓 하지 마라. 알겠나? 니가 뭐하고 돌아다니는지는 몰라도 상호한테까지 피해주면 그땐 니 가만 안둘거다."

"...알았다."

 

그 후 자리를 파하는 것 같아 상호는 재빨리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갈증은 온데간데없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혹여나 다은이 들어와서 제가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떡하지? 다행인지 그 후 방으로 다은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 상호는 잠들어서, 다은이 언제 돌아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음날이 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평소와 똑같이 굴긴 했지만, 마음이 심란했다. 상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아무 일도 없는 평온한 날을 원했는데, 어쩐지 조금씩 어그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넷째 형으로 인해서 말이다. 하은이 형은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아니, 벌이는 게 맞긴한가. 무슨 짓을 당하는 게 아니고? 하은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멍과 상처들을 보건대 누군가에게 맞고 다니는 것 같다. 돈은 왜 필요하지. 돈까지 뜯기는 걸까?

상호가 다니는 xx초에서 최근 도는 소문이 있다. xxx에 있는 근처 으슥한 곳에 일진들이 모여있으니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다는. 교실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것이긴 하지만. 그때 이야기를 듣던 녀석 중 한 명이 자기는 그곳에 아는 중학생 형이 있어서 나는 가도 괜찮을 거라고 으스댔다. 그곳에 모이는 일진들은 중학생도 있고 고등학생도 있다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본드같은 걸 한다고도 하고, 모여서 술판을 벌인다고도 한다. 전부 다 소문이었다. 혹시 형이 이상한 무리와 같이 어울리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곳에 갔는데 형이 있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지. 이상한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형들에게 이 사실을 일러야 하나? 하지만 넷째 형은 그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서 상호는 고개를 몇 번 휘젓고는 상념을 지우려 했다. 상상해봤자 사실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말 만약에 형이 그곳에 있다면….

 

불안한 생각으로 며칠을 끙끙 앓으며 보냈다. 그러다 학교가 일찍 끝난 어느 날, 상호는 결심했다. 그곳에 한번 가봐야겠다. 뒤숭숭한 소문이 가득한데다, 위험하다는 곳이긴 하지만, 슬쩍 보기만 하고 돌아오면 괜찮을 것이다. 겁이 났지만, 형이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겠다. 그곳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모두 자신의 추측이지만…. 부디 추측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소문의 그 장소는 초등학교에서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정확한 장소가 어딘지 몰라 그 어귀에서 헤매긴 했지만, 점점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늘어나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들과 술병 같은 쓰레기들이 이정표가 되어줬다. 그를 따라서 자꾸만 어둑하고 으슥한 곳으로 걸어갔다. 오늘 날씨는 분명 맑은 하늘에 해가 쨍쨍하건만 왠지 서늘하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골목길 깊숙이 한 걸음씩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바라보자 페인트 낙서가 가득한 담벼락 밑에 인영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그중 한 사람은 상호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어서 주체하기도 전에 소리가 튀어 나간다.

 

"하은이 형?"

 

작게 부른 목소리에도 곧바로 제 이름을 알아듣고 한 쌍의 검은색 눈이 상호를 쳐다본다. 하은과 눈 마주친 상호는 그곳에서 당황과 난처의 기색을 읽었다. 니가 왜 여기 있노? 소리 없는 질책에 어깨를 움츠리는데, 하은의 눈길을 따라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상호에게 이목을 돌렸다.

 

"어라? 처음 보는 꼬맹이이네?"

 

심심하던 차에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머리를 노랗게 물든 이를 필두로 몇몇이 상호에게 다가왔다. 하은이 초조한 걸음으로 그 뒤를 쫓는다. 상호는 저에게 다가오는 서너 명의 교복 무리에 시선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딱 봐도 불량배처럼 보이는 형들이었다. 교복도 개조한 건지 딱 달라붙거나 짧기도 했고….

 

내가 여길 왜 오겠다고 한 건지 후회가 막심해지며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고민하던 사이 거리는 이미 가까워져서 머리가 노란 형이 상호에게 어깨동무한다. 말이 어깨동무지 도망가지 못하게 결박하는 것 같았다. 그 주위를 다른 형들이 포위한다. 하은도 마찬가지로 포함되어있었다. 그나마 믿을 게 하은밖에 없어서 시선을 저의 넷째 형에게로 돌렸다.

 

"꼬맹이 몇 살? 6학년인가?"

"4, 4학년인데요."

"4학년인데 키가 이렇게 커? 이야, 넌 농구 해도 되겠다."

 

낄낄대며 하는 말에 뭐가 웃기는지 주변인들이 같이 웃는다. 상호는 제 형만 구명줄처럼 쳐다봤다. 하은은 까맣게 죽은 눈빛으로 제 동생이 양아치에게 시비 걸라는 모습을 바라봤다. 노란 머리가 까닥까닥, 한 손으로 가져오라는 손짓을 하니 누군가 담배 한 대를 손가락에 쥐여준다. 그리고선 라이터를 켜, 불까지 붙인다. 노란 머리가 자연스레 담배를 제 입으로 가져가 숨을 들이켰다가 상호의 얼굴에 연기를 한가득 후- 내뱉었다. 정면 가까이에서 일어난 탓에 상호는 독한 담배 연기를 가득 들이켜곤 콜록콜록, 기침을 내뱉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일 때까지 콜록거리고 있으려니 그 모습을 보며 양아치들이 웃어댄다. 어이구 애기야. 담배 한 번도 안 펴봤어? 형님이 특별히 하나 물려줄까? 야. 담배 뚫기 어려워. 귀한 거 낭비하지 마라. 제 이야기를 하는데도 상호는 방관자처럼 듣기만 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상호가 하은을 자꾸 쳐다보는 걸 느낀 건지 한쪽 귓바퀴에 은색 피어싱을 한 남자가 묻는다.

 

"근데 김하은을 왜 이렇게 쳐다보냐. 너 얘 알아?"

 

던져진 질문에 하은이 무기질적으로 제 동생을 한번 바라보곤 간단히 말한다.

 

"아니. 모르는 애다."

"꼬맹아. 우리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오천원만 빌려줘라."

 

그사이 어깨동무를 한 금발 머리가 상호에게 무게를 실어 기댄다. 무거웠다.

 

"저 돈, 돈 없는데요."

"이거 또 거짓말하네. 내가 너 같은 놈들 한두 번 본 줄 알아? 가방 한번 뒤져봐? 뒤져서 뭐라도 나오면-"

"조철영. 니 오늘 김두식 선배가 찾는다고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가? 그 선배 화나면 답도 없다. 걘 놓고 갈 길이나 가자."

"뭐? 벌써 시간이 다 됐어? 씨X…. 그 선배 대가리 돌면 감당 안 되는데."

 

노란 머리가 그제야 상호를 놓아주었다. 꼬맹이. 다음에 만나면 오늘치 이자까지 해서 꼭 돈 빌려줘야 한다?

 

노란 머리가 상호의 어깨를 툭툭 친 후 뒤돌아간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 뒤를 다른 이들이 따라간다. 하은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그 걸음이 타인과 비교하면 현저히 느렸다. 하은이 어두운 눈으로 상호를 바라본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는데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노란 머리에 건드려진 어깨에 기분 나쁜 것이 묻어있는 것 같다. 상호가 제 어깨를 꾹 쥔 채 뒤를 돌아 그 골목길에서 도망쳤다. 처음엔 빠른 걸음이었던 것이 어느새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상호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어느새 울면서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무서웠다.

 

처음엔 우리 형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괴롭히지 말라고 한마디 말이라도 하고 도망치기라도 하려고 했건만, 상호는 그러기엔 겁이 많았다.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마음이 금방 꺾여서 쪼그라들었다. 마주치자마자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만 있어야 했던 제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한마디 말이라도 하기는 개뿔, 눈도 못 쳐다봐서 형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무능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나? 소중한 제 가족이 당하고 있는데도,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 다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하는 비겁한 사람인가?

오히려 넷째 형이 대단해보인다. 나는 잠깐 마주친 것만으로 이렇게 무서웠는데 형은 그걸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었던 거잖아. 게다가 방금 전에 나를 구해준 것도 하은이 형이다. 도와주려고 간 거였는데 오히려 도움만 잔뜩 받고 와버렸다. 최악이었다. 스스로의 모습도 그렇고, 하은이 형이 처한 상황도 그렇고.

 

상호는 달리다가 집근처 인적없는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 쪼그려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혹여나 누군가 올까봐 소리는 잔뜩 죽인 채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시 또 불량배들의 눈에 띄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방금 겪었던 상황을 떠올리면 한쪽 어깨에 무거운 추라도 달린 것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울음을 그치며 상호는 생각했다. 나는 너무 약하다. 너무나 무력하고 약해서 넷째 형을 도와주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형들은 다르다. 셋째 형도 그렇고 첫째 형도, 나보다 강한 사람들이니까 어떻게든 넷째 형을 도와줄 것이다. 뭣하면 둘째 형한테까지 도와달라고 하는거다. 다섯이니까 뭐라도 되겠지. 상호는 울어서 붉어진 눈가를 소매 끝으로 비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형들에게 하은의 사정을 전부 말하겠다는 굳은 결심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지만, 상호를 반기는 건 텅 비어있는 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다은이 오늘은 야근해야 해서 평소보다 늦게 들어온다고 했다.

가은도 오늘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다고 했고. 밥은 니가 알아서 대충 먹어라.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상호가 울상을 지었지만, 가은은 들은 척도 안 했었다.

상호는 일단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을 찬물로 닦았다. 그 후, 울어서 허기진 탓에 밥솥에서 밥을 퍼서 김과 함께 싸 먹었다. 질릴 때면 김치도 하나씩 집어 먹는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꽤 괜찮아졌다. 먹구름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이 조금 개운해져 왠지 무엇이든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가 먼저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든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리 제 형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둘째 형도 얼굴 본 지 오래됐는데 집에 언제 오려나….

학교에서 내준 수학 숙제를 바닥에 엎드려서 풀고 있을 때쯤에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상호가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으로 달려갔다. 넷째 형, 하은이었다. 하은이 아니라 다른 형들을 예상했던지라 상호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오히려 하은과 먼저 이야기한 후에 형들에게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넷째 형이 반가운 건 맞는지라 상호가 웃으면서 하은에게 인사했다.

 

“형. 왔나?”

 

하은이 상호를 빤히 바라본다. 상호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깨달은 것인데, 하은에게선 강한 술 냄새가 났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상호가 얼굴을 굳히자, 하은이 비틀거리며 느리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몸을 가누기가 힘든지 신발을 벗던 중 바닥에 엎어졌다.

 

“괘안나?”

 

상호가 부축하려고 손을 뻗었는데, 하은이 그 손을 세게 쳐낸다. 상호의 손이 붉어질 정도의 세기였다. 그리고선 하은이 상호를 다시 빤히 쳐다본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니…. 거긴 왜 왔는데.”

 

상호가 내쳐진 제 손을 가져와 다른 손으로 쓰다듬었다. 많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방금 느낀 고통이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는다. 기어들어 가듯 작은 목소리로 상호가 대답한다.

 

“...형 있나 확인하려고.”

“그걸 니가 왜 봐야 하는데? 거기가 어딘 줄 아나?”

 

하은이 엎어진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느릿하게 몸을 세운다. 술기운으로 흐릿한 눈빛을 마주하며 상호가 있는 힘을 다 쥐어짜 말한다.

 

“나도 알건 다 안다. 우리 학교에 소문 다 났다. 거기가 양아치 불량배들 모이는 곳이라면서.”

“맞나. 아는데도 온 거가? 왜? 내가 얼마나 좆밥새끼인지 확인하려고?”

“뭐라노.”

 

인상쓰며 대답하자 하은이 갑자기 소리친다.

 

“그게 아니면 거긴 왜 오는데…. 어?! 내가 존나 우스운 놈인거 확인할 거 아니면 올 이유가 뭐가 있노 니가!”

 

하은이 잔뜩 악을 쓰며 씩씩거렸다. 아니다. 상호가 대답해도 같은 말만 반복한다. 내가 우습나? 우습냐고…. 어?! 내가 우습나? 우습냐고….

 

“형. 지금 많이 흥분했다. 일단 진정하고, 술부터 깨라.”

“나 지금 안 취했다. 멀쩡하다. 그니까 말을 해보라고. 시이발.”

 

뭐라고 말해야 하은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다 상호가 입을 떼려고 하는데 그러기도 전에 하은이 말을 가로챈다.

 

“시발…. 니는 세상이 존나 쉽지? 형들이 다 오냐오냐해주고, 니만 예뻐하니까 뭐든 니 맘대로 다 될 거 같고 그런 거 아이가.”

“그런 적 없다.”

 

이 형이 뭐라는 건지. 언제 다른 형들이 저를 예뻐했단 말인가? 다은이라면 그렇다 쳐도 다른 형들에게 마냥 오냐오냐 받은 기억은 전혀 없다. 그러나 하은은 상호의 말을 듣기는 했는지, 제가 할 말만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니가…. 니를 데려오면 안 됐다.”

 

하은이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상호를 향해 다가와서, 상호는 하은을 올려다보며 조금씩 뒷걸음친다.

 

“니를 데려올 때부터 잘못된 거다. 뭔지도 모를 새끼를 주워다가 다들 뭐가 예쁘다고 오냐오냐하는 건데.”

“...저번에도 그 소리 하더니 뭔데? 뭔 소리고?”

 

계속해서 느껴지던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낼 기회였다. 거슬거슬한 사포가 속에 잔뜩 얹힌 것 같다. 닫혀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는 판도라가 된 것만 같다. 하은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상호는 조금 두려웠다.

 

“뭔 소리긴. 니는 우리랑 다른 핏줄이란 거지.”

“뭐?”

 

하은이 검지 손가락으로 하은의 이마를 꾹 누른다. 그 힘에 상호의 고개가 뒤로 밀려난다. 하은이 비웃듯이 말한다.

 

“니 주워온 새끼라고. 우리랑 다르게.”

 

상호의 안에서 무거운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졌다.

 

“...장난하지 마라. 재미없다.”

“장난 같나?”

“장난이 아니면 뭔데?”

“뭐긴 병신아. 니가 고아라는 거지.”

 

무슨 말인데. 말도 안 되는 거짓이었다. 상호에게 상처 주려고 하는 그런 뻔한 거짓말 말이다. 상호는 절대 믿지 못 할 말. 그럼에도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상호는 하지 말라고! 소리쳐야만 했다. 그런 상호를 보며 하은이 고아 새끼. 부모 없는 병신새끼. 자꾸만 말한다. 하지 말라고. 거짓말 하지 마라! 상호가 우는 건지 소리치는 건지 모를 외침을 내뱉었다. 그때, 험악한 분위기를 깨고 다은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은에게 두 사람의 이목이 쏠린다. 신발을 벗다 말고 다은이 고개를 돌려 집안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상한 듯이 묻는다.

 

“문 앞에서 뭐 하고 있음?”

 

의아하게 쳐다보며 집으로 들어오는데, 술 냄새를 맡은 다은의 얼굴이 곧장 굳는다.

 

“김하은. 니 술 마셨나?”

 

하은이 상호를 압박하듯 내려다보던 몸을 일으키고 한숨을 크게 쉰다. 가까이 있던 상호에게 술 냄새가 가득 퍼졌다. 하은이 말없이 뒤돌아 다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간다. 느릿한 움직이었지만, 이제 비틀거리지는 않았다.

 

“야. 니 어디 가냐고.”

“신경 꺼라. 어딜 가든 뭔 상관인데….”

“니 미쳤나?”

 

다은이 하은을 붙잡으려 성큼성큼 다가가는데, 그 사이 하은은 이미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를 붙잡으려고 따라 나가려던 순간, 다은이 멈칫한다. 아직 제 뒤에 남아있는 상호 때문이었다. 다은이 다시 몸을 돌려 상호에게 돌아왔다. 상호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김하은 저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상호, 니 괘안나. 저놈이 때리거나 한 건 아니고?”

 

다은이 몸을 낮추며 상호와 시선을 맞춘다. 그러나 상호는 다은을 쳐다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초점 없이 멍하니 서 있다. 다은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상호의 얼굴을 확인하려 손을 가까이 가져가는데 손이 탁, 내쳐졌다. 다은이 놀랐고, 상호도 놀랐다.

 

“햄, 아, 아니, 이건 그러려던 게 아니고-”

 

상호가 버벅거리며 말을 늘어놓는데 얼마 안 가 멈췄다. 주변에 정적이 깔린다. 다은이 한숨을 내쉬고 싶은 것을 참으며 상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올렸는데, 상호가 움찔하며 머리를 피한다. 다은이 입을 꾹 다물며 손을 내렸다.

 

“...나 졸려서 먼저 잘게.”

 

상호가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간다. 다은은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그제야 한숨을 내쉬곤 두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몇 번 쓸어내렸다. 와중에 늦게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탓에 배고프다. 어둑하고 적막한 집에서 다은은 오랜만에 조용한 식사를 했다. 입맛이 없다.

 

 

 

*

 

 

 

상호에게 가족이란 제 세상의 전부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보잘것없는 자신이 가진 유일한 재산이 네 명의 형들이었다. 그만큼 의지하는 존재였고, 커다란 존재였다. 힘든 일이 있어도 형들이 있으니깐 버틸 수 있었고 남들보다 불행한 것처럼 느껴질 때면 형들이 있으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 상호에게 어느 날 갑자기 형들이 형들이 아니게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은의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게 사실이라면 제 세상이 전부 뒤바뀌는 일일 텐데. 그러나 왠지 자꾸만 하나씩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서…. 제 외모가 형들과는 그다지 닮지 않은 점이라던가…. 그래서 자꾸만 속에서 의심이 드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친동생이 아니라면?

혹시나 내가 부모가 다르다면?

혹시나 내가 주워온 자식이라면?

혹시나 내가 보육원에서 데려온 애라면?

혹시나…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상호는 평소처럼 생활할 수가 없었다. 다은을 평소처럼 바라볼 수가 없었고, 가은의 밥을 평소처럼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고, 하은과는 마주치기라도 할까 빠르게 집 밖을 나갔다. 제 형제를 마주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상호는 제 집인데도 겉돌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제 형제들과 함께 있을 때면 가장 편안했던 게 엊그제인데 바로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으니까. 최대한 일찍 집에서 나가 최대한 집에 늦게 들어왔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원래 자던 다은의 방에서 거실로 잠자리를 바꿨다. 몇 번인가 다은이 잠든 상호의 근처에서 서성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호는 두 눈 꼭 감고 모르는 척했다. 그러니 다은도 무거운 걸음으로 제 방에 혼자 들어가 잠들었다. 

상호의 일상은 완벽히 파괴됐다. 지키고 싶었던 일상은 완전히 뒤바뀌어서, 조금 더 길어지면 원래의 일상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기 전에 상호는 다시 원래의 제 일상을 되찾아야 했다. 완전히 잊어버리기 전에. 이미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는 닫을 수 없었으니까,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이라도 해야 했다. 제대로 된 진실을 그제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아침 8시, 이른 아침 바쁜 등굣길에서 상호는 혼자 슬쩍 빠져나와 이탈했다. 익숙한 길에서 빠져나와 미리 봐둔 낯선 길로 들어섰다. 혼자서는 처음 타보는 지하철역에 들어가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표를 끊고 열차를 탔다. 긴장하며 혹시라도 지하철 안내방송을 한 자라도 놓칠까 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다 제가 며칠 전부터 외워놨던 역이름이 들리자 황급히 출입문 앞에 섰다. 처음 보는 역에서 길을 몇 번 헤매다 3번 출구로 빠져나왔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xxx 정거장까지 가다가 내렸다. 이 모든 과정에 사용된 비용은 지금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용돈을 사용했다. 덕분에 돼지저금통의 배가 홀쭉해졌지만, 어떻게든 원하는 곳에 잘 도착한 것 같다. 상호가 눈앞에 보이는 xx 대학교 문패를 올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둘째 형, 나은이 다니는 대학교였다.

 

상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둘째 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은이라면 제대로 된 진실을 말해줄 거 같아서. 하은이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고, 가은은 화를 낼 것 같고, 다은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서 상호는 나은에게로 왔다. 온다고 연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학교 입구에서 계속 서 있다 보면 나은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형도 학교에 가려면 여기로 갈 거 아니야.

 

그렇게 상호는 입구 근처에서 하염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혹시나 저 사이에 우리 형이 있을까 봐 한명 한명 제대로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상호에게 왜 여기 있는 물어보면, 형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어떤 여대생 몇 명은 상호를 보며 배고프지 않냐며 먹을 것을 쥐여주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상호는 90도로 인사하곤 군것질거리를 주워 들고 먹었다. 처음엔 서서 기다렸는데 어느샌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누나들이 준 것들을 다 먹었는데도 배가 너무너무 고파왔을 때쯤, 그제야 기다리던 사람이 상호의 앞에 나타났다. 쭈그리고 앉아있던 상호가 반갑게 일어난다.

 

“형!”

“니 여기서 뭐 하노.”

“형 기다렸다!”

“혼자서 왜 연락도 안 하고 와가지곤-”

 

나은이 인상 쓰며 잔소리하려던 찰나, 상호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됐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은은 상호를 데리고 근처 경양식 돈가스 가게로 들어갔다. 상호는 평소에 자주 먹지 못하는 맛있는 음식에 정신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은이 한입을 먹는 동안 상호는 두세 입을 먹었다. 덕분에 상호가 먼저 음식을 다 먹었지만, 아직 배가 차지 않아 나은은 제 몫의 음식도 상호에게 미뤄줬다. 상호는 사양하지 않고 돈가스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나은은 그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까진 무슨 일인데? 니 이 앞에 있다고 소문 다 난 거 아나?”

“소문? 무슨 소문이 났는데?”

“학교 앞에 애 한 명이 형 기다린다고 계속 서 있다고 수군거리대.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 형이라는 자식은 뭐하는 놈이길래 동생을 고생시키냐고 그런 놈은 잡아다 볼기짝을 때려야 한다던데.”

“뭐? 형이 뭘 잘못했는데 엉덩이를 맞는데!”

 

상호가 입안에 들어있는 음식물을 튀기며 말한다. 나은이 상호에게서 슬쩍 거리를 벌린다. 그런 것은 눈치채지도 못하고 상호가 다시 열심히 돈가스를 먹는다. 아무래도 음식을 다 먹기 전까지 상호에게서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아 나은은 조용히 빨대로 음료수만 빨아 마셨다. 아, 진짜 맛있었다. 형은 맨날 이런 것만 먹고 사나? 좋겠다. 나도 맨날 돈가스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상호의 식사가 끝나고, 나은은 다시 물었다.

 

“니 여기까지 왜 왔는데?”

“아, 맞다.”

 

상호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본 목적을 상기했다.

 

“별건 아니고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내는 가족 맞제?”

“맞지.”

“나 형 동생 맞제?”

“맞다.”

“...나 주워온 자식이가?”

 

태연하게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나은의 손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얼음이 달그락,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은이 상호를 바라보며 묻는다.

 

“그건 왜 묻는데?”

“똑바로 말해줘라. 형이랑 나랑 친형제 맞나?”

“...형제 맞지.”

 

상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나는 가족이 맞는 거야. 넷째 형이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한 거다. 안심하려던 찰나 한마디 말이 덧붙여진다.

 

“주워온 것도 맞다.”

 

상호의 안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깨지는 것 같았다.

 

“누가 말해준 거가? 다은 형이 절대로 말 못하게 했을 건데. 아무튼 니는 우리 가족 맞다. 형제도 맞고.”

 

나은의 뒷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상호는 멍하니 다 먹은 접시가 올라가 있는 테이블을 쳐다봤다.

 

“니가 충격받은 거 안다. 그래도 피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노? 중요한 건 니랑 형이랑 가은이, 하은이가 형제라는 거지. 안 그렇나?”

“어어…. 맞지.”

 

상호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내 가봐야겠다. 집 갈 거다. 니 차비는 있나? 돌아가는 법은 아나? 어어. 괘안타. 혼자 갈 수 있겠나? 형한테 연락해줄게. 잠깐만 기다려라. 됐다. 나 혼자 갈 수 있다. 연락하지 마라.

 

나은이 붙잡았지만, 상호는 굳이 뿌리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동네까지 돌아왔다. 지금껏 무슨 정신으로 움직인 건지 모르겠다. 그저 나은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주워온 것도 맞다.’ ‘니 주워 왔다.’ ‘니는 우리 가족 아니다.’ ‘지금까지 몰랐나? 피도 다른 놈이 어떻게 우리 가족이 되는데.’

 

상호는 제 인생의 이정표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가족이 없는 상호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세상에 혼자뿐인, 혼자일 땐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

 

 

 

나은을 만나고 온 날, 상호가 학교를 빠진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호의 담임선생님은 상호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학교 한두 번 빠지는 것 정도로는 집에 연락을 넣지 않는다는 사실은 반에 공공연하게 퍼져있는 사실이었다. 상호의 담임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40명이 안 되는 학생들을 관리하기 귀찮아했다. 그것까지 모두 생각하고 벌린 일이었지만, 상호의 일탈은 정말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오로지 상호만이 기억한 채로.

 

그동안 상호는 조용히 지냈다. 잘 관찰하면 평소보다 말이 없고 낯빛이 안 좋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의 변화고, 관심이 없다면 아무도 알아채질 못할 정도의 변화였다. 다은이 상호를 보며 요즘 자주 물어봤다. 무슨 일 있음? 상호는 그저 입 꾹 다물고 고개만 도리도리 저어서 부정을 표했다. 다은은 걱정스러운 무표정으로 상호를 그저 내려다보기만 했다. 쓰다듬기엔 거절이 두려워 손을 올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다. 상호는 그런 다은의 시선을 묵묵히 견디다가 곧 자리를 뜨곤 했다.

 

그러는 사이 하은의 변화는 상호와 달리 무척이나 눈에 띄었다. 하은은 최근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말없이 외박하고 들어왔다. 학교는 잘 가나. 가끔은 하은이 첫째 형과 셋째 형이랑 말다툼하는 소리도 들렸다. 끝은 언제나 쾅, 하고 집이 울리도록 크게 닫히는 대문 소리였다. 완벽하게 드러난 균열이었다.

 

상호는 하은과 마주하는 게 껄끄러웠다. 다은과 가은의 얼굴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하은과는 특히나 더 그랬다. 가족이 아니라고 알려준 게 그였으니까.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상호의 세계는 그때부터 무너져갔다. 균열이 간 세계에서 상호는 혼자가 되었고, 외롭고, 고독했다. 상호의 눈은 점점 심연을 닮아갔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상호의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역시나 이번에도 하은 때문이었다. 하은은 다시 한번 술을 마시고 만취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상호가 혼자 집안에 있을 때였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함께 섞여서 코를 찌른다. 상호는 지난번과 비슷한 광경에 자리를 피하려고 하였지만, 한발 늦었다. 그러기도 전에 하은은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상호를 봐버렸다.

 

“뭐야, xx.”

 

말없이 눈을 피하곤 자리를 뜨려는데 하은이 비틀거리며 상호에게 다가온다.

 

“야, 어디 가는데. 내 피하나? 왜?”

“...그런 적 없다.”

“xx 니가 날 왜 피하는데. 피하려면 내가 피해야지…. 니 땜에 내가 이렇게 된 거 아이가.”

 

상호는 입을 꾹 다물곤 바닥만 내려다봤다.

 

“니만 없었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좆밥같이 살지도 않았다. 아나? 고아 새끼가 xx….”

 

중얼거리며 상호의 뒤통수를 때린다. 상호는 여전히 바닥만 내려다본다.

 

“니만 안 주워 왔으면 우리 살림살이도 지금보단 훨씬 나아졌을 거다. 먹을 입이 하나 더 늘어나니깐 집안 꼴이 xx…. 우리 가족은 넷뿐이다. 니는 외부인이라고, 어?”

“...그럼 내가 나가면 되겠나.”

“뭐?”

“형이 바라는 게 내가 사라지는 거 아니가? 내만 없어지면 되겠네?”

 

상호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하은은 인상 썼다. 상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형이 바라는 대로 해줄게.”

 

상호는 말하고선 곧장 현관문으로 향했다. 하은은 그 모습을 인상 쓰며 쳐다본다. 쾅, 문이 닫혔다. 상호는 없고 하은만이 집안에 남아 고요해졌다. 제까짓 게 좀 있으면 들어오겠지 뭐, 진짜 나갔겠나. 하은이 중얼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는 것을 무시한 채다.

 

 

 

다은과 가은이 집에 돌아왔을 때, 그때도 상호는 여전히 없었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를 풍기는 동생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다은은 물었다. 상호 어디 갔음? 그걸 왜 나한테 묻노. 니가 제일 일찍 왔잖아. 내는 모른다. 그리고선 등을 돌리고 대화를 단절한다. 밖은 어두워져서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졌고, 종일 쨍쨍할 거라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거센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다은의 심장이 엇박자로 두방망이질 친다. 밖에 나가서 상호 찾아와야겠다. 뭐? 우산도 그대로 있던데 지금 밖에서 비라도 맞고 있으면 어떡할 건데. 빨리 가서 찾아와야지. 걔가 일곱 살 먹은 아도 아니고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들어오겠지. 그럴 나이다 아이가?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놀다가 말없이 늦게 들어올 때잖아. 내는 사거리 쪽으로 가볼게. 가은이 니는 슈퍼마켓 쪽으로 가봐라. ...알았다. 하은이 니는... 내는 안 갈 거다. ...알았다. 그 말을 끝으로 다은과 가은은 우산을 펼쳐 들고 밖으로 나섰다. 다시 한번 하은이 혼자 집안에 남았다. xx... 애새끼 놔두면 알아서 들어오겠지. 중얼거리며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상호를 찾으러 나간 다은의 머릿속에는 불안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어제 본 뉴스가 생각난다. xx 시에서 연쇄적으로 아이들이 실종되어 경찰 측에게서는 수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난항을 겪어… 그제 본 전단지도 떠오른다. <아이를 찾습니다> 나이 10세, 인상착의 빨간색 티셔츠에 청바지…

부정적인 생각을 없앨 틈도 없이 자꾸만 떠올라서 다은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제 가슴이 지금 달리느라 빨리 뛰는 것인지, 불안해서 빨리 뛰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상호! 상호야! 니 어딨노!”

 

크게 소리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평소에 자주 가던 놀이터도 가보고, 집 주변에 개미굴 같은 골목길을 하나하나 들어가 샅샅이 찾아봤다. 비가 오는 와중 우산을 제대로 쓰는 둥 마는 둥 하는 채라 온몸이 흠뻑 젖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함이 더해졌다. 정말 큰일이 난 거 아닌가? 유괴라도 당했으면? 다른 애들보다 상호가 귀엽게 생겼으니까 더욱 조심해야 했는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평소 지나간 일을 아쉬워할망정 덤덤히 넘기던 다은이었다만, 이번에는 과거가 미친 듯이 후회되고 아쉽다.

 

그러던 중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고물상 옆을 지나가는데, 간신히 비를 피할 정도로 튀어나온 PVC 지붕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형체를 발견했다. 비를 다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라 신발이 전부 젖은 채였다. 다은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멈췄다. 찾았다.

 

양 무릎을 세운 채 고개를 그사이에 파묻고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는 동생을 향해 우산을 쓴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깜깜한 밤중에 가로등 불빛도 잘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다은은 눈앞의 저 사람이 상호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상호에게 다가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툭, 툭, 빗방울이 우산에 맞아 나는 소리가 요란하다.

 

“상호. 여기서 왜 이러고 있노.”

“...”

“춥지 않음? 집에 가자.”

 

다은의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상호를 다은이 채근하며 일으켜 세웠다. 한참이나 바깥에 있던 탓인데 붙잡은 상호의 팔이 차가웠다. 상호의 몸을 데우고자 꽉 끌어안았다. 왠지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얼굴은 드러나고 보니 메마른 얼굴이었다. 다은은 상호를 끌어안은 채로 잠시 체온을 나눴다. 차가운 몸에 감기라도 걸리는 게 아닌가 아직 제 품에 다 들어오는 몸을 세게 안은 채로 있었다. 차가운 몸이 조금은 미지근해졌다고 느껴질 때, 그제야 품에서 상호를 떼어냈다. 상호는 그때까지도 침잠한 눈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은과 상호와 한 우산을 쓴 채로 집으로 걸어갔다. 둘 다 아무 말도 없이 걷던 와중 갑작스레 입을 연 건 상호였다.

 

“햄. 우리 가족 맞나?”

“맞지. 무슨 질문임.”

“다은햄은 내 형 맞나?”

“맞음. 니는 내 동생이다.”

 

그리곤 다시 아무 말도 없다. 툭툭,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정적을 채운 채로 다은은 굳이 그것을 깨려 하지 않았다. 상호의 한쪽 어깨를 꼭 끌어안은 채 미묘하게 우산을 상호에게 기울였다. 제 어깨는 비에 계속 맞는 채로 묵묵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엔, 우산을 썼다지만 둘 다 비를 흠뻑 맞은 탓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둘 다 고열에 시달려 같은 방에서 나란히 누운 채로 끙끙 앓으며 누웠다. 아픈 와중에도 다은은 간간이 물수건을 상호의 이마 위에 올려줬다. 상호가 열에 들뜬 채로 형, 형아, 부를 때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뜨거운 상호를 꼭 끌어안았다. 형 여기 있음. 그러는 제 몸도 불에 달군 것처럼 뜨거워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다은은 제 동생이 언제 이렇게 컸나 괜히 섭섭하고 기특한 마음이 들어 틈날 때마다 아픈 상호를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상호가 덥다면서 짜증을 부릴 때면 어쩔 수 없이 놓아주었지만.

 

감기가 나은 상호는 몸이 낫자마자 집에 잘 안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 형제들의 얼굴을 되도록 피하고, 마주치는 걸 삼갔다. 다은은 그런 상호를 혼도 내고 어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여전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상호는 떠났다. 다은은 어느 날처럼 상호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며 찾아다녔지만 어디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기상호는 김다은의 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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