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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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고 성준수 지킴이 스쿼드 + 뉴런 빵준

1.

그러니까, 처음 찾아온 것은 진재유였다.

어, 니 원중고 4번 아이가. 전영중이.

지상고 4번? 안녕.

내 지금 준수 찾고 있는데. 혹시 준수 못 봤나.

아니? 아, 혹시 같이 있을까 봐 온 거야?

그건 아닌데, 둘이 말릴 아 없는 데서 쌈박질할까 봐 항상 걱정인 것 맞다.

그렇구나.

맞나. 아, 내 니한테 할 말 있다.

전영중이 미간을 좁혔다.

뭔데 그래?

니 혹시 준수 원중고 다닐 때도 그래 괴롭혔나?

큽, 헉, 켁, 나? 내가? 성준수를? 지금? 아니, 그때도? 괴롭혔냐고?

와 이래 놀라노? 니 준수만 보면 눈 돌아가서 별 소리 다 하는 거 거 고교 농구판에서 모르는 놈 없을 기다. 원중남고에서도 그랬나.

미안한데,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내가 준수를 무슨 배짱으로 어떻게 괴롭혀. 원중 다닐 때도 내가 무서워서 맨날 피해 다녔어.

...무섭다는 아를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말로 때리나.

말로 때리다니.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나는 준수한테 심한 말 한 적 없어. 다 준수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네가 지금 준수랑 같은 팀이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은데, 준수랑 나랑 원중 시절을 하나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거 불쾌해. 

...맞나.

.......

...그렇다 해도 준수 볼 때마다 험한 말 하는 거 보기 안 좋다. 한 마디 할라다 참은 기 한두 번이 아이다. 경기 중에도 아 성질 너무 긁지 말고.

진재유였나? 미안한데, 농구는 원래 트래시 토킹이 허용되는 스포츠야. 그리고 내가 무슨 미국 애들처럼 패드립을 한 것도 아니고. 나 정도면 한국에서도 신사적인 수준이야. 그리고 입은 준수가 더 험한데, 걔 쌍욕하는 건 안 들리나 보지.

그냐. ...됐다. 걍 앞으로 내 앞에서 쫌 자제해라. 난 간다.

뒤돌아 준수, 마 어딨나, 를 외치며 달려가는 진재유의 파란 등을 보면서 전영중은 속으로 조금 거지 같은 대화였다고 생각했다. 둥글고 순한 얼굴에 성준수랑도 적당히 지내는 것 같아 나름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지상고 4번에 대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다음번에 코트 위에서 만나기만 해봐... 보란 듯이 눈앞에서 성준수의 멘탈을 주둥이로 털어버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전영중은 몰랐다. 이게 수많은 거지 같은 대화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2.

뭔가 촉이 좋지 않았다.

영중햄! 안녕하세요!

오, 영중이 형임! ㅎㅇ!

흔히 지상고 패트와 매트라 불리는 지상 6, 7번의 조합은 언제나 대유잼꿀재미를 보장하여 어디서나 환영받기 마련이었지만, 전영중은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바짝 굳어 긴장했다. 스리슬쩍 어디론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는 없을까 주변을 둘러봤는데, 불행히도 지금 경기장 복도에는 자기 말고 지상고 퍁앤맽을 상대해줄 상대는 없었다. 

어, 안녕. 웬일로 둘이서만 다니네.

아, 이게, 별건 아이고, 영중햄께 아주 조심스레 할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준수햄이 오는 길에 음료수도 뽑아오랬음!

맞다. 음료수도 뽑을라 그랬습니다. 아이, 진짜 생각해본까 불공평한 게, 희차이는 안 시키고 맨날 내랑 다은햄만 시키는 것 아입니까. 맨날 아가 얇아서 뭔 심부름이냐 그러는데... 뭐랍니까. 희차이도 운동하는 자슥인데... 이건 그냥 차별 아입니까? 암래봐도 희차이를 더 이뻐해서 그러는 것 같죠? 이거 편애 맞죠? 영중햄이 봐도 그렇죠?

울상이 된 기상호를 보며 전영중은 약간 당황했다. 어... 글쎄?

님! 열폭하지 마셈! 님 억울한 건 알겠으나 영중햄은 그런 거 안 궁금해함!

아이고 맞네 맞다. 햄 죄송해요 요즘 준수햄이 관심을 안 줘서. 막 말이 앞서네요. 죄송합니다.

기상호가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90도로 인사를 했다. 뒤에서 김다은이 어버버 하다가 똑같이 인사를 했다. 예상치 못한 사과 인사를 쌍으로 받아버린 전영중은 떨떠름해졌다.

아, 괜찮아. 혹시 하고 싶었던 말이 뭐야?

그러니까, 제가 요즘 준수햄한테 관심을 못 받잖아요. 관심을 못 받으니까 아무 말이나 앞서고, 하고 싶은 말 대신 다른 말이 먼저 나오고. 말이 삐뚤게 나오고. 괜히 준수햄 깎아내리고 싶고. 열받게 하고 싶고. 시비 걸고 싶고. 날 의식하게 만들고 싶고.

기상호의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전영중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분노 게이지도 점점 상승했다. 이것 봐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햄, 세상에는 애정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비와 막말은 그 중 가장 하수에 속하죠.

오오! 기상호 벌써 거기까지 알아낸 거임?

당연한 거 아이가요? 내 지상 최강 수비스페셜리스트 기상호 아입니까? 관찰력 하나는 끝내줍니다! 

전영중의 동공은 진작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이 새끼들 단체로 뭐지? 1:2 매치 상황에 몰린 기분이었다.

얘들아, 난 너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설마 지금 내 이야기야? 준수가 관심 안 줬다고 내가 시비 건다는 소리가 맞을까?

아아 해애앰. 화내지 마시고. 워워 진정. 컴 다운. 저희 나쁜 의도 없어요. 1도 없는디, 평상시에 준수햄 성질 넘 심하게 긁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리러 왔슴다.

아, 제발 부탁드림요. 준수햄 토라지면 저랑 상호랑 희찬이랑 재유햄이랑 넷이 목숨 걸고 달래야 함요. 저번에도 초코아이스크림 사느라 용돈 다 나갔음. 진짜 힘듦.

그것도 그거고, 그 솔직히, 우리 팀 주장햄이 그렇게 욕 먹는 거, 솔직히 쪼매 마음 아픕니다. 형님의 넓은 아량으로 미천한 저희의 입장 이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하겠슴다-

또 거대한 몸을 반으로 접어 공손히 인사하는 두 아이들에게 쌍욕을 때려 박으며 맞짱 뜨자고 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것은 성준수식 문제 해결법이다. 전영중은 다르다.) 전영중은 기분이 존나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격 좋고 인맥 넓은 고교 농구계 패트와 매트를 조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 얘들아, 내가 방금 정말 기분이 안 좋았어.

헉, 죄송합니다아...

ㅈㅅ요...

근데, 준수 후배들이니까 그냥 귀엽게 봐줄게. 큰 틀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 그러니 이제 가줘.

넵!

ㅇㅋ! ㄱㅅ!

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인 전영중은 방금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하나하나 되뇌어보았다. 영중햄 안녕하세요, 오, 영중햄임, ㅎㅇ....... 무엇이 잘못된 걸까. 자기가 방금 겪은 일은 무엇일까.

......님 아까 연출 지렸음. 역시 궁예의 아들, 추궁의 만신, Sangho Ki 같음. 서서히 깨달음을 얻는 영중햄 시퍼레지는 것 봤음?

아, 햄도 참, 그 정도는 아입니다. 근데 저는 영중햄이 빨개졌다고 확신할 수 있는데.

ㄴㄴ. 분명히 파래졌음. 지상 유니폼인 줄.

아 이상하네, 전 분명히 입고 있던 원중 유니폼이랑 하나 되는 걸 본 것 같은데요.

동의 못함. 근데 우리 포카리 다섯에 비타오백 하나 뽑아가면 됨?

준수햄 비타 마신대요?

... 그 이후로 안 마심?

트라우마 어쩌고 하시던데에......

결국 전영중은 참지 못했다.

다 들려!!!!!

앗! 죄송합니다!!

ㅈㅅ!!!!

첫 임무를 완수하고, 이제는 자판기를 찾으러 원정을 떠난 기상호와 김다은 콤비의 울화통 터질 법한 대화를 엿들은 것을 마무리로, 전영중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 심히 -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3.

이 새끼는 분명... 그놈이다. 그, 성준수랑 사이 나쁜 놈. 성준수랑 치고받고 싸우다가 지 팀 감독님 넘어뜨린 놈. 전영중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직접 준수한테 조언했던 놈.

그, 안녕하세요.

혼자서 전영중한테 할 말이 있다고 따로 불러낸 것이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굉장히 불안했지만, 성준수를 진심으로 죽여버리고 싶어 할 때가 있는 놈이라 설마 그때와 비슷한 대활까 싶어 순순히 따라 나와 주었다. 

어, 할 말이 뭐야?

그, 형. 준수햄한테는 와 그래 구는데요?

전영중은 귀를 의심했다. 그 다음,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미안한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바빠서, 가봐도 될까?

아이, 한 마디만 할게요. 내 성준수 그 새끼 진짜 개싫어하는데, 다른 팀 3학년한테 말발 딸려서 후들겨 맞는 꼴 보는 건 쫌 기분 나빠서.

너 지금 말이 조금 짧아.

요.

그리고 준수 말발 딸리는 건 걔 잘못이지, 왜 나한테 뭐라 그래. 그 부분은 오지랖 같아. 그리고 너 성준수가 선밴데 왜 이름으로 불러?

오지랖 맞는데, 그래도 적당히 해요. 와 그러는진 몰겠는디, 성준수...형 승질 드럽고 인상 사나운데 은근 순진한 구석 있어서 말 골라서 해야 한다 그래요. 그 새끼 자기방어도 혼자서 못하는 빙신이니까 적어도 주변에 사람 있을 때 시비 거세요. 

전영중은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아득함을 경험했다. 이것은 캐해를 어떻게 해야 나오는 발언인 것인가. 비껴가도 한참을 비껴간 여림(?) + 순진함(??) +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빙신(???)의 순 100% 날조의 성준수 캐해를 듣다 못한 전영중이 눈을 질끈 감았다. 성준수가 어떤 놈인데. 농구 하겠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캐리어 끌고 혼자 내려간 놈인데 혼자서는 자기방어를 못하는 놈? 와. 진짜 선 넘었다.

야.

와요.

가라.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하이고, 네, 네. 걍 함 생각해 보시라고요.

공태성이 지나가면서 끼리끼리 어쩌구... 로 시작하는 구시렁거림이 조금 들려와 전영중은 속으로 참을 인을 한번 외쳤다. 걸음거리가 건들거리는 게 꼴받아서 한 번 더 외쳤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자칭 진짜 성준수 개싫어하는 새끼 공태성의 뒤태는 정말이지 양아치 같고 좆같았다.

4.

엇! 영중햄이다! 안녕하세요!!

저 멀리서 보이는 파란 저지는 벌써부터 PTSD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같이 떠들고 있던 조재석을 잠깐 두고 전영중한테 달려온 파란 저지, 흰 헤어밴드, 적갈색 머리카락, 빛나는 눈의 정희찬은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학교를 불문하고 온갖 선배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물론 전영중도 평상시에는 재석이와 친한 준수네 후배 정도로 정희찬을 좋게 생각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지겨울 정도로 겪은 지상고 학생과 단 둘만 남아 있는 상황이 예상되자 벌써 입 밖으로 쌍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햄 있잖아요 -

미안한데 희찬아 그런 거 아니거든. 성준수가 관심 안 줬다고 일부러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 너희가 보기에는 내가 허구한 날 성준수 성질 긁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원중고 때부터 우리 관계를 모르면서 함부로 추측하는 것도 유쾌하지 않고, 무엇보다 성준수는 여리고 불쌍하고 쉽게 상처받는 캐릭터가 아니야. 너네 지상고 애들 전부 성준수 캐해 잘못하고 있어. 너네는 트위터하면 캐붕이라고 비인알 몇 천 개씩 달릴 것 같아.

정희찬이 한참을 말을 못하고 멍하게 전영중을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아, 햄 그게 아이고. 걍, 오늘 경기 떵크 대박이었다고 할라켔는데...

이번엔 전영중이 말을 잃을 차례였다.

아... 아. 와하하하하! 아! 그렇지. 떵크!! 하하하하하! 아 그런거였구나! 하하하하하하하!!

몹시 불안정한 전영중의 모습에 괜히 정희찬이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네가 미안할 건 없지. 내가 너무 앞서 나갔네. 요즘 너무 기분 나쁜 일이 많았기에... 미안. 재석이가 기다리겠다, 가봐.

넵!

가시방석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진 순간 자기를 기다리는 조재석을 향해 다시 뛰어가는 정희찬이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와씨, 개놀랐네. 내 할 말은 또 어떻게 알았제. 준수햄 부랄친구라더니 눈치 귀신같은 것도 똑같나본네.

5.

하루는 조재석이 말했다.

영중이형은 왜 준수형만 보면 이성을 잃고 시비를 걸어요?

몰라. 식초 건네줘. 싱거워.

조재석이 식초를 지국민한테 건넸다. 이휘성이 매운 맛과 뜨거운 맛이 헷갈리는지 비빔면을 후후 불면서 한 마디 던졌다.

영중이가 언제 준수한테 그랬다고 그래. 준수가 영중이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거지.

이 발언에 조재석이 심히 어리둥절해하자 박교진이 실실 웃으며 덧붙였다.

성준수가 자존심이 졸라 쎄서 놀리는 맛이 있긴 해. 발끈하는 것도 웃기고.

아~ 그래서 그런 거였 -

미안한데 교진아, 준수는 자존심이 센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더러운 거야. 강약약강 알아? 그게 걔야. 걔 어렸을 때부터 운동부 선배나 선생님들한테는 잘 굽혔어. 그러면서 초등학교 6학년 형들은 안 참고 그냥 팼잖아. 세 살 차이밖에 안 나서 만만하다 이거야. 아주 비겁하지? 그리고 걔 발끈하는 게 뭐가 웃겨. 아주 공포물이 따로 없어. 안 그래도 다크서클이 짙어서...

원중고 주전들은 한동안 전영중의 성준수 뇌절을 가만히 들어주었다. 한참 후 지국민이 말했다. 간장 좀. 여기요. 시간이 흘렀다. 우리 이제 갈까? 아 잠시만요 휘성이형. 영중이형 아직도 말하고 있어요.

결국 참다 못해 나선 건 박교진이었다.

영중아, 제발 그만하고 밥 좀 먹어.

걔는 몸뚱아리도 별 볼 일 없으면ㅅ... 어?

너 성준수 좋아하냐? 태도만 보면 영락없이 짝사랑하는 여자애 뒷담하는 초딩이다, 야?

교진아, 언제나 네 지능이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나 궁금했는데, 방금 커리어 로우를 찍은 것 같아. 지렁이들도 너 따라잡으려면 분발해야겠어.

아니 뭐래 병신아. 너 성준수 이야기만 나오면 급발진하는 거 웃겼는데, 지금은 그냥 불쌍해. 그만하고 먹어.

전영중의 표정이 썩어들어갔지만 그가 속으로 셋을 세며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나서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기에 결국 조용히 그릇에 얼굴을 처박았다. 후릅, 츄릅, 호로록, 세 번에 냉면 한 사발이 사라졌다. 오른쪽에 앉아 있던 우수진이 빈 그릇을 빠르게 치워냈으며 건너편에 앉아 있던 이휘성이 빈 자리에 새 그릇을 밀어 넣었다. 후릅, 츄릅, 호로로록, 꿀꺽. 우수진과 이휘성이 다시 한번 각자 맡은 역할을 해냈다.

새 국수를 먹기 전, 전영중은 슬쩍 이휘성을 쳐다봤다. 이휘성은 깊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믿었던 이휘성마저 자기의 변호를 해주지 않자 전영중은 어쩐지 조금 억울해져, 이번 그릇은 원샷했다. 초로로로호로로로롤로포포롤로로츄스읍!

다섯 그릇을 비우고 고개를 들었다. 왜인지 테이블은 약간 숙연한 분위기였다. 앞자리의 이휘성은 뭔가 깨달아버렸는지 살짝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네,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 시비는 영중이가 걸었네.

어쩌면 이 말을 한 사람이 이휘성이라는 것이 이 상황이 가장 거지 같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2주 뒤, 연습경기를 위해 버스에서 내리는 지상고를 보며 다가가려는 전영중은 실제로 리터럴리 이휘성한테 목덜미가 잡힌다.

영중아, 안 그래도 전학 가서 우리 볼 때마다 심란하고 예민할텐데, 준수한테 너무 못살게 굴지 마.

재첩국 간첩 신고에 물부족국가 극딜을 처맞고도 음료수나 뽑아주며 지 우승할 방법 물어보는 성준수가 얼마나 쿨한 놈인지 뼛속까지 아는 전영중은 이날 혈압이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던 것 같다.)

+1.

요 우리 준수~

닥쳐.

응.

.......

.......

닥치라고 진짜 닥치는 전영중? 이건 둘 중의 하나였다. 외계인 침공이 일어났거나 지구가 멸망했다는 소리다. 하여튼 지구가 존나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는 소리다.

성준수가 의심쩍은 눈으로 자판기 앞에 나름 우울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전영중을 흘겨보았다.

전영중이 태어난 시각.

오전 11시 04분.

전영중이 가장 두려워하는 거.

매 순간 열심히 살지 않는 것.

웃기지 말고.

공사장 근처 보도블록 지나는 것.

성준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XX 브랜드 시그니쳐 초코케이크.

와씨 이걸 맞힌다고? 이건 외계인이어도 인정이었다.

에휴, 뭐가 문젠데 그래. 성준수가 전영중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전영중이 뚱한 표정 그대로 유지하며 성준수 뒤로 다가와 성준수를 끌어안았다. 목에 이마를 푹 파묻고 하씨 억울해... 따위를 중얼거렸다.

성준수가 복부를 끌어안은 전영중의 손등을 대충 토닥여주며 자판기에 천 원을 집어넣었다.

나 포카리...

비타오백 말고?

몰라 이제 그거 안 먹어.

어디서 앙탈이야. 근데 왜.

너도 안 먹는다며...

에휴... 어디서 또 이상한 소리 주워들어 왔구먼...

성준수는 투덜대면서도 야무지게 포카리를 뽑았다. 음료 주워야 되니까 놔.

진짜 싫은데 너네 후배들이 너한테 잘하라 그래서 놔줄게...

뭐래.

성준수가 포카리를 전영중한테 건냈다. 전영중은 응어리 진 게 있었는지, 캔 뚜껑을 시원한 소리와 함께 딴 뒤, 무슨 맥주 마시듯 벌컥벌컥 음료를 해치우고 꾸깃 접어서 휴지통에 보지도 않고 골인 시켰다. 그 꼴이 웃기면서도 약간 측은해진 성준수가 갓 뽑았던 자기의 비타오백도 전영중한테 건넸다.

고마워...

약간 괘씸하지만, 전영중은 거절치 않았다. 불쌍한 비타오백은 곧 포카리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근데 너 비타오백 안 먹는다며.

빨리도 물어본다. 그거 그냥 하고 다니는 소리야. 잘 마셔.

그런 말을 왜 그냥 하는데. 네 후배들이 내가 너 완전 괴롭히는 걸로 오해하잖아. 얼마 전에는 휘성이까지 나보고 준수 가만히 냅두라고 그랬다고.

.......

어쭈, 입꼬리가 올라가? 좋아? 이 상황이 재밌어?

......ㅋ

야, 성준수. 웃어? 좋아 죽네, 아주 후배를 잘 키웠어.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걔들이 하나같이 나한테 찾아와서 우리 준수형한테 잘해요 이지랄을 해?

...걔들이 그러더냐.

와! 성준수 좋아하는 거 개킹받아. 너 웃을 때마다 천 원씩 내라, 안 되겠어.

다아~ 인과응보다, 영중아. 그러게 왜 애들 앞에서 나만 보면 꼭 시비를 걸고 그러냐.

 

전영중은 성준수가 좋아하는 게 짜증 났고, 와중에 웃는 게 예뻐 보이는 게 너무 짜증 났으며, 궁극적으로 성준수가 한 말 중에 틀린 게 하나 없어 머리 꼭대기까지 짜증이 솟았다.

네가 관심을 안 줘서 그런가 봐.

? 뭐래.

아냐, 그런 거래.

누가.

있어... 궁예의 아들이자 추궁의 만신.

너 존나 제정신 아니다... 일로 와.

전영중이 성준수 품 안을 꾸깃꾸깃 파고들어 갔다. 성준수가 머리를 무심하게 툭툭, 몇 번 토닥여줬다.

준수야...

응.

너 볼 때마다 시비 건 거 미안......

응.

응은 왜 응이야, 괜찮아가 아니고.

안 괜찮으니까 그렇지.

으음...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성준수가 전영중을 떼어내고 쳐다봤다. 손을 들어 양 볼이 튀어나올 정도로 얼굴을 쥐고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틀어 유심히 살펴봤다.

야... 존나 기특하네.

내가 사과한 게?

아니 너 말고. 너한테서 사과까지 받게 한 우리 애들.

와 준수 진짜 너무해. 걔들 그렇게 부르지 마. 아주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던데 너까지 그러면 나 진짜 질투해.

아오 알았어.

성준수가 전영중의 고개를 가운데로 고정해놓고는 튀어나온 입술에 꾹, 꾹, 입방아를 두 번 찧었다.

기분 풀고.

전영중은 성준수가 얌전히 제 품에 안긴 채로 음료수를 뽑아줬을 때부터 이미 기분이 풀려 있었지만 성준수한테 어리광 부릴 기회는 흔치 않았으므로 여전히 속상한 척 입술을 내밀었다.

하... 하여간 전영중 달래기 존나 힘들어요. 쪽. 애들이 뭐라 뭐라 해도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쪽. 그냥 그만큼 내 주변에 좋은 애들 있다는 거니까 좋게 생각해. 응? 쪽.

알아썽 준수야...

어어.

성준수는 전영중의 뺨을 손끝으로 가볍게 툭툭 치는 것을 마무리로 작별을 고했다.

난 가본다 그럼. 이따 연락 하든가.

준수야 너만 안 씹으면 돼...

쿨하게 뒤를 돌아 퇴장하는 성준수를 보며 전영중은 생각했다. 역시 지상이 캐해를 존나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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