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나츠] 만약 후지와라 부부보다 나토리가 먼저 나츠메를 발견했더라면

어땠을까

쳇바퀴 by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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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쓴 글 중에서 나토리가 나츠메를 데리고 와서 요괴 퇴치만 주야장천 하는 걸 보고 죄책감 가지는 내용이 있던데 그걸 좀 더 풀어내면 어떻게 될까…….


후지와라 부부 이전에 나토리가 먼저 나츠메를 발견했더라면?

후지와라 부부와 만난 건 중, 고등학생 때니까,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갓 중학교에 입학한 정도로 생각해서 강변에서 요괴에게 쫓기고 있는 나츠메를 발견한 나토리라면? 당시 나토리의 나이는 고등학생~갓 성인이 된 나이었을 테고, 그때 나토리는 지금처럼 퇴마사 일과 배우 일을 양립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나츠메를 본 건 퇴마사 일을 하던 중이었을 거고.

당시 마을을 부유하며 종종 사람을 괴롭히고 있던 요괴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어쩌다가 나토리에게 일이 들어와서 그걸 봉인하러 왔더니 초등학교는 이제 겨우 졸업할까 싶은 애가 쫓기고 있는 거지. 한눈에 봐도 저 애도 ‘이쪽’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기에 나토리는 주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만 간단하게 살펴보고 요괴를 봉인했음.

학교에서부터 계속 괴롭힘에 시달리던 나츠메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했음.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쫓아오고, 괴롭히고, 밤에 잠도 못 자게 하는 것임. 심지어 혼자 있을 때 괴롭히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데 오늘처럼 자꾸 사람이 많을 때만 노려서 괴롭히니까 평소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게 됐음.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무서운 한편으로 저를 쫓아오는 요괴가 두려웠음. 나츠메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지, 끝이 존재하기나 하는지도 모를 괴롭힘에서 도망만 치고 있으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어른이 그 요괴를 단번에 사라지게 했음. 웬 호리병에 요괴를 봉인한 거였지만, 나츠메의 눈에는 그게 꼭 사라지게 만든 거 같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만히 그 모습만 보았음.

“흠, 전보다 잘 다루고 있는 걸까. …어때 보여? 우리히메, 사사고.”

“나아지셨습니다, 주인님.”

“전보다 굼뜬 행동도 사라지셨고요.”

“그럼 다행인데.”

웬 남자가 혼잣말하더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허공에서 요괴 두 마리가 튀어나왔음. 나츠메는 갑자기 나타난 요괴에 한차례 몸을 움츠러트렸지만, 저에게 시선을 주고 있지 않았기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음. 그리고 호리병을 한참 보고 있던 남자가 그걸 가슴 안쪽 주머니에다 넣고 고개를 돌려 저와 시선을 마주했음. 놀란 나츠메와 달리 남자, 그러니까 나토리는 당황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음. 

“몇 살이야?” 

퇴마사 일을 하던 중이었기도 했고, 현재 나토리의 인지도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었기에 가식적인 웃음을 짓지 않은 채 말했음. 나츠메는 나토리의 말에 입을 우물거리기만 했음. 자신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저하고 ‘같은’ 걸 보는 사람이 저에게 말을 걸었다면? 나츠메는 나토리의 옆에 있는 요괴를 한 번 봤음. 요괴는 저를 보고 있지만 저에게 관심이 없었음. 그게 지금까지 본 요괴와 다른 점이었기에 나츠메는 느리게 입을 열었음.

“13살이요.”

“뭐, 중학생? …나는 초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키가 작고 말랐기에 나토리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봤음.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갓 입학한 중학생이나 비슷비슷하지만. 나츠메는 대답하지 않았음. 그저 눈을 데굴데굴 굴렸을 뿐이지. 나토리가 물었음.

“이름이 어떻게 돼?”

“…제가 그걸 알려드릴 이유가 있나요?”

지금껏 요괴나 인간에게 데어왔던 만큼, 그리고 인간인 척 다가온 요괴에게 당해봤던 만큼 나츠메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토리를 봤음. 자신을 구해준 건 구해준 거지만, 만약 저 사람도 요괴라면? 같은 요괴끼리 영역싸움이라도 한 거라면? 나츠메는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려고 준비했음. 그 모습에 나토리는 별다른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 옆에 있는 요괴가 격분한 것처럼 말했음.

“감히 주인님이 말을 걸어주시는데!”

“인간의 아이는 도와줘도 감사의 인사조차 못 하는 거냐!”

나츠메가 크게 몸을 떨며 뒤로 멀어졌음. 자리에서 일어난 채 허리를 숙이고 있는데, 나토리가 그만하라며 손을 젓고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감. 나츠메는 저하고 전보다 좁혀진 거리에 뒷걸음질 쳤지만, 나토리가 더 빨랐음. 나토리는 나츠메와의 거리 사이를 한 걸음만 남겨둔 채 말했음.

“나는 나토리 슈이치야. 내가 먼저 말했으니, 이제 너도 네 이름을 알려줄래?”

“…나츠메, 나츠메 타카시예요. …늦었지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을. 딱히 도와준 건 아니야. 너를 따라다니던 요괴가 내 의뢰로 들어온 거였거든. 사람을 괴롭힌다고 퇴치해 달랬던가.“

나토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음. 그런데 괴롭힘당하고 있는 사람은 너 혼자뿐인 거 같지만. 나츠메는 아무 말도 못 했음. 그보다는 나토리의 말을 곱씹었음. 퇴치? 의뢰? 한평생, 그래봤자 13년 살아왔지만 들어본 적 없는 단어가 귀에 들렸음. 요괴를 퇴치한다고? 의뢰도 받으면서? 그러니까, 내가 보는 걸 같이 보는 사람이 있으면서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고? 나츠메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변해갔음. 나토리는 재미있는 걸 본다는 식으로 팔짱을 껴서 구경하고 있음. 사사고와 우리히메는 돌아간 지 오래임.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이니까 일부러 꺼내둘 필요도 없고, 꺼내뒀다가 나츠메가 그쪽으로 시선을 주기라도 하면 길 가는 사람이 이상하게 볼 게 분명하니.

나츠메는 여전히 나토리가 한 말을 되짚어봤음.

“보이는 걸… 그러니까, 요괴를 보는 걸로 업으로 삼는 사람이 있나요?”

“지금 네 앞에 있는 나도 그걸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인데?”

“…….”

지금껏 자기 혼자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음.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평범’했으니까. 볼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고, 그것들은 만질 수 있는 것도 저뿐이었음. 그러다 보니 저처럼 요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나츠메였음. 그러다 자신과 같은 걸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퇴치까지 한다? 요괴에 한평생을 시달려오던 나츠메로서는 가슴 한편이 부풀어 올랐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이 지긋지긋한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하지만 어떻게?

나츠메는 볼 수만 있음.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은 모름. 그것을 알려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지금 눈앞에 있는 이가 저를 도와줄지도 미지수이며 지금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먼 친척에게 더 이상 민폐를 끼치면 안 됨. 나츠메는 다시 가라앉은 눈을 했음. 어떻게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방도는 없겠지. 그렇다면 그냥 감사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게 깔끔할 거라고 생각한 나츠메는 어쨌든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떠나려는데, 나토리의 목에서 올라오던 도마뱀 반점을 발견함. 나토리의 옷 안쪽에 있어서 못 본 거였는데, 갑자기 도마뱀이 자리를 바꾼다고 목 위로 올라온 덕에 나츠메는 한 차례 더 놀라다가 빤히 반점을 보고 있었음. 나토리는 저에게 집중된 시선에 뭔가 묻었나 싶었는데, 그런 시선으로 볼만한 게 떠올라서 제 얼굴을 더듬으며 말함.

“이거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는데. 눈이 좋은가보구나.”

“…살아있는 건가요?”

“그러지 않을까? 매일매일 머무는 위치를 바꾸고 있는 걸 보면 살아있는 거 같아.”

“몸에 해가 되는 건요?”

“없어. 그저 반점으로 내 몸에 살아갈 뿐이야. …그래서 오히려 더 찝찝하지. 아무것도 안 한다니,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잖아.”

얼굴을 매만지며 말하는 나토리는 작게 미소를 지었음. 그 미소가 마냥 좋아 보이는 건 아니기에 나츠메는 가만히 반점을 바라봤음. 반점은 나토리의 얼굴 한쪽을 가만히 맴돌더니 자리를 찾았는지 움직이지 않았음. 나토리는 나츠메의 경계심이 전보다 누그러진 것을 느끼고 속으로 이 반점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구나, 하고 생각함.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인 나츠메는 더 늦기 전에 돌아가 봐야 한다고 했음. 친척분들은 제가 오는 걸 원치 않겠지만, 보호하겠다고 한 아이가 사라지는 건 엄청난 일이 될 테니까. 나츠메는 바닥에 구르는 제 가방을 챙겨 들고 말함.

“어쨌든, 고맙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가볼게요.”

“…….”

나토리는 말이 없었음. 나츠메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뒤를 돌았는데,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림.

고개를 돌려보니 나토리가 고민하는 얼굴로 잠시 입을 다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음.

“…나츠메, 너 여기에서 살고 있니? 부모님이랑?”

“여기서 살고 있긴 해요. …부모님이랑은 아니고요.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먼 친척분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어요.”

“…그래?”

그게 다였음. 나토리는 혼자 인상을 구겼다가 펴길 반복하더니 이내 나츠메에게 인사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감. 나츠메는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금방 사라져가는 모습에 저도 걸음을 옮겼음. 여기로 온 것도 일로 온 거였으니, 앞으로는 만날 일이 없겠지. 처음으로 저와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게 만난 것도 아니었으니 나츠메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음. 그렇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받은 나츠메는 그것만으로도 좋았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지, 헤어진 지 며칠 되지 않아 그와 다시 재회하고 심지어는 저의 보호자를 자처할 줄은.



나토리는 나츠메의 상태를 봤었음. 마른 몸, 눈을 가리는 앞머리, 어디서나 위축된 모습. 눈에는 경계가 어려 있었음. 물론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누구나 그런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나츠메는 어딘가 달랐음. 경계라고 해야 할까, 그 안에 보이는 두려움이 나토리는 신경 쓰였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었지.

나토리는 일을 끝냈음에도 그 마을을 떠나지 않았음. 일을 금방 끝냈으니까 조금 쉬었다 가는 것도 좋겠지. 그런 변명으로 쉬고 있지만 사실은 나츠메 때문에 남아 있었음. 어쩌다가 한 번 마주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마주하지 않고 멀찍이 바라보는 것도 괜찮고. 그래서 본 모습이라고는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있는 모습뿐이었음. 나츠메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작은 소리로 쟤구나, 이상한 걸 본다고 한다던데. 그거 때문에 여러 집을 전전했다던데. 고아원에서도 쫓겨났대.

나토리는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말을 다 듣고 있었음. 친척 집에 있다는 걸 듣긴 했는데 여러 번 전전했을 줄이야. 심지어 고아원…. 음. 나토리는 생각하는 걸 멈췄음. 일단 나츠메가 대충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각이 보였음. 몇 번째인지 모를 친척 집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고 있는지 의문이었고,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음. 

뭐, 정답은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나토리는 생각했음.

나츠메는 요괴가 보이는 사람이지. 그리고 자신의 반점을 알아볼 수 있었고. 어느 정도 능력 있는 아인데, 이 아이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자신은 성인이니까 법적 보호자가 된다면? 그러고 나서 자신이 알고 있는 걸 가르쳐 줘서 조수로 데리고 다닌다면? 혼자 일하는 것도 힘들고, 아직 두 가지 일을 함께하기에 너무 벅찼음. 나토리는 그것도 나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실행에 옮기겠지.

물론 준비 좀 한다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토리는 이상 없이 나츠메의 보호자가 되었음. 친척을 설득할 때 자기 얼굴과 엄청난 언변으로 나츠메를 데리고 왔음. 친척이야 처음에는 그래도 친척인데 남에게 맡기기에는 불안했지만, 내심 이 아이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음. 당연함. 늘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아이에다가 학교에서도 자주 사고를 치는 바람에 종종 불려가기도 했고, 주변 이웃들에게 이상한 소문과 시선에 시달려야 했음. 미안하지만 자신들도 살아야 할 거 아닌가.

그렇게 나츠메와 나토리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됨.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토리가 맡기로 한 나츠메는 마토바 가문으로 입적됨. 성을 바꾼 건 아니지만, 소속이 마토바 가문으로 바뀐 것이니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딱 한 번.

딱 한 번 이었음. 

나토리가 종종 가는 퇴치사 회합 모임에 나츠메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갔을 뿐인데 잠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던 사이에 나츠메가 사라졌음. 얘가 어디를 갔나 싶어서 다급하게 찾아보면, 나츠메는 누군가와 창문 너머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음. 찾았다는 안도감에 나츠메에게 다가가면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음.

마토바 세이지. 

당황했지만, 일부러 당황한 티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츠메에게 가서 이제 돌아가 봐야 한다고 말함. 나츠메는 알겠다고 나토리를 따라가려는데, 뒤에서 마토바가 불렀음.

“제 제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네, 그럴게요.”

나츠메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모를 나토리는 지금 당장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음. 침착하게 마토바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까지 안전하게 나가고 나서야 물어봤음.

“나츠메? 아까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어?”

“마토바… 마토바 세이지라고 했어요. 회합을 주도한 마토바 가문의 당주… 맞죠?”

나츠메는 나토리가 없을 때 나눴던 대화를 곱씹으며 말했음.

나토리가 잠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구경하려고 멋대로 움직이긴 했음. 하지만 그래봤자 건물 안이고, 위험할 건 없…진 않았음. 위험한 게 있긴 했지만,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 편한 마음으로 돌아다녔음.

그리고 저에게 달라붙는 시선.

나토리가 퇴치사 회합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임. 그러는 와중에 그가 연고를 알 수 없는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고 있다는 소문은 그런 퇴치사에게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음. 제자를 키우는 거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나토리 가문을 세우려는 거다. 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음. 하지만 나토리는 언제나 그 아이에 대한 질문은 대답해주지 않았고 늘 제 품에 꼭꼭 숨겨서 보이지 않게 했음. 말로는 자신이 키우고 있는 아이라 아직 부족하고, 한 명의 퇴치사가 되기에는 멀어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건 본인만 알겠지.

그렇게 하루하루 나토리 꼬마가 데리고 온 아이가 누군지 궁금해 미칠 거 같은 찰나에 이번 회합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거임. 나토리의 손을 팔을 잡고 흥미 어린 시선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선이 얇아서 구분되지 않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음. 마치 공기 같다고 해야 하나, 색이 옅다고 해야 하나. 시선을 돌리면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은 모습이 더 눈길을 끌었음. 퇴치사들은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나토리의 방해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했음. 혼자 있는 틈을 타 가서 말이라고 붙이려고 하면 왜인지 다가가기 어려웠음. 그래서 다들 나츠메의 뒤꽁무니만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기 바빴음.

그걸 모르는 나츠메는 자신이 어려서, 혹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 신기해서 보는 줄 알았음. 뭐, 반쯤은 맞는 말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나츠메는 어쩌다 창문 밖을 보았는데 웬 나뭇가지에 걸린 기모노가 보였음. 나츠메는 걷다 말고 그 기모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림.

“밖에 뭔가 보이시나요?”

듣기 좋은 미성. 나츠메가 고개를 들어 사람을 확인하면, 남성용 기모노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묶은, 그리고 오른쪽 눈에 부적인지 안대인지 모를 것을 착용한 사람이 있음. 나츠메는 단번에 저 사람이 마토바 세이지라는 걸 깨달았음. 여기 오기 전에 나토리가 절대 만나서도 안 되고 이야기를 나눠서도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기 때문임. 나츠메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리면서 입을 다물었음. 마토바는 그 모습을 보고 잔잔한 미소를 짓더니, 창으로 몸을 돌렸음. 그리고 말함.

“저에게는 나무에 걸린 기모노가 보인답니다.”

“…….”

나츠메도 마토바처럼 밖을 보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지만 절대 날아가지 않는 기모노가 보였음. 검은색 비단 위에 뭔지 모를 꽃이 잔뜩 수놓아진 기모노가. 나츠메는 자신도 그렇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마토바가 더 빨랐음. 저는 마토바 세이지라고 합니다. 마토바 가의 당주를 맡고 있죠. 저보다 키가 큰 탓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긴 하지만, 나츠메는 주눅 들지 않고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음. 나츠메 타카시라고 합니다.

마토바는 이미 제 앞에 있는 이가 나츠메인 것을 알고 있었음. 나토리가 그렇게 싸고도는 아이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왜 이 아이를 거둬들였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음.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잠깐 구경할까 싶었는데, 눈으로 봐서는 뭐가 특별한지 알 수 없었음. 그냥 좀 예쁘장한 아이 정도? 비실비실해서 힘도 제대로 못 쓸 거 같음. 요괴랑 붙으면 한 대 맞고 나가떨어질 거 같고. 나토리랑 같이 있는 거 보면 제대로 보이긴 할 텐데, 요즘 보인다고 무턱대고 나대는 퇴치사가 많아서 그렇게 미더워 보이지 않았음.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창밖을 보고 있기에 그걸 빌미로 요력이 어느 정도 되나 떠볼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아까 말한 기모노 말인데요, 비단 위에 수놓아진 꽃들이 참 예쁘네요.”

“…….”

“노랗고 빨간 꽃인데……. 저게 뭘까요. 수국? 작약? 대충… 비슷한 거 같은데.”

“…….”

대박이었음.

왜 나토리가 싸고도는지 알 거 같음. 

이 정도는 되니까 나토리가 싸고도는구나. 그래서 꽁꽁 감춰두고 안 보여줬던 거구나. 이걸 다른 사람이 알면, 그것도 자신이 알면 가지고 갈 게 분명하니까.

마토바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느리게 입을 열었음.

“예에, 저도 그렇게 보이네요. 참, 예쁘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나토리 씨하고 같이 지낸다고 하셨죠? 그의 조수인가요?”

“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종종 나토리 씨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그렇다면 나츠메 군도…. 아, 나츠메 군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저도 편하게 불러 주시길. …그래서, 나츠메 군도 주술이나 술법을 할 수 있나요?”

“어느 정도는…….”

나츠메도 어느 정도 주술, 술법 여러 가지를 사용할 수 있음. 나츠메가 조수로서 일 하기 위해 나토리가 간단한 거 한두 개 정도 알려줬는데, 너무 습득을 잘하니까 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음. 그걸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한 덕분에 나츠메는 어느 퇴치사 못지않게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요력도 충분해서 지칠 걱정이 없었음. 그런 나츠메인만큼 자립이 가능하지만, 나토리도 나츠메도 원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나토리의 조수로서 활동하고 있었음.

마토바는 생각했음. 요력도 무척 강한데다가 나토리가 가르친 만큼 실력도 어느 정도 있을 거고. 그를 따라다니면서 현장 경험도 몇 번 있을 테니 어리바리하지 않겠지. 그렇지 않아도 요즘 퇴치사의 명맥이 끊어지고 있던 터라 마토바는 제 눈앞에 있는 나츠메가 탐나기 시작했음.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우리 가문에 들어올래? 내가 뒷배 서줌. ㅇㅇ’ 이렇게 말하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 않아도 여전히 눈에 깃든 경계심에 마토바는 조급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주의했음. 그러다가 도망이라도 가서 놓쳐버리면 아까우니까.

마토바는 사람 좋은, 다시 말하자면 가식적인 미소를 달고 나츠메를 봤음.

“그렇군요.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나토리 씨의 조수로 활동하고 있을 만큼의 실력도 있다니. 대단하군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보조를 맞출 뿐이죠.”

“그것도 못 하는 사람이 태반이니 하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츠메 군은 좀 더 체계적으로 배워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네?”

“나토리 씨가 가르쳐줄 수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음, 나츠메 씨는 그에게 가문의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아, 어느 정도는 들었어요. …그, 나토리 씨를 제외한 가족분들은 이쪽과 연이 없다고…….”

“예에, 나토리 가문은 현재 나토리 슈이치를 제외하고는 ‘능력’있는 사람이 없어 일찌감치 퇴치사로서의 가업을 그만뒀죠. 그 덕분에 나토리 씨는 독학으로 여러 가지 지식을 쌓긴 했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나토리 가문이 문을 닫자마자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없애버린 탓에 그에게는 ‘일부’ 지식만 있을 뿐이니까요. …뭐, 그런 환경 속에서 독학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나토리 씨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묻는 겁니다만, 나츠메 군은 더 배우고 싶은 생각 안 듭니까?”

“…….”

“나토리 가문은 주로 종이와 관련된 주술을 사용하죠. 하지만 나츠메 군도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고, 지금 사용하는 주술 역시 퇴마사 사이에서 무난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아무튼, 요괴를 상대하는 건 언제나 목숨을 위협받는 일. 퇴치사라는 직업 하나만으로도 길을 걷다가 요괴에게 죽을 수도 있죠. 그런 환경 속에서 제 몸은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이 무척이나 중요하답니다.”

“…….”

“나츠메 군만 괜찮으시다면 저희 마토바 가문에서 나츠메 군을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나토리 씨가 가르쳐 준 것보다 더 많은 주술을 배울 수 있게 해 드리죠. …내키지 않으신다면 거절해도 좋습니다. 다만… 어딘가에 함께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안정을 찾는 퇴마사도 있어서 여쭤본 거였습니다. 나토리 씨의 경우에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 소속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죠.”

“…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수단을 알고 있는 게 안전하겠죠. 요괴가 있는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요.”

“…….”

그리고 타이밍 좋게 나토리가 찾아와 나츠메를 데리고 갔음.

그 이야기를 해주자 나토리는 미간을 구겼음. 마토바가 말한 것처럼 자신이 알려주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퇴치사 회합에 나와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정보를 얻고 있는 거 아닌가. 마토바 가문에 들어오라는 건 좋은 기회긴 함. 프리랜서로 요괴나 퇴치사 할 거 없이 양쪽에서 위협을 받는 자신과 달리 마토바 가문은 위협을 받아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다양한 지식이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임. 나츠메의 안전과 미래를 생각하면 보내는 게 맞음. 하지만 보내고 싶지 않았음. 나츠메의 성정이 마토바 가문의 그것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자신은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토리는 나츠메가 가고 싶다고 하면 보내줄 의향은 있음. 보호자가 자신이긴 하지만, 본인이 원한다는 데 막을 이유가 있나. 그냥 보내줘야지. 그래서 나츠메에게 물어보면 나츠메는 그다지 생각 없다고 함. 사실, 배우는 게 혹하긴 했지만, 자신은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나토리는 내심 안심했음.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나토리가 의뢰하다가 크게 다쳤음. 나츠메가 요괴에게 대항하려다가 엇갈려서 풀어주게 되었는데, 그 틈을 노리고 나츠메가 아닌 나토리를 공격함. 이후에 비틀거리는 몸으로 어찌어찌 요괴를 잡아다가 봉인하긴 했는데 나츠메는 정신을 못 차렸음. 자신 탓에, 그것도 제 실수로 인해 나토리가 다쳤다는 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음. 그리고 머릿속에 언젠가 나눴던 마토바의 말이 떠오름. 저를 지키기 위해, 타인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알고 있는 게 좋다고. 나츠메가 알고 있는 건 한정적이었고, 그 얕은 지식으로는 나토리를 지키기 어려웠음. 나토리는 연신 괜찮다고 말하지만 나츠메에게는 안 들림. 배워야 해. 내가 나토리 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이보다 더 많은 걸 배워야 해. 나토리가 알았더라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어쩌겠음. 나츠메는 이미 결심한 지 오래였음.

그리고 나츠메는 스스로 마토바 가문으로 들어감.

그 후로 나츠메는 부적, 술구, 주술의 부가적인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음. 처음에는 퇴치사로서 봉인 방법이나 무기 다루는 법, 혹은 응용할 수 있는 주술을 가르쳐 줬는데 그보다는 부적이나 술구를 만드는 데 더 소질이 있음을 깨달았음. 그 뒤로 나츠메는 현장에서 빠져서 마토바 가문의 술구를 담당하게 됐음.


그 후로 마토바 가문에 종종 찾아오는 나토리는 늘 술구를 만들어 내는 나츠메를 보고 조금 죄책감을 갖는… 그런 이야기.

자신이 만든 술구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 탓에 요괴가 다치거나, 사라지거나, 죽고 있는데 그건 알고 있는지. 처음에 그래도 요괴를 이해하고자 했던 아이였음을 알고 있기에 나토리는 전보다 더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마토바 가문에서 지내는 나츠메를 볼 때마다 기문이 착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임. 

그날 그렇게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퇴치사 회합에 데리고 가지 않았더라면,

나츠메를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헤어지고 난 후에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자신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지는 않을지.

나토리는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생각하며 저를 보고 웃는 나츠메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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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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