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2016년 이전 / 겁쟁이 페달 - 신카이 하야토 드림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더니 곧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기예보에선 내일 비가 올 거라고 했었는데, 짧은 한 숨을 내쉰 그녀는 책상에 엎드렸다.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수업을 듣거나 딴짓을 하느라 그녀가 엎드려있는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잠시 숨을 돌리고자 핸드폰으로 연인인 신카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비 온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
- [ 그러게. ]
[ 나 우산 없는데 ]
[ 아 진짜 싫다ㅠㅠㅠㅠㅠㅠㅠ ]
신카이는 울상인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신카이와는 다른 전공인 그녀는 여자가 극히 적은 학부에 들어갔다. 때문에 신카이는 눈에 불을 켜고 그녀를 사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끝내 그녀의 곁을 차지하는 것은 신카이가 되었다.
- [ 우산 왜 안 들고 왔어? ]
[ 일기예보에서 내일 비 온다고 했단 말이야. ]
[ 하야토는 우산 가져왔어? ]
- [ 가방에 있더라. ]
좋겠다, 속으로 중얼거린 그녀는 교수님의 시선에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컴퓨터로 하는 실습이 많은 학과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야가 가려져서 딴 짓을 하기도 했다. 교과서보다는 PPT 위주의 수업이기도 했고, 소스를 코딩하는 과제는 보통 수업 시간 내에 끝내고 가기도 하는 편이기도 했다.
[ 데리러 와줄 거야? ]
- [ 팀플이 있어서. ]
[ 치. ]
[ 완전 치사해. ]
- [ 미안. ]
가장 좋은 것은 수업이 끝나면 짠! 하고 비가 그쳐있는 것이었지만, 하늘의 색을 보아하니 금방 그칠 것 같은 비는 아니었다. 비가 오면 괜히 축 쳐지기도 하고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빗소리를 집에서 편하게 누워서 듣는 것은 좋아했지만, 비 내리는 날에 밖에 나가는 것은 싫었다.
- [ 삐졌어? ]
[ 아니거든. ]
- [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화 풀어. ]
[ 맛있는 걸로 풀릴 것 같아?! ]
- [ 삐진 건 맞고? ]
괜히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핸드폰을 집어넣은 그녀는 냉큼 교수님이 내준 과제를 해결했다. 작년에 배웠던 것을 다시 복습하는 중이어서 그렇게 어려운 과제도 아니었다. 작년에 제출했던 과제에 있던 문제 그대로였기 때문에 그냥 복사 붙여넣기를 할까 하다가, 얼마 안 걸리는데다가 한가하기도 해서 과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비 온다는 말 없었는데.”
“아, 그죠!”
“응, 우산 가져왔어?”
“아뇨, 동방에 있나 가보려고요.”
여자가 적은 학과인 만큼 제법 귀엽게 생긴 그녀는 남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인기가 있었다. 커플링도 끼고 있고 자주 남자친구가 데리러 오는 터라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시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내가 데려다줄까?”
“선배가요?”
“어, 나 차 가져왔거든.”
그녀는 잠시 고민했다. 신카이는 팀플이 있어서 데리러 못 올 테고, 동방에 우산이 있으면 좋은 일이지만 없으면 우산을 사러 편의점까지 가야했다. 그 사이에 비에 젖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태워다 달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 [ 나와. ]
“어라.”
“왜 그래?”
“저 잠깐 나갔다 올게요.”
뒷문 쪽을 쳐다보자 문에 기대서 삐딱하게 서있는 신카이의 표정에 그녀는 냉큼 신카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제법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서 그녀는 괜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야토!”
“남의 차 타려고 했어?”
“…아냐, 타겠다고 안 했어.”
타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얼굴에 생각하는 게 다 들어나는 터라 신카이는 어휴, 하고 한 숨을 내뱉고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 혼자 두면 안 될 타입이었다. 전공도 같았다면 좋았겠지만 잘하는 분야도 관심 있는 분야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래켜 줄 생각으로 자신이 여기 오지 않았다면, 일어났을 뒤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수업 끝났어?”
“응, 과제했어. 하야토는? 오늘 팀플 있다며.”
“거짓말이야.”
척 봐도 헐, 대박. 하는 표정이여서 신카이는 얼른 그녀에게 가방을 가져오라며 그녀를 달랬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신카이의 눈은 주변의 남자들에게도 닿았다. 시선만으로 불을 붙일 수 있다면 진작 불이 붙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하야토, 뭐해. 가자.”
“그래.”
냉큼 그녀의 어깨를 감싼 신카이는 커다란 장우산을 펼쳤다. 둘이서 쓰기에도 넉넉했기 때문에 꼭 붙어있지 않아도 됐는데 찰싹 붙어있는 게 커플이라고 티를 내고 있었다. 신카이가 데리러 와줘서인지 그녀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비가 내리는 날인데도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분이 하늘로 치솟는 기분이었다.
“빗소리 듣기 좋다.”
“응.”
“아, 맞아. 나 같이 우산 쓰면 하고 싶은 거 있었어.”
그녀의 말에 신카이가 의아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신카이를 붙잡아 세웠다. 비가 와서 다니는 사람이 몇 없긴 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멈춰선 두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쪽, 하고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뽀뽀?”
“응!”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에 신카이는 졌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그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마도 평생.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