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디드림

붉은 실

2016년 이전 / 원피스 - 상디 드림

상디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을 구경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들린 간식에 번뜩 정신이 든 상디는 열려있는 문에 똑똑 노크를 하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아.” 

“간식 가져왔습니다, 레이디!” 

“음…, 고마워요.” 

 

그녀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배시시 웃어 보이자, 상디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높은 텐션이기는 했지만,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니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게 쑥스러운 모양인지 그녀는 힐끔힐끔 상디를 쳐다봤다. 

 

“다 드시면, 산책하러 갈까요?” 

“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에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에 상디가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맞은편에 앉으라는 그녀의 말에 앉자, 이제는 이 방에서 그녀와 둘이 티타임을 가지는 것도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엄청 맛있었어요!”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에요. 그럼, 준비하고 나오세요.” 

“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온 그녀의 모습에 상디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배를 지키고 있을 사람도 있으니 근처 산책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배에서 내리고 나서도 계속 잡고 있는 손에 상디는 티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등을 쓸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어쩐지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상디, 우리 저기 가요!” 

 

온종일 보던 바다를 또 보러 가자는 그녀의 말에도 상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원피스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해안선을 따라 걷자 다시 그녀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본인은 의식하지 못한 채로 흥얼거리는 것 같아서 상디는 굳이 그녀가 흥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기분 좋아 보여요.” 

“쭉 바다에 있었는데, 역시 모래사장 걷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계속 잡고 있던 손이 그녀가 바다를 향해 달려가면서 스르륵 풀렸다. 정작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상디는 손안에 온기가 빠져나가는 것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터라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시내에 구경 가도 돼요?” 

“물론이죠.” 

 

아까처럼 나란히 서 있기는 하지만, 손을 잡지는 않아서 상디는 괜히 더 그녀의 손에 시선이 갔다. 그냥 슬쩍 잡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그건 무리겠지 싶었다. 

 

“아, 예쁘다.” 

“다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가판대에 이것저것 구경하는 그녀의 모습에 상디가 한 번 껴보라며 그녀를 부추겼다. 반지를 집어 든 그녀가 어디다 끼어야 하나 고민하자 상인이 사귀는 사이 같은데 커플링으로도 괜찮다며 약지에 끼기를 권유했다. 

 

“잘 어울려요.” 

“남자 분 새끼손가락에 맞는 반지가, 여자분 네 번째 손가락에도 맞으면 인연이라는 말이 있죠! 남자 분은 반지 어떠세요?” 

“진짜요?” 

“그럼요! 운명의 붉은 실은 새끼손가락에 묶여있다고도 하잖아요.” 

 

진짜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신이 나서 떠드는 이의 말에 그녀도 덩달아 들떠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자 상디는 괜히 반지를 고르는 척했다. 일단은 요리사이니 손은 중요했다. 그래서 아마 반지를 낄 일은 없겠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상디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그녀와의 관계를 딱히 한 단어로 정의할 수도 없으면서 상상의 나래가 너무 멀리까지 뻗어 갔다.

 

“그럼, 이 반지가 상디 손에 맞으면 우리 운명이겠네요.” 

“네, 네?” 

 

그녀가 웃는 낯으로 반지를 빼 상디의 손에 끼워주자 딱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맞아 들어갔다. 움직이더라도 빠질 것 같지는 않으니 맞는다고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어머, 두 분 천생연분이시네!” 

“그럼, 이거 주세요.” 

“커플링은 필요 없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렇게 웃으며 대답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상디는 어쩐지 입안이 텁텁해졌다. 그녀의 손에 자리한 반지에 계속 시선이 향해졌다.  상디의 시선에 그녀가 웃으며 상디의 손을 잡았다. 

 

“그만 가요.” 

“네.” 

 

아까 봤던 해변에 다시 도착하자 그녀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어서 하늘과 바다가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붉은빛과 맞닿은 곳에는 어둠이 밀려오고 있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잠깐 고개 좀 숙여볼래요?” 

“네?” 

 

상디가 허리를 숙이자 그녀가 살짝 발꿈치를 들어 뺨에 입을 맞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하는 상디를 뒤로 하고 그녀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노을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털썩하고 쓰러지는 소리에 그녀는 도망치듯이 배에 올랐다. 

 

“어라, 왜 혼자 와?” 

“…음, 쓰러져있으니까 데리러 가 주세요.” 

“에, 에에?!” 

 

그리고는 냉큼 방으로 들어가 버린 그녀가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직도 귓가가 뜨거웠다. 손에 끼고 온 반지는 실은 살짝 헐렁해서 마구 흔들지 않으면 빠지진 않을 정도였다. 

 

“…바본가.” 

 

맞으면 인연이라는 말에 괜한 오기를 부렸다는 생각에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다가 먼저 대담한 짓을 해놓고 부끄럽다고 두고 와버렸다. 어쩌지…, 누군가가 데리고 온 모양인지 밖이 소란스러웠지만 차마 얼굴을 내밀 수 없던 그녀가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도 두 사람 모두 입을 열지 않아서 다들 흠, 하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볼 뿐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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