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 드림] 매화연(梅花燕)
유료

[화산귀환/검존드림] 매화연(梅花燕)

06. 연홍으로 (上)

*적폐 / 날조 / 캐해석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화연 5화 유료 내용이 포함되어 이어집니다.

*청명과의 동침 이후 얘기를 볼 수 있습니다. (유료입장)

*평균 유료 분보다 양이 많아 이번 편은 가격이 다릅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술은 화산에 드려도 될 테고, 들고 가기 무거우니까.’

아삭. 다음날 일어난 연홍 련은 출발하기에 앞서 악단에서 챙겨준 사과를 우물이며 짐을 줄이고 있다. 한 손은 사과를 먹고 있지만 다른 한 손은 부지런히 짐을 뒤적이는 손이 바쁘다. 화산에 들어와 짐을 많이 푼 것도 아니니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꼼꼼히 많지 않은 자신의 짐을 확인하고 봇짐을 챙겨 든다. 짐을 챙기는 동안 객잔 밖으로 목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오다 다들 식당으로 갔는지 부산스러운 소리가 잠잠해졌다. 이쯤이면 나가봐도 되지 않을까.

‘밖에 있는 거 같은데. 아닌가.’

비슷한 기감이 여러 개가 섞여 있으니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지만 누군가 밖에 서 있었다. 껄끄럽긴 해도 안에 계속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과 하나를 다 먹은 연홍 련은 입가를 훑고 심호흡을 내뱉는다. 그녀는 표정 관리를 위해 이리저리 얼굴 근육을 움직이다 웃으며 방문을 연다.

문을 여니 햇살이 그대로 쏟아지는 게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인다. 따스한 햇살 빛이 닿으니 오히려 실내보다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피풍의를 입던 연홍 련이 손으로 가림막을 만들어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이 머물던 객잔 벽면에 팔짱을 끼고 기대 서 있는 청명이 보였다. 그는 낮잠이라도 자고 있었는지 눈을 감고 있다 시선을 느꼈는지 느릿하게 눈을 뜬다. 청명과 시선이 마주치자 연홍 련은 예의 미소 짓는다.

“좋은 아침입니다, 검존.”

청명의 몸이 일순 움츠린 것도 잠시, 그는 벽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켜 입을 열었다.

“…장문인께서 기다리신다.”

그대로 자리를 뜨는 청명의 발걸음이 연홍 련을 지나 빠르게 멀어지자 연홍 련은 청명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시선 하나 맞추지 않고 바로 떠나는 발걸음이 식당으로 향하는 걸 보니 밥도 안 먹고 기다렸다는 건가. 연홍 련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이래서야, 같이 가긴 글렀네.’

이리 어색한 채로 같이 갔다간 서로 불편하긴 마찬가지일 거다. 자신은 갑자기 찾아온 외부인이니 청명 따라 식사하러 가기엔 그들도 불편할 테고. 사과 먹어서 크게 배고프지도 않으니 문제 없었다. 장문인은 청명이 자신과 동행할 거라 믿으시는 거 같은데. 출발 하기 전에 인사드리러 했으니 청명의 말대로 장문인께 가보기로 하자. 연홍 련은 종종걸음으로 장문인의 처소로 향하니 안으로 들어서려는 청문을 발견한다. 청문 역시 연홍 련을 발견했는지 그녀를 반긴다.

“아 소공녀, 이제 출발하시는 것이오? 식사라도 하고 가셔도 될 텐데.”

“아뇨, 장문인. 갑자기 찾아뵈었는데 그렇게까지는 실례지요.”

청문의 인사에 연홍 련은 손사래를 친다. 청명이 자신과 어색한 걸 모르시려나. 손을 모아낸 연홍 련이 먼저 입을 열려하니 청문이 웃으며 말한다.

“청명이도 흔쾌히 간다는군요. 먼저 얘기한다고 갔었는데 못 보셨소?”

“네?”

같이 가겠다니. 제 앞에선 한마디도 그런 말도 안 했는데 이건 무슨 소리인가. 연홍 련의 반문에 청문은 의아한지 그녀를 본다. 연홍 련은 눈이 동그래졌지만 금방 청문에게 포권한다. 그가 왔던 건 사실이니까.

“..아니요, 장문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더 반응했다간 청문이 곤란해질 거다. 어찌 된 건지 몰라도 이건 당사자에게 물어야지. 의아하던 청문도 잠시 연홍 련에게 맞포권을 한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겠소, 소공녀. 도착하면 연통 부탁드려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셨는데 당연한 도리지요.”

마교에 관해 알게 되는 게 있으면 연홍 혼자로는 부족하니 당연한 일이다. 서신에 자세히 쓰지 않았다는 건 연홍에서도 아직은 추측단계이거나 섣부르게 서신에 쓸 수 없는 내용이란 걸 텐데. 어느 쪽이 됐든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예정된 날보다 빨리 가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발걸음을 옮기려는 연홍 련은 생각났는지 검지를 들어 청문에게 말한다. 조금은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아, 제가 객잔에 술을 두었으니 괜찮다면 장문인께 처리를 부탁드려도 될지요. 들고 가자니 무거워서 곤란한 참이라서요.”

연홍 련의 말에 청문은 재밌는지 하핫, 웃음을 터트린다. 직접 준다면 거절할 거라 생각해 이렇게 돌려서 언질을 줄 줄은 몰랐다. 화산에선 볼 수 없는 앙큼함에 절로 미소 지은 청문은 순순히 연홍 련의 장단에 맞춰준다.

“그거참 곤란한 부탁이지만... 소공녀를 봐서 들어드리겠소.” 

**

연홍 련은 도관 밖으로 나와 봇짐을 들어본다. 확실히 술이 빠지니 들고 다닐만 해졌다. 워낙 언니들이 술을 많이 주어 전부 비우진 못했지만. 아버지께 드릴 술이나 들고 다닐 크기의 독주 몇 개는 아직 남아있으니까.

삿갓 끈을 묶은 연홍 련은 주변을 둘러본다. 청명이 같이 간다는 건 지금도 안 믿기지만 아까 식당에 갔으니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봐야지. 정문 근처에 쪼그려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반 시진쯤 돼서야 청명이 나타났다. 항상 입는 도복 위에 장포 하나를 걸친건 똑같지만 등에는 봇짐을 메고 있었다. 그는 힐긋 앉아있는 자신을 보더니 앞장서서 지나간다. 연홍 련의 고개가 갸웃댄다. 짐이 있는 거 봐선 같이 가는 게 맞는 거 같긴 한데. 설마 지금도 화나 있는 건가.

가늘게 청명의 등을 보던 연홍 련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명에게 다가간다. 앞장서서 걷던 청명이 멈춰서 바깥을 보고 있다 연홍 련이 다가오니 시선을 돌려 그녀를 본다. 무뚝뚝한 표정이 마주치는 것도 잠시, 청명의 손이 불쑥 연홍 련에게 뭔가 내민다. 연홍 련은 청명이 내민 걸 보니 그의 손엔 붉은 동백꽃이 손에 들려있다. 화산에 동백꽃도 있었나? 식사하느라 늦나 싶었더니 이걸 따고 온 건가. 활짝 피어있는 동백꽃에 연홍 련은 꽃과 청명을 번갈아보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저 주시는 거예요?”

연홍 련의 물음에 미간을 구긴 청명은 한참 입을 달싹이다 머리를 벅벅 긁적인다.

“……미안했다.”

연홍 련은 의외인 듯이 청명을 바라본다. 누가 봐도 어색해하면서 여전히 자신과 시선을 맞추기보단 내리깔고 있었다. 연홍 련은 청명이 내미는 동백꽃을 보다가 삿갓 끈을 풀어 등에 메고는 동백꽃을 받아 머리에 끼워본다. 청명의 손에는 한 손에 들어가는 동백꽃이 제 손을 가릴 만큼 제법 큰 꽃이었다. 청명에게 고개를 기울이는 연홍 련이 청명과 시선을 맞춘다.

“다음에도 그러실 건가요?”

연홍 련과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거린 청명이 이번엔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청명의 반응에 연홍 련은 청명의 고개를 따라간다. 청명의 고개를 따라 연홍 련이 몇 번 기웃거리니 꾸물이는 청명의 입이 겨우 열린다.

“………조심할게.”

청명의 대답에 점차 눈이 불온해진 연홍 련이 물끄러미 그를 본다. 이렇게 사과하는 거에 어색하시다니. 얼마나 자존심이 높은 건가. 매화검존이니 당연하겠지만 순순히 사과하셔서 다행이지, 크게 싸우기라도 했으면 자신이 답답해서 그를 찾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연홍 련은 한숨을 내쉰다. 연홍 련의 한숨에 청명은 저도 모르게 움찔인다.

“하아…일단 출발하도록 하지요, 검존.”

연홍 련이 먼저 발걸음을 옮기니 청명의 발걸음도 그녀를 따라간다. 그는 연홍 련의 머리에 장식된 동백꽃을 보다가 시선을 내려 피풍의 사이로 보이는 손목을 본다. 자신이 붙잡으면서 붉었던 손목이 지금은 멀쩡해 보였다. 여자에게 선물할 땐 꽃이 좋다 하여 제 눈에 보인 가장 큰 꽃을 따서 주었다. 사과는 받아준 건가. 그렇지만 표정이 차가웠는데. 여기서 뭔가 더 해야 했던 건가. 혼란스러워진 청명은 제 머리를 벅벅 긁고 있으니 희고 작은 손이 청명에게 내민다.

“계속 뒤에서 따라오실 생각인가요? 시선이 따가울 지경이던데.”

연홍 련의 목소리에 청명은 걸음을 멈춘다. 앞장서던 연홍 련은 청명이 멈추자 고개를 돌린다. 평소 같은 미소가 아닌 무심히 자신을 보는 시선에 청명의 입이 바짝 마른다. 목소리는 평소랑 똑같은데 표정이 웃지 않으니 위압감이 든다. 긴장하는 청명을 보던 연홍 련의 표정이 곧 미소 짓는다.  

“갈 길이 머니까 이왕이면 옆에서 걸어요. 같이 가는 거잖아요?”

청명의 손을 잡아낸 연홍 련은 재촉하듯이 끌어 잡는다. 부드럽게 잡아끄는 힘에 청명은 힘없이 끌려가 연홍 련 옆에 선다. 청명이 제 옆에 선 걸 확인한 연홍 련은 싱긋 웃으며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연홍 련이 걷기 시작하니 청명도 따라 걸으며 그녀에게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른다.

 ‘어디서 이런 사랑스러운 게 나타날 수 있지? 이런 존재가 날 좋아한다고? 왜? 내가 그렇게 좋나?’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어제는 그렇게 싸늘하더니 아침엔 평소처럼 웃고, 꽃을 받아 머리에 꽂을 땐 귀엽더니, 집요하게 시선을 마주치는 걸 피해서 다시 화내게 할 뻔하다가, 한숨을 내쉬고 해서 실망했나 싶었더니, 다시 금방 웃으며 자신을 이끌어간다. 변덕스러운데 다정하다. 이게 말이 되는 조합인 건가? 그치만 제 옆에 있는 여인을 표현한다면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됐다. 갈 길이 멀다더니 화산을 구경하면서 내려가는 게 같이 산책하다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마을에선 피풍의로 얼굴을 가리니까 조금 더 오래 이 얼굴을 봐두고 싶었다.

“저기 계곡이 보이는데 도사님들은 여기까지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계곡물은 춥지 않아요?”

“..뭐가?”

“어제 씻으러 밖으로 나갔잖아요. 저기서 씻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신기한 일인가.”

“보통은 안 그렇죠. 목욕하기도 힘들 거 아니에요.”

연홍 련은 신기한 듯이 물으며 청명에게 말을 붙인다. 청명은 순순히 대답하지만 점차 그의 대답이 비슷하게 흘러가자 연홍 련의 입도 닫힌다. 그를 귀찮게 한 게 아닌가 싶어진 연홍 련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려 하자, 멍하니 따라가던 청명이 먼저 앞장선다. 잡고있던 손이 풀려지려 하자 청명이 붙잡아 한 두걸음 먼저 내려와 이끈다. 생각지 않은 청명의 배려에 연홍 련이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아 화산을 내려가는 걸음을 이어간다.     

**

“이거 어쩌나, 방이 하나뿐인데.”

연홍 련은 생각에 잠긴다. 청명과 화산에 내려와 부지런히 이동해 마을까지 도착한 거까진 예상 범위였다. 그러나 숙박을 위해 객잔에 머물려 하니 방이 하나뿐이라니 희한한 일이었다. 바깥에 다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청명 역시 이상하다 느꼈는지 고개가 모로 꺾이며 점주에게 묻는다.

“하나뿐인 게 말이 되나? 밖엔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도 않던데.”

“싫으면 딴 데 알아보소. 요즘 마교인지 뭔지로 흉흉하니까 무림인들이 다들 객잔에 머물려 하지, 야영하지 않는다네. 딴 데 가도 비슷할 거요.”

시큰둥한 점주의 말에 연홍 련은 삿갓 너머로 주변을 훑는다. 확실히 주변에 무기를 가진 무리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들도 마을에 도착해서 먼저 한 일이 객잔부터 잡는 거였으니까. 다른 곳을 알아보다 숙소를 못 잡으면 야영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밤공기가 차가운 시기다. 마교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다들 객잔으로 몰리는 거겠지. 연홍 련은 점주에게 묻는다.

“둘이 써도 괜찮은가요?”

“충분하고말고, 침상이 하나뿐이지만 어차피 부부 사이 아닌가?”

연홍 련은 깜박이며 점주를 보다 청명에게 고개를 돌린다. 청명은 점주의 말에 그대로 굳어있지만 연홍 련은 그가 고장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도사님 은근히 순진하시단 말이지. 남녀가 같이 머물려 하면 흔하게 받는 오해지만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자신은 단체생활이 익숙하니 깨끗하기만 하다면 괜찮지만 청명도 같이 쉴 수 있어야 될 텐데. 연홍 련은 청명의 소맷자락을 꾹 잡는다.

“..어떻게 할래요? 전 여기 머무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뭐?”

연홍 련의 말에 퍼뜩 청명의 고개가 연홍 련을 향하자 그의 눈이 흔들린다. 지금 자신에게 의견을 묻는 건가? 같이 이동하는 거니 한 방에 머물 수야 있다고 생각했지만 침상을 이 녀석이랑 같이 쓰라고? 거기다 부부라니. 난 도사인데 이게 무슨 오해인가. 정작 자신에게 묻는 이 여자는 왜 이렇게 평온한 건가. 이래서야 자신만 이상한 거 같지만 청명의 혼란함과는 별개로 그 역시 연홍 련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연홍까지 이 여자를 호위하는 거다. 호위를 할 거면 한방을 쓰는 게 낫고 야영은 위험하다. 자신은 문제없지만 중요한 건 이 여자의 안전이다. 청명은 끄응 앓더니 연홍 련을 한번 보다 결국 마지못해 승낙한다.

“………마음대로 해.”

**

침소에 들어온 청명은 물기가 뚝뚝 떨어진 채 침의를 입고 길게 내려온 머리를 수건으로 북북 닦아낸다. 점주가 마련해 준 방은 그의 말대로 둘이 쓰기엔 비교적 넉넉한 특실이었다. 청명은 제 앞에 보이는 침상을 보다 시선을 흘겨 그 옆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연홍 련을 본다. 그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씻은 건 마찬가지인데 금방 머리를 말렸는지 빗질을 하는 손이 느긋하다. 면경 앞에서 빗질하던 연홍 련이 청명을 발견했는지 그에게 시선을 던진다.

“필요하세요? 빌려드릴게요.”

연홍 련이 빗을 내밀자 청명은 연홍 련과 반대쪽으로 침상에 앉아 머리를 말린다. 머리 푼 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같이 자는 게 처음이라 그런가. 좁은 침상도 아니라 떨어져서 자면 되겠지. 청명은 뒤돌아서 연홍 련에게 대꾸한다.

“…필요 없어.”

연홍 련은 뒤돌아 머리 말리는 청명을 본다. 머리를 풀어낸 청명은 자신만큼이나 머리가 길었다. 저 정도로 길면 빗질은 해주는 게 좋을 텐데. 엉키지 않으시는 걸까. 호기심이 든 연홍 련은 청명의 머리가 어느 정도 마르니 그의 뒤에 붙어 고개를 기울인다.

“괜찮다면 제가 머리 빗겨도 되나요? 저 빗질 잘하는데.”

청명은 삐걱거리며 제게 가까이 온 연홍 련과 거리를 두어 매화 검을 잡는다. 이 여자가 거리감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지금은 곤란했다. 자신과 비슷한 비누향과 더불어 꽃향이 느껴졌다. 순간 등에 살이 닿고 하는 감촉에 정신이 확 든다. 제게 벅찬 자극에 얼굴이 달아오른 청명과 다르게 연홍 련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양 팔을 들어 올려 더 다가가진 않는다. 청명은 검집째 잡아들어 연홍 련을 막아낸다.

“……안 괜찮으니까 가까이 오진 마라. 꼬맹이가 조심성 없게.”

“그럼 머리카락만 제 쪽으로 넘겨주세요. 한번 맡겨보시고 싫으면 더 귀찮게 안굴께요.”

청명은 연홍 련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눈만 굴려서 흘겨본다. 그녀는 여전히 청명을 바라보고 있지만 눈빛은 시큰둥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말따라 순순히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대로 거절하면 더 권유하진 않겠지만... 잠시 갈등하는 청명은 연홍 련을 보다 작게 혀를 차더니 팔로 머리를 받쳐 연홍 련 쪽으로 머리카락을 빼서 넘겨 눕는다.

“더 오면 혼날 줄 알아.”

그녀의 말대로 들어주는 게 어쩐지 자존심이 구기지만 청명은 눈을 감는다. 그녀가 하는 제안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한 번이라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청명의 반응에 연홍 련은 작게 웃으며 청명의 머리카락 끝을 만진다. 어두워서 몰랐는데 엉킨 부분이 있네.

연홍 련은 손가락으로 엉킨 부분을 먼저 풀어낸다. 손가락에 감기는 머리카락 감촉과 자신과 비슷한 향이 나는 게 마음에 든다. 가늘게 웃는 연홍 련이 빗을 잡아 청명의 머리를 빗질하기 시작한다. 누워있던 청명은 점차 노곤해지는지 구겨있던 미간이 펴진다. 빗질을 마무리 할 때쯤 되자 연홍 련의 시선이 잠든 청명의 얼굴을 살핀다.

‘깊게 잠드셨나?’

가만히 잠든 얼굴을 내려보자니 진해 보이는 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속눈썹이 길다. 평온함마저 보이는 얼굴을 보자니 인상만 쓰지 않으면 훤칠한 얼굴일 텐데. 당보도 그렇고 얼굴아깝게 왜 그리 인상을 구기는지 모를 일이었다. 연홍 련은 협탁에 켜져 있는 촛불을 끄고 이불을 조심히 끌어온다. 입이라도 맞추고 싶지만 그랬다간 깨려나. 고민 끝에 연홍 련은 청명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잘 자요, 검존.”

느리게 웃는 연홍 련의 말을 끝으로 침상에 누운 그녀는 금방 잠자리에 든다. 규칙적으로 내쉬는 숨소리가 방안을 채우다 청명이 느릿하게 움직여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얕은 잠을 자고 있던 청명은 이마에 뭔가 닿았던 감촉에 뒤늦게 얼굴이 달아올라 상체를 일으킨다. 분명 입이 닿은 거 같은데. 무인으로서 감촉을 알아차리기 쉬운 자신이 이럴 때면 원망스럽다.

“…돌겠네, 뭘 먹고 저럴 수 있지?”

빨개진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는 청명은 제 옆에 잠들어있는 연홍 련을 내려본다. 자신은 이리 쿵쾅거리고 있는데 미련 없이 곤히 잠든 그녀를 보니 울컥한다. 제 속도 모르고 자는 얼굴은 어울리지 않게 순진무구하다. 자는 척 하는 건 아니겠지? 

청명은 손가락으로 연홍 련의 뺨을 투박하게 쓸어본다. 여인의 손보단 거친 손이라 만지면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깨지 않는 게 금방 잠드는 것도 신기했다. 잠든 지 반각도 안된 거 같은데. 청명은 금침에 머리를 베어 연홍 련 쪽으로 몸을 틀어본다. 사내가 옆에 있어도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드는 게 무심한 건지 아니면 제 옆이라 믿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후자인 거면 다행인 거지만. 청명은 가만히 그녀를 눈에 담다 자신도 결국 눈을 감는다. 자신을 뒤흔드는 이 무심하고 사랑스러운 여인을 소중히 대해야겠다는 느릿한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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