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Line

Time Line 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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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 by 鷹見啓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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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새벽에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역시, 저놈은 여러모로 둔한거같아.

D 잠을 설쳐서 지금 일어났는데 이제 대놓고 앞담이라도 까는 건가?

H 에? 들렸어? 미안, 너무 잘 자길래 못 들을줄 알았지.

D 어제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도 속닥거리더니, 오늘은 내가 어떻게 네 심기를 건드린 건지 알 수가 없군.

H ...뭐? 너 안, 잤어?

D 넌 그런 말을 듣고도 잘 수가 있겠냐?

D 둔한 건 내가 아니라 너겠지.


H 너, 너 왜 자는척했어? 어?

D 그게 맞는 거 같아서? 내가 그 시간에 눈 번쩍 뜨고 너랑 눈이라도 마주쳤어야했나—. 하지만 내가 그랬다면 너, 분명 놀라서 퍼덕거렸을텐데?

H 농담한거, 야. 장난도 못 치냐? 나 원래 자고나면 맨날 그래. 너 먼저 잠들어서 괘씸한것도 있었고, 진짜 자는건가 확인할겸... 퍼덕이는거 싫어? 어젠 흥분된다며? 사냥하는 기분이라고.

D 그런 거라면 오늘은 최대한 늦게 자보도록 하지.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 그리고 그냥 퍼덕거리는 거랑 잔뜩 달아올라서 퍼덕거리는 건 다르잖아? 난 전자보다는 후자를 좋아해서 말이야. (느른한 눈빛으로 너를 쳐다본다.)

H 미친, 새끼... 그리고 잔다는게 잠 잔다는게 아니거든? (시선을 피하고 중얼거린다.) 너 없어서 라이터 하나 사오려고 허리 아픈데도 날아서 다녀오고, 옥상에서 외롭게 혼자 담배피우고. 애프터케어 매너 빵점이야.

D ⋯ 그것 참 미안하게 됐네. 누구 말대로 이런 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다음엔 좀 더 신경 써보도록 하지.

H ...너답지않게 왜 이렇게 물, 러 있냐. (가만히 있다가 네 손을 만지작거린다.) 더운데 하드먹을래? 저거 냉장고 쓸만한거 같아서 넣어놨는데.

D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너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바닥을 뒤집어 깍지를 끼고는 시선을 맞춘다.) 원하는 게 이거야? 아이스크림이라, 마침 더웠는데 잘됐네.

H 어? (깍지껴서 잡히고 잠시후에 팍, 뿌리치며 하드나 가져온다.) 오렌지랑 청포도중에 뭐 줄까? 골라.

D (뿌리쳐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 손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둘 다 별론데. 굳이 고르자면 뭐⋯. 청포도?

H ...아이스, 어떤 맛 좋아하는데? (오렌지 포장을 먼저까서 입에물고 청포도를 건네준다.) 망고? 아니면 딸기?

D (눈앞에 건네진 청포도맛 아이스크림을 손으로 받아 물끄러미 쳐다본다.) 둘 다 별로. 거기는 그런 거 밖에 없나? (아이스크림을 혀로 한 번 핥더니 다시 말을 꺼낸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

H 흠, 그럼 좋아하는 맛이 뭔데? 나도 좀 알자. 난 요거트맛 제일 좋아해. (몇 입 베어물고 제 입가에 묻은걸 핥아 먹으며 바라본다.)

D 딱히 좋아하는 맛이라는 게 없는데. (와닿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본다.) 먹어본 것 중엔 그거, 뭐더라. 소다맛?

H 라무네 좋아하는구나? 그래, 다음엔 그거 사올게. ...아, 이제 살거같네. 시원해졌어. (매트리스에 뻗어서 기지개를 켠다.) 계속 이렇게 평화로우면 좋겠다.

D (네가 매트리스 위에 뻗어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바라보다 들릴 듯 말 듯, 작게 웃더니 말을 꺼낸다.) 평화라, 네가 생각하는 평화는 뭐야? No.2 히어로.

H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도 여유롭게 카페인이 아니라, 커피 마시고 평범하게 퇴근하고나서 맥주 한 캔 따는... 아마 10년 후에는 완전 까먹어버릴 오늘이 이어지는게 평화 아닐까? 뭐야 왜 웃어? 요즘 자꾸 실실 쪼갠다 너?

D 히어로치고 생각하는 게 너무 소소한 거 아닌가? 뭐 좀 더 거창한 기대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허, 이제는 웃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 거냐? 그럼 맨날 화난 표정으로 네 얼굴 쳐다봐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건가?

H 헹, 너 내 이름 찾아보면서 뒷조사 다 한거 아니었냐? 난 이거보다 더한곳에서 살았어. 여러군데 옮겨다니면서 별의별 환경을 경험해봤거든? 옥탑방, 판잣집, 비닐하우스, 폐가, 버려진 공동묘지에 텐트치고 산 적도 있고... 근데, 제일 최악이었던게 반지하야. 비오면 자다가도 죽을 수 있거든. 물이 촥 밀려 들어오니까 수압때문에 문도 안 열리고 물은 차오르고 그나마 저거처럼 안에서 열 수 있는 창문열고 그 사이로 빠끔빠끔 숨쉬다보면 어느새 물이 빠지는데... 그게 끝이겠냐? 옷도 안 마르고 하수구 물이니 피부도 다 일어나고 원인모를 기침에 집에는 곰팡내나고. ...그게 되게 어릴때일인데 아직도 생생한거보면, 비일상적인 일이겠지?

D ⋯ 아무리 어릴 때의 일이라고 해도 지독하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도 있는 법이야. 나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 알거든. 지워내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런 거 말이야. 그게 갑자기 도지면 꽤 괴롭단 말이지. 되도않는 위로가 필요하면 얘기하던지 해. (말과는 다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다.)

H 뭐야? 설마 내 얘기 듣고 우울해진건 아니지? ...기운 좀 차려, 네가 뭔 사춘기 남학생이냐? 이렇게까지 기분 오락가락할 얘기도 아닌데 그러네... 아니면 내가 막, 불쌍해보여?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날 위해서 체포되던가 자수하던가. 내가 어떻게 잘 빌면 선처되어서 금방 풀릴지도.

D 허. 내가 네 이야기에 우울해질 거라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 마. 난 네가 나한테 공감과 위로를 바라는 줄 알고 그렇게 대답했을 뿐이니까. (괜히 애꿎은 미간을 주무르다 곁눈으로 너를 쳐다본다.) 난 절대로 체포될 생각 없거든. 자수도 안 해. 그리고 너같은 프로 히어로가 나같은 빌런을 위해 빈다고? 사람들이 널 우습게 볼 게 뻔한데?

H 우습게만보면, 싸게 먹히는거지. 누가 날 죽이려 드는것도 아닐텐데 말이야. 만약 그런다해도 쉽게 죽을... 건 아니지만. 어, 이번엔 내가 널 위해 빌어주고 싶어하는 이유가 뭔지 안 물어보네? 그러고보니까 살짝 불공평하네 나 지금 어릴때 얘기도 다 오픈중인데 넌 한 마디도 안 하고. 치.

D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줄 알았는데. (어깨를 으쓱거린다.) 왜, 듣고 싶어? 듣고 싶다면 해줄게. 그대신 네가 날 위해 빌어주고 싶은 이유가 뭔지부터 말해.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놓고 입 닫는 건 질색이거든. (고개를 돌려 너를 빤히 쳐다본다.)

H 어제, 얘기했잖아. 세글자로. (웅얼거리더니 날개를 쫙 펼쳤다가 접으며 얼굴과 몸을 감싸고 눈을 감는다.) 그게 이유야. 별거없어.

D ⋯아. (이미 감각이 무뎌진지 오래인 양쪽 뺨에 생소한 감각이 올라오는 걸 느끼자 행여나 네가 알아차릴까 고개를 돌렸다가 날개로 얼굴과 몸을 죄다 감싸고 있는 걸 보고 입을 연다.) 기분이 좀 묘하네, 그게 이유라니. 뭐, 잘 들었고 썩 내키진 않지만 내 얘기도 좀 해주지. 들을 준비는 된 건가?

H 아주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좀비씨. (선풍기밖에 없어서 후덥지근 하지만 숨어있지 않으면 빨개진 제 얼굴을보고 놀릴까싶어 그대로 있는다.) 남의 과거얘기 듣는 거 오랜만이다.

D 거창한 얘기는 아니니까 기대하지는 마. (목이 뻐근한 것인지 좌우로 움직이다 다시 말을 꺼낸다.) 나도 어릴 때는 히어로라는 걸 꿈꿔왔어. 잘난 부모의 기대를 한껏 안고 말이지. 근데 시간이 흘러 나를 향한 부모의 기대가 무너지는 일이 생겼고,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나는 한순간에 필요 없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거지. 참 나, 필요도 없는 애를 세상에 낳아놓고 그 애가 관심을 구걸해도 상대조차 해주지도 않고 말이야. 그게 무슨 히어로냐고. 그때부터 히어로를 꿈꾸던 나는 죽고 지금의 내가 태어난 거나 다름없어. (반사적으로 눈가에 손을 가져다댔지만 만져지는 것은 거친 피부의 감촉뿐이다.) 뭐, 빌런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더군. 어때, 내 우중충한 과거 이야기를 들은 소감은?

H 세상에 줬다 뺐는거만큼 나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날개 틈 사이로 네 뒷모습을 내다본다.) 난 원래부터 없었어서 널 완전 위로해주긴 어렵겠지만... 꽤 힘들었겠네. 어른이 필요할 나이에 내쳐졌으니.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사이가 좋았나보네? 그래도. 아, 그, 기분 나빠하지 마라? 네 처지가 더 나았다는거 아니야. ...있지, 우리 엄마는 어떻게지내? 너는 봤잖아.

D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여기서 네 처지나 내 처지 중 누가 더 낫나 비교하자고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니잖아? 너희 엄마?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엇인가 떠오른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 잘 지내고 있었지. 나랑 내 동료가 쳐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때 너한테 꽤나 미안해하던 걸.

H ...미안해했다? 정말? (날개를펼쳐 원래대로 접어놓고 옆으로누워 너를 올려다본다.) 뭐라 말하던? 그 사람.

D (나를 올려다보는 너를 내려다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말한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려서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네 이름을 부르면서 너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한 거 같던데. 겁에 질린 건지, 너한테 미안해서 그런건지 울먹거리면서 말했던 탓에 확실하진 않아.

H 그랬구나... 그랬어. 당연히 겁에 질린걸거야. 맞고살아서 그런지 그 사람, 남자만 보면 엄청 움츠러들거든. 나도 어릴땐 살짝 그랬고. 미안, 하다... (날개 한쪽으로 얼굴을 가린다.) 미안하면 더 일찍 도망치지... 아예 낳질말던가. 품고있던 애까지 위험하게 만들고서 변명은...

D (한쪽 날개로 얼굴을 가린 너를 가만히 바라보자 미세하게 몸을 떠는 것이 느껴져 무심결에 손을 올려 어색한 손길로 너의 등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부모라는 족속은 참 알 수 없다니까. 필요할 때는 내 새끼, 내 자식이면서 필요 없어질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정하게 버려버리니까.

H ...다비.

D (너의 입에서 내 이름이 불리자 등을 다독이던 손을 멈췄다.) 뭐야, 갑자기.

H 껴안아도, 돼?

D (갑작스러운 말에 눈이 커졌지만 금세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 네가 원한다면.

H (맨정신으로 그것도 같이 밤을보낼 때도 아닌데 껴안는건 처음이라 그런지 어색해하다가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있으니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 말 안 하고 더 꼭 안아본다.) ...더워?

D 아니, 전혀. (제 품에 느껴지는 너의 온기가 덥게 느껴지기는 커녕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자 더 꼭 안아오는 너의 등을 어색한 손길로 다독이며 말한다.)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싫으면 말해, 언제든지 그만둬줄테니까.

H 그, 래...(어지러운듯 싶더니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해 놀라서 떨어지려다가 그러면 꼴사납게 우는 모습이 보일테니 절대 못 보게 온 몸으로 끌어당기며 흐느낀다.) 어? 왜, 아... 아니 왜 이런, 왜 이러지?

D (축축하게 젖어가는 옷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하지만 우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인지 꼭꼭 감추고 점점 안으로 파고드는 너를 보고 그저 가만히 내 품을 내어주기로 했다.) 이봐, 울고 싶으면 참지 말고 울어버려.

H ...나도, 그러고, 싶은데. 소... 리를 밖으로, 못... 내보내겠, 어. (끅끅거리기만하고 더 큰 소리는 내지 못 해서 몸만 덜덜떨고 날개를 살짝 퍼덕이기만 한다.) 어떻게 울어야할지 모르겠어...

D (덜덜 떠는 너의 몸을 다독이며 말했다.) 억지로 소리 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그냥 나오는대로 질러버려. 서러움이든 뭐든.

H (네 손길이 닿자 떨림이 진정되면서 악을쓰며 오열한다. 다 큰 남자가 그것도, 히어로라는 작자가 빌런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을 역겨워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정신없이 울어버린다.)

D (명색이 히어로라는 녀석이 빌런인 제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와 나는 히어로와 빌런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그저 서럽게 울어대는 녀석의 등을 다독여줄 뿐이다.)

H (정말 한참 울다가 기침하고 목이 쉬어버릴 때 쯤 그만두고 훌쩍거린다. 눈도 다 붓고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이기 싫은데, 날개로 가린다고 다 숨겨지는 것도 아니니 슬쩍 떨어져서 등을 돌린다.) ...미안.

D (방금까지 제 품에 안겨서 엉엉 울어놓고 이제와서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자 조금 짜증이 나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네가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사과를 해. 우는 게 그렇게 죄스러울 일인가?

H 적어도, 난 그렇게 살았어. 그냥 가만히 있기만해도 맞았거든. 등, 보이고 있으면 걷어차이고 밟히고 또 밟히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도 안 멈춰. 그러니 울땐 어땠겠어? 차라리 맞아 죽는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었을적에, 그때부터 전혀 안 울었어.

D ⋯ 이제는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돼. 네가 가만히 있어도, 네가 등을 보여도, 네가 잘못했다고 빌어도 이제 너를 걷어차거나 너를 밟고 혼낼 사람은 없어. 우는 게 힘들면 화를 내도 돼. 적어도 내 앞에서는 무슨 투정을 부려도 다 받아줄테니까. (문득 내뱉은 말이 멋쩍은 듯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H ...너, 지금 히어로한테 자기 앞에서 화내도 된다고 말한거야? (꽤 놀란듯 눈을 크게뜨고 쳐다보다가 작게 웃는다.) 뭐야, 이렇게 쉽게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걸 알았으면 더 일찍 울어버릴걸. 뭐, 당연히 혼내는 사람은없지. 밟고 걷어찬 사람은 있었어도—

D (역시 자신이 내뱉은 말이 후회된 건지 아예 얼굴을 돌려 시선을 회피한다.) 내뱉고 보니 내가 하기에는 좀 웃긴 말이었군. 말랑말랑해진다니 그런 말 하지 마.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위험한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인간이니까. (애꿎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H 아, 네. 알다마다요. 그러니까 내 날개 꺾으면서 태우는걸 아주 좋아했겠지. 싸이코처럼 웃는거 소름 돋았어 진짜. ...근데, 그런 인간한테 감기다니. 나도 참 피는 못 속여. 나한테 새겨진 유전자는 왜 이 꼬라지일까... 빌런한테 여러의미로 안기는 히어로... 이야, 직접 내뱉으니까 구역질 나.

D 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네가 내 동료를 죽이려고 달려들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갑자기 독설을 퍼붓고 바로 인정하는 건 또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널 탓하고 비하하는 짓 좀 그만하지 그래? 가만히 보기에 좋아보이지 않거든, 그거.

H 어쩔 수 없어 이렇게라도 안 하면 미쳐버릴거 같거든. 사춘기땐, 끔찍했어. 비아냥 거리지 않으면 정말 죽을거 같았지. ...알았어, 자제해볼게. 근데 이런말을 너한테 들으니까 신기하다. 자낮 히어로와 콧대높은 빌런의 환장의 연애질.

D ⋯ 난 허구한날 아무 문제도 아닌 걸로 자기 비하하는 녀석이랑 알콩달콩 놀 생각은 없어. 적어도 네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만 자책하고 비아냥거려. 그 외에는 적당히 하는 게 좋아보이는데, 적어도 내 앞에서는 말이야. 연애질? 하. 오늘부터 1일이다 뭐 이런 거냐?

H 음? 방금 나 고백한거였어?

D 아님 말고.

H 다비, 나 좋아해?

D ⋯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애써 대답을 회피한다.)

H 다비, 나... 사랑해?

D (귓가에서 무언가가 윙윙거리는 듯한 느낌에 입술만 달싹거리다 본심과 다른 말이 제멋대로 나왔다.) 넌 내 대답이 어땠으면 좋겠는데?

H 글쎄, 어떤 대답이건 실망은 안 할거 같은데... (역시 어려우려나 싶어서 섭섭한 티를 안 내려고 억지로 미소짓는다.)

D (고개를 돌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너를 쳐다보고 말한다.) 어, 맞아. 나 너 좋아해.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H 내 어디가 제일 좋은데? 응? (슬쩍 무릎위로 올라가 앉아서 마주본다.)

D 그걸 내가 직접 말해줘야하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너를 마주보다 시선을 피하고 귀를 기울이면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한다.) ⋯네 웃는 얼굴. 그게 왜인지 좋더라고.

H 나도 그래. 너 비릿하게 웃으면 이상하게 동하더라. (내려다보다 이마에 뽀뽀해준다.) ...사랑해, 다비. 이제 뒷일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사랑해.

D (너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잠깐. 지금 그거⋯, 칭찬이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너를 쳐다보며 픽 웃는다.) 뭐, 이제는 상관 없나. 그래, 나도 사랑해.

H 그러니까, 오래살아. 알았지? 죽을짓만 골라하지 말고. (씁쓸하게 웃다가 와락 끌어안는다.) 진짜 사랑해? 응? 나 많이 사랑해? 더 듣고싶어. 네 입으로, 날 사랑한다는 말이.

D 너야말로 히어로라고 위험한 일에 무작정 뛰어들지 마. (제 품에 안겨오는 너를 두 팔로 끌어안는다.) 응. 지금 내가 하는 말에는 거짓 따위는 절대 없는 진짜야. 많이 사랑해. 나한테서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듣고 싶다면 듣고 싶을 때마다 해줄게.

H 그래 걱정하는 사람도 생겼으니 몸 조금 사릴게. 아니면, 말이야... 여차하면... (입을 뗐다가 다문다.)

D 여차하면 뭐. 제대로 말해. 쓸데없는 생각이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H ...정말 피치못할 일이, 생겨버리면. 후우, (오랫동안 눈을 쳐다보지 못 하다가 다시 똑바로 본다.) 그땐 같이... 같, 이 죽을래? 응?

D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너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며 대답한다.) 그 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H 자신 있어. 나, 평범한 히어로도 아니잖아? 손가락질이랑 돌만 맞고 안 끝날거야. ...네가 날 부르면, 소리쳐 부르면 기꺼이 날아오를거야. 꼭 끌어안아줄게 하나도 안 무섭도록. 이렇게. (잡아당겨 안으며 고목나무 매미마냥 다리로도 전부 휘감는다.)

D ⋯ 또 그 소리. 이제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넌 대외적으로는 No.2 히어로인 녀석이잖아. 힘들면 나한테 털어놔. 이제, 우리 그런 사이는 된 거잖아. (제 몸을 팔과 다리로 감은 채로 가만히 있는 너를 똑같이 꼬옥 안아준다.) 이제 혼자 힘들어하지 마.


D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H 나도 언젠가, 진짜 네 이름을 부를날이 올까? 그건 언제일까.

H 어떻게하긴 사랑해주면 돼. 파국에 다다르더라도 이젠 네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H [네, 접니다. ...아니요, 조금 일이있어서. 잘 모르겠네요. 일단 다들 경계심이 너무 커져버리니 다시 다가가기에 조금, 무리가 있을겁니다.]

H [걱정마십쇼 이런게 한 두번 입니까? 사이드킥 관리나 잘 해주세요. ...애초에 이렇게 꼬이게 만든건 그쪽들 아닙니까? 당신들이 그 사람 관리만 잘 했어도]

H [이따위로 들키는 일 없었어요. 덕분에 아주 복잡하게도 처리 중이니까 다시 연락 할때까지 먼저, 접근하지 마요. 뭐라했더라? 당신네들이 편집광이라 지껄이면서 아직도 얼마나 위험한건지 모른다면... 거기서부터는 저도 관여 못 하니 내 걱정 하는 척 하지말고 개별수행이나 잘 시켜요. 이만끊죠]

H ...하아, 또 시작이야.

H 운명같은 거 안 믿어봤는데 왜 이제와서

H 그냥 삼켜져서 침몰하면 다 끝날텐데

H 엔데버를 존경해 마지않는 나는,

H 거짓말쟁이에 엄청난 위선자네

H 그를 죽이겠다는 자와...

H ...

H 힘들다

H 그만 생각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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