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높바람은 불어오고
나는,
그대들을 불멸할 자의 축으로 쓰고자 한다.
명명하노니, 그대들이야말로 수호수의 쐐기다.
고룡은 거대했으며, 그가 몸을 일으킬 적에 부는 바람은 참으로 포근했다. 그것이 십구 년을 살아온 프라툼 아분단티아의 어린 목동, 알레이 에버그린이 고룡을 목도한 뒤 떠올린 첫 감상이었다.
그 뒤에야 푸른 마력을 발견했고, 그 뒤에야 거대한 뿌리와 늙은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이어 들리던 것은 귓가를 메우던 톱니바퀴 소리. 마력이 맥동했다. 이윽고 폭발하듯 퍼진다…….
알레이 에버그린은 상념에서 깨어난다.
그 모든 일이 지난 뒤, 제 용과 인사를 나눈 뒤 잠시 사라진 목동은 그가 어린 양 피피와 시간을 보내던 나무뿌리에 걸터앉은 채였다.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몸에 흐르는 마력은 생경했다. 숨을 나눈다는 것. 생을 엮는다는 것. 한 죽음이 곧 다른 죽음을 불러오리라는 것.
내내 전장 떠도는 삶이 펼쳐지리라는 것. 어리고 미숙한 아이는 허락되지 않으리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더이상 아크사버그의 목동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
아, 참으로 두려운 일이구나.
그리고 또 가슴 뛰는 일이구나.
이 땅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와 같이, 고양감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무릎 위에 기댔다. 사크라 테라의 서늘한 바람이 어제에 이어 오늘 한 번 더 어린 용기사의 뺨을 식힌다. 목동은 이제 최초의 대지에 충만한 마력을 더욱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마력은 곧 바람의 동의어였으므로, 비유하자면 실바람이었다. 가장 여리고 부드러운, 동시에 어디에나 있는 바람. 비단결과 같이 고우며 질긴 줄기여.
청년은 눈을 감았다. 그는 믿는다. 그가 나고 자라고 살아온 모든 것이 그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될 것임을. 하물며 이 최초의 대지에서도 참으로 많은 것을 익혔다. 많은 이와 춤을 추었고 노래를 불렀으며 함께 숨을 쉬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므로, 두려움에 매몰될 필요 없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누군가와 춤을 나누고 싶지도, 노래를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양치기는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긴다. 미래를 그리고 과거를 되새겼다. 홀로 많은 것을 정리하여 가슴 속에 담아내는 이 찰나, 그의 벗은 사크라 테라 그 자체였다. 그는 가장 오래된 대지에서 부동不動의 춤을 춘다. 침묵의 노래를 부른다.
바람이 분다. 푸른들판의 목동은 이제 북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되리라.
내달리고, 내달리고, 또 내달려서……,
이 땅에서 모든 삿된 것을 몰아내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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