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FF14 에메트셀크 드림 망상
FF14 효월의 종언(6.0)까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에메트셀크와 아젬 HL 연성으로, 아젬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이 들어 있습니다.
본 블로그에서 묘사하는 ‘아젬’은 드림주인 ‘헤스티아’입니다.
쓰고 싶은 대로 마구 날려 쓴 날조 글이므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퇴고 완료(2022.07.04)
이럴 줄 알았다.
에메트셀크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아젬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포르르 날아 들어와 시선을 빼앗아 놓고는, 붙잡으려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리 날아가 버린다. 누군가 그랬다. 시선을 빼앗기면 지는 거라고. 에메트셀크는 반박하지 못했다. 맑은 날 여름 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 눈을 마주한 순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아젬은 정말이지 귀찮은 여자였다. 그녀는 ‘당연한’ 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문제를 발견하면 위원회에 보고하는 것이 아젬의 본분이건만, 그녀는 보고하는 대신 특유의 소환 마법으로 동료들을 불러 저들끼리 돌격해버리고는 했다. 위원회에서도 여러 차례 징계를 내렸으나 아젬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발을 내딛는 곳마다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에메트셀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젬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가 그녀를 찾아 이름을 부르고 나면, 아젬은 언제나 맑게 웃으며 화답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는 것처럼.
그뿐인가. 아젬은 실없는 장난을 아주 좋아했다. 에메트셀크 역시 그녀의 장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젬의 손가락에 뺨을 찔린 날보다 찔리지 않은 날을 세는 것이 빠를 정도였다. 그녀는 그것이 복잡하고 두려운 생각을 흩어버리는 마법이라고 하였으나, 그것이 그저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갓 태어난 어린애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젬은 친구가 아닌 이들에게도 종종 장난을 쳤다. 우연히 겁에 질린 아이를 만난 날이었다. 아젬은 우는 아이의 손에 빈 종이를 접어 쥐여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것은 용기를 주는 술식이 적힌 이데아라고. 종이를 펴는 순간 술식은 사라질 것이니, 절대 펴 보아서는 안 된다는 뻔한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용기를 주는 이데아라니. 정말이지 바보 같은 장난이 아닌가.
호칭은 또 어떤가. 그가 ‘에메트셀크’라는 이름으로 불린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휘틀로다이우스마저도 그를 꼬박꼬박 에메트셀크라고 부르고 있거늘, 반복된 정정에도 아젬은 고집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이제 가 봐야 해.”
그러나 에메트셀크는, 하데스는 그런 그녀를 경애했다.
하데스는 보았다. 아젬의 행동에 결국 웃음을 터뜨리던 사람들을, 그녀의 바보 같은 이야기에 금세 울음을 그치던 아이의 얼굴을,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본 아젬의 미소를. 그러므로 그는 언젠가 이렇게 될 줄을 알고 있었다. 아젬이 조디아크를 소환하는 데에 격렬하게 반대했을 때부터, 포도 운운하며 화산 폭발을 막으려 들었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녀의 푸르른 두 눈을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하데스는 아젬을 바라보았다. 세상 모든 것이 뒤바뀌려 하고 있건만, 아젬의 눈빛은 여전히 단단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하데스는 명계의 사랑을 받는 남자였다. 더구나 에메트셀크라는 자리를 그 손에 거머쥔 자이기도 했다. 그는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명예로운 아모로트의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에메트셀크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머리를 숙일 일도, 애원할 일도 없는 삶을.
물론 그런 하데스에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조정자 엘리디부스가 그러했고, 휘틀로다이우스가 그러했으며, 눈앞의 아젬이 그러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굳건했다. 그것은 깨뜨릴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에메트셀크는 엘리디부스의 선택을 막지 않았다. 휘틀로다이우스의 선택을 만류하였으되 존중했다. 그러나 아젬의 선택 앞에서 하데스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애원했다. 고개 숙여 간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가지 마.”
아젬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굳은살이 가득한 손이 그의 잘 다듬어진 머리카락을 쓸었다. 뺨에 와 닿는 감촉이 까칠했다. 그녀의 손은 빈말로도 곱다고는 할 수 없었다. 고생한 흔적에 노력한 흔적이 더해져 더 그랬다. 오래 방치된 굳은살은 갈라지고 피가 난다. 아젬은 아픈 것을 싫어했다. 한 번 피를 본 후, 그녀는 주기적으로 손에 남은 굳은살을 갈아냈다. 그래도 아젬의 손은 보드라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하데스는 그런 그녀의 손을 기꺼이 여겼다.
“하데스, 그거 알아? 저 먼바다에는 오래전에 가라앉은 해저 유적이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젬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북쪽 섬에 숨겨진 보물이며 남쪽 바다의 특별한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하데스는 말없이 아젬의 거친 손을 쥐었다. 그녀의 손은 무척이나 작았다. 잘못 쥐면 꼭 바스러질 것 같았다. 아젬은 이 손으로 사람을 끌어모았다.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가득했고, 그만큼 아젬의 세계는 넓어졌다. 그녀는 그렇게 넓어진 자신의 세계를 사랑했다. 하데스가 아름답게 반짝이는 이 별을 사랑하듯이.
그래서 그는 아젬의 기행을 말리지 않았다. 방식은 다를지언정 별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같기에. 이번에도 하데스는 그녀를 말리지 못할 것이다. 설령 그가 붙잡더라도 아젬은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그러나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음침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딱 한 번쯤은 그의 말대로 해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모든 걸 네게도 보여주고 싶어.”
아젬이 웃었다. 상념이 흩어졌다. 그녀의 다정한 거절에 하데스는 입을 다물었다. 다정함은 때로 무기가 된다. 아젬은 꼭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굴고는 했다.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휘두르는 다정이 그의 가슴에 기어코 상처를 냈다. 아젬이 남긴 상처는 꽤 오래갈 것이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휘틀로다이우스도 너도 없는 세상에. 하데스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애써 삼켰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가……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데스의 물음에 아젬의 눈매가 둥글어졌다. 그녀는 푸른 눈으로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국은 말갛게 웃었다. 지금껏 그래왔듯, 저 하늘의 태양처럼 밝은 얼굴로. 아젬이 끌어당기면 운명은 모일 것이다. 지금은 하늘과 땅으로 갈라지고 마음이 멀어졌더라도, 그녀가 지상의 별들을 잇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은. 명계의 사랑을 받는 자조차 따르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운 빛을 발하는 자일진대, 감히 따르지 않을 자가 있을까.
하데스는 아젬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바랐다. 이 끔찍한 종말 앞에서 다만 그녀가 무사하기를. 두 사람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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