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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글이라 쪽팔려서 문체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만 공개해 둡니다.

SAMPLE by 공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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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감사 따위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남자는 차오른 숨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서늘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야속하게도 매캐한 바람이 인다. 가면 뭘 할 건데. 왜 한쪽 눈을 감아. 왜 세상을 두 눈으로 보지 않으려고 해. 되돌릴 수 있어? 어지러운 원망에 고개 숙인다. 비틀대던 뜀박질이 느려진다. 땅이 흔들린다. 철조망에 새빨간 햇살이 걸린다. 왼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언제 망가진 걸까. 어제? 그제? 오늘? 왜 나는 항상 중요하지 않은 것만을 생각하게 될까. 남자는 흙바닥을 줄지어 이동하는 개미 떼를 밟는다. 발밑에서 터져 죽은 하잘것 없는 생명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다. 우린 이토록 손쉽게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우리를 죽인 존재가 정확히 무엇인가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념이기도 하고 인간이기도 하며 호기심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종종 소각로로 향하는 말이 있었다. 몇 번이고 입을 열었으나 말은 나올 수 없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함께 걷던 달밤의 길이나 나눠먹던 커피 한 잔을 추억하는 것이 너무 쉬웠던 것이다. 파랗게 웃는 얼굴을 보면 이유없이 울음이 나던 새벽도 있었다. 터진 입술을 깨물고 남자는 다시 다리를 끌었다. 우리는 무엇도 계속하지 못해. 다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속하려고 해야 해. 왜일까, 우린 왜 이렇게 의미도 모른 채 눈물같은 생을 살아야만 할까. 질문은 허공으로 흩어진다. 대답해줄 이는 이미 잠들어버린 터였다.

국가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을 때 그는 경례를 붙이며 웃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절대적 힘 앞에서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군 기관에 소속되어 충성을 다한 세월이 길었으므로 그에게 우선은 현실이었을 뿐이다. 꼭 버러지들이 자유 같은 탁상에서나 외칠 단어를 바깥까지 끌고와서 지랄이지. 자유, 의지, 사랑, 모두가 같잖다. 한 번의 외침에 목숨이나 청춘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감옥살이까지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국가에 목을 맬 이유도 없지만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가 저지를 수 있는 불법의 종류란 통금을 어기고 몰래 술잔이나 기울이러 가는 일 따위가 다였다. 국가는 그의 공로를 알았으므로 그것을 용인하는 눈치였다. 그는 간혹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봐,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라니까. 그가 가진 국가 차원에서의 감사나 예정된 훈장, 승진 따위를 부러워하는 이는 많았다. 사실 그런 것들에 큰 의미를 둔 적은 없었으나 있다고 해서 나쁜 것일 린 없었다. 종종 그 모든 것은 자랑이었고 목소리의 힘이었다.

전쟁이란 전부 같잖은 잔챙이들의 탓이었다. 국가의 대답은 늘 그랬다. 그는 나오는 하품을 참았다. 발 뒤꿈치를 땅에 두어 번 박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의 생각도 같았다. 한 발짝 너머에 쏟아지는 비가 있었다. 별로 나쁘진 않은 날씨였다. 날씨는 어두울수록 좋았다. 번개라도 쳤으면 더 나았을 텐데. 궂은 날씨를 골라야 효과가 크다. 벽에 남은 총탄의 흔적이 짙게 젖어들어갔다. 이 집도 허둥대며 도망친 모양이었다. 챙기지 못한 살림살이가 창 너머로 보였다. 그대로인 가구들 사이 흩어진 금품도 보였다. 별로 탐나진 않았으나 만날 사람이 혹여 물질적인 것에 약하다면 필요하다. 문을 발로 차 열고 더러운 금붙이를 챙겼다.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기 위해 국가에 반기를 드는 건가. 그들의 무단이 일으킨 사태다. 그는 그 말을 믿었다. 믿지 못할 이유는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자는 손을 떨며 사흘 째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피난민을 가장했다. 찡그린 얼굴에 피곤이 묻어났다. 그는 힘겨운 투로 말을 흘렸다. 날 좀 살려줘, 꼭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을 끝내니 정말 머리가 핑 돌았다. 일부러 비를 너무 오래 맞은 탓인지 몸이 떨렸다. 쓰러진 척이나 하면 되는 것을 남자는 정말로 잠에 들어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니 미지근한 차 한 잔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냉기가 스며 바깥처럼 추운 탓에 그는 몸을 반 밖에 덮지 못한 담요를 어깨에 대강 두르고 몸을 일으켰다. 허리 숙여 차 향을 맡자 민트였다. 아, 별론데. 남자는 차를 두고 방을 나섰다. 문을 열자 후다닥 다가와 누군가 괜찮으냐고 물음을 던졌다. 오셨을 때 몸이 너무 차가워서 놀랐어요. 푹 쉬신 거면 좋겠는데, 갑작스럽게 오셔서… 겨우 차 한 잔 드린 게 너무 죄송하네요. 곧 저희 식사 시간인데 일단 밥부터 드시겠어요? 드실 수 있으시겠나요? 쏟아지는 질문에 남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뭐 괜찮았는데. 걱정 안 해도 돼. 그보다 제대로 못 챙겨먹어서 밥이면 뭐든 환영이거든. 나도 줘. 대답에 웃음이 돌아왔다. 그럼 그럴까요?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피니 셔… 지하 모임의 일원이에요. 대부분이 당신을 이곳에 머물게 하는 것을 찬성했어요. 특별할 것 없는 곳이지만 같이 잘 지냈으면 해요. 그리고 꼭 도움이 되려고 하지 않으셔도 돼요. 계신 분들 하나하나의 존재가 도움이고 힘이니까. 대강 고개를 끄덕였을 때 남자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전에 없던 불편한 감정이었다.

수 개의 부대를 전멸시킨 신화를 만든 사람. 특유의 능청이 꼭 구렁이 같기도 한 사람. 국가의 신뢰를 받는 사람. 남자를 부르는 말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마스터라고 했고 누군가는 A급의 군인이라 했다. 무엇이든 괜찮았다. 전부 치켜세우는 말이니 나쁠 것이 없다. 남자는 전쟁이 좋았다. 무엇을 해도 괜찮은 시대다. 사람을 죽여도 영웅이 되고 때리고 짓밟으면 훈장이 떨어진다. 우습고도 편한 세상이다. 누군가는 터전을 잃었다며 울부짖으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의 당연한 결과다. 수없이 이런 일들을 해왔다. 수백 수천의 반란군들을 잡아냈고 고해 바쳐 폭탄 끝의 재로 만들거나 형장에 세웠다. 총칼을 휘두르는 것은 자신 있는 일이다. 배신자들, 반란군들을 잡아내는 것은 더욱 더 자신 있는 일이었다. 최대한 벽 없이 접근하여 본거지와 각 모임의 수장 격 인물들의 위치, 빼돌리는 기밀 정보 따위를 웬만큼 알아내면 상부에 보고를 올린다. 늘 그것만이 우선이었고 다른 것은 없었다. 원망하는 눈들이 가린 눈 너머에 있었고 물린 재갈 사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이 쏟아졌으나 남자는 늘 군복을 차려 입고 무표정으로 그들을 훑어보았을 뿐이다. 잘 해줬네, 감사합니다. 딱딱한 인사와 격려만이 의미였다. 어차피 다른 세계의 인간들이다. 측은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철창이 늘어선 복도를 걷다 옆얼굴에 침이 묻은 적도 있었다. 곁눈질하니 뭉개진 손끝으로 겨우 철창을 쥐고 구부정히 일어선 죄수가 보였다. 이 주 전까지 함께 정찰을 갔던 사람이었다. 배신자 새끼. 그가 악다구니 쓰는 모습을 남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국가를 배신한 건 저들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국가를 위한 내 잠깐의 거짓이 저들에겐 진실처럼 비쳤단 말인가. 손등으로 대강 묻은 것을 훔치고 철창 앞에 시선을 맞춰 섰을 때 그는 다시 침을 뱉을 작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남자는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번도 배신 행위를 한 적이 없어. 내가 내 입으로 당신과 같은 마음이라 말한 적이 있나?

창 너머에서 비틀거리다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녹슨 창살을 쥐고 있던 그에게서는 비릿한 냄새가 유독 진하게 났다. 갈라진 목소리가 울부짖었다. 남자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언제까지고 철창 밖에만 존재할 자신은 신경 쓸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남자가 피니의 조직에 잠입한 지 딱 석 달이 되는 날 국가는 먼저 연락을 취해 왔다. 위험도 높은 임무를 단독수행하는 것은 유감이나 국가는 당신을 신뢰하고 있으므로 무사히 완벽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간 두 차례의 비밀 접선이 있었고 지하에서 정찰을 나갔던 사람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남자의 탓이었다. 지하의 분위기는 땅을 뚫고 들어갈 지경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시들어갔고 딸을 잃은 아비는 통곡했다. 모임에는 배신자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저 오가는 말들을 듣거나 흘리거나 했을 뿐이다. 즉결 심판과 처형, 모임의 재기 불능을 위한 상세 정보는 복귀 후 보고로 예정되어 있었다. 지하의 수장에 대해 올릴 보고도 그 때로 예정된 것이었다.

국가는 지하의 수장이 누구인지 몰랐다. 다만 수장이 누구인지는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반정부 단체 중 가장 큰 규모의 지하 조직은 저들끼리는 모임이라 부르지만 수 개의 모임이 연합해 결국 조직만한 크기가 된 형태로 제각각 노는 듯하다가도 수장 격의 몇 인간들이 내뿜는 지혜로 무사히 굴러가고 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국가는 본보기가 필요했다. 다시는 그들만의 비밀을 만들 수 없게 모든 희망을 부술 수 있길 원했다. 거대한 힘 앞에서 가볍게 꺾여버리는 자기들의 영웅을 보면 누구라도 쉽게 낙담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손쉬운 절망과 커다란 파급력을 바랐다. 남자는 그 위대한 시작의 버튼을 쥔 채였다. 석 달을 지내던 중 첫 달에 그는 누가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지를 찾았다. 모자른 이것들의 눈과 손이 대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아야 했다. 사람들은 그를 컨티뉴라 불렀고 새 시대를 이어줄 희망이라 칭했다. 남자는 그가 퍽 대단한 사람일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그는 우스운 꼴을 하나 보았다. 그 수장이란 것은 어째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워 보이는 어리숙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지하에 온 첫날 뽄새 좋은 말이나 해대던 사람이 대체 무슨 수로 이 거창한 짓을 하고 있나. 남자는 처음으로 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위에 재미를 느꼈다. 다만 여전한 불편함을 끌어안은 채였다.

피니는 남자를 신뢰했다. 몸을 좀 쓸 줄 안다는 티를 냈더니 기쁜 티를 숨기지 못했다. 이렇게 단번에 믿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피니는 빠르게 제 옆자리를 내주었다.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몸을 잘 쓰시는 분은 처음 봐요. 눈속임을 위해 처음 정찰에 참여했을 때엔 같은 일원임을 표하면서 유능함까지 드러낼 목적으로 일부러 그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다. 피니는 그에 완전히 반했단 눈이었다. 남자는 한없이 이 사람이 우스웠다. 동시에 즐거웠고 어쩐지 시시했다. 왜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지, 강하게 주장하고 소리치지 않지. 남자는 지하 내에서 어느새 신뢰받는 위치까지 올라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어떤 곳에서도 만족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어떤 사랑이란 잘못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펜 끝에도 긁힐 수 있고 울음으로도 죽을 수 있다. 펼쳐놓은 밥상 앞에 서면 이유 모를 체기가 있었다. 비뚠 그릇들이 눈에 밟혔다. 사람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겨우 빵을 뜯었다. 씨발,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고. 걸걸한 목소리가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잘난 배우신 분들이 얘기 좀 해보쇼. 나는 됐고 우리 아들이라도 살려야 할 거 아니야. 남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피니는 그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고장난 벽시계처럼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목소리가 말하는 배우신 분이란 그 같은 사람이었다. 정규 교육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가르침을 받는 건 어려운 시대에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 사람.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이들을 쉽게 우러른다. 피니는 얼결에 탁자의 가운데를 차지했다. 남자는 그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과연 똑같이 그 자리에 앉았을까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말을 당차게 할 줄 알았지만 마냥 단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피니의 입술이 몇 번 달싹이는 것을 보았지만 쉽게 열리지 않는 것 또한 보았다. 술렁이는 식사시간을 정리한 건 피니가 아닌 다른 이였다. 지금 당장 위에서 우릴 죽인다고 대포 들고 처들어온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밥이나 드쇼, 밥. 식기 전에. 따끈할 때.

"저는 전쟁이 끝나면 딸이랑 여행 가려구요. 하다못해 피크닉이라도 가야죠."

식사가 끝나고 회의를 핑계로 방에 따라들어가자 피니는 앞에 물 한 잔을 놔주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남자는 그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전쟁의 끝이라는 말은 지옥같은 허무다. 그럴 날이 쉽게 오진 않을 것이다. 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사람들은 끝이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싫어했다. 헛된 희망만 안고 살다 내일 당장 죽어버리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없을 테니. 컵을 비운 남자가 웃었다. 언제 끝날 줄 알고 그런 말을 한대. 피니는 맞받아쳤다. 국가가 저희 말을 들어주는 날에 끝이 나겠죠. 그런 날이 오면 전 꼭 딸아이와 여행을 가야 해요. 그 앤 못난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항상 거실에서 잠이 들거든요. 아이를 이 위험한 곳에 데려올 수도 없고 집에 자주 가지도 못하니 자꾸 혼자 두게 돼요. 절 원망하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네요. 남자는 안됐네. 한 마디를 하곤 웃기만 했다. 어쩐지 할 말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래, 이들에게도 가족은 있지. 딸의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 위로 아들을 살려야겠다던 외침이 겹쳤다. 피니는 주전자를 기울여 물 한 잔을 더 따랐다. 조용히 떨어지는 물방울들 위로 남자는 질척한 마음을 느꼈다.

커피 드실래요? 한 잔으론 부족한지 피니는 다시 물을 올리며 눈을 접어 웃었다. 그러지 뭐. 가볍게 답하자 그는 찬장에서 통을 꺼냈다. 분주히 움직이는 꼴을 보다 남자는 비스듬히 몸을 기울였다. 피니는 곧 김이 올라오는 잔 두 개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앉았다. 잔을 잡으려는데 의자를 당겨 앉은 그가 위에 얼음을 부어 넣었다. 여전히 커피에선 모락모락 김이 피었다. 어, 너무 뜨거우면 좀 그렇잖아요. 동동 뜬 얼음이 몸을 움츠리고 흔들렸다. 남자는 헛웃음 지으며 커피를 홀짝였다. 이게 아이스 커피야, 뜨거운 커피야. 뜨거운 아이스 커피요.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피니 탓에 웃음이 터졌다. 얼음 넣을 거면 아예 처음부터 넣어서 들고 오든가. 어중간하긴. 이런 게 왜 좋아? 남자는 조금 허한 기분으로 물었다. 피니는 조용히 잔을 기울여 목을 축였다. 저들끼리 몸을 부딪히는 얼음들에 귀가 시끄러웠다. 손톱만큼 작아진 조각을 어금니로 깨물자 빠득 소리가 섞였다. 느리게 눈을 깜박인 그가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냥요. 먹다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생각지도 않았던 게 갑자기 끌릴 때가 있는 거잖아요. 좋아하게 될 줄 몰랐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좋아지게 되는 것.

남자는 금세 커피 한 잔을 다 하고 뒤 도는 그를 가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벼락처럼 깨달았다. 인간에겐 뒷모습에도 표정이란 것이 있구나. 문득 마시지 않았던 첫날의 민트 티가 떠올랐다. 왜 그건 자꾸 시원하고 미지근하지, 꼭 너 같이. 언젠가 내 앞에서 차갑게 사라질 것을 꼭 미리 아는 듯이. 왜 자꾸 특이하지. 왜 자꾸 눈길이 가지. 왜 자꾸 하얗지. 너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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