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낡은 집
“여기 벽에 누가 있는거죠?”
망토두른 아이가 들고있는 식칼의 칼날을 벽쪽으로 향했고 고개는 정확히 리네가 있는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 표정을 읽었을까, 아니면 내 응직된 몸을 눈치챘을까.
아이는 자신의 칼날이 향한 벽쪽에 누군가가 있을거라고 확신에 찬 모양이였다. 벽쪽으로 향한 칼날은 한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고, 시간을 조금만 지체하면 벽쪽에 있는 리네를 향해 식칼을 꽂을 것 같았다.
“어째 아까부터 계속 제 식칼 보시는 거 같은데, 저기에 뭔가 있는 건 맞나보네요?”
간파당한건가? 에라이⸻!!
“무슨 소리야! 누, 누가봐도 이상하니까 그렇지! 칼은 갑자기 왜 꺼낸건데? 허공에다가 휘두르려고?!
“그 허공에 휘둘러서 누가 있다면 칼에 찔리겠죠.”
“세상에, 여기엔 투명망토라도 있는거야? 그게 아니라면 무슨 생각으로 저기에 누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데?!”
“…투명망토가 존재하진 않아도 투명화를 할 수 있는 존재는 있으니깐요. 그 존재가 바로 여기, 제 앞에 있을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의심되는데요.”
끄응…
투명화를 할 수 있는 존재라면 살아있는 존재다. 그러면 저 앞에 리네를 걱정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안다, 리네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과 다르게 내 등 뒤는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망토두른 아이는 식칼을 두 손으로 꼭 쥐고있는 채 리네가 있는 벽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칼이 리네한테 닿으면 어떻게 되는거지?
-저거 나한테서 좀 떨어지게 해봐, 지금 저 괴물놈 나 찌를려고 하잖아.
리네가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왜 도망치지 않는거야?! 공중부양도 할 수 있으면서! 라고 말하기엔 칼날 끝이 리네 옷자락에 거의 닿기 직전이였다. 리네라면 유령이라서 칼에 닿아도 칼날이 허공에만 휘젓는 꼴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리네의 행동을 보니 정말로 아이한테 리네의 존재를 들킬 위험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아야 된다. 더 이상 저 칼이 앞으로 가게해선 안된다. 라는 생각이 나의 머리 속을 빽빽히 채웠다. 내가 여기서 리네한테 소리없이 말을 전한다면 리네는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 입만 뻐끔뻐끔하는 걸로 보일려나? 일단 말을 전한다고 해도 뭐라 말해야하지? 도망쳐? 공중부양? 때리자?
“그런데.”
“응?”
“여기 마을 사람들한테 듣기로는 그쪽이 다른 곳에서 왔다고 들었거든요.”
망토두른 아이는 재빠르게 오른손으로 식칼을 다시 쥐어잡더니 쥐어잡은 칼날을 내 턱 밑, 목을 향해 딱 찔리지 않을만큼의 거리까지 들이내밀었다. 여기서 움직이면 죽는다. 그런 서늘한 느낌이 내 온 몸을 감쌌다. 그와중에도 나는 잠깐 식칼을 쥐어잡은 오른손을 확인해보았다. 보다보니 약간 토끼 손을 연상시키는 것 같기도…토끼인가?
“그럼 그쪽도 없어져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름으로 불러주면 안돼? 나 이름도 알려줬는데…”
“조용히 하세요.”
아니! 이럴거면 왜 물어본거람?! 그리고 지금 그 귀여운 손으로 나한테 칼을 들이내밀고 할 질문이야?! 물론 여기서 입 밖으로 소리냈다간 턱 밑에 칼날이 바로 찔릴것만 같아서 말을 꺼낼 수 없다는 현실이라는게 비통하기만 할 뿐이였다.
“…그러니까, 거기 벽에 계신 분. 좀 나오시죠? 이분 죽는 꼴 보고싶지 않으면.”
망토두른 아이는 여전히 나에게 턱 밑으로 칼날을 들이내민 채 벽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신하는 것처럼, 얘는 자기 앞에 있는 존재가 유령이라는 걸 알려나…
-그러게 내가 말했지? 괴물놈들은 믿을게 안된다고.
이정도면 리네의 표정 기본값은 한심한 얼굴이 아닐까… 리네는 한심한 표정으로 이제 어쩔거냐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니 째려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리네에게 입모양으로 이 애 좀 나한테 떼어달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내 눈 앞엔 또 다시 무언가가 나타났다.
「SAVE STORY AUTOMATICALLY?」 (스토리를 자동저장 하시겠습니까?)
「YES/NO」
또 떴다. 내가 처음 여기로 끌려왔을 때 눈 앞에 나타났던 거, 그리고 리네랑 대화 도중 떨어진 빛이랑 같이 나타났던 거. 그런데 자세히보니 이번에는 이제까지 본 메세지와 달랐다. 저장, 그것도 자동저장이라고 한다.
이 알 수 없는 메세지가 나에게 칼날을 갖다대고 있는 아이에게도 보일까?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에 저 아이에게도 메세지가 보인다면 좀 곤란한 상황이 될거 같았다. 시선은 아직 벽 쪽을 향해서 다행인걸까, 메세지가 아이에 시선에 담진 않은거 같았다.
하지만 이 식칼이 언제 내 목을 찌르게 될지 몰랐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나는 아이가 시선을 벽쪽으로 향한 사이에 메세지 밑에 있는 답변 버튼을 얼른 눌러야겠다는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 찼다. 나는 공중에 떠있는 메세지 창을 향해 오른손을 뻗을려는 찰나,
“뭐하세요?”
내 뻗은 손이 아이의 시선에 담겨진 모양이였나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 이상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재빨리 메세지 창 쪽으로 오른손을 뻗어 YES 버튼에 손가락을 닿게 하였다.
「AUTOMATICALLY SAVE YOUR STORY FROM NOW ON.」 (지금부터 스토리가 자동저장 됩니다.)
아! 떴다! 라는 생각이 드려던 순간, 내 목에서 푸욱. 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따뜻한 액체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제 목에서 나오는 따뜻한 액체를 제 떨리는 오른손으로 살짝 만져보았다. 따뜻한 액체가 묻은 오른손 끝자락들은 따뜻했고, 붉은색 액체가 묻어있었다.
그렇구나, 이건 피다. 그 즉슨, 나는…
그리고 입에서도 붉은색의 액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동시에 아이는 나를 찔렀던 칼날을 도로 다시 뺐다. 칼날이 빠지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목을 찔린 탓인지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고 숨도 서서히 고달퍼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흐릿해진다. 이대로 죽는건가? 나는 흐려지기 시작한 정신을 겨우겨우 붙잡고 리네쪽으로 도움 요청을 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목이 텅빈 느낌이였다.
“…뭐…진…안……나오……?”
지금 아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런 나쁜…!
순간 필터링이 된 것처럼 내 귀도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몸은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했고, 내 목과 입에서 나오는 붉은색 액체는 끊길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내 마지막 힘을 써 리네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왜 없어졌지?
주변을 둘러볼 힘이 이제는 남아돌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이 집 안에 있는 사람은 나랑 저 아이뿐인 모양인데…
아… 한계다⸻
*
“허억…!”
눈을 퍼뜩 떠보니 시선에 담겨진 풍경은 온통 하얀색이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들로 덮여진 곳 같았다. 눈은 조금씩 오기 시작했었고, 살짝 추운감이 들기도 했다.
몸을 일으키려 움직이려는 순간 내 밑에서 뽀득.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게도 나는 이 눈밭에 누워있었던 모양이였다. 근데 나는 왜 이 눈밭에 누워있던거지?
곰곰히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뭘했었지?
…아, 맞다 나 죽었구나. 칼빵 맞아서! 그것도 한번도 이름으로 안 불리고! 아,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
나는 왜 여기로 왔을까? 죽으면 오는 장소인건가? 몸을 서서히 일으킨 후에 내 주위 관경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실감이 났다. 여기는 눈으로 뒤덮힌 장소라는 걸, 눈도 조금씩 오고 있다는 걸. 도착지를 정하지 않은 채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밭으로 덮힌 이 장소는 꽤 넓은 모양이였다. 뽀득. 뽀득. 한걸음, 한걸음씩 움직일수록 내 발 밑에서 나는 눈이 밟히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잠만, 살아있어?
나는 혹시나 싶어 내 두 볼을 두 손으로 꽈악 잡아당겼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내 두 손이 볼을 만지는 감촉이 생생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
그럼 내 목은? 생각해보니 아까까지 나오던 피는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았고, 입에서도 나온 피조차도 이제 흘러나오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아까 전 칼에 찔린 목 부위를 두 손으로 더듬더듬 만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더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으니 찔렸었던 목 부위도 찔린 자국 하나없이 깨끗했었다. 따끔한 촉감또한 느껴지지도 않았다.
일단 우선은 살아있으니, 그걸로 됐고. 이 주변에는 나밖에 없는건가?
“리네! 리네!! 있어?!”
조용했다. 들리는 소리라곤 눈이 밟히는 뽀득. 소리와 아무 말없이 조금씩 내리는 눈의 소리없는 고요한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 밖에 없는건가…?!”
아무래도 지금 내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이런 넓은 눈밭에서 사람 혼자 떨어져있다니, …또 다른 곳에 떨어진건가?!
그 순간
「WANT TO CONTINUE?」 (이어가시겠습니까?)
「WANT TO RESET?」 (재설정 하시겠습니까?)
내 눈 앞에 또 다시 메세지 창이 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에 보아왔던 YES와 NO가 적혀있는 메세지 창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메세지 창 두 개중에서 누르면 되는건가?
나는 두 개의 메세지 창에 적힌 내용을 다시 한번 보았다. 이어간다와 재설정이라는 건 무슨 의미지? 일단 아무리봐도 재설정이라는 단어에 ‘재'가 붙은 것을 보니 다시 처음부터 되돌아가는… 그런 의미가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는 좀 불길한 느낌이 드니 이어가는 쪽으로 선택을 하는게 낫지않을까, 라는 나의 생각이 좀 더 기울어졌다. 그렇다면 이어간다는 건 무슨 말이지? 아니면 아까 죽었던 장소부터 다시 이어가는 건가? 그렇다면…
“설마, 부활 할수도 있나?”
와하하!! 이거 다시 부활해서 제대로 골탕 먹여줘야겠네! 내가 다시 살아난 걸보면 엄청 놀라서 넘어지겠지?! 그러면 나는 칼빵 맞기 전에 리네랑 도망치면 되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리네는 어디로 갔을까. 내가 여기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볼 때엔 그 장소에 리네는 없었는데. 도움이라도 청하러 자리를 비웠던걸까, 리네는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 근데 아까 그 아이는 리네가 말하는 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였던 거 같은데… 아무렴, 우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부활! 할수도 있는 것 같고… 리네도 나를 도우려고 했었으니까!
모든 생각을 마치고 결심을 한 나는 한 치의 망설임없이 이어가기 메세지 창을 꾸욱, 눌렀다. 메세지 창을 누르니, 내 앞에는 하얀 빛이 나는 직사각형 모양의 문이 생겼다. 여기로 들어가면 되는걸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 문으로 들어갔고 거의 몸의 절반이 들어갔던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하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렸고, 형체를 확인하였다. 사람이였다, 하지만 나보다 키는 더 큰. 남색에 줄무늬가 새겨진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그리고, 머리색이 리네와 비슷… 한…
그리고, 내 시야는 정전되었다.
… 누구였지?
*
“헉…!"
내 왼손에서 섬광이 일어난 탓인지 살짝 시야가 피로해진 기분이였다. 그리고 빛이 꺼진 듯, 눈을 질끈 감아 방전된 내 시야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고, 나는 눈을 천천히 떠보았다.
“…그쪽, 방금 뭐하신거에요? 웬 빛이…”
내 시야가 확인한 풍경은, 낡은 집 안이였다. 게다가 아이가 내 목에 칼날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 내가 죽기전 상황으로 되돌아온 듯 보였다.
‘이어가기를 누르면 죽기 전 상황으로 되돌아오는 건가?’
이제부터 죽을때마다 얼추 무엇을 눌러야 될지는 알았다. 물론 다시 죽기는 싫으니… 우선 내 앞에 있는 아이부터 어떻게든 떨어트려놓아야 했었다. 그리고 나는 벽쪽으로 시선을 흘끔 돌렸다.
-도대체 그건 뭐냐?
리네가 있었다. 아무래도 리네가 없어진 건 내가 칼에 찔린 후 인가?
“저기요, 묻잖아요 지금. 아까 그거 뭐냐…”
“안 알려줄거거든⸻!!!”
나는 재빨리 내 온 힘을 다써서 망토에 둘러싸여있는 복부로 추정되는 부위 쪽을 향해 힘껏 오른발로 밀쳐넘어뜨렸다. 내 발에 밀쳐진 아이는 쥐고있던 식칼을 손에서 놓쳐버렸고, 동시에 낡은 판자에 우광쾅! 엉덩밯아를 찧었다. 아이는 황급히 토끼 손으로 놓친 식칼을 향해 엉기적 기어 잡으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왼발로 그 식칼을 내 뒤쪽으로 밀어넣었다. 망토로 얼굴이 가려진 탓에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 수는 있었다.
지금 이 아이는 패닉에 빠졌다.
패닉에 빠진 아이는 이젠 어떻게든 되라는 듯 냅다 내 쪽으로 덮쳐들기 시작했다. 자세히보니까 더 토끼손⸻
손톱이 왜 이렇게 날카로워보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손톱에 찔리면 최소 중상 이상이다. 저걸 피해야 하는데, 얘는 뭐이리 속도가 빠른거야! 피할 시간 좀…!!
-X신아, 저 식칼 주워. 빨리.
리네의 불투명한 오른손이 나를 덮치려 했던 아이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아이는 목이 졸리는 지 망토를 두른 채 컥컥. 앓는 소리를 내었고, 리네는 그런 아이의 목을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보다보면 저 아이 얼굴 좀 볼 수 있을 거 같… 아! 이러면 안되지!
나는 황급히 내 뒤쪽으로 밀어넣었던 식칼을 얼른 주워 시선을 곧장 아이가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내 손에 식칼이 들려져 있는 것을 확인한 리네는 제 왼발로 아이를 맞은 편 벽쪽으로 쿵-!! 세게 밀쳐박더니, 옆으로 슬금 비켜주었다. 차라리 저 애를 밖으로 내보내지!! 라고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다시 내 쪽으로 달려오려는 듯 보였다. 내가 쥐고있는 식칼을 보는 건지, 아니면 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고개를 이쪽으로 응시한 채로 말이다. 그렇게 다시 움직이려는 모습이 보이자 나는 재빠르게 아이가 달려들기 전 먼저 달려들어 콰앙-!! 부딪혔다.
그런데 잘못 부딪힌 탓인지, 내 몸은 망토로 둘러싼 아이의 복부 위로 추락해버렸지만, 너무나도 내가 쥐고 있는 식칼을 뺏기기에는 좋은 자세였다. 아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밀치려하며 내 왼쪽 손목을 토끼 손으로 꽉!! 붙잡았다.
감각적으로 여기서 또 뺏기면 나는 또 죽는다는 걸 느꼈을까. 나는 뺏기지 않기 위해 내 온 힘을 다 써 아둥바둥. 아이와 힘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번에 힘을 다시 세게 쥐어, 내 왼쪽 손목을 풀게 하기 위해 탁! 아래로 내리쳤다.
푸욱⸻
지금까지 아이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망토가 드디어 벗겨지고 얼굴을 드러내었다. 예상대로 그 아이는 어린 소녀인 듯 보였고, 금빛이 도는 백금발을 지니고 있었다. 외형을 보아하니, 역시 토끼 손일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토끼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사람의 얼굴도 같이 지니고 있는 채로 말이다. 소녀의 눈은 바다를 연상케하는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동자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듯 보였고, 그와 동시에 소녀의 입에서 붉은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내 왼손에서도 따뜻한 액체 촉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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