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타 쫑규쫑

녹색 무성한 세계

2024.3.10

🎶 by A

1

유리 너머의 종수가 손끝으로 창을 톡톡 건드렸다.

“저기.”

규는 노트패드에서 눈길을 들었다. 종수의 무기물처럼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한다.

종수와 그를 가로막고 있는 십오 센티미터 두께의 유리를 창이라고 부르는 게 가당키는 한지 규는 의문이었다. 실험 공간을 연구대상이 사는 테라리움과 연구자가 그를 관찰하는 사무실로 양분하는 유리는 창보다는 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았다. 녹음이 짙은 삼림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유지되는 백열조명의 빛이 넓고 높게 펼쳐진 잎사귀 위를 굴러 눈부신 향연을 펼친다. 비 오는 거리를 뒤덮은 우산 위를 옮겨 뛰어다니는 물방울처럼.

인공숲의 반대쪽 벽면에도 바깥을 향해 같은 재질의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종수는 낮에는 눈을 감고서 초목에 몸을 숨기고, 밤이 내려오면 유리에 달라붙어 바깥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실험체들이 도시를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친숙하게 새기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창이었다. 건물에는 실험체가 현생인류와 동질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미소설계가 수없이 이루어졌다. 종수는 다시 규 쪽 창을 두드린다.

“저기야. 내가 온 곳.”

종수의 한국어는 규의 허리춤 높이로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실험체의 뇌에는 의사소통을 위한 칩이 심어져 있어 실험체가 하는 생각을 인간의 뇌와 유사한 파동으로 변환하고, 그것을 다시 연구자에게 친숙한 언어로 번역한다. 규는 허리를 숙여 스피커 옆에 설치된 마이크에 대고 되물었다.

“네가 온 곳이 어디라고?”

종수는 주저없이 뒤돌았지만 반대쪽 유리로 달려가지는 않았다. 규 앞에 그대로 머무르는 채로, 천천히 손을 들어 팔을 곧게 뻗고 밤하늘의 어느 한 점을 가리켰다. 눈으로 좇아 보았자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우주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규는 종수가 필사적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자신은 손가락밖에 볼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종수의 손가락은 몹시 길고 고왔다. 유전자 레벨에서부터 그렇게 빚어졌다. 생쥐와 양을 넘어서 인간의 유전자 지도는 오르지 못한 산마루 하나, 개척하지 못한 바닷길 하나를 남겨두지 않고 세밀하게 완성된 지 오래였다. 미지는 우주에만 남아 있었다. 따라서 희망도 그곳에만 걸어 볼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오만은 지구를 생명이 지속될 수 없는 땅으로 변화시켰다. 인간의 승리가 인간의 패배였다. 강대국 위주로 결성된 비상연합에서 작성한 극비 보고서에는 기온 상승과 자연재해 발생 추이로 미루어 볼 때 십 년 이내에 인류의 멸절이 예정되어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인간은 스스로 파멸시켜 온 것처럼 또 스스로 구원할 길을 찾아 나섰다. 그 선봉에는 언제나처럼 정치인들이 서서 과학자들을 손아귀에 주고 장기말처럼 부렸다. 인류가 새로이 발 붙이고 파괴할 땅을 저 무한한 우주에서 찾아내라는 사명이 주어졌다. 일반에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과제였다.

생물학자와 화학자, 지질학자들은 인류가 어떤 환경에 생착 가능할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용 구조물을 마련했다. 흔한 사무용 빌딩의 외관을 하고 있는 글래스고 시가지의 구조물에는 각 층마다 다른 기후와 자연이 조성되어 있었다. 규의 두 발 아래층은 사막이고 머리 위로는 심해였으며 일하고 있는 층은 열대우림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규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또다시 목도할 수 있었는데, 지구 밖에서 찾으려는 생태계의 모델을 철저히 지구의 실정에 입각해서 세운다는 점이 그러했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개탄스러울 만치 궁핍한 물질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의미한 층이 여기였다. 외우주 어딘가에 열대우림이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막대한 연구비가 방사선 생물학과 대기과학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알고 반발하며 일어난 식물학과 생태학계를 달래려고 정부가 선심 쓰듯 끼워넣은 전시행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곳은 사실상 버려진 숲이었다. 밀림의 식생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천문학자 이규가 관리자로 투입된 한심스러운 실정이야말로 숲이 모두의 관심에서 밀려났음을 입증하고 있었다. 아무도 실험체라고는 종수 하나뿐인 기이한 숲을 먼저 찾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의 눈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에서만 새로운 질서는 무질서하게 싹튼다.

종수는 다시 말했다. 한 점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로.

“저기. 난 저기에서 왔어.”

규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침반을 보고 종수가 가리키는 쪽의 방위를 받아 적었다. 종수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그것인지 규로서는 영영 알 길이 없었다. 종수의 머릿속에 발생한 관념이 양자정보로 치환되면서 얼마나 많은 오류가 발생했을까. 전자기파가 국제어로 규격화되었다가 용해를 거쳐 한국어로 재조립되는 과정에서는 그 뜻이 얼마나 소실되고 새로 생겨났을까.

2

규는 종수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종수는 유리관 속에서 태어났다. 인조 세포를 피펫으로 수정시켜 산모의 체내와 동일한 농도의 액체가 흐르는 밀실에 담그고 아홉 달을 배양하면 실험체가 세상에 나온다. 물리적으로는 인간의 탄생과 다를 것이 없는 과정을 거쳐 발생한 실험체들에게 인간의 삶은 주어지지 않는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을 혹자는 행복이라 하고 혹자는 자아의 실현이라 하는데, 사실 목적은 없기 때문에 정답도 없는 문제이다. 이들은 그렇지 않다. 실험체들은 하나의 목적에 철저히 복속하도록 기획되었다. 아무 목적 없는 인류의 삶이 우주 어딘가에서는 지속되리라는 확답을 내놓는 것이 목적이다.

연구의 주도자들이 실험체를 개발한 까닭이 단지 같은 인간을 피험자로 쓰기가 영 꺼림칙해서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실험의 전말이 세간에 밝혀졌을 때 일어날 윤리적 파장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컸다. 제1세계 국가들이 단합해 유전공학을 같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게 접목했다는 논란, 그리고 멀쩡히 일상을 누리던 이웃을 실험체로 잡아들여 산소통을 쥐여 주고서 심해 환경에서 살아남는지 점검했다는 충격. 어느 쪽이 그나마 진화하기 쉬울지는 명확했다.

그리하여 사람과 같되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들이 양산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미형이었으며 평범한 삶을 누렸다면 크게 성공했을 만한 재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어느 실험실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발달 과정이 달라지는 점을 제하면 성격도 온순했다. 다수에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특질들을 실험체가 갖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유전자 재조합 과정에서 유전병의 소지는 제거되고 난폭성이나 인지능력 부족 등의 가능성도 원천 차단된다. 경주마 교배 정도는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실험체는 무자비하게 선별된다. 그 이유를 아무도 설명해 준 적 없지만 규는 알고 있었다.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규가 소설을 읽는 취미가 있어 문맥을 파악하는 데 능해진 덕분인지, 원래 관찰력이 좋고 명민해서 좋은 독자가 된 것인지 선후는 불분명하지만. 규의 추측에 따르면 이 연구의 기본 가설은 다음을 골자로 하고 있다. 첫째, 인류 개체의 신체적 및 정신적 특성들 중 어떤 것은 우월하고 어떤 것은 열등하다. 이 연구의 주모자들은 그 우열을 가려낼 수 있다. 둘째, 열등하다고 판정된 형질을 보유한 개체들은 우주로 나가면 금세, 혹은 나가기도 전에 지상에서 도태될 것이다. 따라서 생존 실험은 그러한 약점을 최대한 제거한 개체들로 한정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그들 가운데 살아남는 이들이 미래 인류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다만 실험체들이 죄다 아름답기까지 한 이유는 규도 잘 몰랐다.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언젠가는 이 연구가 대중에게 공개될 것은 필연이고, 그랬을 때 실험체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호감을 사서 연구 전반에 대한 반감을 줄일 수 있도록. 종수라는 이름도 그런 목적의 연장선이었다. 규가 관찰하는 실험체에게 문서상으로 붙어 있는 것은 알파벳과 숫자가 무작위로 나열된 무미건조한 코드일 뿐이다. 테라리움 시스템에 내장된 번역기가 그 코드를 출력 언어에 맞는 친근한 이름으로 바꾸어 내놓았다. 한국식으로는 종수, 일본식으로는 에이타, 프랑스에서는 노아.

이질적이지 않을 것.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되, 인간보다 아름답고, 인간에게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것. 실험체들에게는 모순적이고 불가능한 요구가 기관사격처럼 쏟아졌다. 울창한 수림 바깥에서 벌어지는 그러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수는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덥고 습한 숲속에서 기다란 속눈썹을 풀잎 삼아 이슬이 맺혔다. 규가 근무 첫날 열어본 실험체 정보 파일에 의하면 슈퍼모델의 유전자가 들어갔다는데, 공개적으로 체세포를 기증받아 하는 실험이 아닌 만큼 채취 경로는 알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해가 떠올라 젖은 숲을 투명하게 밝히는데도 종수는 잘 깨어나지 못했다. 규는 유리를 똑똑 두들겼다. 종수는 시스템도 번역에 실패하는 신경질적인 잠꼬대와 함께 돌아누웠다. 깨우는 걸 포기하고 기다리면 해가 중천을 찍을 즈음에야 종수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킨다. 비로소 둘의 하루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는 식사다. 원칙은 실험체가 스스로 섭취 가능한 음식물을 생태계 내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감시자는 실험체의 생존이 위태로울 때만 개입할 수 있다. 중수가 숲에서 채집에 나서려고 들면 못 할 것도 없다. 축축하게 반짝이는 통나무가 쓰러져 있고 그 위로 도마뱀과 붉은 개미가 기어다닌다. 천장에 스칠 만큼 높이 뻗은 활엽수들이 환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살랑이다가 이따금 이끼 낀 바닥에 열매를 떨어뜨린다. 그중에 어느 것이 식용인지는 종수가 직접 가려낼 몫이지만, 규가 종수의 버릇을 망쳤다. 유리의 잠금 해제 버튼을 누르면 라텍스 장갑을 낀 손이 출입할 수 있는 정사각 창이 스르르 열린다. 규는 연구원 전용 카페테리아에서 전부 두 개씩 사온 음식의 절반을 밀어넣는다. 삶은 달걀을 얹은 케일 샐러드와 잘 익은 바나나. 두꺼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같은 음식으로 식사한다. 발사믹 드레싱의 식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규가 있는 삭막한 연구실 쪽에는 먼지 쌓인 바닥에 책상과 모니터, 규가 읽는 책이 쌓여 있을 뿐이라 생활감 없던 공기가 순식간에 음식 냄새에 찌들었다.

종수 쪽은 어떨까. 입가에 바나나 과육이 묻어 있었다. 종수에게서는 지금 바나나 향이 나고 있을까. 아니면 싱그럽고 알싸한 숲의 향기가 날까. 종수가 어떤 체취와 음성을 발하는지 규는 맡아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종수는 규를 골똘히 쳐다보는데 규에 대해서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수는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쳐내고, 규는 연구일지의 첫 번째 항목을 체크한다. 실험체의 환경적응 — 섭생. 건강 상태 양호, 특기 사항 없음. 연구원 추가 파견은 오늘도 불필요.

아침식사는 기나긴 일과 중 하나의 단계에 불과했다. 실험체의 행동양식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부터 심리까지 모든 것이 관찰의 대상이었다. 창조자들은 피조물을 오직 불신과 무지로만 대했다. 같은 종인데도. 실험의 총괄자들은 대리석으로 갈라테아를 깎아 놓고 조각상의 차가운 표면 아래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지 못하는 피그말리온과 같았다. 그 유전공학자들은 규와 종수가 있는 숲의 네 층 위에서 일하고 있었다.

규는 다시 작은 창을 연다. 이번에는 프로토콜을 위반하는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규가 작은 쟁반에 얹어 내미는 마시멜로 두 조각은 철저히 지시된 실험이다. 실험체의 인내심을 재는, 정작 심리학계에서는 폐기된 지 한참인 고리타분한 평가. 규는 이번에도 규정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는다. 한 조각만 먹고 15분을 참으면 다른 한 조각을 순차적으로 주겠다고 말해야 하지만, 규는 그냥 한 번에 두 조각을 다 주어 버린다. 규가 종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정도밖에 없었다.

마시멜로를 잠시 잊어버리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는데, 종수가 규를 불렀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난 후였다.

“문 열어 줘.”

종수가 쟁반에 덮었던 손을 떼자, 연분홍 마시멜로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종수의 손등에는 군데군데 벌건 자국이 올라왔다. 단내를 맡고 몰려든 개미에게 물린 것이다. 제법 따갑고 쓰라릴 텐데도 종수는 아픈 내색 하나 없이 고집만 부렸다.

“이거 가져가. 네 거야.”

“두 개 다 너 준 건데?”

“이런 거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

새침떼기처럼 턱을 치켜들면서도 종수는 규가 마시멜로를 가져갈 때까지 숲 안쪽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런 거 싫어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규가 마시멜로를 씹어 삼키고 미소를 지어 줄 때까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떼지도 않았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깊은 야생처럼 새카만 눈이었다.

해가 지는 저녁이면 모든 관찰이 마무리된다. 규는 연구원이 아니라 경비원으로서 남아 있게 된다. 필시 무척 차가워 보이는 반석 위에 누운 종수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는데, 규도 이 방에 들어오고 불면증이 생긴 터라 전우애를 느낀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을 덜 괴롭게 해주는 것을 규는 딱 하나 알고 있다. 창이 열리고 캔커피가 종수에게 건네진다. 실험체의 수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이 숲에서는 불가사의하게도 힘을 잃는다. 기운을 찾은 종수가 숲 건너편에서 글래스고 시내의 야경을 구경하는 동안 규는 소설을 읽는다. 그러나 손 안에 펼쳐진 이야기에는 통 집중하지 못한다. 생각이 먼 곳을 정처 없이 떠다니다가, 끝내 종수를 향해 흐른다.

종수는 머리와 연결된 테라리움 시스템으로부터 생각을 숨길 수 있을까? 숨긴다면 어디에 숨길까? 종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각 층의 실험체는 실험의 요구에 따라 의복도 달라진다. 어느 층에서는 기압을 바꿔 가며 우주복의 강도를 검사한다. 사막이 일구어진 층에서는 충전재를 가득 채운 외투를 입은 실험체들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고온에 다가가고 있다. 이 층은 그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뒤돌아 앉은 종수의 등에는 달빛을 머금은 피부 위로 도드라진 척추뼈가 선명하게 보인다. 종수가 느끼는 것은 추위일까 더위일까.

머리를 열어 전극을 연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은하수처럼 물결치는 곱슬을 자르고 두개골을 절단하기만 하면, 그 안에는 종수를 종수로 만드는 것이 전부 얽혀 있을 것이다. 종수의 책임 관리자로서 규에게는 그렇게 할 권한도 있었다. 괘씸하게도 시스템에 비밀로 한 생각이 있는지 샅샅이 헤집어 보고 벌을 내릴 수도 있다. 전극을 따라 적정한 자극을 흘려보내기만 하면 종수를 여덟 시간의 숙면에 들게 해서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해방시켜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종수에게 간섭하지도, 침범하지도 않는다.

규는 자신의 편으로 되돌아와 유리 앞에서 잠든 종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고요히 꿈꾸는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무겁고 고단한 마음이 요동쳤다. 우주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출렁이는 중력파처럼.

규는 가만히 멈추어서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슨 감정인지를 생각한다. 아무리 해도, 마음을 명명할 수는 없었다. 천체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실행하는 일을 마음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 정복하여 첫 깃발을 꽂기. 정복자의 이름을 붙이기. 아무래도 규는 천문학자의 본성을 조금 상실하고 만 듯하다. 결국 찾아오는 새벽빛 속에서 규가 확실히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사뭇 엉뚱한 것이다.

규가 생물학자였다면 종수를 만들지 않았으리라는 것.

3

종수의 밤낮은 점점 바뀌어 갔다. 순전히 규가 잘못 길들인 탓이었다. 잠 못 이루고 밖을 내다보는 종수의 시선은 점점 높아져 가로등이 별빛처럼 총총한 시내 위로 어두운 창공만 향하곤 했다. 캔커피를 마시는 버릇을 들여놓지 말걸, 규는 약간 후회했다.

종수는 캔을 모아다 규에게 돌려주었다. 숲에는 쓰레기통이 자라나지 않았고, 규도 쓰레기가 종수의 공간을 더럽히는 것은 싫었으니 그렇게 하면 알맞았다. 때때로 캔을 건네주는 순간을 규와 손 스칠 구실로 삼고 있다는 의심도 갔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규가 먼저 그랬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캔커피는 '렛츠 비'라는 상표였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는 문장이었다. 무엇이 되자는 걸까?

렛츠 비가 종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갈 때면 규는 궁금해진다. 실험실을 나가는 날이 오면 종수는 무엇이 될까? 캔을 하나씩 주의 깊게 창밖으로 내미는 종수는 규가 아는 누구와도 달랐다. 현대인의 예법을 배우지도 않았고, <정글북>의 늑대 무리에서 자란 소년처럼 야만에 가깝지도 않았다.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은 이제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종수처럼 창조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종수에겐 이 숲이, 도시가, 이규가 어떻게 보일까. 규가 마이크를 향해 몸을 굽혔다.

“종수야, 여기서 지내기 힘들지 않아?”

“늘 지내 왔으니까 익숙해. 여긴 내 집과 거의 비슷해.”

“네 집이라면?”

“여러 번 말했잖아.”

말끝이 가파르게 성마르게 변했다. 종수는 역정을 낼 줄 알았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신경질은 문명이든 야만이든 인류의 본능인 듯했다. 종수의 귀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토록 당연한 것을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는 규가 답답해 정말로 속이 터진다는 듯이 종수는 마구 씩씩거렸다.

달래 주려고 규는 종수보다 먼저 손가락을 들었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대강 가리키며,

“저기라고 했지?”

종수의 손가락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규의 손가락 끝과 맞닿았다. 종수가 옮기는 손끝을 따라서 규도 손을 미끄러뜨렸다. 먼저 굴러간 빗방울이 낸 길을 따라가는 빗방울처럼.

“저기.”

“거긴 뭐가 있는데?”

“여기서 보면 너무 멀어서 그냥 밤하늘의 일부 같아. 까만 태풍이 거세게 불고 있으니까. 소용돌이치는 태풍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중심으로 끌려들어가게 되지. 그곳을 건너가면 안쪽에는 숲이 기다리고 있어. 새들이 노래하고 물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잎사귀가 가득해.”

“그러니까 태풍의 눈 같은 공간이야? 태풍의 눈에 숲이 있다고?”

“태풍에 눈이 어딨어? 사람도 아니고.”

종수의 눈동자에 또다시 신경질이 넘실넘실 차올랐다. 계속 들고 있었던 손끝이 저렸다. 손을 떼자 유리에 찍힌 두 지문이 벽을 두고 맞닿아 있었다.

“태풍 건너편에 숲이 있어.”

종수는 언짢음을 거두었다. 가여울 정도로 못 알아듣는 규에게 관용을 베풀어 이해시키려는 듯이, 종수는 찬찬히 나직하게 말했다. 두고 온 소행성을 회상하는 어린왕자처럼.

“내가 사는 곳이야⋯⋯.”

도대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규를 위해 꾸며낸 동화인가? 그렇다면 규가 들어주지 않으면 무의미해질까. 숲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했어도 나무가 쓰러졌다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하지도 않은 해묵은 물음에 공들여 천착할 의지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규였지만, 숲의 왕자가 사라지면 숲도 사라지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석양이 져도 종수가 사는 숲의 조도는 한낮과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층 전체의 시설을 관리하는 규가 밝기를 낮추거나 조명의 색조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얀 빛 속에서 나무에 기대앉아 쉬는 종수가 편안해 보였기에 규는 그대로 두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외부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브라우저를 켜고, 종수가 끈질기게 가리키는 방향을 웹 기반 플라네타리움 소프트웨어에 입력했다. 해당 좌표의 천문학 정보가 여러 행에 걸쳐 떴다.

정확하게 그 시직선상에 퀘이사가 있었다. 비주얼 시뮬레이션은 맹렬하게 몸을 뒤채는 블랙홀을 나선 은하의 팔처럼 회전하는 형상으로 묘사해 놓았다. 천문학자들이 붙인 이름은 JD-234였다. 편광분석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지금까지 관측된 심우주 천체들은 죄다 내부 구조가 규명되었는데, JD-234만이 완전한 미지로 남아 있었다. 불안정할 것으로 추정되는 블랙홀은 아직도 붕괴하지 않고 무한에 가까운 열을 내뿜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서 그러는지 아무도 몰랐다.

정말 숲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규는 아주 잠깐 공상한 후 화면을 껐다. 아무도 종수에게 천문학을 가르치지 않았음에 생각이 미치자, 경외감과 감당하기 어려운 위압감이 몰려와 규를 덮쳤다.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는데 종수는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하늘 너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도 씨앗을 심지 않은 숲이 자라나 있었다.

규는 피로를 느끼며 반사적으로 양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곧바로 유리에 똑똑 노크가 울렸다. 이번에는 종수의 얼굴에 서린 감정을 해독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그건 걱정이었다.

“아파?”

번역기를 거친 음성이 무미건조할지라도 종수의 찡그린 미간과 눈썹, 유리에 찰싹 붙어 양손으로 짚고 선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친밀하고 다정한 염려. 규가 종수에게 달콤한 것이나 씁쓸한 것을 건넬 때 저도 모르게 손길에 담는 바로 그 마음들. 규는 종수를 안심시키려고 고개를 저었다.

“안 아파.”

곧 규는 종수에게서 똑같은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규가 정녕 원치 않던 일이었다. 퀘이사의 좌표를 찾아본 바로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모니터 전원을 켜니 긴 실험 리스트 중간에 한 줄이 삽입되어 있었다. '자극-대응 문턱값 검사'. 언뜻 무해한 인상을 주는 이름이었다. 번호가 붙여진 세부 순서를 따라가던 규의 눈동자가 정지했다. 규는 한참 동안 그 줄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종수가 부스스 깨어나서 규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까지. 종수가 일어나면 밤이든 낮이든 빛나는 숲도 비로소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규는 머릿속으로 침착하게 대책을 찾았다. 종수를 몰아붙이지 않으면서도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방법을. 종수가 실험체로서 존재 목적에 계속 부합하도록 하되, 잔인한 실험에 쓰이고 버려지게 두지는 않을 방법. 불가능한 목표를 조율하려면 일단 겉으로는 실험을 따르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규는 유리로 다가가서 창을 열었다. 기민하게 규의 어두워진 낯을 눈치챈 종수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런데도 규가 강아지에게 하듯이 손을 달라고 하자 바로 손을 내밀었다. 팔목에 패치를 붙이고 있으니, 종수의 신뢰를 이용한다는 죄악감이 스멀스멀 규의 피부 위를 기었다. 멋대로 실험 지시 사항의 반으로 낮추었던 전기자극을 다시 그 절반으로 낮출 수밖에 없었다.

“어때? 많이 아프지? 따가워? 어디가 아파?”

“뭐라는 거야? 아무 느낌도 없어.”

종수는 못마땅하게 대꾸했다. 아주 상식적이고 예상 가능한 대답이었다. 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다음날에는 전기충격의 강도를 아주 조금만 올렸다. 그리고 또 다음날에도 미미하게. 약하지만 자극이 분명히 느껴질 수치에 도달하자마자 규는 값을 고정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생리학 교과서를 뒤져 본 결과로는 팔이 따끔따끔하고 가볍게 저리다가 사라질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면 괜찮을 것이다. 이대로만 하면 된다. 거짓말을 공 삼아 계속 저글링 묘기를 부리기만 한다면⋯⋯. 충격의 강도를 높여 적으면서, 규는 불안정한 평형을 새로이 찾아낸 데 다소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어디에 어떻게 자극이 오냐는 형식적인 질문은 단지 실험의 구색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사연을 모르는 종수는 매양 진지했다. 몸 가운데, 심장과 배 언저리에 손을 얹고서 대단히 신중하게 알려 왔다.

“여기가 가려운 것 같아.”

가려움. 그 말의 원천을 찾으려고 규는 종수의 말을 번역기에 내장된 모든 언어로 다 돌려 보았다. 종수는 내내 손으로 명치께를 만지작거리며 규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길은 부드러웠고, 본래 의미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숲의 언어는 태고와 원시의 노래 같은 것이라 문자 체계에 담기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새 실험이 추가된 것과 때맞추어 종수도 새로운 행동을 보였다. 빈 캔 대신 절반만 마신 캔커피가 되돌아왔다. 그토록 언어가 안 통하는데도, 뚜껑 근처에 남은 종수의 입술이 닿았던 자국을 보자마자 규는 종수가 뭘 원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규는 흐릿한 자국 위에 입술을 겹쳤다. 종수가 보는 앞에서 나머지 반을 마셨다.

다음날은 규가 먼저 반을 마시고 종수에게 주었다. 규가 보는 앞에서 목울대가 리드미컬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종수는 캔을 돌려주지 않고 가만히 쥐고 있었다. 몸에 카페인과 당분이 퍼져나가며 손끝과 발끝을 찌르르하게 만들어서, 규는 종수가 말한 가려움을 이해했다. 그 느낌이 정말 이것이면 인간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숲에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뱃속을 뜨겁게 하는 기분이라면. 가려움의 뜻을 알기까지 규가 종수보다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종수는 규보다 늘 한 발자국 앞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보조를 맞추고 뒤돌아보았으므로 조금도 섭섭하지는 않았다.

“종수야. 잘 자.”

“이름이 뭐야.”

종수가 규한테 그 질문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규는 마이크에 대고 대답했다. 이규. 그것을 번역기가 뭐라고 왜곡했을지 몰라 입술 모양을 과장해 가며 몇 번이고 가르쳐 주었다. 종수가 제 마이크에 대고 한 말은 음성 대신 기계 톤의 울림 두 번, 이어서 “잘 자”로 번역되었다. 시스템의 기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소리는 비프음으로 대체되는 탓이었다. 하지만 종수가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맞게 불렀을 것이다. 종수의 입술은 분명히 이규를 그렸다. 그걸로 충분하고도 넘쳤다.

한시적인 평화를 누리는 내내 규는 여우를 길들이던 어린왕자가 느꼈을 짜릿함에 취해 있었다. 매일 규는 다가가고 종수는 다가왔다. 낮은 전기충격과 심장의 떨림. 짤막한 대화와 따뜻하게 데운 커피. 십오 센티미터 거리에서 손끝으로 맞잡았다. 알루미늄 위로 입술을 포갰다. 따갑고 가려움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인류에게 남은 십 년은 일 초 일 초 사정없이 줄어들고 있었다. 어떤 오차도 착오도 없이. 그러므로 규는 완전히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백일몽이었다. 인간의 생존조차 날로 불확실해지는 판에 종수와의 아기자기한 소꿉장난이 지속되리라는 것은.

지침에 한 줄이 추가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치 번역기를 거쳐 나온 듯 아무런 고저도 느껴지지 않는 설명이 빽빽한 실험 수칙을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규가 가하는 자극의 세기가 모니터링된다는 한 문장이었다.

심장 박동이 무섭게 질주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머리로 가까스로 되짚었다. 이건 규의 잘못이었다. 거짓말이 통할 거라니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다. 규의 불복이 탄로났나? 아니, 그건 아닐 터였다. 규를 처벌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종수가 냈다는 성과가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은 것이다. 상당히 강한 충격에도 무반응한다는 실험체가 언제까지 연구 총책들의 관심 밖일 리가 없다. 물론 종수만 눈여겨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모종의 사유로 모든 실험체가 공통으로 더욱 엄중한 감시에 놓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규가 어리석었다. 이 한 줄이 더해진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는 없으며 종수와의 간지러운 나날에 흠뻑 빠진 나머지 들여다보는 것도 잊었지만, 실험의 가설은 변하지 않았다. 실험체는 목적이 있었다. 그들의 고통은 그 목적에 바치는 봉사였다. 우주로 나간 인류는 가혹함에 맞부딪칠 것이다. 고통을 얼마나 끈질기게, 얼마나 오랫동안 감내할 수 있는지가 곧 인류 생존의 척도가 될 것이다. 이 건물에서 벌어지는 실험은 미래 전쟁의 축소판이었다. 채찍을 맞아도, 살갗이 타들어가도, 뼈가 뒤틀려도 아랑곳 않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진하는 용맹한 장군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가장 고통에 둔감한 생물이 미래 인간의 모델이었다. 실험체들이 올라 있는 시험대는 자신이 그런 사람인지를 증명해 내라는 신탁이 내려온 제대였다. 종수는 바로 그렇게 놓인 번제물이었다.

어찌나 절망적인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는지 규는 종수가 부르는 것도 듣지 못했다. 유리를 쾅쾅 두들기는 걸 듣고서야 규는 놀라 퍼뜩 깨어났다. 종수의 눈빛이 사나웠다. 평소라면 이미 실험을 시작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종수가 창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뭐해? 빨리 붙여.”

종수가 규의 손에 들린 전극을 눈짓했다. 순간 어지럼증이 일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종수에게 가는 걸음이 흔들렸다. 어찌나 상태가 나쁜지 종수 앞에 영영 못 도착할 것만 같았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규는 아주 천천히 패치를 붙이며 속삭였다.

“종수야, 딱 한 번만 참아 줘. 오늘은 많이 아플 거야.”

미리 통증의 강도를 암시해서 실험체를 편향시키는 것도 물론 규정 위반이었지만 규는 그토록 사소한 규정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실험 과정에는 어제와 같은 충격을 주라고 되어 있었다. 규가 보고했던 전기충격의 세기를 향해 올라가는 계기판 바늘이 현기증을 느끼는 듯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숫자를 아무렇지 않게 적었던 어제의 자신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종수는 지그시 규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한 무심한 얼굴이었다. 규가 눈을 질끈 감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종수의 입술이 히익 하고 놀란 비명을 터뜨렸다. 함께 충격에 휩싸인 숲이 요동쳤다. 불안한 산들바람이 잔가지를 마구 뒤흔들자 나무에서 오종종거리던 앵무새 몇 마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규는 천천히 전극을 떼어냈다. 파란 정맥 위로 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규가 지켜보는 짧은 사이에 핏줄이 점점이 터져 피부 아래 선홍색 점들이 맺혔다. 종수의 팔꿈치가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규는 울고 싶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혀끝에서 비린 맛이 느껴지고, 유리에 비치는 음영 속에서 입술만 시허옇게 색을 잃을 정도로 세게. 규는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많이 아프지. 미안해.”

종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대신한 사과였다. 규는 고개를 떨구고, 컴퓨터에 옮겨 놓을 반응을 노트에 휘갈겨 썼다. 실험체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9/10. 종수에게 묻지도 않고 높은 수치를 매기자마자 두꺼운 유리를 뚫고 따가운 눈길이 노트에 꽂혔다. 번역기가 명령조의 세 글자로 규를 꾸짖었다.

“다시 써.”

규는 귀를 의심했다. 종수는 다시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다시 써. 두 번 들어도 똑같은 말이었다. 종수는 규를 똑바르게 생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 화가 나 보였다. 통증 때문일까? 규가 자신을 아프게 했다는 배신감인가? 그러나 종수가 검지를 들어 가리킨 것은 규의 한 손에서 늘어져 널을 뛰듯 대롱거리는 전극이 아니라 노트였다.

“거짓말 싫어. 나한테 물어보고 다시 써.”

까막눈이면서 종수는 용케도 꿰뚫어보았다. 규가 대답을 꾸며낸다는 건 어떻게 간파한 걸까.

“거짓말인 줄 어떻게 알았어?”

“뒤돌아서 하면 거짓말이야.”

규는 차츰 심경이 참담해졌다. 규 자신만이 종수와 조금씩 가까워지며 종수가 누구인지를 해독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종수도 마찬가지로 규의 동작 하나, 신호 하나를 읽는 법을 배웠다. 연구는 양방향이었다. 규도 모르는 새.

“⋯⋯얼마나 아팠어, 종수야?”

종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나도 안 아파.”

규는 길게 침묵했다. 종수의 매서운 감시 속에서 원래 쓴 것에 두 줄을 긋고 새 대답을 받아 적었다. 0/10. 펜으로 적어넣는 글자들이 마치 종수의 피부에 불에 달군 꼬챙이로 지져 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종수가 대답한 ‘0’은 구슬을 꿰어 만드는 보배로운 목걸이의 첫 번째 보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고통을 가하는 실험은 매일의 일과로 편입되었다. 규가 보는 앞에서 종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때로는 번역기를 통과하지 못하는 신음을 흘리며 넘어졌다.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통증을 다독이기도 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련이 일어나는 걸 규에게 들키기 싫어서 돌아앉거나 숲으로 숨어 버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는 화상의 흔적이 가득한 몰골로 나와서 선포했다. 아프지 않아. 내가 아파하지 않았다고 적어. 종수가 거둔 승리의 행렬은 그렇게 끝없이 이어졌다.

실험의 잔혹함은 규를 놀라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다운 참혹상이었다. 인간을 위한 우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를 견디는 방향으로 연구가 튄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환경과 기술이 인류를 돕게 하는 대신 인간을 환경에 끼워맞추고 기술이 인간을 도태시키게 하는 패턴의 다른 이름이 곧 인류세였다. 그러니 규가 매일 놀란 것은 실험 설계자들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마다 규 자신을 향해서. 그리고 아파하는 종수를 향해서. 종수가 아프지 않다고 우길 때마다 규는 비통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어차피 내버려진 이 숲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것일까. 관리자들은 숲의 존재조차 잊었거나 아예 모르는 듯한데. 아무도 종수의 고통에 일말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갑자기 종수가 구세주로 떠올랐을 때야말로 규에게는 다시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규의 예상은 적중해 있었다. 그들은 쓰러지지 않는 실험체를 찾고 있었고, 가장 오랫동안 아프지 않다는 보고를 한 종수에게 실험의 사활을 걸었다. 갑자기 인류의 미래가 종수에게 달려 있었다. 연구 책임자들의 눈과 귀가 모두 종수를 향해 있었다. 유리벽에는 감시 카메라가 다각도로 달렸고 번역기를 거치는 모든 대화가 녹음되기 시작했다. 규가 가하는 모든 자극과 종수의 반응이 세세하게 기록되었다. 규는 점점 더 높은 고통을 가할 것을 강요당했다.

규는 마이크를 끄고 종수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간절하게 속삭였다. 차라리 애원에 가까웠다. 제발 아프다고 해. 더는 못 견디겠다고, 때려치우겠다고, 이 불구덩이에서 나가게 해 달라고 해.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겠다고. 내 숲이 죽어가고 있다고 해⋯⋯. 하지만 종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종수는 매일 처참한 학대에 응전했다.

마침내 종수가 꺾였을 때. 어느날 종수가 경기에서 처음으로 패배했을 때. 무너져 웅크린 종수는 숨을 헐떡였다. 그 자세로 종수는 아주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규는 창에 대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많이 아파?”

종수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규의 이마에 와 닿는 숲의 공기가 폭포를 머금은 것처럼 습했다. 물기는 모조리 유리에 와서 투명한 결로로 맺혔다. 울지 않는 실험체의 눈물처럼. 유리창 위로 이슬비가 흘러내렸다. 종수는 눈을 질끈 감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안도했다.

인류는 흔들리는 촛불처럼 꺼져 가고 있었다. 층마다 시험대에 올라온 이들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종수는 규의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종수는 멸종할 것이다. 숲은 소멸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규는 뒤따라 불바다에 삼켜진다 해도 여한이 없었다.

규는 창 앞에 쓰러져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자신이 울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였다. 닫는 것도 잊었던 창으로 어느 순간 종수가 다정히 손을 뻗어 왔다. 아주 느리게, 봄의 가지가 자라 나오는 속도로. 물집 잡힌 손의 촉감이 규가 결심하도록 했다. 태양이 가라앉으면, 처음으로 종수를 떠나는 밤이 될 것이다.

4

건물에서는 연구자들이 부탁하는 대로 생필품이며 취미 물품이 조달되었으므로, 규가 건물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자그마치 육 년 만이었다. 규는 상점가로 내려가 등산용품점을 찾았다. 장작을 쪼개는 도끼와 숫돌을 사고 밤새도록 날을 갈았다. 그토록 오래 종수와 자신을 가로막았던 벽을 깨고 종수를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숲이 있는 층으로 돌아왔을 때 종수는 팔려 가고 없었다. 해당 실험체의 통증 역치가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높으니 더욱 세부적이고 수준 높은 연구를 위하여 미국으로 이송하였으며, 담당 연구원에 대해서는 그간의 노고를 인정하여 원하는 층으로 재발령해 주겠다는 통고가 화면에 떠 있었다. 규가 답신을 입력하지 않자 커서가 느리게 명멸하다가 절약 모드에 들어간 모니터가 어두워졌다. 분노가 해일처럼 일었다가 두려움이 일렁이고 밀물처럼 차오르는 슬픔이 그 자리를 침식하며, 규의 마음에는 자연의 역사처럼 감정이 몰려왔다.

결국 규가 적어내려간 것은 몇 줄 되지 않는 사표였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더는 이 실험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대신 공항으로 가서 가장 빠른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을 작정이었다. JD-234를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든, 종수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서든 미국으로 가야 했다. 일단의 계획은 그랬다. 어디까지가 논리적으로 합당하고 어디까지가 열병 같은 광증인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종수가 없어졌는데도 도끼가 제 맡은 몫을 다하게 한 것은 어쩌면 바로 종수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수의 복수를 대행하기 위해서. 규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챙 챙 맑은 파열음이 정신을 깨워 주었다. 천장까지 닿았던 유리벽이 무너져내리자 숲의 소리와 향기가 한번에 범람했다. 초목의 짙은 내음, 졸졸 흐르는 시냇물, 풀벌레와 새들의 합창⋯⋯.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다. 웅덩이가 인사하듯이 규의 발밑으로 기어오고, 뛰어가는 다람쥐의 뒷발이 건드린 덩굴도 규를 향해 고사리손을 흔들었다. 숲이 문을 넘고 계단을 내려갈 정도로 넘쳐흘러 자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사라져 인류가 멸망하기까지 숲은 지상을 누리며 번성하도록. 햇빛에 적셔진 숲이 눈부셔 규는 눈가에 손날을 얹고서 기원했다. 무운을 빕니다.

유리벽은 도시를 향해 방을 둘러싼 것만 남아 있었다. 망루처럼 높은 이 층에서 종수가 그토록 열심히 내다보던 풍경이 규의 눈앞에 있었다. 시가지는 빅토리아풍 건물과 현대적 유리 마천루들의 기이한 혼합이었다. 사무용 고층빌딩과 콘크리트 틈새로 대성당의 첨탑이 빼꼼히 솟아 있었다. 육 년 사이에 클라이드 강의 수위가 높아져 강변 도로와 몇 개의 다리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나머지 땅도 그렇게 될지 결판이 나기까지는 사 년이 남아 있었다. 규는 건물을 내려와 걸었다. 실험동에 딸린 폐기물 소각장에서 불어오는 매캐한 바람을 맡으면서, 언젠가 종수에게 단언했던 걸 떠올렸다.

“네가 퀘이사에서 왔다는 건 불가능해. 생명체가 접근하기도 전에 강력한 방사능에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걸 물리치고 진입한다고 해도 곧바로 중력에 산산이 찢겨나갈걸. 거긴 그런 곳이야.”

“하지만 난 알아. 태풍을 넘어가면 숲이 있어.”

그때가 시작이었다. 종수가 끝끝내 규의 마음에 의심의 씨앗을 심는 데 성공한 것은. 종수의 확신을 웃어넘기면서도 규는 처음으로 생각했었다. 어쩌면 이 층은 규가 생각한 대로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는 바보짓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이 실험을 고안한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퀘이사 안쪽에도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태풍 너머에 끝도 없이 아픔을 견디는 사람이 산다. 그의 숨을 뿌리로 삼아 신비하고 아름다운 미답지가 자라나 있다. 종수의 눈은 꿈을 꾸고 있었다.

“내 숲으로 나를 데리러 와. 거기서 너랑 살래."

규는 렛츠 비를 보며 품었던 수수께끼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서 종수는 종수가 될 것이다. 규는 아무도 종수를 바꿔 부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작별을 앞두었던 지난밤, 종수가 조금 안정을 되찾고 규의 울음이 간신히 잦아들었을 때. 종수는 위로하듯 규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댔다. 네모난 창은 너무나 작아서 규의 한쪽 팔과 한쪽 귀만 숲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종수는 규의 손바닥에 입술을 누르고 이규, 하고 중얼거렸다. 규가 상상한 그대로 정확한 발음이었다. 규는 세 글자의 작별인사를 퍼부었고 종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종수의 등 뒤로 검푸른 밤하늘을 이고 진 숲은 밤에도 신선한 향내를 발했을 텐데 규는 어찌된 영문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로지 종수의 체취만 기억한다.

종수에게서는 그냥 살냄새가 났다. 마시멜로처럼 달고 보드라운 땀 냄새. 그야말로 사람의 냄새였다. 숲처럼 울창한 속눈썹이 눈물범벅이었다. 누구의 눈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규는 다만 젖은 뺨이 어떤 색채로 상기되어 있는지를 열렬히 눈에 새겼다. 맞춘 입 안의 체온은 규와 꼭 같았다. 퀘이사보다 뜨거운 삼십육 점 오 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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