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des, 죽음과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가장 부유한 이에게.

- by ba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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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 가린 신성한 산. 너머의 신들을 그리는 것은 어쩌면 태초부터 인간에게 자연한 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가뭄이 지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름마다 깃들인 신들은 흰 구름 자욱한 저편에 머물러 인간을 굽어볼까.

“하지마안-, 플루이토는 그 위에는 없지요, 어머니?”

눈을 깜박깜박, 느리게 흔들리는 여린 속눈썹마다 잠기운이 깃든 아이의 낭랑한 음성에는 졸린 투정이 섞인다. 아직 어슴프레한 저녁이지만 실컷 뛰어놀며 낮을 보낸 어린 아이에게는 지친 머리를 뉘어야 할 한밤. 머리맡에서 아이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은 침상의 양 편에.

“그렇지. 플루토스가 사는 곳은 새까만 밤의 끝만큼 깊고 먼….”

“나아, 알아요. 지하세상의 궁전-에요. 프시카-가 다녀왔어요. 오르페리스가 뒤를 돌아봤고요. 그리고 또오,”

“이거,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은데.”

“쉬이….”

조잘거리는 음성에는 점차 잠그늘이 물러나는 모양새라. 흘긋 눈치를 살피고는 조금 더 낮은 목소리가 웃음 섞인 혼잣말을 흘리면, 이야기를 들려주던 목소리는 속삭이듯 핀잔하는. 그러나 웃음을 나누며 서로 눈을 맞추는 부모는 또랑또랑 눈이 맑아져가는 아이를 재우려 이 밤, 긴 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겠다는 무언의 동조를 나눈다. 말이 끊긴 아이가 토라지기 전에 커다란 품이 감싸 안으면, 반대편에서는 헝크러진 머리칼을 쓸어주는 다정한 손길이 보듬는 밤.

모든 방향에서 애정을 두르는 아이의 부모는, 어린 목소리로 이름마다 어딘지 어설픈 신화를 차근차근 듣는다. 지하의 궁전에 다녀간 음유시인과, 깊은 잠이 든 상자를 가진 나비 요정의 이야기를. 그러나 이야기마다 배경이 되는 신전의 주인은 정작 그 목소리로 불리지 않는 까닭에.

“명왕성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니, 아가?”

하고 물으면.

“으응….”

어쩐지 꼬물거리는 아이가 작게 손짓하면, 기우는 고개 끝에 작은 손이 닿아 속살거린다.

사실은, 플루토는요, 조그음….

조용조용한 속삭임 위로 드리우는 밤.

그 어둠이 똑같이 내려앉아 침잠하는 대신 흘러갈, 어느 어둠 속 세상에는―.

*

보라, 신들의 전쟁은 끝을 맞았단다.

위대한 산의 신들은 승리하였고, 보다 오랜 세월을 산 거인들은 아흐레의 낮과 아흐레의 밤을 지나야 닿을 수 있는 깊은 저변, 청동의 담장이 두른 땅의 끝자락에 갇혔다.

그리하여 승리한 신족이 창공과 창해와 드넓은 대지를 나누어 다스리기로 할 적에,

지하 세계의 왕이기를 택한 신의 이름은.

*

―그래, 이 깊은 지하 세계에는 저승의 왕이 산다지.

옛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린 아이들은 저승의 신이 저를 데려갈까 울음을 터트리곤 해. 그도 그럴 것이, 죽은 자가 향하는 세계란 차라리 아득한 세상이지.

그런 땅을 다스리는 이의 이름은 옛 언어로 보이지 않는 자. 꽤나 어울리는 이름이지 않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왕이자, 죽음과 안식의 주인에게는.

뱀을 휘감은 지팡이를 든 소년이 인도한 영혼이 스틱스를 건너면, 머리 셋 달린 개가 지키는 문이 모습을 비친다. 뱃사공에게 삯을 건네고 으르렁거리는 개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들면 저 강을 건너는 영혼의 수만큼 아득한 층계 위. 시선 끝에 닿는 것은 어두운 옥좌에 홀로 앉아, 권태로운 낯을 한 아름다운 신의 형상.

“…니콜라스.”

부름에 응하듯 이편을 보는 눈은 여전하도록 익숙한 무감함이 담긴다. 다만 그 무심한 눈이 얼마나 찬찬히 상대를 살피는지를, 오래도록 배운 바 있으므로. 가벼운 웃음과 함께 발을 옮긴다. 지하 세계의 무거운 공기가 걸음마다 드리우면.

“적당히 늘어져 계시려나 했더니…, 생각보다 바쁘신 모양이네.”

하기야 그만치 게으른 나날은 오래 전에 그쳤던가. 길고 긴 세월을 사는 대개의 존재가 그러하듯, 아주 오랜 옛날을 농담처럼 그린다. 이제야 소식 한 줄 들을 겨를이 없어, 그림자를 타고 어둠을 흘러 들어야 간신히 인사 한 번을 나눌 수 있으려니. 가벼운 눈인사를 건네고 느긋한 걸음으로 안을 향하면, 걸음마다 아늑한 어둠. 이곳은 안온한 영혼의 보금자리임을 인지한다. 저 바깥의 지상에서 할 일을 마친 이들마다 돌아와 머무는 곳. 그런 세상에 머물러 다스리는 이가 실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제 권속을 돌볼 것을, 제가 모르기는 어려울 노릇.

어쩌면 퍽 어울릴 임무를 얻었는가. 혹은 제 자리를 향하여 묵묵히 그림자를 밟아 건넜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 세상에 운명은 참으로 존재하는지 모를 일이라고.

깊은 밤의 신전. 네가 머무는 이곳은…,

어느 신도 저어하는 어둠 속. 모든 영혼이 끝을 맞는 자리. 저무는 곳. 사라질 모든 유한의 것이 스쳐가는 땅. 그러니 화려하거나 위대하거나 웅장하기 어려운 세상이라지. 가장 권위 높은 어느 신도 이 광활한 세계를 탐내지 않는 것은, 대단한 광명을 마주하기 어려운 곳인 탓일 것을 안다. 그러나―.

“정말이지,”

벽을 장식하는 수많은 광물이 빛을 내는 모습을 감상한다.

무수한,

수많은,

색과 빛이 황홀하리만치 검은 동굴과 같은 신전을 넓게 두른다.

어느 것 하나 억지로 놓이지 않고도, 무엇 하나 잘못 놓이지 않는 채로.

그것은 차라리 깊은 밤 창공을 수놓은 은하수. 별이 흐르는,

…네가 속하여 다스리는 우주가 이토록 찬란할 것을, 마치 나는 이미 알았던 것 같아. 너는 잘못 놓인 듯 싶은 작은 돌멩이 하나 마저, 갈 길이 있을 것을 아는 듯 너그러웠으니.

그러니 너를 아끼는 티끌마다 네 손 끝 마디를 장식하는 것이 그리 기이할 일이겠는가.

네 이름에는 모든 유한한 것의 보석과 같은 순간이 깃들고, 너는 누구도 쥔 적 없는 부와 승리를 거머쥘 것은 어쩌면 운명에 이미 적혔을 일인데.

세 여신이 자아내는 운명을 손아귀에서 흘리는 게으른 벗은 낮은 목소리의 부름 하나에 긴 너울을 드리운 생각의 장막을 거둔다.

흑요석을 조각한 기둥마다 놓인 작은 야명주가 촛불 대신 길을 밝힌다. 발치에서 반짝이는 저 작은 알갱이들은, 별의 파편이 아니라면 군데 군데 흩뿌려진 보석들이겠지.

더할 나위 없는 사치를 환영 인사로 삼으며 가까워지면 느리게 떨어지는 제 이름. 그것이 본래 가진 빛보다 단정하게 들리도록 부르는 것은 어쩌면 저이의 습관처럼도 여겨져. 가볍게도 옆 자리를 눈짓하는 모습에는 자연히 웃음이 흐르던가. 마지막 층계 한 칸을 더 밟아 위로 오르면, 신의 거룩한 옥좌가 앞에 놓인다.

“여기에 박혀서 일만 할 셈인가. 그러다 다음 종말이 먼저 오겠는데.”

“딱히 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만. 되도록 그럴 일이 없길 바라고요.”

“글쎄, 널 보는 누구든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데. 그보다….”

안대를 슬며시 눈짓하고 적당한 허공에 손을 휘두르면, 신전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옥좌의 맞은편에 놓이는 낡은 의자 하나. 가뿐히 올라 다리를 꼬아 앉으며, 왕의 벗은 입꼬리를 휘인다.

“옆 동네의 누가 딱 그런 걸 쓰고 있던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만 하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멸망을 앞두고 지혜를 얻으려고….”

“…소용 없나.”

혀를 차는 시늉에 장난질이 멎는다. 안대 바깥의, 익숙하도록 섬세한 눈썹이 너울지면 마주하는 눈동자를 들여보며 이름 모를 벗은, 그 안대 너머의 눈을 그린다. 가장 위대한 지혜를 선사하는 거인의 샘물 한 방울과 가리운 광명을, 너는 기꺼이 바꿀까. 글쎄, 저야 모를 일이지만.

어느 신은 저승을 다스리기를 택하고는 지하 세계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짙은 어둠의 끄트머리에 서서―.

창공의 별보다 많은 영혼을 인도하고 다스리며, 너는 저들의 안식을 살피지.

그리하여 적막 속에 잠든 광명이 아름다운 보석으로 깨어나도록….

“종말이 오지 않길 바라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으나…, 네 이유를 맞춰볼까.”

한참 고민하는 시늉 끝에 고개를 기울이고,

“종말이니 뭐니 시끄러우면 귀찮아서?”

하고 물으면.

“시끄러운 걸 싫어하진 않아도,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죠.”

가벼운 웃음으로 긍정하고 느리게 깜박이는 눈은 네게 닿는다. 역시나, 가리운 쪽을 보지 못하는 건 조금쯤 아쉬울 일이려나.

“하지만 정말은, 세상이 아직 끝날 필요 없다거나-하는 이유겠지.”

너는 제법 지키고 돌보는 일을 잘 하는 편이니. 이 밤의 신전에서 네 방식으로 모두를 돌보듯. 벗의 눈길이 느리게 닿을 때면, 그만큼 고요하게 저를 투영하는 눈동자의 빛깔은―.

*

-하지만 플루토는, 봄을 데리고 가는, 무-서운 신이잖아요.

잠결에 깜박이는 여린 속눈썹이 나풀거리는 모습을 오래 눈을 담으며, 눈꺼풀 위로 나란히 입을 맞춘 부모는 어쩌면 조용히 속삭일지도 몰라.

아니란다 아기야 그는 말야….

*

저승의 왕이자 지하세계의 지배자.

꽃이 날아들면 봄의 들판으로 돌려보내는….

겨울이 있어 봄이 돌아오는 것을 만일 이해한다면, 이 기묘한 수식이 갖는 의미를 알기 쉬울테지.

그 전부가 누구를 향해 있는지 또한.

그러니 조금 더 말을 이어볼까. 어느 그림자를 드리우고 모습을 감추다가 나타나는 신에 관하여.

그는 들에 봄이 돌아오도록 돕는 명왕성. 영혼들이 안식을 얻도록 고요히 돌보는,

―검은 밤의 별빛이자, 우주의 안식. 고요한 어둠의 광휘이자, 적막한 칠흑의 광영

…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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