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a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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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 가린 신성한 산. 너머의 신들을 그리는 것은 어쩌면 태초부터 인간에게 자연한 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가뭄이 지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름마다 깃들인 신들은 흰 구름 자욱한 저편에 머물러 인간을 굽어볼까. “하지마안-, 플루이토는 그 위에는 없지요, 어머니?” 눈을 깜박깜박, 느리게 흔들리는 여린 속눈썹마다 잠기운
너를 처음 만난 날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자주 나를 부르던 어린 날의 모습. 열 다섯의 가을부터 제게 있던 수많은 이상하고도, 나쁘지 않은 일들 속에는 네가 있었다. 능청스러운 인사는 둘째치고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질 않으면서도 태연히 불쑥 나타나는 네게 제 이름을 알려주던 어느 미숙한 날. 그 무렵의 너는, 어째서인지 나무 위, 푸른 잎 사이에서의
오늘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를, 담배 한 개비와 커피 한 모금에 의지해 새벽을 태우며 적는 남자는. 누군가의 플롯을 들었다면 다음과 같이 평했을 것이다. 그것은 뻔할지언정, 뻔한대로의 힘을 가진 이야기라고. 그대로 적히든 방식을 바꾸든, 이야기가 내재한 진동을 모를 독자는 없을 것이라고. 아마 네가 착각하기 쉬운 것은 동화의 작법이다. 그리고 적당
유리잔을 매개로 빛은 유난히 밝은 그늘을 내린다. 모든 곳에 공평히 비치는 빛이 예상치 못한 매개를 만나 진행 방향을 달리하는 굴절의 현상, 혹은 무언가의 법칙. 유진은 어두운 테이블에 그리는 빛의 그림자를 가만히 눈에 담는다. 어쩌면 옛 이야기에서 신의 광휘를 발견한 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기적이라 명명했을까 생각한다면,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불경으로
만약 이것이 이야기가 된다면, 내가 작은 미니어처인 너를 만난 것은 복선이 될지 몰라. “그렇구나. 마음에나 걸릴 뿐 다들 모르는 걸까….” 느리고 완만한 시선이 네게 향하면, 확고한 의지를 가진 듯 보이는 짙은 눈썹 아래의 커다랗고 둥근 검은 눈. 가만히 오래 들여보다 잠시 입을 달싹이고,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야 네게 말을 건다. “…모두가 그래? 다들
“하하. 다음에는 같이 만들어보자.” 마법을 곁들이든 아니든, 어느쪽이라도 즐겁겠지. 그리고 네 기억을, 경험을 들으면. 함께 앉은 기숙사의 조리실은 네가 떠나온 집이다가, 집을 떠나 다다른 곳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이곳이 된다. 혹시 알아? “루는 이럴 때 기적 같은, 누가 무얼 이루어주는 듯한 말을 쓰지 않는 것 같더라. 그게 재미있지만.”
-싫은 게 없는 거 아니야? 언제였더라.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어쩌면 그 무렵까지는 좋아하는 것을 고르거나 싫어하는 것을 밀어낼 만큼 여유롭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좋아하는 과일, 간식, 그리고 많은 것들. 그런 것을 물어오던 목소리들. 물음에 답하기 위한 고민 속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아주 시끄럽고 많이 바쁘냐는 물음을, 기대를 담아 건네는 너를 보면. 별을 향한 순례일까. 혹은 어쩌다 시작된 긴 산책이었을까. 우리는 어쩌다 지도를 따라 걷다가 별을 찾으러 떠나오게 되었을까? 하지만… 수많은 항해자와 순례자도 마찬가지일지도. 이왕 길잡이 별을 따라서 걷다보면, 의도와 시작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다만 첫번째 좌표가 놓인 무렵
그래, 알래스카 말고 몬태나. 저와 아무런 연관이 없어 그저 낯설지만 이제는 기억할, 캐나다와 가깝다는 미국의 북서부. 그런 땅의 이름을 외우게 한 것은, 그곳에서 자랐다는 당당하고 씩씩한 붉은 머리 여자애. 지금은 이름을 알아. 비비안 스콧. 기분이 발걸음에 녹아 사뿐해지는,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는 열 셋의 동급생. 아마 이런 식으로 너를 부르면 너는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네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는데. 유령은 수많은 곳에서 생겨난다. 탄생하거나 혹은, 만들어지거나. 지금은 마법사가 실재한다면 유령도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참이지만…, 뭐, 어쨌거나. 미안하게도, 너는 미안할 필요 없다고 하겠지만, 네 경험을 듣고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령의 장난. 다만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은 괴담
돌이켜보면, 그때였구나 싶다. 유진은 낮의 볕 아래에서 붉게 타는 갈색 머리칼 아래, 주근깨 위로 발그레한 뺨과 깊은 초록을 보며 떠올린다. 얼굴에 비해 커보이는 안경. 그 너머에 가린채로도, 네 눈은 흐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떠올리는 것은 녹색 눈동자에 당황이 스치던 때. 지금으로부터 그리 먼 옛날도 아닌 과거의 일이다. 낮의 분수대 근처에
네가 잊고 있던 것과, 네가 묻지 않아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하나. 자신은 내미는 손을 잡고 끄트머리에 흰 포말이 이는 푸른 파도의 자락이 옅은 바람에 흔들리는 등 뒤를 따라갔던 것이지 끌려간 것이 아니라는 것. 위험해보이는 놀이로 다치는 게 아니라면, 놀이 자체를 싫어하고 꺼리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시간을 아끼고, 바삐 움직이고, 무언가를 배
무언가를 정의하는 일은, 그 성격에 의해 구분된 세부 항목들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 이때의 세부 항목이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미 발견된 사실이며,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나비는 절지동물의 하나로, 나비목에 속하는 곤충이잖아. -어. -하지만 절지동물은 거미가 있잖아. -…그래서? -거미랑 나비가 같은 종류일 리가 없어. 이건 누가 잘못
지금으로부터는 조금 오래 전. 여전히 어린애인 제가 ‘어린’ 때의 일이다. 작은 시골 마을 가장자리의 작고 푸른 점. 밀집한 나무의 군락은 어린애들에게 자주 그렇듯 쉽게 놀이의 장소가 되었다. 어린애들 중에서도 맏이가 되는 유진에게 작은 떡갈나무 숲의 의미는 어떠했는가 하면, -이거 봐! 나 이만큼 올라올 수 있다?! -나 무릎이랑 손바닥 다 까졌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