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우

자유낙하

노맨즈랜드 by f3t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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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몸을 휘감는 부유감을 느꼈다. 바람이 세차게 얼굴을 두드리고 있었다. 파편처럼 몸에 묻은 핏방울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파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중력이 뒤집힌 듯 아득한 기분에 휩싸인 채 이를 악문다. 최초의 추락에 대한 기억이 오래된 필름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불꽃, 피부를 홧홧하게 태우던 폭발의 열기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산화한 사람들, 낯선 얼굴로 웃던 형제의 얼굴과 그 뜨거우면서 싸늘하던 밤을. 인간이 이 별로 추락한 그날, 슬픔에 빠질 새도 없이 그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죄에 무게에 짓눌려야만 했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내려앉는 방법을 깨달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해야만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이건 불가능한 일이건, 울프우드가 걸어 준 목숨을 이렇게 꺼트릴 수는 없었다. 간신히 붙잡은 이 손을 놓칠 수는 없었다. 반 년간 묶여 있던 신체의 곳곳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는 아랑곳 않고 팔을 뻗었다. 목에 닿을 듯하던 칼날이 곧 멀어졌고, 손끝에서 뻗어 나간 날개가 간절하게 성직자를 감싸 안았다. 밧슈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를 단단히 붙들어 끌어당겼다. 데일 듯한 열기가 팔 안에서 느껴졌다. 거센 바람에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일그러진 울프우드의 얼굴이 문득 웃었다.

밧슈는 그렇게 추락으로부터 내려앉는 방법을 배운다. 상처 없이 낙하하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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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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