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을 맞춰서
네디실
퇴고X
“속이 안 좋아….”
복도를 지나가던 네모의 귀에 분명하게 들렸다. 네모는 좋아하는 것에는 한없이 예민하고, 그중 네모가 제일 아끼는 것은 항상 디지 트리메인이다. 네모 인생 첫 번째 사랑. 사이러스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
“약 필요해?”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네모가 물었다. 디지는 갑자기 나타난 모습에 놀랐지만, 그정도는 아니라고 답했다. 디지 옆에 있던 실리아 만이 그 정도가 아니잖아 하면서 타박했다.
“아침부터 계속 메스껍다며, D.”
“약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야….”
실리아가 창틀에 몸을 기댄 네모를 노려봤다.
‘약 안 내놓을 거야?’
실리아의 시선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싫다는 데 어떻게 줘!’
네모는 네모대로 억울했다. 디지가 원한다면 당연히 무료로 줄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데 어떻게… 네모는 괜히 미움받기 싫어서 조심스러웠다.
그 뜻을 읽은 실리아는 정말로… 못 참겠어서 내질렀다. 왜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거지?
“하 진짜 답답하네! 디지, 돈 안 받고 약 준다니까 그냥 받아!”
“어? 어, 어. 그래, 디지, 너한테는 안 받아….”
갑작스러운 실리아의 행동에 네모가 놀라서 몸을 뛰었다. 주변의 시선이 한순간 셋에게 모였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책상 위에 수그리고 있던 디지 역시 당황한 표정으로 둘을 보았다.
“하지만…,”
“아니야, 정말로 괜찮아.”
네모가 다급하게 주머니를 뒤졌다. 하나 정도는 남아있을 텐데 제발 손에 잡히길 바라며 가방까지 탈탈 털었다. 어쨌든 실리아는 자신보다 디지랑 가까우니까, 실리아가 말한 대로 하는 게 더 좋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모는 알약을 하나 찾았다.
‘젠장….’
그리고 하필 이건 또 실패작이다. 완전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마약 성분이 좀 강하다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안주고 뭐해?”
“…독성이 조금 강해.”
네모가 조금 시무룩한 목소리로 답했다. 기껏 도움이 되나 싶었는데…. 실리아는 상관없다는 듯 네모의 손에서 알약을 낚아챘다.
“보건실로 가자, 디지. 약 먹고 누워.”
“그 정도는 아니야.”
“옆에 있어 줄 테니까 가.”
디지는 결국 실리아의 손길을 따라 엉거주춤 일어섰다. 복도로 나온 실리아는 바닥에 쏟았던 물건들을 다시 주워 담고 있는 네모를 발끝으로 툭 치고 말했다.
“뭐해, 너도 따라와.”
실리아가 그 말을 할 때 디지의 얼굴이 붉어 보인 게 착각인지 아닌지 네모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네모는 서둘러서 남은 걸 다 욱여넣고 앞서가는 둘을 따라잡으러 달렸다.
“…고마워.”
네모는 살짝 몸을 숙여 실리아에게 속삭였다. 실리아는 그 말의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었는지 네모를 노려보고는 디지에게 붙었고, 네모는 둘의 뒤로 보폭을 맞춰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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