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로스

질투. 그리고 동질감.

만월맞이 by 삭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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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를 리가 없었다. 눈치 하나로 이 자리까지 ‘안해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올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 그가 제게 위해를 가한 적도 없었을뿐더러 단순히 ‘인정’이라는 것 하나만을 원한다는 사실도 모를 리 없는 사실이었으나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왜 저런 허상 따위가 가지게 둬야 하는가. 그의 말 한마디, 두 마디, 끝없는 대화는 갈수록 평생을 없는 것처럼 숨겨놓았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본심을 끌어올려지게 했다. 그래, 안다. 하지만 억울했다. 멋대로 그를 자신과 동일시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인정하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아 외면한 현실이었을지도.

네 까짓게 가질 감정이 아닐텐데. 판단할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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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가 내뱉을만한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적이고, 틀린 것도 없고, 모순적인 게 저라는 정도는 알았다. 그랬기에 헤르츠에게 시선이 갔다. 그는 저와 달리 순수하게 선한 마음으로 타인을 구하기 위해 선뜻 손을 내미는 자였으니… 닮고 싶었다. 먹색 도화지에 흰 칠을 몇 번이고 해도 먹색은 흰 칠을 삼켜버리는데도 불구하고 흰 색인 그를 닮고 싶어서, 나도 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은 했다. 어쩌면 내가 그랬기에 엔비라는, 너를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생각은 길게 가지 않았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갈래로 뻗어져 나갔다. 네가 얼마나 봤다고 판단하지? 네가 헤르츠를 봤나. 날 봤고? 기껏해야 어디서 주워들은 모양인데… 아… 그래… 쥐새끼가 사람 손톱 먹으면 그 사람의 외형으로 변한다는 설화는 들어본 적 있나. 뭐… 결국 교훈은 둘째치고 외형만 베끼는 거니 쥐새끼는 쥐새끼라는 얘기지만… 너도 결국 쥐새끼 아닌가. 헤르츠인 척하는. 되려고 하는. 결국은 남의 허울로 사는 주제에. 뭐가 그리 가지고 싶은 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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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헤르츠인데 자신이 환각에 휘말려 그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판단이 흐리게 하는 흐릿한 형상만을 비치는 시야에 있던 이가 헤르츠라고 확신하였을 때는 무어라 변명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작해야 한 사과 몇 마디가 진심으로 보일 리가 없지. 혼란한 틈을 타 제게 날아든 주먹을 피하기에는 시야가 도와주지를 않았다.

너 이 개자식이…!

빌어먹을…그대로 저항 없이 맞고 나니 욱신거리는 부위보다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저 자식의 놀음에 놀아나서 지금 이 꼴이 됐다는 거 아닌가? 내가? 허공을 손으로 짚어 거리를 가늠하고는 네 곧바로 멱을 당겨 거리를 좁혔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하. 하…하…!! 하하!! 지긋지긋한 과거의 편린 같은 녀석. 넌 내 과거를 닮았고 내 이상을 좇는 멍청함조차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네가 끔찍하게도 싫었던 건가 보군.

엔비… 엔비. 그래. 넌 나와 닮았어. 그 부분은 인정할게. 그럼 어쩔 건데. 난 나조차 이해하지 않아. 우린 그저 허상을 쫓는 멍청이들일 뿐이지…

주먹을 휘둘러 어림잡은 거리로 네 복부를 가격하려 들었다. 내가 모순이라면 너도 똑같은 모순이겠지. 설령 내가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난 널 인정하지 못해. 그건 내가 죽도록 발악하며 벗어나려던 ‘언노운’이라는 틀에 나를 다시 끼워 맞추는 꼴일 테니… 우습게도 난 이 와중에도 착하고 이성적인 ‘안해편’이 되려고 하는 모양이지. 이상을 쫓았고 끝은 타인의 말에 반박조차 못하는 주제에. 생각을 끝으로 스스로의 이상을 인정하고 허울을 내려놓기로 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그저 다정하고 온화한 미소를 낯에 띤 채로 네 앞에 자리할 뿐이었다.

피차일반인 김에 같이 나락이나 가볼까. 엔비.

넌 나랑 끝을 봐야 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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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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