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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차, 헤인 님
잊으려고 하면 잊을 수 있습니다 그의 발톱이 심장을 굴착하고 도굴하더라도 이것은 심장입니다 나의 몫과 나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심장일 수 있습니다 허파일 수 없습니다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색색 숨이 색색 숨을 헐떡이고 탯줄로 묶인 안짱다리가 경쾌한 블루스를 춥니다 해방되는 숨 지각 운동을 시작하면 창문의 바깥에서 비춰 오는 일광 거듭 태어나는 매일이 두려워 유서는 소곳이 모서리를 접습니다 네 우는 얼굴이 기괴합니다 못정을 내 얼굴에 박아 대며 기괴해집니다 나는 이 정을 못 잊고……
소년고생은 사서 하는 거야
나는 열여섯에 다 팔리고 남김이 없어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샀지
네가 대신 살아 줄 거야?
넌 내가 잘해 준 건 생각도 안 하고 나쁜 것만 생각한다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
*
귀를 뜯어낸 악조건 속에서도 무책임은
종유석처럼 노릇하게 익어 심장에 증식한다
너는 형형한 눈살을 천장마다 매달았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살 수 없도록 하는 것들
머리가 없는 들개의 하울링
나는 분명히 목줄을 쥐었는데 칭칭 감겨 버린 반고리관이 인질범이었지
기울어 걷는 반쪽짜리 내장들
내일이 없듯 차분하게 부패하는 심장
피와 근육을 태양에 구우면
강인해진 손아귀가 굴처럼 패어 들고
재거름 묻은 들개의 비명만을 기록하는 손
나는 그것이 교리인 줄로만 알았다
같은 악력으로 머리를 잡아 흔들고
뒤에서 숨죽여 우는
너는 너의 아픔이
나는 나의 아픔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는데
우리는 창자를 꺼내 서로를 묶고 만다
무분별한 섭식이 일어나고 저작 운동을 시작하는 동굴 안 불협화음에 삼켜져
무참해지는
순종하는 법을 배우고
순회하는
상설 분해 무대 위 도살되는 송아지의 눈과 마주쳤을 때
미래에는 곰팡이가 피고
악취가 황홀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알아?
죽음은 나의 몫인데 죽음조차 나의 것이 아니야
머리가 떨어져 비어 있는 왼 가슴을 향한다 비어 있는 것투성이인데 나는 추위를 황산에 녹여 발갛게 녹아 갈 뿐 두 다리 아니 네 다리로 기는 일이 지긋지긋했어 나 이제 빌지 않아도 돼? 앞가슴이 열린다 날개가 돋치는 것 같아 자유……
직면하는 삶
직면하는 죽음
네게 무엇을 줄까
제발요, 나는 성숙하고 싶지 않아 먹히고 싶지 않아
차라리 눈을 감아
*
내게누운눈동자한구천천히식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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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수집하는 나비
헤인 님은 정말 '멸망'의 감각을 묘사하는 데에 뛰어나신 것 같아요 1회차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시가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는 것 같아 이런 느낌을 반복해서 토해내고 싶으시구나 느끼게 되는 듯 합니다 소년고생은 사서 하는 거야 나는 열여섯에 다 팔리고 남김이 없어 < 이 문장이 정말 좋으네요
HBD 창작자
헤인 님께서는 초기 모임 때 시를 한 번도 써 보신 적이 없으시다고 하신 줄로 아는데 (착각했다면 죄송합니다) 이 재능을 가지고 여태 쓰지 않으셨다고요 생각하게 될 정도로 문장을 빚어내시는 솜씨가 좋으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취향이라서 이런 극찬을 드리는 것일 수도 있고요. 시야말로 호불호를 가장 강하게 타는 분야 중 하나니까요……. 그렇지만 시 좀 좋아한다는 분들 치고 1연을 흥미롭지 않게 읽으실 분은 없으실 듯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세세하게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시의 미덕 중 하나인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어떤 장면이 떠오를 때 소설이나 산문으로 쓰면 그 감각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바지런히 노력하지만 시를 쓸 때는 무척 추상적으로 분절해서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헤인 님께서는 해당 시를 쓸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는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창자와 죽음이 나와서 그런 건지 몰라도 '빨갛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하지만 여전히 모든 연을 묶어주는 심상이 있는지 여쭤보신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연마다 좋은 문장이 꼭 있고 부분부분 떼어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줄도 알겠는데 그것들이 연달아 달려 있으니 어떤 이미지를 그려야할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제가 늘 말씀드리듯 이것은 제 취향의 영역이므로, 산발하는 이미지를 다루고자 하신 거라면 의도대로 훌륭히 작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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