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샤Aronsha

당신이 잠든 새벽

…에 있었던 일

Garden by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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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는 내내 악몽을 꾸지 않았다. 드문 일이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먹먹한 새벽빛을 바라보던 아샤 그레이는 그 사실을 깨닫고 눈을 느릿 깜빡이다가, 어쩌면 그건 저를 끌어안은 품의 온기 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을 단단히 안고 있는 팔에 손을 얹었다가, 조심스레 몸을 돌려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간밤의 일이 생각나자 입술이 간지러웠다. 이대로 그가 깰 때까지 품에 안겨있는 욕심을 부려볼까 싶었으나 그건 너무 뻔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뭣보다……

'얼른 시험해보고 싶다.'

잠에서 덜 깬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오른 생각을 1초라도 빨리 실행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조심조심 빠져나왔다. 아론은 잠시 눈썹을 찡그렸으나 다행히 깨지 않는다. 간밤에 그만큼 놀라게 했으니 피곤하겠지. 아샤는 슬그머니 테이블에 앉아 종이와 펜을 집어든다. 이만큼 의욕적인 기분을 느끼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래, 이슈가르드에서의 그 날 이후로…

…상념은 접어두자.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대검을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필요한 건 모두 기억하고 있다. 영혼의 단편이 여전히 스스로를 지켜보고 있어서겠지. '그림자'로서는 반길 법한 일일 테다. 빛에 대항하기 위해 체내의 암흑을 더욱 활성화시킨다… 검증된 방법은 아니나 솔직히 좀 뿌듯해져서 슬그머니 꼬리를 위로 치켜든다. 이런 묘안을 내는 건 보통 야슈톨라쯤 되는 현인들의 역할이니까.

잠깐,

'그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문득 펜이 멈춘다. 그런 생각이 든 건 처음이다. 그래, 처음이지만…….

뒤를 돌아보면 평소엔 몇 갈래로 땋아 멋들어지게 늘어뜨리는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시트 위로 흩어져 있다. 아샤 그레이는 그것을 보며 종종 검은장막 숲의 밀밭을 떠올렸다. 그건 그립고 애틋한 기억이었고, 어쩌면 그런 기억을 너에게 덧씌우고 있었을 때부터,

아.

불현듯 깨닫는다. 보랏빛 잎사귀를 가진 나무가 자라는 모르는 세계. 나를 위해 시간선을 뛰어넘은 이의 백년지계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떠나버린 사람들, 그리고 '두고 볼 수는 없잖아' 언제나 영웅을 움직이던 간단하고 효과적인 한 마디—그 모든 이유를 제쳐두고도,

나는 정말로 이 세계를 구하고 싶어졌다는 것을,

너를 구하고 싶어졌다는 걸.

…황급히 시선을 다시 종이 위로 돌린다. 대검의 형태를 그려가는데, 어쩐지 어젯밤처럼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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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작품
#FF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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