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마회귀 드림

어린 마신과 나이 든 검객

광마회귀 드림. 검마 드림.

Girl R Dead by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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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거 맨 첨에 ■■가 갑자기 깊은 잠에 빠져서 깨어나지 않게 된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음.

평소에는 ■■가 먼저 깨서 검마가 자는 거 구경하고 있기 때매... 눈을 뜨면 시선이 마주치는데 웬일로 ■■가 잠들어 있어서 약간 웃으며 보던 검마. 근데... 지켜보고 있으려니 숨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아서 확인을 해봤는데 진짜 숨도 안 쉬고 박동도 안 느껴지는 거임.

검마가 깜짝 놀라서 모용백 데려와서 진찰시켰는데 신체 반응은 일절 없으나 체온이 따뜻하게 유지되고, 찔렀을 때(손가락 끝만 살짝 찔럿음) 신선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아 죽은 것은 아니다. 다만 깨어나질 않으니 아주 깊게 잠들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결과가 나와서 약간 안심했다가 이 상태가 일주일 넘게 지속되자 개심각해졌음.

검마가 고민하다가 문주를 불렀는데 문주도 와서 잠깐 들여다봤곤 잘 모르겠다고 했음. 내공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랬으면 모용 선생이 알아봤겠지... 정말로 그냥 잠든 것처럼 보이긴 한다고.

그러다가 형수님과 교주 선배가 오랜 친구라고 했으니 그쪽이 물어보는 건 어떻겠냐 이런 식으로 제안해서 검마가 또 고민하다가 마교 쪽에 연락을 넣음. 정확히는 문주가 대신 연락을 넣어줌.

이때 교주는 폐관수련이라고 말만 해두고 밖에서 수련 중이어서... 겨우겨우 연락 닿았는데 이게 거의 달 단위로 걸림. 심지어 이 시간동안 ■■는 몸이 점점 작아져서 요란이보다 훨씬 어려졌음. 거의 10살 정도로 보이게 됨.(요란이가 현재 14~15세 정도)

그동안 검마 떵줄 타들어가구...

암튼 교주가 직접 오진 않았고(당연함) 답신만 보내왔는데 직접 본적은 없으나 예전에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다고. ■■ 본인, 가끔 깊게 잠들 때가 있는데 그때는 거의 시체 상태일 거고,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이름을 부르면 깨어날테니 급한 일이 있다면 이름을 부르라고 했다고. 그런 내용이어서 답장 받은 검마가 순간 안도했다가 아주 중요한 문제를 떠올림.

검마는 ■■의 이름을 모름.

그리고 그 아래 덧붙은 내용을 보니, 이름이 아니면 깨울 수 없다며 교주에게는 이름을 가르쳐주었다고. 하지만 이 이름을 누구에게도 가르쳐주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여기에 쓸 수는 없다. (이걸 쓰던 교주는 어차피 써봤자 읽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음) 이름을 모른다면 깨울 수 없다. 깰 때까지 기다려라. 뭐 이런 말이 덧붙어있어서 갑자기 뒷목이 서늘해지는 검마쿤...

근데 정말 다행인게 일양현에 ■■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었음.

그것은 바로.

장요란.

물론 다른 사람들은 ■■가 요란이 에게 이름을 가르쳐줬다는 사실을 몰랐음. 둘만의 비밀이엇거든. 그래서 문주랑 검마가 머리 맞대고 고민에 빠져있다가 그러고보니 형수님이 요란이를 예뻐했지... 어쩌고저쩌고 해서...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란이한테 물었음. ■■의 이름을 알고 있냐고.

요란이는 당황했음. 알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가 교주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요란이에게도 자기 이름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아무리 검마와 문주여도 가르쳐줄수가 없었음. 암튼 요란이가 조금 망설인 걸 잡은 검마가 이름을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 그냥 알고 있는지만 말해다오. 해서 요란이가 알고 있다고 대답함. 그리고 어떻게 저떻게 사정을 들은 요란이가 혼자 ■■가 잠든 방에 들어가서 ■■의 이름을 부르며 ■■를 깨움.

잠시 뒤 요란이가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방에서 나옴. 밖에 있던 검마가 요란이 보고 안 깼나? 생각하는데 문주는 참지 않고 안 깼나? 하고 물음. 요란이가 대답함.

“일어나셨어요. 그런데 조금 이상하세요.”

“어디가?”

“저를 못 알아보시고...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세요.”

검마는 문주와 시선을 마주했다가 우선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했음. 가서 쉬라고. 요란이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검마와 문주를 한 번, 방 안을 한 번 돌아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종종걸음으로 돌아갔음.

“같이 들어가?”

“혼자 들어가마. 너도 바쁠텐데 미안하다.”

“쉰다고 생각하면 돼. 근래 통 못 쉬었으니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문주도 손을 설렁설렁 흔들며 자리를 떴음. 검마는 문주의 뒷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문을 열였음.

몇 달만에 깨어있는 ■■를 본 것이었음.

검마는 ■■가 반가웠음. 보니까 좋았고, 요란이의 말 때문에 걱정도 됐고. 평소에는 이름을 몰라도 그리 불편한 걸 몰랐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진작에 물어볼 걸 싶기도 하고. 심정이 복잡했음. 하지만 검마는 ■■의 곁에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를 바라보기만 했음.

한참이 지나서야 창밖을 보고 있던 ■■가 검마를 보았음. 검마는 그 눈빛을 보고 살짝 움찔했음.

평소에 검마를 볼 때 ■■의 눈빛은 그야말로 사랑과 온기가 가득 담겨 반짝반짝 빛났음. 그런데 지금 ■■의 눈빛은 무기질적이었음. 차가운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정말 아무 감정도 없이 텅빈 눈이었음. 마주보고 있기가 꺼려질정도로.

검마는 그 눈을 잠시 마주하다가 내공을 실어 말했음.

“가서 모용 선생을 불러 오게.”

잠시 뒤 누군가가 자하객잔 밖으로 빠르게 달려나갔음. 장요란인 것 같았음. 검마는 창밖으로 시선을 잠깐 두었다가 다시 ■■를 바라보았음. ■■는 여전히 검마를 바라보고 있었음.

검마가 물었음.

“몸 상태는 어떤가?”

“나쁘지 않아요.”

“본래 깊게 잠이 들면 그렇게 오래 자는가?”

“네.”

“그렇군. 유념해두겠네.”

그리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음. 모용백이 올때까지...

2.

모용백의 진찰.

몸 상태는 아주 좋은 편임. 원래 오래 누워있으면 근육과 장기가 상하고 몸이 망가지는데 그런 게 없었음. 다만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은 원인은 모르겠음. 독에 당한 것도 아니고(어떠한 중독 반응도 없었을 뿐더러 당했다면 잠들기 직전 함께 식사했던 검마도 독에 당했어야했음). 사술에 당했다기에는 ■■ 본인이 사술의 대가임.

모용백은 ■■에게 혹시 잠들기 전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느냐고 물었고, ■■는 그렇다고 대답했음. 그리고 모용백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원인이 ■■ 본인에게 있을 수도 있다고 했음. 도저히 짚이는 외부 요인이 없다면... 그리고 오랜 잠에 빠지는 것이 단순한 체질이라면 기억을 잃은 것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인과관계가 반대일수도 있다. 오래 잠들어서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은 부작용으로 오래 잠든 것일 수도 있다고.

근래 ■■는 언제나 검마의 생활습관에 맞춰서 취침하고 기상하거나, 그냥 안 자거나 했고. 본인 말로는 자기는 자지도 먹지도 쉬지도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으므로... 이렇게 오랫동안 잠든 것이 기억을 잃기 전 ■■가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라는 추측까지만 하고 이 이상은 가진 자료가 없어서... 병명을 모르고 약을 처방할 수는 없으니 일단 돌아가서 관련된 자료가 있나 찾아보고 수소문도 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했으면. 그럼 ■■는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몸을 헤칠 정도로 무리하지는 말고, 그냥 시간 나면 조사하는 정도로만 하세요. 라고 말함. 모용백이 살짝 웃으며 알겠습니다, 선배님. 하고, 식사 대접받고 돌아감.

모용백을 배웅하고 나란히 서 있던 검마 ■■ 요란이 문주. 검마가 먼저 들어가자. 고 말함. 요란이가 이어서 예, 대사부님. 이라고 대답하고, ■■는 장요란과 검마를 번갈아보다가 네, 대사부님. 이라고 말함. 요란이와 검마와 문주가 깜짝 놀란 얼굴로 ■■를 봄. ■■는 그들을 멀뚱멀뚱 보았음.

“그대는.”

“네.”

“검마라고 부르게.”

“네, 검마님.”

“...”

“와, 이게 맞아?”

검마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한숨을 내쉼.

“들어가자.”

“예.”

“네.”

그날 밤.

■■는 검마의 방 문 옆에 마치 호위처럼 앉아있었음. 검마는 잘 준비는 했지만 ■■가 저런 상태여서 잘 생각이 없었음. 하루정도 안 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이불을 펴놓고 누울 생각을 안 하는 검마를 보던 ■■가 말했음.

“불편하면 나갈까요?”

“난 안 불편하다. 그대가 불편하진 않은가 걱정이군.”

“나는 불편하지 않아요.”

편하지도 않아 보였음. 정확히는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음. 검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차성태가 가져다준 차나 마셨음.

■■가 문득 말했음.

“의원님이 너무 열심이어서 말을 못 했는데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정확히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에요.”

검마가 말없이 ■■를 돌아보았음.

“그간의 기억이 없는 것은 맞는데 원인은 알고 있어요.”

“왜 모용 선생에게는 말하지 않았나?”

“자세히 설명할 수 없어서 모르는 척했어요.”

“내게 말하는 이유는?”

“나를 걱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그리고.”

“이 시대의 내가 사랑하는 인간인 것 같아서 이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기억이 없다면서 어떻게 도대체 그런 걸 알 수 있는 걸까? 검마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갔음.

담날 아침부터.

■■는 자하객잔 탁자 하나에 자리잡고 하루종일 앉아있으면서 멍이나 때렸음. 검마는 요란이 수련도 봐주고 일양현 관리도 하느라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문주도 종종 검마와 같이 행동했는데 ■■는 정말 하루종일 그 자리에 앉아있었음.

요란이 하루 수련을 끝내고. ■■의 맞은 편에 앉은 검마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에게 물었음. 뭘 보고 있나? 그럼 ■■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몇 박자나 늦게 대답함. 많은 것을 보고 있어요.

문득 문주가 궁금해져서 물었음.

“궁금한 것이 있는데, 형수님.”

“말해요.”

“형수님은 기감을 어느정도 넓힐 수 있소?”

■■가 문주를 빤히 바라봄. 말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생각하는 것 같았음. 문주가 말하기 싫음 말고. 라고 말하려는 순간 ■■가 말했음.

“천하만큼.”

“그럼 지금 천하를 살피고 있는 것이었소?”

“네.”

“대단하군.”

며칠 내내 그랬음. 그동안 돼지통뼈도 실컷 먹고 술도 실컷 마신 문주는 화산으로 돌아갔고, ■■의 상태가 이상한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깨어나긴 했으므로 일양현은 다시 평화로워졌음.

검마가 하루에 한 번씩 물었음.

“오늘도 같은 것을 보고 있나?”

“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가 갑자기 검마에게, 잠깐 다녀오고 싶은 곳이 있는데요. 라고 말하고 검마가, 어디를? 하고 물으면 ■■가, 같이 가실래요? 라고 말하고.

검마가 그래. 라고 대답하자 ■■가 손을 내밀었음. 검마가 그 손을 잡자 검마의 손을 단단히 쥔 ■■가 한 발을 내딛었음.

검마가 눈 깜빡하는 사이에 풍경이 바뀌었음. 숲 속이었는데 어디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음. ■■가 검마의 손을 놓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이동하자 검마도 ■■의 뒤를 따라갔음.

거기에는 통행세를 요구하며 상인 무리를 위협하는 산적무리가 있었음. 상인들이 호위로 고용했던 자들은 죽었는지 시체가 몇 구 있었고... ■■는 저벅저벅 걸어 그들에게로 다가갔음.

갑자기 나타난 어린아이가 다가오자 한 산적이 저열하게 웃으며 ■■를 위협했음. 산적들끼리 서역 혼혈처럼 보이는데 머리색도 눈동자도 특이하니 노예로 팔아넘기자 뭐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가 왼손으로 허공을 가볍게 움켜쥐고 팔을 횡으로 휘두르자.

산적 무리 절반 정도가 복부가 뜯겨나가더니 신체가 바닥으로 쏟아져내렸음.

상인들의 비명소리와 산적들의 고함소리가 섞였음. 흥분한 산적 몇이 ■■에게 달려들자 이번에는 손을 펼쳐 붓처럼 부드럽게 휘둘렀음. ■■의 손짓에 따라 형성된 반투명한 붉은 막은 산적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산적들을 에워쌌음. 그리고 구슬처럼 동그랗게 변한 막이 점점 작아졌음. 그 안에 갇힌 산적들은 압축 당해 죽었음.

■■는 잠깐 기다렸다가 손바닥으로 구슬처럼 변한 막을 가리더니 주먹을 꾹 움켜쥐었음. 그러자 구슬은 먼지로 변해 사라졌음.

남은 산적들은 줄행랑을 쳤음. ■■는 도망치는 산적들을 시야에 넣고 오른손을 들어 그들의 머리 위를 손바닥으로 내리누르는 시늉을 했음. 산적들은 투명한 손에 짓눌려 벌레처럼 터져 죽었음.

■■는 손을 한 번 털었음. 그리고 겁에 질려 자리에 주저앉은 상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검마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갔음.

검마는 놀란 표정으로 그걸 지켜보고 있었음. ■■가 자신의 힘을 행사하는 걸 첨 본 거임. 지금까지는 기껏해야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눈 앞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정도만 했었는데 사람을 죽이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음.

물론 검마도 가차 없이 사람을 죽이던 자여서 ... 그런 부분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 것이 살짝 충격인가...? 아무튼 살짝 놀랐음. ■■를 살펴보던 검마가 물었음.

“다친 곳은?”

“없어요.”

■■가 다시 손을 내밀었음. 검마는 피 한 방울 묻지 않고 깨끗한 ■■의 손을 잠깐 바라보다가 그 손을 잡았고, ■■는 검마의 손을 힘주어 붙잡고 다시 한 발을 내딛었음.

그런데 한번이 끝이 아니었음. ■■는 한 시진 사이에 꽤 많은 사람들을 구했음. 그 중에서 갈곳 없는 사람들은 검마의 허락을 받고 일양현으로 데려왔음. 자하객잔에 등장한 낯선 사람들을 요란이가 자꾸만 기웃거렸음.

“이분들도 여기서 지내나요?”

요란이의 말에 ■■가 검마를 보았음. 검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대답했음.

“당분간은 이곳에 있을 거다.”

■■가 데리고 온 사람들 중에 쬐매난 어린아이도 있었는데 ■■ 뒤에서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다가 요란이와 눈이 마주치자 ■■의 뒤로 호다닥 숨었음. 그리고 다시 고개만 빼꼼 내민 것을 본 요란이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음. 아이는 그걸 빤히 보다가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음.

3.

그 뒤로도 검마는 ■■를 따라다녔음. 정확히 말하면, 검마가 하루일과를 끝내고 비는 시간에 ■■가 말없이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주는... 그런 느낌이었음. 검마는 그냥 ■■랑 산책 나가는 기분이었고, ■■는 나쁜놈들 패죽이면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고.

처음에야 ■■의 손속에 자비가 없는 걸 보고 놀랐지만... 그래도 ■■의 힘이 힘 없는 자들에게는 향하지 않는 걸 알았으니 뭐... 상관 없나. 이런 생각이나 했다는 말임.

겸사겸사 자잘한 소원들을 들어주기도 했음. 우리집 소가 무사히 출산하게 해주세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세요. 올해 농사가 잘 되게 해주세요. 산길을 다니다가 위험한 짐승이나 녹림채를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주세요... 뭐 그런 거.

그러는 와중에도 일양현에 데리고 왔던 사람들이 머물 곳을 찾아 보내기도 해서, 일양현에 사람이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빠졌다 했음. 드물지만 아예 정착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러한 날들이 두 달 정도 지속되니.

검마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음. ■■를 신으로 받들었던 교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천마신교의 시작을 엿본 것임.

■■는 약한 생명체에 대한 측은지심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약한 것들을 지켜주고 싶다, 혹은 지켜주어야한다. 그런 마음으로 괴롭힘 당하는 것들을 구하고 거둔 것 같았음. 지금이야 검마의 허락하에 일양현으로 데려오고 있지만, 과거에는 ■■가 이런 식으로 보호하고 거둔 자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이 있었겠지. 그 마을이야말로 마교의 시작이었을 거임.

확실히 이런 식으로 힘을 행사해왔다면. ■■ 주위의 인간들은 ■■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검마는 생각했음. 특히 힘 없는 자들은. 그렇게 의지하던 것이 의존이 되고, 그것이 또 신앙이 되고.

선의로 베푼 일이 언제나 선의로 돌아오지는 않는 법이라. 갈 곳 없는 자들이 ■■의 곁에 모여서 만들어진 단체가 시간이 지나고 변질되며 현재의 마교가 되었다면.

그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가 크게 상처를 입고 괴로워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면.

이, 기억을 잃은 ■■의 행동도 말려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했음. 이런 행동들이 나중에 기억이 돌아온 ■■의 상처를 헤집는 일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검마가 이런 생각을 하며 ■■를 바라보고 있으면 ■■도 검마를 돌아보는 거임.

“이제 하지 말까요?”

“그대는 독심(讀心)도 가능한가?”

“내가 읽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들려주는 거에요.”

“그런가.”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말로 해요. 그러면 그렇게 해줄게요.”

“무엇을?”

“네가 방금 생각한 것이요.”

검마가 고개를 저었음.

“나는 그대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다.”

“있는 것 같았는데요.”

“그렇지 않아.”

“그래요?”

■■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음. 특이한 것을 본다는 눈이었음. 나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니? 그런 눈이었음. 검마는 어린 마신의 순진무구한 눈을 잠시 마주하다가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말했음.

“그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어디로든 다녀도 된다. 다만 다닐 때는 나를 데려가주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함께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군.”

“그게 네가 바라는 거에요?”

“바라는 것까진 아니고. 그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거절해도 좋아. 강요하는 게 아니다.”

“나는 상관 없어요.”

“그렇다면 함께 다니자.”

“네.”

검마에게 ■■를 막을 자격은 없었음. ■■야 아무 생각 없겠지만, 검마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음. 그렇다면 차라리 곁에서 지켜라도 보자. 만약에 ■■가 슬퍼하거나 괴로워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나설 요량으로.

그러고 또 네 달. 총 반년의 시간이 흘렀음.

그동안 ■■는 자신의 호오 없이 인간을 비호하고 소원을 들어주며 돌아다녔는데, 완전히 감정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니었음.

물론 처음에는 감정이 없어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졌음.

노인이 감사를 담아 ■■의 손을 붙잡으며 울 때.

어린 남매가 꺾어온 들꽃을 건넬 때.

여인이 눈을 찡긋하며 소매에서 몰래 당과를 꺼내 건네줄 때.

순진한 눈망울의 아이가 짧고 통통한 손으로 옷깃을 잡아당기며 웃을 때.

그 딱딱하게 굳은 낯이 부드럽게 풀어지며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리는 것을 목격하면 검마는 기분이 조금 좋았음. ■■의 근간에 있는 인간을 향한 변하지 않는 선의와 애정이 보였기 때문.

동시에 약간 쓸쓸했음. 원래의 ■■가 보고 싶었기 때문임.

게다가 ■■가 평소 밝히고 싶지 않아했던 ■■의 과거를 엿보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음.

검마가 이런저러 복잡한 심정으로 ■■를 바라보든 말든 ■■는 자기 할 일이나 했음. 상인을 보호하고, 농사꾼을 돕고, 병자를 돌보고, 노인과 여인과 아이를 거두고. 사마외도 무리는 문답무용으로 저승에 보내버리고, 말이 안 통하는 흑도 무리는 때려 패거나 죽여서 다시는 나쁜 짓 못하게 만들고, 사고치는 백도 무리는 반만 죽여서 그들의 문파 앞에 던져두고. 아무리 그래도 반년간 한숨도 안 잘 수는 없었던 검마의 머리맡도 지키고.

원래 인세에 관여하지 않으며 바람처럼 햇살처럼 있는듯 없는듯 살던 ■■의 뜻하지 않은 강호행 덕분에 하오문주와 무림맹주, 마교주와 천악서생이 나서지 않아도 중원은 제법 평화로워졌음.

그리고 이 강호행에서 ■■에게 별호가 생겼는데, ■■에게 자비 없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흑도와 사파쪽에서 먼저 ■■를 혈천마선(血天魔仙)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에 뒤따르듯 ■■를 천향선자(天香仙子)라고 부르기 시작했음. 원래도 그들은 ■■를 선녀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임.

당연히 ■■는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신경쓰지 않았음. 오히려 마(魔)는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이름이라며 인간들은 정말 의외로 통찰력이 좋다고 말하기까지 했음.

그러나 검마가 가장 무겁게 생각한 것은 근 반년간 ■■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임. 분명 처음 깨어났을 때는 10세 안팎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였는데 겨우 반년간 장요란과 동년배로 보일 정도로 성장해서 거의 비슷한 눈높이가 되었음. 아이 같은 얼굴을 거의 그대로지만 키가 쑥 크고 신체가 발달하더니 여인의 태가 나기 시작했음.

하지만 검마는 장요란 때와 달리 아이의 성장을 신비로워하기 보다는……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음. ■■의 빠른 성장을 보니 마공이 떠올랐기 때문. 마교식 운기조식과 무공. 채음보양, 채양보음이나 천옥 같은, 빠르게 강해질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희생이 따르는 것들.

■■가 인간을 죽이며 흘린 피와 사라진 생명을 대가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임. 죽인 자들의 피를 직접 마신 것도, 그자들의 내공을 흡수한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을 죽이고 나서 전보다 조금 더 큰 것이 보였음. 그리고 대부분의 마공 역시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무공과 사술을 전수하지 않았지만... 만약에 ■■를 따르던 인간들이 ■■의 그러한 성질을 보며 무공을 창안하고 발전시켜왔다면. 그렇게 ■■의 강대한 힘을 재현하고자 했다면. 그 결과가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희생시키는 무도한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그건 ■■에게는 너무나 슬픈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음.

그래서 마교를 떠났던 걸까. 그런 생각도 들고.

■■는 상당히 슬픈 시간을 보냇군아... 하고 깨닫는 검마와...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다녀서 암 생각도 없는 ■■(쬠 기분 좋음).

■■는 검마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다 들었지만 그걸 정정하는게 자신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내버려둠. 어차피 원래 ■■가 돌아오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방방 뛸 테니깐.

■■는 어두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검마를 보다가 검마의 소매를 잡고 살살 흔들었음. 검마가 ■■를 슥 내려다봄.

“이제 가요, 검마님.”

“……그래.”

검마는 자신의 소매를 붙든 ■■의 손을 잡았음. ■■는 그 손을 꽉 맞잡고 한 발을 내딛었음.

둘은 코를 찌르는 피냄새와 찢겨져 토막난 시체를 뒤로하고 함께 평화로운 일양현으로 돌아갔음.

~아직 안 끝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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