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제

Riverside

개인로그


짙푸른 드네프르 강을 앞에 둔 작은 오두막은 대체로 빈 집이었다. 생활감이 없는 냉막함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마른 나무의 냄새와 오래도록 켜켜이 쌓인 먼지의 냄새가 퀴퀴하게 묻어났다. 사냥꾼들이 잠시 바람을 피하고 몸을 쉬기 위해 사냥철에나 종종 쓰곤 한다는 장소였다. 오가는 사람이 없어 야생동물이 오두막 근처를 기웃거리는 일도 잦았다. 어김없이 사슴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을 때였다. 매캐한 매연을 뿜으며 카모 패턴의 지프 한 대가 거칠게 사슴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지프에서 내려선 이반이 고요한 숲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카모 패턴을 입혀 군수용처럼 보이게끔 만든 지프는 라스칼로프 브라츠바에서 먼 길을 떠날 때 주로 이용하곤 하는 편리한 이동수단이었다. 군용지프와 거의 흡사한 외관을 지녀 일반 차량들은 쉽게 길을 양보하거나, 난폭하게 끼어들어도 경적 한 번 울리는 일이 없었다. 종종 도로가에 위치한 검문대도 아무 문제없이 지날 수 있었으니 편리할 밖에(물론 승차감은 논외의 이야기였다. 지프차의 승차감이 좋아봤자 뭐 그리 좋을까). 

 

그렇게 달려도 모스크바에서 스몰렌스크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작은 숲까지는 꼬박 여섯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 앉아있던 탓에 찌뿌둥한 몸을 쭉 펴며 이반이 오두막의 문을 열어젖혔다. 함께 온 조직원 둘이 집 안으로 들어서며 작은 창을 열어젖히고 덜렁 놓여있는 테이블 위의 먼지를 후욱 불어냈다. 공기를 타고 퍼지는 먼지를 피해 오두막에서 걸어 나오며 이반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약속된 시간까지는 약 3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조직원들이 오두막 안을 적당히 정리하는 동안 이반은 오두막 앞에 펼쳐진 강가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둡고 푸른 물이 당장이라도 덮쳐올 듯 위험하게 넘실거렸다. 깊은 강물은 사람을 홀리는 기이한 매력이있다. 계속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걸어들어가도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머리끝까지 잠겨들어도 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허리를 숙여 강물을 내려다보던 이반이 몸을 일으켰다. 드네프르 강을 보는 것은 이번으로 네 번째였다. 스몰렌스크와는 이렇다 할 인연이 없었다. 이번의 일이 아니었다면 스몰렌스크에 와 보는 일도, 드네프르 강을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스몰렌스크는 벨로루시의 국경과 비교적 가까이 위치한 도시였다. 이번 거래 상대인 벨로루시의 소규모 갱단이 먼저 접촉해 온 것은 한 달 전이었다. 그들이 원한 거래는 무기 거래로, AK-74 마흔 정과 토카레프 서른 정, 그에 쓰이는 총탄과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까지 규모만 본다면 반군이 구비할 정도의 수량이었다. 쓰임이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반은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거래하는 물건의 용도를 묻지 않는다. 그것은 밀매의 암묵적 룰이었다. 라스칼로프는 이반에게 거래를 온전히 맡겼다. 간부들의 일을 보조해온 기간이 제법 되었고, 작은 일들을 해치운 경험도 제법 되었으니 이제 직접 일을 맡아 처리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라스칼로프의 신임 가득한 웃음이 이반의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라스칼로프의 신임은 양날의 검이었다. 일을 잘 해결한다면 새파란 날은 이반의 적을 향할 것이고, 일을 잘 해결하지 못한다면 날은 이반에게로 향할 것이다. 이반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이번 일은 비교적 손쉽게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오늘의 거래가 끝나면 이 오두막도, 드네프르 강도 다시 찾을 일은 없으리라. 이반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에 강을 마주보고 있던 몸을 돌렸다. 거래를 빨리 끝내고 스몰렌스크 도심으로 들어가 하루를 묵은 다음 모스크바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거래는 예상한 대로 순조로웠다. 벨로루시의 갱단을 대표해 나온 이는 챙겨 온 돈 가방을 제 목숨마냥 끌어안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이반은 그가 갱단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그 역시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으니 이반이 굳이 품지 않아도 될 의문이었다. 저와 함께 온 조직원들이 오두막 안에서 돈을 확인할 동안 이반은 벨로루시의 갱단 두 사람이 무기가 담긴 박스를 자신들의 차로 옮겨 싣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돈가방을 내주고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켠에 서 있는 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무기를 싣고 있는 이들을 겁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는 행세가 꼭 납치라도 당한 사람 같았다. 이반이 그 불안한 시선의 이유를 찾으려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이 상자가 모두 옮겨졌고, 조직원들이 돈의 확인을 끝마쳤다. 약속된 액수가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조직원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이반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남자에게 천연덕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가 거래의 대표자로 나왔으니 그와 인사를 하는 것이 맞았다.

 

각자의 차에 올라 떠날 준비를 마치자 벨로루시 갱단의 차가 먼저 몸을 돌려 숲을 빠져나갔다. 이반이 올라탄 지프 역시 이내 몸을 돌려 그들이 떠난 방향과 반대로 출발했다. 덜컹이며 숲을 빠져나가는 차 안은 고요함이 감돌았으나 그것이 나쁜 의미의 고요함이 아니라는 것은 차 안의 셋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고 모스크바로 돌아가면 이번 일은 완벽히 끝이 난다. 두 조직원들의 표정에 감출 수 없는 기대가 떠올라 있었다. 라스칼로프로부터 받게 될 보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이반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늘 그랬듯 일을 끝내고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이반의 몫이 아니었다. 

딱히 만족스런 기색을 표하지 않는 이반을 두고 라스칼로프는 욕심이 많다 농담을 했다. 어느 정도의 보상을 주어야 만족한 듯 웃을 거냐 물었지만, 이반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저 스스로도 그것에 대해 알 수 없었으므로. 이반은 저와 거래하는 이들이 아닌 자신이야말로 사실은 기갈이 든 아귀가 아닐까 넌지시 생각했고, 그와 아주 찰나간의 틈을 두고 운전석의 측면에서 강한 충격이 지프를 때렸다. 이반은 유리창 위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생각에 잠겨 내다보던 반대쪽에서 무엇이 차를 친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사이 지프는 옆으로 눕고 있었다. 단순히 눕는 것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테지만, 강하게 처박힌 탓에 지프는 서너 바퀴를 구른 다음에야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로 멈춰섰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차 안에서 여기저기를 처박은 몸이 욱신거린다. 이반은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조직원들을 쳐다보았다. 둘 다 심각하게 다치진 않은 듯 의식은 있어 보였다. 이반의 뇌리에 불현듯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불안하게 서 있던 남자가 스쳐 지났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총을 꺼내려 손을 움직이자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팔을 찾아들어 이반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팔꿈치 아래로 팔 뼈가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봐도 이건 뼈가 부러진 거였다. 저만치서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살려달라며 벌벌 떠는 목소리로 빌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역시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이였다. 이반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벨로루시의 갱단들이 자신들의 차를 칠 만한 이유는 돈 뿐이다. 무기도 챙기고, 돈도 챙기려는 속셈인 듯 싶었다. 갱단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가 실은 돈의 주인이 아닐까. 이반은 차 밖으로 몸을 움직여 벗어나려는 조직원들을 멈춰세우며 총을 꺼내들고 있으라 속삭였다. 그 다음으로는 부러진 뼈가 불룩하게 솟은 제 팔을 어떻게든 할 차례였다. 

 

총은 겉옷의 왼쪽 안주머니에 있었고, 뼈가 부러진 것은 오른쪽이었다. 총을 꺼내려면 팔을 한 번이라도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작게 숨을 몰아 쉰 이반은 입을 꾹 다물며 왼손으로 오른손의 손목을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찌르르한 통증이 팔을 타고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이반이 팔을 잡아당겼다. 불룩 솟아있던 뼈가 조금씩 아래로 가라앉는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악다문 잇새로 뿌드득 이가 비명을 질렀다. 정신이 아찔했다. 차 밖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살려달라 빌던 남자의 음성이 잦아들었다. 이반은 속으로 온갖 욕설을 되는대로 뇌까렸다. 참아도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씨근거리는 숨으로 새어나온다. 부러져 튀어나온 뼈를 억지로 끼워 맞추듯 밀어넣은 다음에야 이반이 손목을 놓았다. 

그 잠깐 사이에 흐른 식은땀이 콧등과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었고, 고통을 씹어 삼키듯 참아낸 얼굴과 군데군데 실핏줄이 터진 흰자위가 붉었다. 이대로 기절해버려도 좋을 법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이반은 멈추지 않았다. 뼈를 억지로 맞춘 이유는 총을 꺼내기 위함이었다. 잔뜩 악다물었던 이가 우릿하게 둔통을 몰고온다. 팔을 지져대는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간지러운 수준이다. 서너 번 숨을 내쉰 이반이 다시 한 번 이를 꽉 짓씹으며 손을 움직여 안주머니의 총을 꺼내쥐는데 성공했다. 고통을 가해가며 억지로 움직인 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부들부들 떨렸다.

 

왼손으로 총을 옮겨 쥔 이반이 부러진 오른팔을 몸에 바짝 가져다 붙였다. 하루를 스몰렌스크에서 머무를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모스크바로 돌아가야 했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차에서 반응이 없자 의식을 잃었거나, 죽었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듯 지프를 향해 다가오는 두 발걸음은 소리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병신들. 이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잔뜩 쫄아있는 그 사람을 먼저 죽일 것이 아니라, 이 지프 안의 이들을 먼저 확실히 처리하는 게 맞는 순서였다. 기울어진 유리창에 몸을 기대며 이반은 반대쪽 유리창에 총을 겨눴다. 그들은 돈가방을 뒷좌석에 싣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니 차를 뒤지지 않고 곧장 뒷좌석을 찾을 터였다. 이반이 총을 겨누는 것을 본 조직원들이 눈치 빠르게 각각 운전석 옆의 창문과 전면의 유리를 조준했다. 

퉁, 퉁 차체 바닥을 가볍게 발로 차는 것이 느껴진다. 차가 기울어 창문을 들여다보려면 무언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리라. 이반은 가늘고 길게 내뱉던 숨을 멈췄다. 입안의 살을 씹어 몸의 떨림을 억지로 잡는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총을 겨눈 채 숨을 죽이길 수 초, 창문 아래에서 검은 머리통이 불쑥 솟는다. 이반은 그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되는 순간 손이 흔들리며 머리를 살짝 빗겨 맞았지만 그것으로도 머리통 일부를 날려버리기엔 충분했다. 떨어지는 유리 부스러기를 피하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 사이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눈을 떠 시선을 운전석으로 주었을 때 저를 돌아보는 시선은 둘이었다. 탄환이 지나간 구멍 두 개가 전면 유리에 균열을 만들어 놓았다. 이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스칼로프의 칼날이 저를 향하는 일은 면한 것이다.

 

기울어진 차에서 탈출한 이반과 조직원들은 돈 가방을 꺼내 벨로루시 갱단의 차에 옮겨 싣고, 시신 세 구까지 구겨 넣듯 싣은 다음 가장 가까운 강줄기로 향했다. 검푸르게 넘실대는 드네프르의 강에 시신을 버렸다. 등을 내보인 채 둥둥 떠내려가는 시신을 보는 녹안이 차다. 인적이 드문 곳이니 저 쓰레기들이 발견되려면 상당한 거리를 흘러간 뒤에나 가능성이 있을 터였다. 물고기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도 좋았다. 무심히 강줄기를 바라보던 이반이 몸을 돌렸다. 피로가 몰려왔다. 퉁퉁 부어오른 팔이 비명을 지르듯 맥박에 맞춰 욱신거린다. 이반이 지르지 못한 비명을 대신 지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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